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54화 (54/296)

EP 10 - 겨울의 끝자락 (4)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이다.

즉, 밥그릇 싸움이다.

때문에 정치는 멈추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 각성제! 각성제 하나만 주세요! 제발!

-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십시오!

- 각성제를! 분배하라! 각성제를! 분배하라!

살고 싶은 시민들은 각성제를 원했고,

- 각성자가 괴수를 잡아야지, 제 가족들만 챙겨서 도망칠 게 뻔히 보입니다.

- 저들이 약탈자로 돌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 차라리 특수부대원들을 각성시키겠습니다.

군인들은 무력을 독점하길 원했으며,

- 아니, 멀쩡한 하늘에 뭔 게이트가 열린다고!

- 수도권 포기 못합니다! 책임은 누가 질 건데요!

- 차라리 의정부를 요새화시켜서 방어하는 게 낫지요!

- 게이트 열리기 직전이니까 후퇴하라고 이 사람들아!

나는 빠른 후퇴를 원했다.

정치공학이 맞물렸다.

- 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 국회의원 한승문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은 위험합니다. 국군은 이를 인지하고 있으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내가 나서서 시민들을 진정시켰고,

- 군수지원단 측에 전량 양도했습니다.

- ......정말 다 주지는 않았죠?

- 가방에 여분으로 25개 챙겼습니다.

- 잘하셨습니다. 장원장님.

각성제는 오직 군인들에게만 분배되었다.

그리고,

- 버스랑 트럭 징발해서 사람 쑤셔넣어! 도로 막혔으니까 탱크로 밀고 간다!

- 씨이팔! 눈 온다!

- 오라이! 오라이!

그 시린 겨울에,

- 의정부에서 나가라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 아, 우리도 윗선에서 내려온 거라 잘 몰라요!

- 아! 아! 앞에 비켜요! 씨발! 전차 지나가잖아!

대후퇴가 시작되었다.

* * *

“그, 그게 뭔 소립니까!?”

쾅! 나는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유현종 지휘관이 움찔 뒤로 물러났다.

“드, 들으신 그대롭니다.”

그가 울상으로 전술지도를 쿡쿡 찍었다.

“서울 게이트들이 폭주해서 남양주랑 하남쪽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동부가, 무너진 겁니까?”

“일단 천마산, 남한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을 기점으로 2차 방어선을 형성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원래 포위망이라는 게 한쪽이 뚫리면 개판이 나는 거였다.

특히, 상대하는 적이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보통 포위망을 돌파할 때는 일점돌파一點突破 작전을 사용한다. 포위망의 약한 구석만 때리는 것이다.

근데 괴수가 그런 전략을 쓸 리가 있나.

즉, 모든 포위망에 똑같은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인데, 한쪽에서 포위망이 뚫렸다는 소리는.

“......다른 곳이 뚫리는 것도 시간문제겠군요.”

그냥 괴수가 존나 많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소리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단 충청도 쪽에 긴급 방어선을 친 걸로 압니다...”

지휘관은 시무룩하게 현황을 설명했다. 영 미덥지 못한 모습이다.

사단장인줄 알았는데 사단장 대리를 맡은 작전 부사단장이란다. 계급도 고작 대령이었고.

지휘관이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인천 쪽도 위험하다는데요... 간당간당하다고 연락이-”

“게이트의 분포는 어떻습니까?”

“충청도 북부와 강원도 서부에 살짝? 나온 거 빼고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주변에 게이트가 빼곡하다는 소리다. 이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숨이 튀어나왔다.

“허어......”

“후우......”

나는 창문 밖을 살피며 맥없이 중얼거렸다.

“......신속한 후퇴가 필요하긴 합니다. 저기 하늘 좀 보십쇼. 소용돌이가 아까보다 더.”

잠깐.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창문 너머로 시퍼런 불빛이 들어왔다.

저거, 소용돌이.

감지윤 손 잡았을때만 보이던건데.

대체 왜.

......보이냐?

“지, 지휘관님도 저거 보이십니까?”

“보, 보입니다.”

지휘관의 파르르 떨리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괴, 괴수...!”

“게이트 열립니다...!”

“아, 안돼...! 으아아아아...!”

시퍼렇게 질린 지휘관이 헐레벌떡 일어나 팔을 휘저었다.

"여, 여기서 죽을수는...!"

그리고. 눈빛이 변하더니,

순식간에 무전기 여러개를 붙잡고 번갈아 소리쳤다.

“야! 야! 작B! 강원도! 강원도로 후퇴! 다른 사단에도 전달해! 도봉구에 공습요청하고, 싹 챙겨서 연인산 도립공원으로 이동한다! 구출해서 후퇴하는 게 아니라, 후퇴하면서 구출해!”

“트럭이랑 버스는 징발 그만하고 알아서 따라오라 그래! 노약자 위주로 태웠으니까 별 문제 없어! 어차피 괴수들 잡으면서 도망치다보면 알아서 속도 맞아! 우린 길만 뚫는다, 알아들었냐?”

“게이트 밑으로 가지 말고 기동대로 그때그때 앞길 열어! 화력은 우리가 앞선다잉! 김 사단장한테 공주지구 애들 챙겨서 세종포천고속도로로 튀라 그래! 북한산 최 여단장한테 자주포 싹 다 챙겨서 오라 그랬으니까 길 터놓고! 군사도로는 이미 비워놨어! 임마!”

“헤이! 잇츠미! 어? 유현종! 리멤바? 어어! 오케! 오케! ADVON 포워드! 올레디 ATC 퍼펙트. 위 니드 ASM! ASM!

에이에쓰엠 이 씨뻘놈아아아!

어? 공대지미싸일 만땅으로 채워다가 보내라고! 아파치에! 이 씹, 주한미군이 한국말 안 배우고 뭐해써! 아! 나! 씨팔! 한국말 할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해요!”

“사단 2개로 양주시청까지 다이렉트로 뚫는다! 전선쪽에 무전쳤으니까 남하중일거야! 코쟁이들한테 공습 요청했어! 어쎔블리 애리아는 운악산! 47타고 쭉 치고 올라간다!”

지휘관이 각성했다.

각성이 그 각성은 아닌 것 같다만.

*

하늘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다. 파아란 실선들이 기하학적으로 휘황찬란하게 움직이며 그곳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눈보라 치는 하늘에, 시퍼런 광휘가 내렸다.

사람들의 눈에 푸른 공포가 맴돌았다.

일행들은 옥상에 모여 있었다. 어느새 큼지막한 승합차도 하나 구해놓은 상태였다.

나는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허어......”

“평소 군사도로 관리는 철저히 했으니, 대피가 지지부진하진 않을......”

나는 힐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 흐아아악!

- 끄아아악!

- 아아아악!

비명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사람들이 도로에 가득 차 있었다.

“......겁니다. 아마도요.”

저 아래에서 탱크가 앞장서 길을 뚫었다. 그 뒤로 수많은 트럭과 버스가 뒤따랐다. 초동대처가 빨라서 거동할 수 없는 노인과 유아들은 거의 다 태운 상태였다.

“우리도 갑시다. 타세요.”

일행들이 큼지막한 승합차에 오르고, 내가 감지윤의 손을 잡고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 볼 무렵.

- Shle Coms-mels-lehSh......

머리 속으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띠잉. 가벼운 이명과 함께 머리를 붙잡고 휘청거렸다. 감지윤의 손을 꼬옥 붙잡은 상태였다.

“......다들 들으셨습니까?”

“예?”

“빨리 타세요! 의원님!”

감기자가 뛰뛰빵빵 경적을 울렸지만 나는 당황스레 감지윤을 쳐다봤다. 감지윤이 조막만한 손으로 나를 꼬옥 붙잡았다.

“아, 아저씨! 나도...! 들었-”

다시금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 Comse me eoSh......

그리고.

스륵.

빛이 없어졌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비추던 푸른 빛이 없어졌다.

나는 조금씩 경련하며 뒤돌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퍼런 게이트가 사라졌다.

온 세상을 휩쓸어버릴 것만 같던 마력의 소용돌이도 없어졌다.

그저.

칼바람 소리 들려오는데.

흐린 하늘에 눈보라만 나리우고.

- leo Come eoSh Shle Com......

암덩이같이 부풀어오른 검은 종양.

붉게 빛나는 거미눈알.

그리고 촉수로 뒤엉킨 검은 산양이.

하늘에서 조용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거리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까지도 수많은 인파가 온갖 소음을 내며 도망쳤지만, 약 4초. 정확히 4초 반 정도 완전한 침묵이 있었다.

이윽고 거리는 다시 시끄러워졌다.

- 촤악 !

검은 산양의 몸에 꾸물대던 촉수가 퍼졌고,  - 슈우우우 !

몸에 붙어있던 검은 종양이 폭탄처럼 쏟아져내렸기 때문이다.

“떠, 떨어진, 떨어진다!”

“꺄아아아아악-!”

사람들이 공습에 대피하듯 엎드렸고, 지하에 들어갔으며, 누군가에게 기도했다.

허나.

종양덩어리 하나가 어느 건물의 피뢰침에 닿자마자 펑 터져나갔다.

애석하게도, 산양의 몸에 붙어있던 수많은 종양덩어리 중 하나였지만, 종양은 한 블록을 가득 채울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 촤아아아악 !

검은 액체가 세상을 덮었다.

끈적하게.

흑색 페인트가 엎어진 것처럼,

세상은 검은 액체로 뒤덮였다.

그리고.

그 검은 바닥에서 어떤 사람도 다시 일어나지 못했으며.

“.......그르르르륵.”

오직. 붉은 안광만 빛나는 검은색 괴물들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꿈틀거릴 따름이었다.

*

도망쳐야 한다.

그 생각 뿐이었다.

병원 옥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그저 검은색으로 덮여 참으로 무서웠다.

흐린 하늘 밑에 검은 세상이 있었다.

뭐라고 더 할 말이 없다.

검은색 물폭탄이 터졌다.

세상이 망가져 버렸다.

종양덩어리를 쏘아낸 검은 산양의 몸은, 마치 벌집처럼 흉측했다.

그리고.

- Shle leoSh......

다시금 그 벌집에 종양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검은 산양이 꿈틀거리며 촉수를 흔들었다.

듬성듬성 나있던 구멍이 금세 종양으로 차올랐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그저, 눈보라 치는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넋을 잃었다.

그때,  슈우우우 - !

올려다보던 하늘에 전투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소닉붐이 들려왔고,

눈으로 잡기에도 힘든 속도였다.

전투기가 검은 산양에게 미사일을 쏘아냈다.

미사일이 날아가며 여러 개로 나뉘었다.

이윽고.

콰아아아아아앙 - !

미사일들은 검은 산양에게 부딪혀 폭발했다.

번쩍이는 폭발에 눈을 감았다.

검은 산양이 매연과 불꽃에 뒤덮였다.

슈룩 - !

연기 속에서 촉수가 뻗어나왔다.

촉수가 전투기를 스쳤다.

전투기는 시꺼먼 매연을 내뿜으며 그대로 북한산에 추락해서 폭발했다.

스윽.

연기가 걷히고,

검은 산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의 절반 정도가 파괴되어 있다.

심장부에 검은 마석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 Coms mels......

거대한 마석이 검게 빛났다.

혈관처럼 엉켜있던 촉수가 꿈틀댔다.

반쯤 으스러졌던 산양이 다시금 제 형태를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검은 종양을 지상에 투하했다.

종양이 터졌고,

다시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흐아아아악!

아아아아...!

꺄아아아악-!

수백명의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왔다.

언뜻 놀이동산 자이로드롭 내려오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저 비명소리들이 전부 유언이었겠지만.

전투기들이 몇 차례 더 미사일을 쏟아 부었다.

허나,

살덩이가 뭉개질지언정,

저 검은 마석은 파괴되지 않았다.

마석이 빛날 때마다 산양은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아아......"

입에서 이제서야 이해했다는 듯 탄성이 흘러나왔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이라 무섭지도 않았다.

TV에서 가끔 나오는 유치한 게임광고를 보는 것 같았다.

“시발···”

그냥, 허탈했다.

그리고, 체념했다.

지쳤다.

감지윤의 손을 잡고 있었기에,

저 산양이 가진 마력이 얼마나 방대한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게 거슬러 감지윤의 손을 놓아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꽈악. 감지윤이 내 손을 놓아주지 읺았다.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가자."

나는 꼬마 녀석에게 대답했다.

"···그래. 어서 강원도로 도망-“

"괴물 잡으러 가자고 이 쪼다야!"

감지윤이 내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아프지 않았다.

감지윤은 울먹이고 있었다.

"마, 마석에 닿으면 흡수하잖아!"

"......뭐?"

12살짜리 꼬맹이는 어린이용 잠바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냈다.

"저, 검은 마석! 우리가 날아가서 건드리면 되잖아-!"

...역시, 애들은 겁이 없다.

"고, 공사장 아저씨들이 맨날 그랬어! 나만한 딸이 있었다고!"

"......"

"내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줄 알아?!"

역시, 애 앞에서 말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세상이...! 세상이 망가져버려서! 내가 포크레인 대신 일해야 한다며!”

"......"

"왜 그러고 있어! 망가졌으면 고쳐야지!"

역시,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저거···! 저거 고칠 수 있는 사람 우리밖에 없잖아!"

역시, 요즘 애들은 참.

“나도 알 건 다 알아!”

빨리도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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