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53화 (53/296)

EP 10 - 겨울의 끝자락 (3)

털 달린 살덩이들이 박쥐 날개를 달고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빌딩 외벽에 달라붙어 창문을 깨고 길쭉한 주둥이로 사람을 빨아먹는다.

공군이 드디어 미쳤는지 빌딩째로 괴물들을 터뜨려버렸다. 조종사가 미친 걸까 사령부가 미친 걸까.

그도 아니면 세상이 미친 걸까.

“젠장...!”

강석호는 문득 홍선아를 따라 길드를 나온 것을 후회했다.

일신의 안위가 아니라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때문에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남부에 있지 않았는가.

그는 사태가 터지자마자 모든 걸 내팽개치고 경기도 남부에서 경기도 북부로 달려왔다.

심지어 서울을 가로지른 바람에 강석호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피투성이의 청년가장이 간절하게 달려갔다.

유일하게 남은 동생, 강시호가 있는 곳으로.

그리고,

“......”

양일호와 이호정이 살던, 무너진 집의 잔해더미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어디 회사 무슨 팀 홍길동 과장입니다.'

가장 흔한 인사말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을 상징하는 건 이름이 아니라 소속과 직급이었다. 사람들은 이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정보원 대테러정보국 해외공보처 장처장,

게네랄 일렉트릭 아라비아 지부 보안관리실 장실장,

개성공단 훼미리마트 사장 장사장,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스릅느카 공화국 외교부 공관장 장관장,

국가정보원 대테러정보국 괴수연구팀 장과장,

국군 보안사 7452부대 사단장 장준장.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 장경장.

그리고,

괴수피해복구재단 미성년자 지원센터 장 센터장.

혹은 한승문재단 고아원의 장원장은 늘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가족은 안 만들었고, 소속은 의미없고, 이름도 없다.

물론 장승연, 장영철, 장룡빈, 슈미트 장, 아하드 유진 장, 등. 수많은 이름을 거쳐왔고, 그중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 모두가 의미없는 허상이었다.

그는 국정원의 20년차 해외파 요원이었으니까.

국정원 동료들보다 위장취업한 현지에서 교류한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과의 관계가 더 깊었다. 그런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파묻다 보면 자연스레 이름이 없어진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점점 마모된다.

그와, 그가 책임지는 십수명의 팀원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정보요원이 죽으면 내곡동 국정원 청사의 검은 대리석에 별 하나 박힌다는 소리가 있지만, 사실 다 개뻥이다.

밤하늘에 떠있지만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모든 별들이 그렇듯, 그들 또한 이름도 받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간다.

이름없는 별.

그게 그네들 신세였다.

업무 특성상 다른 부서로 나가지도 못하고, 다른 회사에 주전공을 밝힐 수도 없고, 결국 은퇴하면 재취업도 못하고 평생 감시나 당하면서 연금으로 연명해야 한다.

물론 정치인들 도와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디 공사 사장으로 내려가서 억대 연봉 받으면서 희희낙락할 수 있으니까.

댓글 달고, 정치인 도청하는 거. 국정원이 배알도 없는 모지리라 그런 게 아니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장원장은 그렇게 먹고사는 새끼들을 다 쏴죽여버리고 싶었다.

항상 그랬다. 누가 알면 큰일날 생각이었지만, 장원장은 항상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해외에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사람들 사이에 외줄타기를 하고. 자신을 아군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등에 칼을 쑤시고.

그렇게 이름없는 요원들이 해외에서 죽어나가는 동안, 정권에 빌붙은 버러지 새끼들은 댓글 몇 번 달고서, 녹취록 몇 개 따고서 공기업 사장 자리를 받아먹었다.

삐뚤어진 애국자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늘 참으면서 살았다.

그 때문이었다. 차재균이라는 사람의 간절한 귀국요청을 받았을 때. 그가 진심으로 활짝 웃을 수 있었던 건.

장 씨는 즉시 현지 협력자들을 처리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생체실험을 진두지휘했다.

무명의 헌신, 소리없는 헌신, 등.

국가정보원 구호야 정치인들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거였지만, 그래도 2016년에 나온 물건은 썩 마음에 드는 문구였다.

[소리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차재균은 그에게 헌신을 명령했고, 그는 소리없이 행했다.

수호와 영광을 위해서.

“......”

장원장은 그리 생각하며 의정부 병원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기울어진 실눈 사이로 질척질척한 원망과 살기가 흘러나오거나, 무슨, 그런 영화에 나오는 비밀요원의 비장한 표정은 아니었다.

누구도 이 인자한 표정에서 그런 생각을 읽지는 못하리라.

그는 길거리의 흔한 아저씨처럼 생겼고, 또 그렇게 보이려 노력했으며, 결국 그런 사람으로 자신을 바꾼 사람이었다.

한승문재단 미성년자 지원센터의 센터장은, 그저 병원 옥상에서 유유자적하게 미소지으며 미친 세상을 구경했다.

도시가 불타고 있다.

“......”

차재균이 죽은 이후, 꼼짝없이 자살당하나 싶었을 때, 한승문이라는 어린놈이 자신들을 거두었다.

다행히도, 한승문은 다시금 그들에게 헌신을 명령했다.

부하들은 모두 목숨을 바쳐 소리없이 죽었다. 테러범으로 죽었다.

장원장만 홀로 남아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한승문을 감시하기 위함이었다. 원래 약속과는 달리 ‘국가’가 아닌 ‘개인’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이용하거나. 간신히 만들어낸 ‘각성 촉진제’를 돈주고 팔아먹는다던가.

그런 개짓거리를 하면 한승문을 쏴죽여버리려고 아직 자살하지 않은 거였다.

“......차라리 일찍 죽을 걸 그랬나.”

그는 진즉 자살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무너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정도로, 이런 풍경은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피난민들이 거리에 빼곡하다. 울음과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기이한 생명체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세상이 미쳤다.

저어 멀리, 고층 아파트 하나가 옆으로 쓰러졌다. 평생토록 자신을 깎아, 피와 눈물로 지켜왔던 대한민국이 멸망하고 있었다.

물론 이 애국심이 일종의 관성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개인의 신념이 아닌 살인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핑계에 가깝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아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대신, 그런 핑계 없이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핑계를 대며 너무 많은 짓거리를 저질러버렸다.

여기까지 해버렸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관성에 휘말려 살아온 인생이었다.

장원장은 소리없이 웃으며 구두를 벗었다.

그리고 난간 위에 올라갔다.

지쳤다.

- 쾅 !

장원장은 뒤쪽에서 들려온 폭음에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서 스타렉스가 날아왔다.

안에서 한승문이 네 발로 기어나왔다.

“우웁..! 우웨에엥엨!”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반쯤 너덜너덜해진 차량에서 기어나왔다.

양복을 머리에 뒤집어쓴 꼬맹이만 멀쩡하게 미라처럼 손을 앞으로 뻗고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장원장은 웃으며 주섬주섬 구두를 신고, 어기적 어기적 옥상을 기어다니던 한승문에게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그는 네 발로 엎드린 한승문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장원장은 한승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점심에 칼국수 드신 모양입니다?”

“수, 수제비...”

“다대기 많이 풀으셨네요.”

꼭꼭 씹어드셨나봐요.

보, 보지 마세요...

사람이 토할 수도 있죠, 뭐.

하얗게 질린 한승문이 비척거리며 장원장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때, 벌컥, 옥상문이 열렸다.

“하으으...! 허억...!”

피채원이 구슬땀을 닦아내며 옥상으로 뛰쳐나왔다. 다급히 옥상까지 달려온 피채원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괘, 괜찮으세요...!?”

한승문이 다가오는 피채원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아아, 괜찮-”

피채원은 한승문이 아니라 장원장의 팔뚝을 붙잡았다.

“......”

장원장의 표정이 살짝 굳었고, 한승문은 허공에 어색하게 내민 손으로 자연스럽게 뒤통수를 긁었다.

피채원이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장원장의 팔뚝을 놓았고, 한승문이 잽싸게 장원장에게 물었다.

“다들 무사해보여서 다행입니다. 장원장님, 그으, 콘트롤 센타가 어딥니까?”

“사령부요? 어쩐 일로...?”

“의정부에서 수백만명이 죽게 생겼습니다.”

살리겠다는 소리였다.

한참의 침묵 끝에,

장원장이 생긋 웃었다.

사람은 아직 미치지 않았다.

*

“아, 씨, 전화가 안 되네......”

나는 감기자에게 빌린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다들 전화 됩니까?”

“아까 시호 여기 있다고 석호한테 전화었했는데, 통화가 안 되던데요......”

“나도 먹통일세.”

통화가 가능한 핸드폰이 하나도 없다. 감기자가 쓰게 웃었다.

“전화라는게 기지국끼리 통신하는 건데, 기지국 이어놓은 전봇대가 끊기면 안 되죠......”

아무래도 데이비드 김이나 홍선아에게 연락하기에는 그른 것 같다.

“다들 여기서 기다리십쇼. 군인 아저씨들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짐 싸놓으세요. 늦게 오면 먼저 가셔도 됩니다.”

여기 병원 양육실에 들어있는 신생아만 50명이 넘어간다. 수백만이라는 숫자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잠깐,”

양판석이 무릎을 콩콩 두드리며 일어났다.

“대충 가서 무슨 짓을 할지 예상이 가는데.”

“네.”

“국회의원 두 명이 강짜를 부리는 게 효과가 더 좋지 않겠나?”

그렇게 나는 양판석 의원과 함께 경기북부청사로 향했다. 군인들이 지휘부로 써먹고 있는 곳이다.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 여긴 못 지나가십-”

“지휘관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해석 : 나 누군지 몰라?

“그, 그게......”

“급한 일입니다.”

해석 : 팍 씨

인상 팍 찌푸리고, 등산용 지팡이 쿡쿡 찍으면서 얼굴 들이미니까 순식간에 최고 윗대가리 앞으로 전송됐다.

나는 대뜸 소파에 주저앉아 지휘관에게 말했다.

“의정부에 초대형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당장 사람들 대피시켜야 합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100%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정황이 그래요. 그리고 만약 그 확률이 들어맞는다면 수백만이 죽습니다.”

여기서 지휘관을 해먹고 있다는 건, 현장 경험 충분히 바싹한 에이스라는 소리였다.

지휘관은 얼타지 않고서 내 설명을 경청했다.

“상공에 마력 소용돌이가 있습니다. 즉,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력이 한 점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만한 규모의 마력이 뭉치고도 아직 뭔 일이 안 났다는 건, 그만한 마력이 소모될만한 일이 발생하리라는 것 아닙니까?”

“......”

“정치인의 망상이라고 치부하실 일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전문가와 상의한 견해에요. 마력이 뭉치면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의정부 상공에서는 한참동안 미칠 듯이 마력이 뭉치고만 있단 말입니다. 지금도요.”

“......”

“그 막대한 마력에 상응하는 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저는 그걸 게이트로 추측하고 있고요. 그 마력에 소형 게이트가 휩쓸리는 걸 봤습니다. 마력과 게이트가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요. 마력 폭풍이 일어나든, 폭발이 발생하든, 뭐가 발생하긴 할 겁니다. 그것도 역

대급으로.”

“......”

“수백만 명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당장.”

나는 설명을 마치고서 박살난 자판기에서 주워온 포카리스웨트를 꿀꺽꿀꺽 원샷했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시점에서 국군 주전력의 주둔지는 크게 두 곳이다.

첫째, 북한과 맞닿은 국경.

둘째, 서울을 둘러싼 포위망.

그리고 의정부는 서울 바로 위에 붙어있는 곳이었다.

즉.

“서울 포위망의 북부로 피난민들을 인도하고. 서울 포위망을 따라 동쪽, 그러니까, 남양주, 하남, 성남을 통해 국민들을 남쪽으로 대피시킵시다.”

서울을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국군이 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니까.

“게이트는 철저하게 의정부 중심으로 퍼져 있어요. 강원도와 충청도에 열린 게이트도 조금 있긴 하지만, 적어도 여기보다는-”

“자, 잠시만, 잠깐만 시간을 주십쇼. 수백만명을 어떻게-”

그럴 시간 없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전화, 전화 한 통만-”

“유현종이.”

전직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장 양판석이 방긋 미소지었다.

“많이 컸네.”

국회 상임위는 원래 담당 부처 잡아 조지는 곳이다. 그리고 정치인은 한번 잡은 약점은 늙어 죽을 때까지 보관한다.

*

......서울 방어선 돌파. 지원 요망. 반복한다. 서울 메인 게이트가 폭주했다. 동부 포위망이 돌파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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