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 겨울의 끝자락 (2)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게이트 열렸다고! 씨팔!]
“강원도에 왜 게이트가 열려!”
[몰라! 아무튼 엄마아빠 들쳐매고 존나 튀고 있, 쓰아악!]
파쇄음과 괴성이 이리저리 섞여 있다. 전화기 너머로 여도연이 아크로바틱 액션을 찍고 있다는 건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었다.
“지금 어딘-”
콰직.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괴수가 으스러진 걸까, 사람이 으스러진 걸까.
“......”
[......]
......아무래도 핸드폰이 으스러진 모양이다.
* * *
익숙한 느낌이다. 가슴 속에 무언가 턱 내려앉았고, 펑펑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온다.
나는 담담하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다들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판단은 빨랐다.
나는 베란다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근방에 게이트는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지윤아?”
손을 내밀자 녀석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녀석과 접촉하자마자 격류에 휩쓸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세상이 느껴진다.
의정부 상공, 거대한 소용돌이.
그 마력의 파도가 이 근방을 휩쓸고 있었다. 자잘한 게이트 따위는 폭풍을 못 이기고 흩어졌다.
“......”
가만히 마력을 느끼고 있으니, 양일호가 눈치좋게 TV를 틀었다.
뉴스 속보다. 앵커의 보도를 중간부터 확인한 바람에 말의 맥락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화면 아래에 깔린 직관적인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수도권 인근, 산발적 게이트 발생]
조금 기다리니 자막이 바뀌었다.
[소규모 게이트 대량발생, 200개 이상]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도권 전체에 소형 게이트들이 대거 발생했습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자택과 인근 대피소에 은신하시길-]
나는 화면 우측 상단에 있는 게이트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었다.
완벽한 지도는 아닐 것이다. 강원도에 게이트가 열렸다는 말이 없었으니까.
언론과 국방부가 철저하게 협력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사태 파악이 아직 덜 된 모양이다.
“......젠장.”
그래도 하나는 확실했다.
“의정부 인근에는 게이트가 하나도 없네요.”
지도에 찍힌 붉은 점들은 의정부 인근에 이상하리만치 적었다.
문제는,
“의정부 근처로 갈수록 게이트가 촘촘하게 열렸는데 말이죠.”
그 모습이 태풍의 눈을 연상시켰다. 의정부가 바로 태풍의 눈이었다.
비록 태풍의 눈 한가운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소용돌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게이트의 위치를 표시한 붉은 점들이 워낙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언뜻 보면 수도권 전역에 열린 게이트들로만 보였지만, 내 눈에는 의정부를 감싼 피의 고리가 보였다.
의정부 상공에 있는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 그리고 그 주변에 밀집된 소형 게이트.
끔찍한 미래가 보인다.
이대로 간다면 수백만이 죽을 것이다.
의정부 자체가 주민 45만명의 대도시였고, 미군이 썼던 군사부지가 많아서 서울 수복작전의 핵심 HQ로 쓰였다.
즉, 군인이 많다.
그래서 의정부가 서울 출신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수도권의 수백만 피난민들이 소규모 게이트를 피해 안전한 의정부로 밀집할 예정이기도 했고.
“......”
만약 그 상황에서 초대형 게이트가 열린다면.
도시를 뒤덮은 마력의 소용돌이가 게이트로 변한다면.
지금까지와는 규모를 달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족의 행방불명. 수백만 명의 죽음. 우선순위. 공리주의. 게이트 사태. 대의. 피채원. 이호정. 의정부 피난민. 대재앙.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판단은 빨랐다.
나는 일행들에게 무덤덤하고 단호히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결합시다.”
“......”
“이호정, 피채원. 더 챙길 사람 있습니까?”
감기자네 가족은 천화란의 출소를 기념해 교도소 앞에 모두 모여 있었다.
양판석네 가족은 기득권이고 효심도 딱히 없어서 양판석만 남겨놓고 제주도로 피난간 상태였다.
그래서.
게이트 한복판에 애인을 두고 온 바람에 실시간으로 속이 타들어가고 있을 양일호가 가장 먼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다들 따라 나가려고 하길래 내가 손을 뻗어 그들을 만류했다.
“......나갈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의 판단은 뻔했다. 집에 숨거나, 도망치거나.
대충 절반 정도가 도망치려고, 혹은 우리처럼 자기 사람들을 구하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아파트 단지는 혼란의 도가니일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비상계단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넘어진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엘리베이터는 정원 초과인 마당에 아무도 내리려 들지 않았다.
양일호가 돌아와 난색을 표했다.
“이, 이거 못 내려갈 것 같은데요?”
“......창문 열어.”
“!”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양일호가 희번뜩한 눈으로 베란다로 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속뜻도 익히 짐작했는지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가 식칼을 가져와서 방충망을 모두 뜯어버렸다.
절뚝이며 베란다로 나가니 불어오는 칼바람에 앞머리가 휘날렸다. 나는 난간에 손을 얹고 지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시했다.
“날아서 내려갑니다. 다들 신발 신으세요.”
감지윤은 공사장에서 중장비 노릇을 했다.
건물 잔해를 치우고, 수톤짜리 쇳덩이를 지상에서 옥상까지 몇 번이나 날랐는데 사람 일곱 명을 못 들겠는가.
그리고.
“......지윤아, 오빠가 3명 들까?”
“으, 으음! 아니야! 내가 4명 들게!”
“지윤이 수학 잘하네.”
감지윤 곱하기 2다.
*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사람을 공포스럽게 한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은 상태에서, 우리는 아파트 외벽을 타고 아주 서서히 하강했다.
초능력이 강하다 해서 순식간에 내려가다가 척추라도 끊어지면 골로 가는 거라서 사람을 나를 때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상공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거센 겨울바람이 우리를 스쳤다. 우리는 공포인지 추위인지 모를 것에 짓눌려 서로를 붙잡고 파르르 떨었다.
서로의 공포가 느껴진다. 맞잡은 손에서, 마주보는 이의 질끈 감은 눈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나누었다.
그리고.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지나.
염동술사 두 명이 일곱 사람을 지상에 안착시켰다.
“후우....!”
“흐아아...!”
“허억...! 허어어...!”
다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이 중에서 고소高所 공포에 바들바들 떨지 않은 사람은 뭣 모르는 갓난아기 감 석. 그리고 이호정 걱정에 눈이 시뻘개진 양일호 뿐이었다. 심지어 양판석마저도 얼굴이 하얘져서 내 손을 꽈악 붙잡고 바들바들 떨었지만, 우리 중에서 높은 게 무섭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목숨 아까운 줄 아니까.
아무튼 슬슬 이 근처에도 자잘한 게이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흐린 하늘에 뜬 시퍼런 점들을 바라보며 안부를 물었다.
“......천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천화란은 만삭이 된 임산부의 몸으로 간신히 웃어보였다.
“...네!”
걱정은 더 보태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아까웠다.
지하주차장에 타고온 차 두 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반드시 차 한 대로 이동해야만 했다.
나는 근처에 커다란 봉고차가 있나 살폈다.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근처를 둘러본다.
오케이. 멀끔한 대형 스타렉스 하나를 찾아냈다.
“저거 탑시다.”
나는 감지윤의 손을 잡고 반투명한 앞유리창에 달라붙어 잠금장치를 조작했다.
달칵. 문이 열렸다.
반년 전, 신분당선 통과할 때 홍선아 붙잡고 키웠던 마력 컨트롤은 녹슬지 않았다.
이 마당에 웃음 따위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행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씨익 웃어보였다.
“1종 있으신 분?”
아프리카 반군트럭 훔쳐몰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감기자가 허겁지겁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양판석과 서로 부축하며 사주경계를 했고, 천화란은 갓난아기 감 석을 품에 안고서 차량에 몸을 실었다. 감지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 위에 둥둥 떠있었고.
일행이 차량에 전부 몸을 실을 무렵, 이호정에게 연신 전화하던 양일호가 울상을 지었다.
“저, 전원이 자꾸 꺼져 있다고......!”
“......”
우리는 경기도 북부의 중심 동두천에 있었다.
동두천 아래에 양주가 있고,
양주 아래에 의정부가 있으며.
의정부 위에는 소용돌이가 있다.
그리고,
양주시청 근처에 이호정이 있고,
의정부 대학병원에 피채원이 있다.
천화란네 가족과 피채원은 병원 VIP 병실에 거주했고, 병원에 딸린 연구실을 재단 연구소로 써먹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인근 아파트 단지를 포함한 병원 일대가 한승문재단 미성년자 지원센터다.
아무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한 명씩 픽업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호정의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건데.
“......이 와중에 배터리가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고.”
전화기가 꺼졌으면 뭔짓을 해서든 켰겠지. 아니면 빌려서 연락을 했던가.
“그러면 전원을 굳이 꺼야하는 상황이라는 건데.”
“......”
“벨소리가 울리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거 아니야?”
양일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나도 크게 다른 표정은 아니리라.
“......저, 그게.”
운전석에 앉아있던 감기자가 난색을 표했다.
“시동 못 키면 운전 못하는...?”
“이런 썅!”
반쯤 눈이 뒤집힌 양일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차 문만 열면 뭐하겠는가. 차키가 없어서 시동을 못 거는데.
다들 당황해서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자연스레 차량에 몸을 실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어차피 도로도 꽉 막혀서 차로 못갑니다.”
나는 감지윤의 손을 잡았다.
“운전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승합차가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
너무 높이 날면 비행괴수의 표적이 되고, 너무 낮게 날면 괴수들이나 전봇대 전선에 엉킨다.
하늘을 나는 차를 조작하는 건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감지윤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으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세상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발걸음을 옮기듯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차량은 아주 빠르고 매끄럽게 허공을 가로질렀고, 차량 내부에서 감탄사가 몇 번 오가는 동안 양일호는 피가 나도록 손톱을 뜯었다.
저어 멀리, 양주시청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과 괴수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시청 창문에 달라붙어 벌집에 있는 애벌레를 빨아먹듯 사람 대하는 박쥐 새끼들이 여럿 보였지만,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몰래 피해서 주택가로 향했다.
유독 괴수가 많아 하늘을 봤더니 근처에 중형 게이트가 두 개나 있었다. 의정부와 어중간하게 떨어진 곳이라 게이트 간격이 촘촘하다.
아무튼.
이호정이 전화기를 껐다는 건, 괴수를 피해 숨었다는 소리였고, 전화벨이 괴수에게 들릴 만큼 가까이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어쩌면 그냥 배터리가 닳았을 수도 있지만,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아닌 것 같다.
이호정과 양일호가 마련한 집 근처에 괴수들이 여럿 맴돌았다.
양일호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차마 초능력 컨트롤에 방해가 될까 말을 걸지도, 건드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던 감지윤에게 물었다. 사람 죽어나가는 거 보지 말라고 양복자켓을 덮어놓은 상태였다.
“......지윤아.”
“으, 으응?”
불안한지 꼼지락대던 감지윤이 양복을 덮어쓴 상태에서 고개를 들었다.
“공사장에서 무너진 건물 많이 치웠니?”
“아니...?”
하기야 건물 치우면 나오는 게 사람 시체인데 애한테 시켰겠는가.
“그러면 철거작업은 해본 적 있어?”
“으음... 가장 중요한 데 데나우시 나가지구 딱 한번 했어! 건물 무너뜨리는 거!” “커다란 건물 무너뜨렸던 거야?”
“응! 커어다랬어!”
“쉬웠어?”
감지윤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나는 고도를 낮춰 이호정이 숨어있을 집 옥상 위에 달라붙었다.
양일호와 이호정은 땅값 떨어졌다고 공무원 커플이 무려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에 이호정, 그리고 강석호 동생 강시호가 있을 것이었다. 운 나쁘면 괴수도 있겠지. 운이 더 나쁘면 아무도 없던가.
“일호야. 니네 집 지붕에 다락방 없지?”
“지, 집들이 오셨었잖아요.”
창문을 열고, 손을 뻗는다.
“혹시 몰라서 물어본거야.”
- 콰지직 !
그대로 옥상을 뜯어버렸다.
조금 힘이 벅찼지만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나는 뜯어낸 건물 잔해를 그대로 지나가던 괴수에게 부어버렸다.
하늘에 떠 있는 차량 아래로, 집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해부도를 보는 느낌이다.
2층에는 복도 하나와 방 두 개가 있었다.
복도에 사람이랑 곤충이랑 섞어놓은 것 같은 괴물이 하나 있었고, 이호정과 강시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방에 있던 침대 밑에서 이호정이 강시호를 데리고 기어나왔다.
나는 곧장 복도에 있던 괴물의 모가지를 비틀어 뽑았다. 머리에 뭐가 딸려나오길래 녀석이 척추동물이라는 걸 확인했다.
“뒤에 문 열어요!”
뒷좌석에 있던 천화란이 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조심스레 두 사람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힘조절 잘못했다가 척추 끊어지면 골로가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너무 소란을 피운 모양이다.
저 멀리에 있던 2층짜리 대형버스만한 늑대 새끼가 혓바닥 두 개에서 검은색 침을 질질 떨어뜨리며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지, 지윤아! 저거! 저거! 왼쪽에!”
감지윤이 양복 자켓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끼야아악!”
그리고 자켓 속으로 다시 숨었다.
그래, 내가 12살짜리한테 뭘 바라겠나. 라는 생각에 다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던 늑대의 상태를 확인하니.
털 달린 동그란 고깃덩이가 되어 굴러다니고 있었다.
차마 보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
“......”
“......”
다들 같은 심정이었는지, 이호정과 강시호가 차량에 간신히 올라왔을 때도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근처로 접근해오던 비행괴수가 탱크의 저격을 맞고 터져나갈 무렵에야 우리는 정신을 되찾았다.
검은색 스타렉스가 다시금 게이트 열린 하늘을 날았다.
이 세상 풍경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