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4)
잠에서 깨어났을 때, 첫 번째로 느낀 건 허벅지를 감은 붕대의 압박감이었다. 두 번째로 느낀 건 지금이 밤이라는 것이었고.
세 번째로 느낀 건,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있다는 거였다.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흐린 세상에 조용히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누나?”
어둑한 병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싸늘한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침대 맡에 앉아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차갑게 내려앉은 눈동자를 보고 깨달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본능. 본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 뇌리에 스쳤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초능력이리라.
그녀의 시꺼먼 눈동자에 비친 달빛을 보고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녀가 알고 있다.
* * *
차가운 밤이다. 보일러 히터 돌아가는 소리만 병실에 가득했다. 링거가 꽂힌 팔에 혈관이 부었는지 조금 아팠다.
여도연이 더듬더듬 질문했다.
“.....테러, 아니지?”
나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침묵이 긍정이었다.
여도연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녀가 내 손을 꽈악 붙잡았다.
“왜..., 그랬어.”
대답하는 데에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익, 도덕, 책임, 정의, 의무, 의분, 충동.
그럴듯한 말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 중에는 그녀를 속일 수 있을만한 핑계도 여럿 존재했다.
허나, 나는 그렇게 멋들어진 신념을 머리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이제와서 그녀를 속일 정도로 강인한 사람 또한 아니었기에, 가장 순수한 의도를 내뱉었다.
“해야 하니까.”
나는 진통제와 약물에 취한 채로, 더듬더듬 그녀에게 정성껏 대답했다.
“이, 좆같은 걸, 누군가 바꿔야 하니까...”
그저, 미치기 싫었을 뿐이다.
가벼운 욕설이 섞인 변명이 끝나자, 여도연의 표정이 다시금 일그러지며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내 가슴팍에 엎드렸고,
나는 슬며시 눈을 감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사람은 왜 미치는가.
좆되면 미친다.
태생적 사이코가 아닌 이상에야, 멀쩡한 사람이 좆되면 미치곤 한다. 미친놈은 그렇게 탄생한다.
갑자기 교통사고 때문에 가족이 다 죽었는데, 사고 당사자들이 자기 빼고 전부 죽어버렸다던가.
갑자기 하늘에서 게이트가 열려서 애지중지 키운 딸래미와 일가족이 전부 죽어버렸다던가.
좆된 사람은 결국 세상을 미워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소주병을 휘두르고 싶고, 멀쩡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트럭으로 들이받아버리고 싶고. 그러더라.
그게 내가 차재균을 이해한 이유였다.
그와 나는, 좆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미치기 싫어서 발버둥을 친다.
세상을 향한 분노에 초점을 새긴다. 명백한 복수의 대상을 설정한다. 세상을 향한 원망을 한 점으로 모은다.
즉, 원망할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차재균은 그게 괴수였다.
그는 미치기 싫어서 괴수에게 복수하려 들었다. 내면의 울분을 괴수에게 풀어냈다.
기계적인 복수를 수행했다. 최선의 숫자를 도출하고, 최소의 피해를 감내하며, 최대한 많은 괴수를 기계적으로 죽였다.
그게 차재균의 발악이었다.
그가 말했다. 정치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나는 권력을 탐하는 게 아니라,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해 권력을 잡은 것이라고.
그의 말이 옳다. 정치든, 전쟁이든, 결국 수단에 불과하다. 생체실험, 전략, 정치, 자살, 그 모든 것들이 복수라는 범주에 포함된 것들이었다.
결국 그의 삶 자체가 복수의 일환이었다.
미치기 싫어서 복수했다. 그리고 서서히 미쳐갔다. 그렇게 미친 짓을 저지르고, 결국 미친 사람으로 죽었다. 미치기 싫어서 복수를 하다보면 미친다.
나도 그랬다.
홀로 남은 세상에, 장례식장 구석에 앉아 바들바들 떨면서. 눈만 감으면 으스러진 부모님의 살덩이가 생각났다.
통장에 찍힌 장애아동수당 20만원. 빨간색. 불편한 휠체어. 무거운 목발. 어색한 의족.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그냥 모두 싫었다.
그래서 멀쩡한 척, 정신병 안 걸린 척, 멀끔하게 퇴원해놓고서, 새벽에 식칼을 꺼내들고 외출할 준비를 했다.
목표는, 무단횡단한다고 도로로 뛰쳐나왔다가 트럭에 치여 죽은 꼬맹이.
의 부모님.
이 원한을 풀어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여도연이 현관에서 나를 잡아챘다.
그녀는 내가 미친놈이라는 걸 눈치 챘었고, 기어코 나를 막아냈다.
그녀가 나를 안 미치게 만들었다. 미친 사람이 안 미치기 위해서는 아쉬워야 한다. 여도연은 내게 아쉬움을 주었다.
가진 사람일수록 잡고 있는 걸 놓기 싫어한다.
그게 바로 아쉬움이다.
아직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집착.
그게 없는 사람을 우리는 미친놈이라고 한다.
여도연은 그때,
내가 아직 그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동시에 그녀는 나를 그녀의 손 안에 넣었다.
그녀는 그때, 그녀는 마치 지금처럼.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볼품없이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
새벽 5시. 어두운 병실.
그녀가 내 위에 엎드려 울었다.
그녀의 등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살짝 튀어나온 어깨뼈가 조금씩 떨리고 있다. 뒷머리가 손에 감겨서 살살 쓰다듬었다.
그건,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어쩌면 이 또한 참으로 기이한 초능력일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이며, 한참동안 그녀의 설득을 경청했다.
손아귀에 쥔 것을 놓지 말라.
나는 너를 놓기 싫고,
너도 나를 놓기 싫지 않느냐.
이대로 끝내버리기에는 아쉬울 거다.
그녀는 말 한 마디 없이 울었다. 조금씩 흘러나온 눈물이 환자복 위에 쌓여 결국 내 가슴께를 적셨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작은 병실에, 이따금 여도연이 울분을 삼키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
식칼을 들고 있던 그때, 나는 쥐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 한참동안 울었다.
그녀는 내게 아쉬움을 주었다.
이대로 끝내기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안겨주었다.
이대로 놓아버리기에는 가진 게 많다는 아쉬움.
보통 그걸 희망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말한다.
“......가지마.”
그녀가 내 손을 꽉 쥐었다. 피가 안 통해서 하얘질 정도로 붙잡았다.
“......”
그녀는 아직도 내가 식칼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미 미쳐버려서. 그걸 휘두르려 나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누나야.”
바싹 말라 비틀어진 입술에서 실낱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계엄사령부, 첨에, 갔을 때 기억나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녀에게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내 그때, 차관한테, ...만만한 놈 하나 골라가.”
파르르 떨던 여도연이 우뚝 멈췄다.
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간신히 속삭임을 이어갔다.
“......마석 쑤셔박아보고 어떻게 되나 보자고.
......그랬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차재균이가. 나한테. 생체실험을 하자는 거냐고 물어봤고.” 결국.
“내는, 그러면 안 할 생각이었냐고, .......대답했다.”
눈물 한 줄기가 옆으로 흘러내렸다.
한 마디 한 마디 씹어뱉을 때마다, 가장 깊숙이 늘러붙은 무언가를 토하는 것 같다.
“그, 근데 막상. 사람 죽는 거 보니까. 이건, 이건 아닌 것 같더라. 차관한테 초능력 알려준 사람도 나고. 생체실험 바람넣은 것도 난데.
......막상 죽은 목숨 책임지기 무서워서. 그게 무서워서 내가. 내가 싹 떠넘기고. 나는 그럴 생각 없었던 척. 그냥. 그냥. 그렇게...!
......살아남아서.
영웅 취급, 받고...
그러니까.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
지난 반년간 수많은 부조리를 보았다.
“......국민 10명중 1명이 죽었는데. 피난민 받기 싫어서 수용소도 안 지아주고. 사람들이 나라 꼬라지 왜 이러냐고 물어볼까봐 헌터들 데려다 예능이나 찍고 있고. 보도통제 들어가고.”
한국전쟁때 죽은 남한 민간인이 100만이라고 하더라. 정확한 수치는 모른다. 적어도 그때보다 지금 죽은 사람이 많다는 건 분명했다.
“500만, 응? 500만이 죽었는데. 게이트 닫을 방법도 모르는데. 서울에 고립된 민간인이 수십만인데. 재건사업 발주 갖다가 돈놀이나 하고 앉았고.”
“......”
“이게 나라가?”
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근데, 나도 그 사람들 욕할 처지가 못 되더라.”
“......”
“나도, 나도 똑같은 사람이야.”
약기운에 취한 채, 몽롱한 정신으로, 무언가를 주절거렸던 기억이 난다.
“초능력자들 장악해서 파이 떼먹겠다고... 차재균이랑 양판석 사이에서, 이긴 쪽에 붙겠다고... 선동하고, 속이고, 씨이빨......”
여도연은 내가 미친 줄 알고서.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번에 미친 건 내가 아니었다.
“......세상이 미쳤어.”
미친 건 세상이다.
“......누군가는. ...해야지."
새벽에 동이 터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
“한승문 의원은, 게이트 사태 이후 우리가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그 의지를 고스란히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주도지사가 근엄한 눈빛으로 내 손을 굳건히 붙잡고 흔들었다.
옆에 있던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병실을 가득 채운 카메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십쇼. 여기 계신 취재진 분들이 모두 국민들의 걱정을 대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진화 운운하던 테러범들은 절대 신경도 쓰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런 선동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자들이 떠나가고, 우리는 병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정치인 4명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오갔다.
TV에서 방금 찍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한승문 의원이 오늘 새벽 4시 경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이에 국민당 차기 중진들이 한승문 의원을 단체로 방문했는데요, 국민당에 가입한 당원들이 사흘만에 60만명을 돌파한 가운데, 차기 당권을 둔-] “건강은 좀 괜찮습니까? 한 의원?”
“아, 네......”
제주도지사, 서울부시장, 정치원로가 나를 둘러싸고 걱정어린 인사를 건넸다.
그럴만도 하다. 이제 당권경쟁에 들어가야 하니까.
당연히 정당 내부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있다.
1인자, 당을 대표하는 ‘당대표’
2인자, 국회 내부에서 당을 대표하는, ‘원내대표’
전당대회에서 뽑힌 ‘선출직 최고위원’
당대표가 지명한 ‘지명직 최고위원’
정책 방향을 심의하는 ‘정책위원회 의장’
당의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
당의 얼굴. ‘수석대변인’
중요한 것만 이정도고, 기타 수많은 당직(감투)이 존재한다.
대의원회 의장, 중앙위원회 의장, 당대표 비서실장, 중앙당 후원회장, 정책연구소장, 자문회의장, 당무감사원까지 따지고 들면 정말 끝도 없이 많다.
중요한 건, 전당대회에서 투표로 당대표를 뽑겠지만, 아마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대표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어르신들이 내게 아첨을 떠는 것이었고 말이다.
물론 내가 당대표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그러면 원내대표가 없어진다.
원내대표는 국회 ‘내부’의 당대표다.
그리고 국민당에서 국회의원은 나 하나다.
즉, 원내대표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
원내대표가 말이 2인자지, 하는 일의 중요성은 1인자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내가 원내대표를 하는 게 도리에 맞았다.
자연스레 당대표가 텅 빈다.
“......”
“......”
“......”
그리고 이 세 명은 당대표를 하고싶을 것이었다.
스타팅 포켓몬 고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당대표를 고르게 생겼다 지금.
첫 번째, 제주도지사. 지역구가 강철요새지만, 전국적 인지도가 없다. 최근에 재벌들이 싹 다 제주도로 이사간 바람에 재계에도 영향력이 생기고 있다. 그리고 물타입이다.
두 번째. 서울부시장. 구청장 세번 하다 국회의원 떨어져서 부시장이 된 거라서, 지역구는 없지만 천만 수도권 피난민의 지지를 받는다.
세 번째. 정치원로. 걸어다니는 현대사다. 인지도도 많고, 안티도 많다.
나는 그들에게 먼저 말했다.
“......저, 조금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지금 당직을 논할 시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저 잡혀갈 것 같거든요.”
그리고 6시간 후.
[검찰이 한승문재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국회에서 ‘한승문 특검법’이 통과됐습니다! 원옥분 권한대행은 이번 테러의 배후가 한승문 의원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