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47화 (47/296)

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3)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요소들이 몇 존재한다.

[차재균 차관께서는 모두의 생존을 위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도모하셨으나, 아둔한 몇 위정자들이 민족의 과업을 저지하였다.]

[우리는 한승문 의원을 납치했다. 그가 첫 번째로 인류의 진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차재균 차관님에 대한 위령이다.]

상징.

[차재균주의자들의 화학 테러가 예고되었습니다! 관계 당국은 테러범들의 본거지와, 테러 위치를 파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테러 집단이 3시간 뒤 ‘괴수화’ 약품의 살포를 예고했습니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다, 당국에서 테러범들의 본거지를 확인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사일을 사용한 진압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한승문 의원이 인질로 잡혀 진압 방식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포.

[테러범들의 본거지가 갑작스런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누, 누군가 걸어 나옵니다! 홍선아! 길드 부조합장 홍선아입니다! 그녀가 한승문 의원을 부축하고 있습니다! 홍선아 부조합장이 한승문 의원을 구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영웅.

삼십육계三十六計

패전계敗戰計

제 31계

미인계美人計

: 아름다운 이를 통해 적을 홀린다

* * *

콰직.

여도연이 거인의 두개골을 밟아 으깼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지만 거인의 머리통은 사람 허리까지 오는 크기였다.

당연히 그걸 밟아 으깬 여도연의 양복 바지도 시퍼렇게 물들었다. 피가 검푸른 색이었으니 말이다.

“Hey."

마찬가지로 피범벅인 데이비드 김이 여도연에게 밍크코트를 던졌다.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물건을 잡아챘다.

“옆에 옷가게에서 주워온 거야. 수건으로 써.”

“......감사합니다.”

여도연이 그제서야 얼굴을 거칠게 닦아냈다.

각막을 털옷으로 벅벅 닦아내며 그녀는 이 몸뚱아리가 과연 사람새낀가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이어지는 데이비드 김의 호출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대충 이 구역은 끝난 것 같은데.”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이런 놈은 또 처음이군.”

김춘식은 여도연이 방금 밟아 으깬 머리를 툭 툭 찼다.

“빌딩 코너에 숨어있다가 자동차를 내리치다니......”

“......”

“약았군.”

여도연은 별다른 표정변화없이 밍크코트로 피를 닦아냈다. 가격표를 확인하니 자기 옛날 주급에서 0이 하나 더 많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서 바닥에 옷을 버렸다.

데이비드 김은 멋들어진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커다란 놈이 머리까지 쓰는 경우는 못 봤는데...”

“......”

“차에 타고 있던 게 우리 둘 아니었으면 큰일이 났겠군. 당분간 이쪽 구역도 조심하라고 그래야겠어.”

여도연은 차가 완전히 으깨졌는데 사람 두 명이 멀쩡하게 기어나오는 광경을 본 괴수의 심정이 더 놀라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로 옮기지는 않았다.

짝! 데이비드 김이 상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Well! 이만 들어가자고. 마석은 아까 싸우면서 네가 흡수했나?”

“아뇨, 아마 몸 속에 있을 겁니다.”

"흡수할래?"

"아뇨."

“그럼 처리반 콜 할 테니까. 그동안 자리 좀 지켜줘. 나 화장실 좀......”

“......예.”

“Thanks."

데이비드 김이 폐허가 된 빌딩 화장실로 달려가자, 여도연은 무너진 도심에 홀로 멀뚱히 남았다.

그녀는 거인의 시체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편하다. 빌딩숲 사이로 보이는 흐린 하늘과, 시퍼런 게이트가 이제는 퍽 친숙하다.

그녀는 은은히 미소지으며 구슬땀을 닦아내었고, 그녀를 덮치던 괴수의 모가지를 잡아챘다.

“캬아악!”

그녀는 들개만한 괴수를 강제로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카아아악! 키에엑!”

보통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얼굴 가죽이 뜯기고, 양 손목이 절단되었겠지만, 그녀에게는 강아지의 재롱 수준에 불과했다.

품안에서 몸부림치던 괴수의 몸통에 손가락을 푹 찔러넣어 마석을 흡수하고서, 그녀는 들개의 뒷다리를 잡고 저어 멀리 집어던졌다.

괴수의 시체가 빌딩 4층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여도연은 흐뭇하게 웃으며 거인의 시체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로 길쭉한 다리를 꼬았다.

여도연이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리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긴 건 반반한데 성깔이 더럽네.’

‘스타성이 없어서 못 써먹어.’

‘어디서 근본없는 거 배워처먹고 늙어서 폐지나 주우려고 발악을 해?’

‘친절하신 분인데 가서 한 번 만나봐. 네 팬이래.’

‘티켓 좀 팔려면 옷은 바꿔입고 링에 올라가야지.’

‘재능도 없는 년이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씨이팔 새끼들...”

그녀는 작게 웃으며 아스팔트 조각을 던져 근처로 다가온 들개 괴수의 머리통을 날렸다.

......게이트가 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쓰레기인가.

그녀는 문득 동생이 요즘 빌빌거리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맥락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원래 동생놈 생각은 자다가도 문득 드는 것이다.

반년동안 과로하더니 그 놈 쌍판떼기가 30대가 되어버렸다. 요새 잘 걷지도 못하고, 조금만 걸어도 헉헉대는 게, 영 미덥지가 못하다.

여도연이 마침 이번주 목요일이 월급날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약을 해먹여야 하나 닭을 고아 먹여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왔고.

“...!”

동생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김이 돌아왔다.

“화장실에 자살한 사람이 있어서 시체 좀 묻어주고 왔, Um...”

그는 그녀가 어딘가로 다급히 떠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에 그녀의 발자국이 짙게 찍혀 있었으니까.

*

나는 건너편 소파에 앉아있던 요원을 불렀다.

“요원님.”

약봉투를 만지작거리던 요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요원에게 물었다.

“요원님은 어쩌다 국정원 들어가신 겁니까?”

“어, 으음, 시험 붙어서요......?”

“그거 말고요.”

“공무원 시험 붙었습니다. 7급 공채요.”

요원은 시큰둥하게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쓰게 웃으며 요원에게 되물었다.

“좀 알려줘요. 나라도 기억해야지.”

“됐습니다.”

“이름도 안 알려주셨잖아.”

“김뽀식이요.”

“뽀식 씨는 어쩌다 이 일하게 되신 거에요?”

요원은 자기가 졌다는 듯 피식 웃고서 말문을 텄다. 달변은 아니었다.

“007이요. 살짝 뻔하죠?”

“뭐가 뻔해요? 낭만있구만.”

“막. 악당들 때려잡는 게 참 멋있었어요. 삼촌이 국정원이셨기도 했고.”

“으음!”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미소지으며 맞장구를 쳐줬다. 요원은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리하며 말을 이어갔다.

“막상 해외파견 나가서 일하다보니까. 제가 악당이 되더라고요.”

“아......”

“크로아티아 산업스파이 가족들 인질로 잡아서 쏴죽이고. 막-”

요원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아! 씨! 이거 1급이었는데......!”

“허허...”

무심코 1급 기밀을 중얼거린 게 머쓱한지 요원은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음... 비밀로 해주실 거죠?”

“공무원끼리 뭘 그럽니까.”

“감사합니다.”

요원이 다시금 시계를 보았다. 요원이 말했다.

“......제 이야기 조금만 더 들어주실래요?”

“얼마든지요.”

요원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아, 그, 막상 말하려니까 할 말이 생각이 안 나네요.”

“그냥 막 말씀해도 괜찮습니다. 기억할게요.”

26초 후에 요원이 문득 입을 열었다.

“......결국은 나라 탓만 하게 되더라고요.”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 막, 개인으로서의 제가 없어지고. 네... 막...”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일부러 제가 저를 부품으로 생각....... 아휴.”

요원은 정수기 종이컵 여덟 잔을 연거푸 들이키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른 얼굴에 세수를 하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유세진. 유세진. 유세진.”

누군가의 이름을 강박적으로 중얼거리던 요원이 내게 말했다.

“의원님. 유세진이라는 이름 혹시 기억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같은 건 기억 안해주셔도 되는데.”

“유세진. 기억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애였어요. 저 대신에 런던에서 빨갱이한테 총맞고 죽었, 는데-”

말을 이어가던 요원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이러네.”

“아닙니다. 잠깐 나가 있을까요?”

“괜찮아요. 그냥 계셔도 되요.”

“네.”

요원은 근처에서 휴지 하나를 구해다가 여러 장 뽑아 얼굴을 닦아냈다.

“사랑했었나봐요.”

“......”

“이제 겨우 알겠네.”

“......”

“저 미친 것 같죠? 저도 그래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훌쩍. 요원은 충혈된 눈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 후로 약 1분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요원이 말했다.

“......그, 으음. 생체실험이요.”

“네.”

“민간인 잡아넣으면서도 딱히 미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불쌍했지.”

“네.”

“그보다 더한 짓도 훨씬 많이 했으니까요.”

“네.”

“근데 왜 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후회가 될까요.”

“......”

요원은 미칠듯이 휴지를 뽑아 기계적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나는 말없이 펑펑 우는 요원을 바라보았다.

“......요원님.”

“.....아니요.”

“여기서 그만할 수도-”

“아니오.”

요원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손 틈에서 고해성사가 새어나왔다.

“크로아티아에서 5명. 북한 사람 9명. 몰도바 12명. 러시아 1명. 한국인 564명.”

“......”

“이게 애국이다. 애국이다. 그러면서 도망쳤는데. 처음으로 죗값을 치루네요.”

요원이 손을 치우며 일그러진 웃음을 내게 보여주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죄많은 삶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요원님.”

“......좋은 나라 되는 거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나라 탓만 하네요.”

“그러라고 있는 나라인데요 뭐.”

요원은 웃으면서 울었다.

“......시간 됐네요.”

탕! 타당! 저어 멀리에서 총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권총 여러 발을 쏘아 총격전의 흔적을 만들었다.

“아, 맞다. 의원님.”

“예?”

“예전에 그 홈플러스 4층에, 실험체랑 같이 앉아계셨잖아요.”

“네,”

“그거 쏜 게 저에요.”

“아... 저격수셨습니까?”

“네. 그러니까 총도 안 아프게 쏘면 안 아프거든요?”

탕.

요원이 내 왼쪽 허벅지에 권총을 쏘았다.

뜨겁다.

아프다.

피비린내가 확 퍼진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렀다.

그러다 소파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요원이 약을 삼켰다.

요원은 소파에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는 바닥을 구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진아.” 테러범이 모두 죽었다.

*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모양이다.

정신이 살짝 띵하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온다.

누군가 내 몸을 흔들길래 정신을 되찾았다.

무언가 불타는 냄새가 난다.

“아! 여기 계셨네요?”

“홍... 선아, 씨.”

아래층에서 매연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가운데, 홍선아가 나를 찾아냈다. 그녀는 내 허벅지를 보고 깜짝 놀라 입을 가렸다.

“앗! 포션 부어드릴까요?”

“허벅지에, 초, 총알 박혀있는, 아으..,! 씨팔...! 그, 그거 빼고 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안주머니에서 붕대를 하나 꺼내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지혈 차원에서 붕대만 감아드리면"

홍선아가 붕대를 풀어해치다 멈칫했다.

"너무 티나나?”

“인질 구출하러 오는데, 붕대는 왜 가져왔어요!”

“의원님 아플까봐 그랬죠! 왜 내 맘을 몰라!”

“왜! 왜! 왜! 내 주변에는 미친년들뿐일까요!”

“자꾸 그러면 선아 삐져요......”

홍선아가 조심스레 나를 부축했다. 나는 허벅지의 고통을 꾹 참고 홍선아를 재촉했다.

“이, 일단, 정리하고, 후우... 갑시다.”

“전방 방화 8초!”

홍선아가 신분당선에서 쓰던 구호를 외치며 불을 뿜어댔다. 나는 홍선아의 능력을 빌려 요원의 시신을 정리했다.

두 명의 불꽃이 겹쳐지자 붉은 불꽃이 파랗게 변했다.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잿가루로 변해가는동안,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불 어디어디에 질렀습니까.”

“일단 1층은 싹 태웠고요. 2층도 싹 태웠어요.”

어느새 불꽃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홍선아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찰싹 달라붙었다.

“의원님. 이제부터 저랑 접촉 끊기면 정말 큰일나요! 알겠죠!”

“유세진... 유세진...”

“네!? 저 꼭 붙잡으셔야 해요! 걸으실 수 있겠어요?”

“아, 왼쪽 허벅지에 총을 맞아서...”

“어차피 왼발 못 쓰셨잖아요! 정신 차려요!”

“......생각해보니까 맨날 오른발로 콩콩거리면서 살았네요.”

“자! 기대요!”

나는 홍선아의 도움을 받아 콩콩거리며 불타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녹아내린 전선의 쇳물 따위는 내게 화상을 입히지 못했다. 나는 복도에 있는 요원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죽었다.

이들은 생체실험의 핵심 관계자들이었고,

실험체 폭주 사태에서 살아남은 국정원 중,

죽기를 자청한 이들이었다.

즉, 장원장을 제외한 전원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총격전의 흔적을 만들고서 음독자살했다. 나는 건물을 빠져나오며 그들의 시신을 재차 잿가루로 만들었다.

나는 그들을 불태우다 잠시 망설였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홍선아가 대신 시체를 불태웠다.

“자! 어서 가죠!”

“......홍선아, 씨는. 괜찮습니까?”

“네?”

“......사람, 태우는 거.”

”아뇨?”

그래. 멍청한 질문이었다. 사람 태우는 게 정신적으로 괜찮을만한 짓은 아니지.

“으음! 사람 태우는 게 맨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잖아요? 이래보여도 저도 지금 많이 힘들거든요?”

“......그렇네요.”

“살아있는 거 태울 때보다야 훨씬 낫죠!”

혼란에 빠진 서울에서 약탈자들을 상대할 때. 홍선아는 상대방을 불태워죽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웃어요! 그래야 버텨!”

나는 활짝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문득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못할 짓 시켜서.”

홍선아는 언제나 그렇듯, 웃는 건지 무표정한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무심히 툭 내뱉었다.

“......약속 꼭 지켜야 해요?”

*

여도연은 인파 속에 있었다.

저 멀리서 불타는 건물과,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인형이 보였다.

“아, 아, 여기는 현장입니다! 지금 홍선아 부조합장이 한승문 의원을 구출했습니다. 한승문 의원은 부상을, 네.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 왼쪽 넓적다리에-”

“홍선아 부조합장이 애타게 소리치며 의료진을 호출하고 있습니다! 의료진들이 한승문 의원을 치료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아, 아무래도 부상을 입은 것 같은데요.”

여도연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정확히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굳이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거즈 쑤셔넣어! 지혈! 지혈!”

“헬기 조금만 움직여요! 한승문이 나무에 가려서 안 보여! 카메라! 카메라! 오케이!”

다들 그녀가 단단해지고 엄청 강해졌다고만 알고 있지만.

“워메, 저 불난겨?”

“테, 테러리스트 잡혔대!”

“뭐요? 수신이 안 닿아? 아니 김용현 보도국장이 직접 저 앞에서 방송찍고 있는데. 그걸 뉴스에 못 내보낸다고?”

여도연은 청각과 시각을 비롯한 오감 또한 극한으로 향상된 인간이었다.

그녀는 동생의 납치 소식을 듣자마자 뉴스에서 말한 위치로 순식간에 달려왔으며. 테러리스트들이 점거한 건물에 잠입하기 위해 건물에 접근했었고.

건물 안에서 진행되었던 모든 대화를 들었다.

“......”

그녀 스스로도 생각하기에 자신이 그리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하나는 명확히 알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걸 테러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

1월 8일 오후 22시.

한승문 의원이 홍선아 길드 부조합장에 의해 구조되었다. 대규모 생물학 테러를 예고했던 테러범 14인은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이들은 차재균 씨의 명령을 받아 생체실험을 수행했던 전직 국정원 요원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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