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46화 (46/296)

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2)

사회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공멸을 막기 위해 모든 갈등을 한 곳에 쑤셔 박았다.

그게 국회라는 투견장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국민을 대신해 싸울 개새끼들을 뽑는 제도다. 그런데 투견장에 싸움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즉, 국회가 평화로우면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다.

“합당? 하라 그러십시오! 저는 신당을 창당하겠습니다! 결코! 결코! 이 야합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개싸움의 시작이다.

* * *

우후죽순 몰려들어 나를 붙잡은 국회의원들을 뿌리쳤다. 다들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있다. 나는 시뻘개진 얼굴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악을 질렀다.

“이거 놓으십시오!”

“하, 한승문 의원!”

카메라 앞인 것도 까먹고 여기저기서 상소리가 튀어나온다.

“한의원! 미, 미쳤어!?”

“민주당이고! 공화당이고! 다 필요 없습니다! 이게 나랍니까?”

흔히 정치하면서 넘어서는 안 될 선線이 있다고들 한다.

“합당 인정 못합니다! 어떻게 민주사회에서 일당독재가 이뤄집니까!”

그런데 세상에 선善이 없다.

“신당, 오직 국민만을 보는 신당을 창당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線을 긋기로 했다. 시뻘건 눈으로 목청 터져라 외친다.

“4월 총선! 4월 총선! 오직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국민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국회가 개판일수록 나라가 평화롭다.

“구태에 맞서 새로운 정치를 열겠습니다!”

선線을 긋는다.

“신당을 창당하겠습니다!”

조용히.

하얗고 커다란 백지에.

그렇게 선을 그어간다.

회견장을 나설 적, 양판석과 작게 눈이 마주쳤다.

*

나라가 분노에 휩싸였다.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한승문 의원이 중앙선관위에 ‘국민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불길을 하나로 모으면 역사가 생긴다.

[청중엽 제주도지사, 김조인 민주당 전 원내대표, 우정환 서울 행정부시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창당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기존 기득권과 무관계하고. 관계가 나쁘고, 외면 받던 이들이 손을 내밀었다.

공화당이지만 중앙정치에서 떨어져있던 제주도지사.

찬밥신세 받던 왕년 거물.

지역구는 없지만 피난민들의 지지를 받는 서울의 수많은 정치인들.

4월 총선을 노리는 사람들이 내게로 모인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초에 노리고 한 거였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세력을 모았다.

문제는 돈이다.

중앙당을 만들고 수십개의 시도당을 만들고 수많은 하부 조직을 굴려야 한다. 보통 60억원 이상이 필요하고 요즘 물가 감안하면 수백억이다.

나는 원래 재벌들을 이용하려고 했다.

게이트 사태 이전, 재벌들이 왕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인들끼리 싸웠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게 증명됐다. 정치권이 뭉치니 그들이 힘을 못 쓴다.

고로, 양당제를 바란다는 점에서 그들은 나와 이해利害를 같이한다.

다만, 그놈들이 이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한 놈들이 아니었고, 재벌들을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이 가중된다는 걱정거리가 있었지만.

[특히 GS그룹 천금순 사장이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금순이가 화끈하게 250억을 쏴줬다.

[한승문 의원은 국민당 창당의 주체는 오직 국민들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밝혔지만, 금권정치의 시작이라는 우려 또한-]

뚝.

원옥분이 TV를 껐다.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이 참 무서워요.”

그녀는 일그러진 미소와 함께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뉴스에서도 국민정서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나를 까내리는 것을 보니 원옥분도 심기가 많이 상한 모양이다.

“내가 언제 한 번 데려오라고 하긴 했지만. 그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인연 아니겠습니까.”

“아, 안녕하세요......”

나는 천금순과 함께 원옥분을 찾아갔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허옇게 물든 눈빛에서는 은근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먼저 화두를 꺼냈다.

“합당을 한다고 하더이다. 국방당인지 뭔지......”

국민당. 공화당. 민주당. 전국민이 4월 총선을 애타게 부르짖는 와중에 3자 구도가 형성되었다.

당연히 국민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도다.

정권심판-적폐청산 프레임은 항상 먹히는 거니까. 특히 요즘처럼 살기 힘든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살아나갈 방법은 단 하나다.

“결국 합당입니까......”

“국방당을 창당한다 하더군. 여튼 한 의원이 그렇게 몰아간 것 아닌가?”

“짐작은 했습니다.” 국민당에 맞선 국방당.

아마 3자 구도를 이어가다가 4월 총선 도중에 타이밍 잘 조절해서 극적으로 합당하겠지. 안 봐도 뻔하다.

“후우......”

결국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양강이 똘똘 뭉쳤다. 크게 휘청거린다 한들 수십년의 콘크리트는 그리 단단히 부서질만한 게 아니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경제성장의 추억을,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화 운동의 열정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강성 지지자들에게 정치는 선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일부였다.

지금 여론조사에서는 내가 81% 가량의 지지를 받고 있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는 게 정치다.

‘권력에 눈이 먼 선동가가 야합을 조작해 국민을 분열시키려 한다.’

‘국가가 이렇게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논리를 떠나 국방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한다.’

썩 괜찮은 구호다.

지금 여론이 조금 가라앉고, 믿음직한 원로들과, 녹취록에 안 나왔던 의원들이 튀어나와서 외치면 효과가 좋겠지. 아직 1월 초순인만큼 어떻게 뒤집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어차피 사람은 믿고 싶은 거 믿는다.

흔들리는 사람은 분명 생긴다.

원옥분이 자신의 옛 발언을 주워섬겼다.

“과격하게 나가서 좋을 거 없다 그랬지요. 내가.”

“.....”

나는 담담하게 눈을 감고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고, 원옥분은 얼굴에 난 칼자국을 매만지며 턱을 괴었다.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을 결코 무시할 순 없었지만.

“이봐요, 한 의-”

“중재자 포지션에 서 주십시오.”

지금은 내가 갑이다.

단언컨대, 지금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더 위협적인 정치인은 없다. 나는 원옥분에게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국회 싸움에 휘말려서 이득보실 게 없으실 겁니다.”

국회와 정부를 떼어놓을 필요가 있다.

“국민당에 합류해달라는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굳게 붙어있는 고리를 끊을 수는 없으니까요.”

원옥분도 기성 정당의 핵심인물인만큼 연줄을 깨뜨릴 수는 없다.

대신.

“4월 총선을 성사시켜주셨으면 합니다.”

“......한 의원,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건가?”

“철없이 쌈박질이나 하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강단있게 나라의 중심을 잡아주셨으면 한다는 말씀입니다.”

[당신 좋아하는 컨셉질 시켜줄테니까. 내 말 들어.]

어차피 원옥분은 국회의 지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사람이다.

“국민 여론이 있는데, 4월에 총선만 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운명의 4월이 다가온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운명의 날. 총선 플러스 대선. 내가 그렇게 만들 예정이다.

“대선 안 나가실 겁니까?”

원옥분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다. 이쯤에서 달콤한 제안을 던질 차례다.

“가장 골치아픈 문제가 두 개 있으실 겁니다.”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경제. 언론.”

미쳐 돌아가는 경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복수를 꿈꾸는 언론.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

원옥분이 잠시 고민을 시작했다.

팔꿈치로 천금순의 갈비뼈를 툭 치자, 그녀가 투자개발사업 제안서를 원옥분에게 들이밀었다.

정부에게 아주 유리한 계약이다.

즉, 눈에 보이는 실적 덩어리다.

“이건 가벼운 선수금입니다. 진짜 해결책은 지금부터 설명드리지요.”

언론과 경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4월 총선을 성사시킨다. 나는 그 방법을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우선-”

“아니.”

원옥분이 말을 끊었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

“예?”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잠시 당황하는 사이 노회한 정치인이 조심스레 심문을 시작했다.

“한승문 의원. 정권을 잡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면 됐었잖아. 나이 먹으면 한 의원이 권력잡을 차례가 자연스레 올 텐데.”

베테랑 검사가 범죄의 핵심을 짚었다.

“지금 나라를 사분오열해놓고서 헌터들 데리고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는 거야?”

어랍쇼.

“나였으면, 그랬을 것 같거든.”

그녀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가래 낀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지만,

“헌터들을 암살자로 써먹으면, 증거도 없을 거 아니야. 볼펜이 두둥실 떠올라서 눈에 꽂혀 뇌를 박살내면.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아나?”

내용은 굉장히 공격적이었다.

“이유부터 설명해봐.”

“......”

“내가 그러라고 국정원 절반 뚝 떼서 넘긴 것 같아?”

국정원의 절반이라.

대테러보안국 장과장.

실험체 폭주의 생존자들.

생체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국정원에서 차재균에게 충성했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내 밑에 있었다.

더러운 생체실험의 결과물을 이어 연구할 필요는 있었지만. 원옥분 본인이 그 부담을 떠안기는 싫었으니까.

나는 국정원 잔당 처리 과정에서 그들을 분배받았다. 차재균을 보내버린 것에 대한 보상.

그리고 초능력자 양성을 위한 투자.

또, 내가 스스로 만든 약점이기도 했다.

“한 의원. 죽고 싶어?”

원옥분이 내 목줄을 틀어잡고 경고했다.

“내란죄 형량 만만한 거 아니야.”

한참동안 침묵이 내리깔렸다. 원옥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고, 나는 무덤덤히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생각보다 거친 반응을 보여주는군.

전략 수정이다.

지금부터 노빠꾸다. 기어 올리고 엑셀 밟는다.

“......대행님은 제가 이기려고 싸우는 것 같습니까?”

피채원이 말하길.

인간의 양심을 버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스스로를 세뇌한 미치광이들.

나는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려고 싸우는 겁니다.”

“명확하게 설명해.”

“올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정치권의 분열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나라란 무엇인가.

모른다.

“차재균 차관 한恨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말해줄 생각이 없구만?”

올바른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모른다. 다들 자기 잇속만 차리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괴수는 다 때려 잡겠다고 피를 뒤집어쓴 사람을 죽였으니, 이제 피를 뒤집어 쓸 사람이 없다.

암울한 세상이다.

예정된 파멸이 존재한다.

기름과 탄약이 떨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그러면 누가 나라를 구해야 하는가.

절실히 느낀다.

차재균은 내게 커다란 짐을 떠넘겼다.

“대행님이 제 마음을 읽으실 수 있다면. 절대로 절 막으실 수 없을 겁니다.”

“내란죄, 형량, 만만하지, 않다고! 말! 했어!”

원옥분과 나는 일방적인 주장만을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다.

“저는 대행님 생각보다 많은 걸 희생했습니다.”

“총 맞고 싶나? 내가 깡패 새끼들 신사적으로만 잡은 줄 알아!”

치킨 게임.

한 쪽이 멈추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4월 총선, 그리고 대선, 성사시켜주십쇼.”

“어디서 대통령한테 명령이야!?”

근데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 그녀는 겁쟁이었으니까.

“그리고 국민당과 국방당이라는 새로운 양당 체제를 만드는 데 협조하셔야 할 겁니다.”

“깡패 새끼들이 눈깔 그어도 타협 안 한 사람이야! 내가!”

노태우 정권의 하수인이 아직까지 정치를 하고 있다.

“안 그러면 엎을 겁니다.”

“협박할 생각 말고, 설득을 해.”

즉, 그녀는 노태우를 버리고 김영삼으로 갈아탄 사람이었고.

“이미 말했습니다. 경제 살리고, 언론 쥐여드리겠습니다.”

“......”

쭉 보수 정치인으로 살다가 민주당 정권에서 장관 해먹던 사람이었다.

“요구사항 안 받아주면 저 들이받습니다.”

“......한승문 의원, 이런 사람이었어?”

그녀는 중립을 자처했지만.

“제가 들이박으면 차재균처럼 어이없이 끝나진 않을 겁니다.”

“쿠데타라도 일으키겠다는거야 뭐야!?”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중립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제가 정권 잡으려고 쇼한다고 생각하시면 크게 후회하십니다.”

“이, 정신나간......”

보통 싸우기 무서운 사람이 중립이 된다.

“압구정 헌터들. 사람 많이 죽여본 치들입니다.”

그러니까.

“대행님이 현 시점에서 중립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협조해라. 겁쟁아.

압구정 헌터들이 사태 초기 2주 동안 서울에서 괴물만 잡았겠는가.

애시당초 내가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압구정 캠프에선 늑대괴수를 이용한 조직적인 인간사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약탈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방어라고 하더라도, 김춘식과 홍선아를 포함한 그들 모두는 사람을 죽인 전적이 있었다.

“세상 미친 새끼들 뿐인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저 여기서 안 멈춥니다.”

물론 내가 부탁해봤자 그들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원옥분은 그걸 모른다.

오히려 쿠데타를 먼저 의심한 게 원옥분이다. 그녀는 내 행동에 생각보다 더 극심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고로, 타협과 충돌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명백하다.

“저 죽으면 대신 폭탄 터뜨릴 사람도 이미 준비됐습니다.”

나는 이 심약한 노인을 몰아붙였다.

“알거 다 아는 정치꾼들끼리 괜히 정치 이야기 하지 맙시다.”

노빠꾸로 들이박는다.

“우리 정치 말고 사업 합시다. 사업.”

“......”

“4월 합동선거 성사시켜주시면, 1주일 내로 경제 살립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

"그리고 오늘 저녁에, 언론 독재권 유통기한 연장해드리겠습니다.”

*

[긴급 속보입니다. 7시 21분 경, 강원도 정선 인근에서 한승문 의원이 테러집단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차재균 전 차관의 잔당이라 밝혔으며, 인터넷에 범행성명을 게시했습니다. 자료화면 보시겠습니다.]

[게이트 사태는 자연스런 종족간의 생존경쟁이다. 이에 인류는 진화해야 한다. 저들을 괴수라 말하며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

차재균 차관께선 이러한 뜻으로 사회에서 도태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진화의 비밀을 연구하셨다.

결국 우리는 인간을 ‘진화’시키는 약물을 이미 개발하였으나, 한승문 의원은 진화의 비밀을 가로채었고, ‘진화’를 ‘괴수화’라는 이름으로 폄훼하며 정치적 이득을 도모하였다. 이에 경고한다.

진화에 대한 두려움을 적출하기 위해 우리는 3시간 뒤 인간을 ‘진화’시키는 약품을 살포할 것이다.]

[이에 원옥분 권한대행은 서울-경기권에만 적용되었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으며......]

삼십육계三十六計

공전계攻戰計

제 28계

차시환혼借屍還魂

: 시체의 몸을 빌려 영혼을 불러낸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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