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45화 (45/296)

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

명령 받잡는 목소리各應聲畢에 군함戰船 돗단배風旗帆로 배를 이어連船 평지같이 왕래하야 이리저리 다닌다.

조조, 훈련을 관광허고 마음이 기뻐大喜 방통의 계책을 진중陣中에 자랑하니. 정욱과 순욱이 조조에게 여짜오되.

“조 승상, 배를 묶어 장강에 띄우니 수전水戰이 육전陸戰으로 화化한 묘는 익히 짐작 하옵지만.”

“만일 불로 치올진댄 어찌 회피 하오리까?”

조조가 답하여 이르더라.

“동남풍 안 불잖아 새끼들아.”

판소리 적벽가 中

* * *

“혼자는 안 죽습니다. 명심하세요. 어차피 서로 알 거 다 아는 사이 아닙니까?”

“우리가 남입니까? 땟국물 안 묻은 사람 없으면서 의리없이 튀어나가면 곤란해요.”

패닉에 빠진 의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친개로 돌변하자 양판석이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자, 자, 다들 일단 침착들 하시고. 상황 대처부터 진행하십시다. 연막을 치든, 윤리특위를 열든...”

“유, 윤리특위?”

‘윤리특별위원회’.

국회의원의 자격을 심사해서 뱃지를 떼버릴 수도 있는 특별위원회다.

“이봐요 양 의원! 지금 우리 짤라버리겠다는 소립니까!? 다 같이 뒈지자는-”

“윤리특위 여느냐 마느냐로 한 달 정도 끌고. 윤리특위 열고서 한 달 정도 끌면서 민심과 정국을 살피자 이 소리지요.”

[시간 끌면 잠잠해져]

“아, 아아...! 아하하하!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흥분했네!”

“원래 머리에 피 쏠리면 잘 안 굴러가는 거 압니다만, 진정하세요. 일단 침착하게 머리를 맞대 봅시다. 어차피 지금 사회 지도층이 단결해있는 상황 아닙니까?”

[같이 해먹은 게 얼만데 정부에서 커버도 안 치겠냐?]

기본적인 머리도 안 굴러가는 사람은 금뱃지 못 달았다. 양판석이 상황을 안정시키자 다들 머리가 식은 모양이다.

“일단...... 녹취록이 조작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지지자들에게는 원래 이유가 아니라 핑계가 필요한 겁니다. 일단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 국론이 분열될 겁니다.”

본격적인 의논이 시작됐다.

“나라가 남부지방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인구 비율에서 고령 계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데. 아무래도 여론 형성에 이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젊은애들 많이 죽고 노인밖에 없는데 선동 잘 먹히지 않겠냐?]

나윤희 공화당 정책위의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뇨, 행동에 나서지 말고, 아주 신중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여론이 아주 예민해진 상태라......”

[자식 잃은 부모들이 원망을 했으면 했지. 우리 편들어주진 않을 것 같은데.]

“저도 여론 추이를 조금 더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정] 이쯤되면 상처 썩기 전에 도려내자는 의견이 나올 법도 했지만, 각자도생을 택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엮인 상태였고,

서로의 약점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때 안 묻히고 정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으니까.

금권선거, 당권경쟁, 언론플레이, 정경유착, 상임위 예산 분배, 지역구 관리, 공천학살, 대선자금 모집, 등등.

자연스레 때가 묻는다. 이에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서로를 죽이지 않는다.

잘라내면 같이 죽는다.

고로, 어떻게든 상처를 부여잡고 싸워야 한다.

“일단 각자 손닿는 선에서 지자체랑 사정기관 형세를 살피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처남이 방통위원장인거 모르는 사람 없지? 일단 언론 단도리 할테니까 다음 빠따 손들어]

“제가 호남을 살펴보지요.”

[광주시장이 내가 도지사할 때 꽂아넣은 사람이야]

“음... 검찰에 전화 몇 통 돌려보겠습니다.”

[검찰은 내가 단속하지]

“으음, 지금 선관위원장이 누구였죠...?”

[양판석 의원. 지금 선관위원장이 이주형 대법관인데. 당신이 대법관하던 시절에 그 친구 법원행정처 꽂아주지 않았었나? 그 빚 갚으라고 하지 그래?]

“글쎄요. 관료들 의견을 청취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민심을 어떻게 좀......”

[지금 그거 할 시간이 아니야 새끼들아.]

양판석이 대화의 맥을 끊었다.

상처를 부여잡고 싸우려면 일단 지혈부터 시키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민주당 전 최고의원이 양판석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동의합니다. 지금은 정치권을 비토하는 여론이 아주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우리’ 한승문 의원 압구정 들어갔을 때 생각해보세요. 분노에 눈이 먼 국민들이 얼마나...... 아! 안 좋은 일 거론해서 미안합니다. 한 의원.”

해석 : 승문아...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크흠. 아무튼 전국민이 지금 원망할 사람을 찾고 있는데. 우리 변명을 들어 주겠느냐. 이 말입니다.”

해석 : 승문아...

“그러면, 뭐. 단체로 규탄성명이라도 발표합니까?”

해석 : 승문아...

“역풍 불죠.”

해석 : 승문아...

“나, 참......”

해석 : 승문아...

다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약 0.3초 정도의 작은 눈맞춤에서 절박한 감정이 느껴졌다.

다들 말꼬리를 흐렸지만 왠지 뒷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변명을 하든 사죄를 하든, 일단 민심을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인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나 뿐이랜다.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큽니다. 국회가 나서서 해명해야 합니다. 문제는 정치적 신뢰가...”

신뢰받는 내가 기자회견으로 수습하랜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나보고 끄랜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어리둥절하게 두리번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그으......”

“......한 의원.” 옆에 있던 공화당 정책위의장이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네거티브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일단 국회 입장을 먼저 발표해야 할 것 같은데. 정견을 조금 보태줄 수 있겠습니까?”

“......”

“분열의 정치는 대한민국에 이롭지 않아요. 한 의원도 그걸 알지 않습니까. 나보다 한참 젊지만, 내가 항상 배워가는 친구인만큼. 지금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 거라 믿어요.”

“......”

“국회가 하나되어 난관을 해쳐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아, 그으.... 예. 예. 아, 알겠습니다.”

*

한승문 의원님!

KBC 우중영 기잡니다!

이번 녹취록!

SBM 이재팔입니다!

비례대표 후보자 승계를 국회에서 고의로!

“아니, 그으... 한 사람씩 말씀을-”

4월 총선도 미뤘다는 말이!

한승문 의원님!

대답해주십쇼!

배제시킨 게 사실입니까!

국회의 권력독점!

JTBN 김현중입니다!

“하, 한 사람씩 질문해주시면......”

한승문 의원님!

국회의 권력독점!

야합!

사실입니까!

YTM 김봉준입니다!

한승문 의원님!

동참하신 겁니까!

녹취록이 사실입니까!

“자, 자, 잠시만요. 지나가겠습니다.”

한 의원님!

국회 독재!

동참하셨습니까!

한 말씀만 부탁드릴게요!

한승문 의원님!

정치적 야합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함부로-”

기득권의 야합에 동참하신 겁니까!

Y, YTN 김봉준입니다!

모든 의원들이 동의한 사항이었습니까!

국민을 배신했다는 의견이!

“아, 그게, 지금은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혀, 협치...”

대답해주십쇼!

“아, 아야! 마이크로 때리지 마세요! 우웁...!”

담합에 동참하신 겁니까!  4월 총선 연기!

비례대표 의원 배제!

국민의 뜻을 의원이 가로막은 겁니까!

“그, 그, 그게......”

국민의 투표권 행사와!

국민의 표로 정해진 후보자들을!

국민의 뜻을 대신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독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서!

막아버린 거 아닙니까!

“우, 우리 미,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도. 오직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고요......”

의원님!

정치적 야합!

대답해주십쇼!

의원님도 동참하신 겁니까!

“지, 지금은 국민과, 국회가,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펼 때가 아니라. 화합을 통한 협치를......”

한국신문 감 철 기자입니다.

혹시 합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 하, 합당이요?”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당하기로 한 겁니까!?

“그게 아니라. 협치를-”

여야가 합당을 결의한 겁니까!

한승문 의원님!

독재 거대정당의 탄생이!

사실상 지금도 당의 구분의 의미없다는 의견이 팽배!

합당입니까!

“여야는, 오직 국민을 위해-”

합당입니까!

합당입니까?

공화-민주 합당입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국난이니만큼 당파간 갈등을 줄이자는 말은-”

물밑에서 사실상 합당이 성사됐던 겁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협치 이야기는-”

그게 야합과 다를 게 뭡니까!

“당파에 얽매이지 말자는 이야기는 분명 있긴 했습니다.”

언제부터 합당이 성사됐던 겁니까! 민주주의의 의미가 있긴 한 겁니까! 한승문 의원님! 합당 인정하신 겁니까! YTBC 이준석입니다! 대답해주십쇼! 4월 총선 연기도 야합의 결과입니까! 비례대표 의원 배제도 물밑 협상의 결과였습니까! 국민을 배신하신 겁니까!

“자, 잠깐 이야기만 나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삼십육계三十六計

병전계幷戰計

제 27계

가치부전假痴不癲

: 어리석은 척하되 미치지는 않는다 불과 이틀만에 의원들이 다시 모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한 의원!”

여론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야합이 오히려 기정사실이 되었다. 온갖 해명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국민’의 권리인 총선과.

‘국민’이 뽑은 비례대표를.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의원들이.

막았다.

근데 이거 팩트 맞다. 심지어 신물나게 해처먹기도 했다.

여러 폭탄이 동시에 터지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흔들렸다는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고 있다.

당연히 '실수'로 그를 촉발시킨 내게 의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말실수도 정도가 있지! 이거 작정하고 보내버리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니......”

“지금 장난쳐요!?”

“죄송합니다.”

“어린 놈에 새끼가! 진짜!”

녹취록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람에 가장 위기에 몰린 의원이, 시뻘건 눈으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서 나를 물어뜯었다.

양판석이 그를 만류했다.

“진정하세요. 이게 뭐하는 추태입니까?”

“어이고. 이제 보니까 녹취록 푼 거, 한 의원 아닙니까? 아니. 양판석 당신이 시켰지!”

“허어... 눈이 멀었군. 눈이 멀었어.”

그는 심지어 넥타이를 풀어헤쳐 바닥에 집어던졌다. 귀까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독기에 찬 발악이 흘러나왔다.

“씨팔! 다 같이 뒈지자는 거야!?”

“어디서 상소리야!”

“이, 육시럴...!”

그가 다시금 손목에 찬 시계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유리조각과 작은 부품들이 바닥에 깨져 흩뿌려졌다.

“야! 한승문이! 니 이거 어쩔거야!”

“왜, 왜 이러십니까!”

“몰라서 물어!? 대가리에 피도 안 찬 새끼가. 감히 누굴 죽이려고 들어!”

“놓으십시오!”

그가 내게 다가와 멱살을 잡았다. 덩치도 있는 양반이라 내 멱살을 잡아들자 몸이 부웅 들렸다.

그가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공안검사 출신이라 누구 몰아붙이는 목소리가 조금 무서웠다.

“야 이 새끼야. 죽고 싶어?”

“컥...! 커흑...!”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멱살을 잡힌 채 반쯤 눈깔이 뒤집힌 중년의 분노를 코 앞에서 받아들였다.

"니지? 너야?"

보다못한 양판석이 다가와 내 멱살을 잡은 손목을 붙잡았다.

“윤재상이.”

나를 흔들던 멱살잡이가 우뚝 멈췄다.

“나는 혓바닥으로 안 말린다.”

“......”

“한 번 계속 붙들고 있어 봐. 어떻게 되나 보게.”

나를 붙잡은 손이 풀어졌다. 나는 캑캑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아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훔쳤다.

그는 거친 발걸음으로 자리에 돌아갔다. 바닥을 쿵 쿵 찍는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원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맥없이 중얼거렸다.

“......일단, 술자리에서의 실언이 국민에게 염려를 끼쳤다. 윤리특위를 열 예정이고. 4월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다같이 대국민 사과를 합시다.”

아무도 그에 반대하지 않았다.

남은 방법이 그것 뿐이었으니까.

“윤리특위 열고서 시간을 끌든, 선거운동을 준비하든...... 일단 국민......”

“......”

“후우...... 다들 기자회견 준비나 하세요.”

*

새로운 기자회견의 날이 밝았다. 국회의원 11명이 나란히 일렬로 서서 단상 위에 올랐다.

사형대에 올라온 기분일 것이다.

정확히는 내가 올렸다.

시끄럽게 외치는 기자들. 무언가를 집어던지려다 제지당하는 시민단체들.

온갖 분노와 모욕을 감내했다. 회견장에 오는 길에 계란을 맞아서 그런가 앞머리가 축축하다.

녹취록의 당사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국회의원 윤재상입니다.”

회견이 시작됐지만 잠잠해지기는 커녕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우리는 복도에 나가 벌 서는 아이처럼 일렬로 서서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회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분열의 정치, 증오의 정치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때.

나는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성큼성큼 단상에서 내려갔다.

“우선, 국민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어. 한, 한승문 의원. 지금 뭐하-”

“합당 반대합니다!”

“......뭐요?”

“인정 못합니다! 합당 반대합니다!”

삼십육계三十六計

병전계幷戰計

제 28계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 위에 올린 뒤 사다리를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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