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44화 (44/296)

EP 9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

[지난 11일. 법원에서 천금순 GS 그룹 사장에게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했습니다. 투기성 자금운용으로 경제혼란을 야기했으나, 추후 사회적 책임을 지려 노력했다는 점을 감안한 판결로 분석됩니다.

천금순 사장은 항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이번에 주신 벌이 지극히 합당하다고 생각을 하구요... 제가 돈을 벌려고 한 일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고...

아무리 돌이키려 노력을, 해도. 킁...! 실수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배웠습니다... 기업가로서 조금 더, 책임있는 행실을-]

괴수피해복구재단 미성년자지원센터. 통칭 한승문재단 고아원. 유아 양육실.

천장 구석에 달린 TV에서 천금순이 애처로운 얼굴로 살짝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영상이 나왔다.

저렇게 잉잉거리며 인터뷰를 한 걸 보니 살짝 찐따같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던 그녀에게 물었다.

흠. 재벌 3세는 갓난아기를 들어본 적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하십니다.”

퍽 능숙하게 아기의 목을 받치고 우유를 먹이던 천금순이 맑게 웃었다.

“동생이 있었거든요. 9살 터울 이복동생.”

“어......”

이복동생이라. 아빠가 바람을 펴서 생긴 동생이었다는 소리었다.

“나름 귀여웠어요. 13살 때 병으로 죽기는 했지만...”

“음......”

“어쩌면 엄마가 죽인 걸수도 있겠네요. 무슨무슨 병 때문에 급성 쇼크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전날까지 저랑 손잡고 산책까지 했었거든요...”

“아......”

짐작은 했다만 그리 멀쩡한 인생을 살진 않은 모양이다. 착잡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던 천금순이 애써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장이라는 호칭은 어떠세요?”

천금순은 사장이라는 호칭을 고집했다.

“회장은 좀 노티나구... 대표는 너무 젊어보여서... 이름에도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데요.”

“제가 이름에 좀 예민해요... 아무튼 귀엽죠? 나도 금순이 말고 이런 이름을 원했단 말야!”

“예...?”

‘천사장’이 뭐 어떻다는 거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니 천금순이 금방 의문을 풀어주었다.

“엔-젤......?”

* * *

“하아...! 끝났다......” 천금순이 기지개를 켜며 걸어나갔다.

“이제 158시간 남으셨네요.”

“...승문 씨, 제발......”

“돌아가셔서 야근도 하셔야겠고.”

“......자기야. 혼날래요?”

“요즘 재벌들도 막, 사원한테 재떨이 집어던지고 그럽니까?”

“잘 모르겠네요. 의원한테는 한 번 던져보고 싶긴 한데.....”

“담배 좀 끊으세요.”

“아... 기운 빠져.....”

그녀가 ‘가끔 필 수도 있지...’ 라고 중얼거리던 찰나.

“아저씨!”

하늘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윤아!”

“오랜만!”

감지윤이 하늘을 달려 내게 다가왔다. 녀석의 손을 잡아들자 꼬마가 풍선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나는 감지윤을 들고서 천금순에게 소개했다.

“아, 천 사장님. 이쪽은 감지윤이라고. 저랑 같이-”

“헤에......”

“서울 탈출했던, 염동술사...?”

“나, 나도 한 번만 잡아봐도 되나요...?”

그녀는 풍선을 뺏어가려는 아이처럼 내게서 감지윤을 빼앗으려 들었다.

“응헿”

감지윤은 둥둥 뜬 상태로 헬륨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어, 왜 이러십니까.”

“하, 한 번만 잡아볼게요...!”

“저리 가십쇼.”

“흐얏...!”

나는 감지윤의 초능력을 빌려 천금순을 잠시동안 둥둥 띄워놨다.

“지윤아. 오랜만이네?”

“난 TV에서 자주 봤는데!”

“그건 만난 게 아니지. 그나저나 요즘은 뭐하고 지냈니?”

“으음......”

감지윤이 해맑게 웃었다.

“통마대 올리다 삐꾸나서! 함바집 박살내서! 십장한테 꾸사리먹고! 당분간 데마찌야!”

“으, 으음......”

순간 머리가 띵해졌지만, 천금순이 해석해줬다.

“항공마대 올리다 뭐 떨어뜨려서 현장식당 박살내는 바람에... 작업반장한테 혼나고 당분간 일 없다네요......”

“천 사장님은 이게 들립니까...?”

“저 건설사 가지고 있잖아요......”

“꼼꼼하시네...”

감지윤은 길드 대민지원팀 에이스 파견인력이었다.  ‘대민지원’. 무너진 집 지어주기. 박살난 건물 잔해 정리하기. 등.

즉, 걸어다니는 공사판 만능 중장비 역할을 수행했다는 거다. 아무래도 아저씨들이랑 많이 친하게 지낸 모양이다.

나는 감지윤을 천금순에게 쥐여 주었다. 천금순은 조심스레 감지윤을 살살 흔들며 내게 말했다.

“아휴... 아끼던 실장님 한 분 제물로 바치고 도망친 줄 알았는데. 200시간이나 받을 줄은 몰랐네요...”

“금융위도 체면은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권의 압박으로 경제사범을 단속하지 않았다는 오명을, ‘형식적으로’나마 벗은 것이다. 천금순이 짐짓 투덜댔다.

“어차피 다 아는 사람들끼리 무슨......”

“나중에 할 국정감사 때 써먹을 변명을 쌓는 겁니다.”

“아하!”

“정치가 다 그렇죠 뭐.”

*

피채원이 보고를 시작했다.

“그... 한 의원님이랑 친해져서, 서킷 브레이커? 시간 조정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어요......”

녀석이 내게 천금순의 속마음을 전해줬다.

“......이거 상또라이 새끼 아니야!”

“그게 뭔데요...?”

“주식시장 개판나면 나라에서 셔터 내려버리는 건데, 풋쟁이들이 이거 잘 써먹으면 돈 수천배로 불리거든요? 이, 뭔...!”

무슨 마약을 해야 이런 생각이 나오는 걸까.

주식시장에서도 지독한 불개미나 할 짓거리를 할 생각을 하다니. 그녀가 재벌이라는 점에서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돈 불리는 쪽으로는 정말 악마같은 재능이다. 그런 발상이 가능한 것 자체가 재능의 영역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딴 생각은 없었고요?”

“네......”

“이제 158시간 남았네. 조금만 더 수고해줘요 피채원 양.

기재부를 자극해서 무리하게 그녀를 잡아들인 게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사회봉사명령 내려서 고아원에서 일 시키는 동안, 피채원이 주기적으로 그녀를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살짝 정신이 나갔고. 정신나간 발상을 떠올리고. 그걸 정신나간 방법으로 성공시키는 인종들.

정치인이 가장 경계하는 부류.

우리는 그걸 위인이라고 부른다.

훌륭하게 민간인 사찰을 수행한 피채원이, 보고를 마치고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의원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똑. 똑.

“들어와요.”

노크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흠. 채원 양이 있었네요?”

“아아, 볼 일 끝났습니다. 들어오세요.”

피채원이 터덜터덜 집무실에서 나갔고, 장원장이 조심스레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어째. 고아원 원장 노릇은 할 만 하십니까?”

“제 천직이 아닌가 싶네요.”

지하국회 인근 장사단장.

국정원 장과장.

서울지청 장경장,

한승문재단 장원장.

“군인도 하셨고. 요원도 하셨고. 경찰도 하셨고. 하다하다 원장까지 하십니다?”

“삶이 참, 네. 하하...”

나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그에게 율무차를 타서 건넸다.

“이게 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 아닙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우리.”

그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율무차를 들이켰다. 나도 내 몫의 종이컵을 기울이며 홀짝였다.

차재균 밑에서 일하던 국정원 대테러 보안국 요원은 이제 내가 다루고 있다.

이름은 모른다. 볼 때마다 바뀐다.

이제는 한승문재단 고아원 원장이다. 정확히는 괴수피해복구재단 미성년자 지원센터 센터장.

“초능력자 비율은 어떻습니까?”

그는 서울에서 가족을 잃은 미성년자들의 각성 여부를 파악하는 중이다.

의탁할 곳 없는 이들이 수십만에 이르는 만큼,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다 서울 출신이라. 각성자 비율이 상당합니다.”

“게이트 마력이랑 각성이랑, 서로 관계가 증명된 겁니까?”

“통계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아니라는 소린데......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인 천화란 소장이 만삭이 되는 바람에. 당장 연구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천소장님이 지금......”

“연구에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부산으로 안 내려가시고 아직 서울에 계십니다.”

“출산 임박인데 뭔 일을 시킵니까. 일단 그쪽 도움은 포기하고, 각성자 중에 고학력자 있으면 바로 연구소에 넣으세요.”

“알겠습니다.”

과로에 지친 천화란이 병원에서 요양하기 시작하자 연구 진척이 뚝 끊겼다.

마석을 열에너지로 바꾸는 방법, 마석을 이용한 약물로 신체 회복을 가속시키는 방법 정도는 이미 존재하지만, 아직 시험 단계다.

물론 수많은 석학들을 데려와 갈아넣기는 했다. 허나, 화학과 인체에 정통한 연구원 겸 의사 출신 ‘각성자’가 그리 흔하겠는가.

마력을 볼 수 없는 이가 초능력을 논하기에는, 이게 너무 추상적인 학문이었다.

내가 마력을 못 봐서 안다.

각성자가 여러 가지로 구분되긴 했지만, 사실상 의미 없는 구분이었다.

막말로 데이비드 김이 돌 던지면 원거리고, 홍선아가 달라붙어서 태워버리면 근접이다. 애초에 김춘식 그 사람은 맨날 총 들고 다니더라.

인터넷에서는 어태커, 강체술사, 치유사, 싸이키커, 화염술사, 등, 여러 멋들어진 별명을 붙이고 있긴 했지만, 그게 실질적으로 초능력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는 힘들었다.

다만, 유일하게 정립된 기준이 존재한다. A형. B형.

A형은 마력의 영향을 몸에 받은 사람.

즉, 몸이 바뀐 사람들이다.

여도연, 김춘식, 강석호 등이 있다.

단단해지고, 청력이 발달하고, 위액을 멀리까지 토해내고, 몸에서 독이 나오는 식으로 신체가 변형된 사람들이다.

B형은 마력을 쓰는 사람.

즉, 초능력자들이다.

홍선아, 감지윤 등이 있다.

전기를 다루고, 허공에 물건을 띄우고, 사람을 회복시키고, 빛을 내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A형과 B형의 공통점은 마력이 눈에 보이고, 마석을 흡수해서 강해진다는 거였다. 재능과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마력 못 보고. 마석 못 먹는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나는 C형이다.

피채원도 나랑 비슷한 케이스다. 걔도 마력 못 보고, 마석 못 흡수했다.

애초에 사람이 구분한 것인만큼 정확한 원리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아, 머리 아파......”

“괜찮으십니까?”

“늙어서 그런가 봅니다.”

“거, 참......”

장원장은 내게 물었다.

“인연산 지하에서도 딱히 그쪽으로는 연구가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사람 몸에 어떻게 마력을 적응시키느냐가 문제였지요.”

“실험체들은 다 A형이었나요?”

“A형이 가장 흔했고. 간혹 B형이 나왔습니다. 개별 역량도 천차만별이었는데, 변형 이후로도 이성을 유지시키는 걸 중점으로 연구했지요.”

“흐음...... 일단 머리아픈 이야기는 이 쯤 하지요. 슬슬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아, 그러면 전 이만.”

“예. 수고하세요.”

정확히 51분 후. 문자 한 통이 왔다.

주소가 적혀 있었다.

*

주소지까지 가는 데 4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4시간 만에 나라가 뒤집혔다.

나는 내게 접근하는 기자들을 따돌리고서, 간신히 접선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떤 산골의 지하벙커였다.

입구에서 몸수색하는 게 보이길래, 넥타이 핀과 시계를 먼저 그쪽에 건네주고, 한 번에 수색을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국회의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TV를 보고 있다. 몇 명은 얼굴을 시뻘겋게 달구고 전화기에 악을 지르고 있었다.

[언론통제 한다더니 이게 뭐야! 엠바고를 걸어야 할 거 아니야! 엠바고를!]

[어어, 김 주필. 이건 좀 실망인데. 나랑 한 따까리 하자는 거야? 댁 자식새끼 마약한 거 모르는 사람이 있었나?] [납니다. 아아, 변명은 됐고. 거, 아무리 SNS에서 뜨겁다고 해도. 나랏일이 급한데 이렇게 발목을 잡으면 안 되지.]

난리도 아니다 원.

나는 금세 다가가 TV 뉴스속보를 확인했다. 자막으로

‘국회의원 녹취록 공개. 파문’

이라고 큼지막하게 띄워져 있었다.

[...6시에 유포되었습니다. 확인된 목소리는 민주당 김윤식, 정 철, 윤재상 의원. 공화당 전필재, 임웅재, 김재운 의원입니다.]

뉴스속보 자막이 바뀌었다.

‘비례대표 의원 배제. 야합?’.

그리고 검은 실루엣들 위에 싸구려 금뱃지 3D 모델링 하나 띄워놓고, 노이즈 섞인 목소리를 시작으로 녹취록이 재생되었다.

[김조인 비례대표 후보자를 하나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정 의원.]

[......아니, 그 분이야 워낙 정치권 대선배님 아니십니까. 이번에 숫자 하나 차이로 안타깝게 떨어지신 건데.]

[에헤이. 누구는 챙길 사람 없는 줄 알아?]

[어허...... 말 조심하십쇼.]

[엄한 사람 말꼬투리 잡지 말고. 처신 똑바로 하세요. 촉새들 주둥아리 닫는데 얼마를 썼는데. 이제서 비례대표 후보자. 예? 승계시키겠다 그러는 건 예절이 아니지.]

비례대표 의원은 미리 1번부터 나중 순번까지 번호를 정해놓고 투표한다.

투표소 들어가면 투표지 2개를 받는데.

사람 이름 적힌 게 지역구고, 정당 이름 적힌 게 비례대표다.

당이 표를 많이 받으면 비례대표 23번까지 당선되고,

당이 표를 적게 받으면 비례대표 16번까지밖에 당선이 안 되고.

대충 이런 식이다.

근데. 16번까지 당선이 됐다고 쳤을 때.

비례대표 의원 하나가 나가리되면 17번이 의원직을 물려받는다.

그게 룰이다.

[이 마당에 룰 지키겠다는 소리는 아닐 거고. 김조인이가 뭐라 그러던?]

[원로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입니까!]

[내가 걔 선배야! 족보나 똑바로 따져!]

[자, 자, 다들 진정하세요.]

[걔? 걔? 내가 니 탈당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족보없는 새끼가 어디서 위아래를 따져!]

우리는, 국회라는 밥그릇을 독점하기 위해 비례대표 승계 문제를 엎어버렸다.

12인 국회. 각자의 케이크 조각을 지키기 위해, 밥상에 더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기로 결의했던 것이다.

[당신 지금 뭐라 그랬어!]

[아무튼 국회에 비례대표 들여놓지 마요. 4월에 총선하겠다는 소리도 어떻게 무마시켰는데, 이제와서 그걸 꺼내들려고 해?]

[야!]

[아 품위 좀 지켜요! 품위 좀!]

심지어 4월에 하기로 한 총선도 연기시키고. 12인 체제를 꾸역꾸역 연명시키려 들었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아무튼 비례대표 더 뽑자는 건 못들은 걸로 할게요 난. 귀만 버렸네.]

[아니, 다들 침착 좀 하시라-]

[난 이만 일어납니다.]

[니 감싸주다 구치소 간 김 의원. 지금 괴수밥된 건 알고 지껄이는 거야? 그런 놈이 탈당을 해놓고. 어디서 원로한테 말을 까!]

[예절없기는......]

“......누구야.”

금방 전화를 끊은 의원 하나가 독기 찬 눈으로 좌중을 흩었다.

“저거. 몇 달 전에. 지하국회에서 있었던 일 아닙니까?”

“......”

“어떤 새끼가 녹취록 깠어?”

의원이 의원을 삿대질했다.

“야. 김조인이 비례대표 안 달아줬다고. 다 뒈지자는 거야?”

“내, 내가 그랬겠습니까? 그리고 그게 무슨 말버릇-”

의원이 의원의 멱살을 잡았다.

“대학에서 애새끼들 코묻은 돈이나 받아 처먹던 새끼가.”

“이, 이거 놓으세요!”

“어디 검사랑 맞먹으려고 들어?”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무섭냐? 응? 내가 검찰청 나오면서 캐비닛 두고 나온 줄 알아?”

“그게 대체 뭔 소립니까!”

“여대생 따먹은 거. 그때 검찰이 수사 못해서 안 잡아넣은 거라고 생각하지 마. 당신한테 뱃지 달아준 그 양반이 가려준 거야.”

“야! 이! 새끼야! 몇십년 전-”

“검찰은 수사 접어도 기록은 안 지워.”

의원이 의원들을 돌아보며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부라렸다.

“어떤 새끼가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똑똑히 기억하십쇼.”

의원이 의원을 협박했다.

“나, 혼자는 안 뒈집니다.”

혼란에 찬 의원들 사이에서. 나는 줄곧 의원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또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양판석과 잠시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감았고, 나는 눈을 피했다.

36계三十六計

패전계敗戰計

제 33계.

반간계反間計.

: 적을 이간해 서로 멀어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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