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 재벌집 막내손녀 (1)
코 끝을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에 눈을 떴다. 얼얼하다.
창문을 열어놓고 잔 모양이라 방 안에 한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창문으로 기어갔다.
머리가 띵하고, 열도 나는 것 같다.
슬쩍 확인한 시간은 6시 30분. 창문 밖은 아직도 밤처럼 껌껌했다.
다만, 새하얀 눈꽃이 어둠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차가운 12월.
대한민국은 어느 때보다도 시린 겨울을 감내하고 있었다.
* * *
모든 사람에게는 특징이란 게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남들과는 달리 유별난 구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특별한 존재라 말한다.
허나, 이런 사소한 '유별남'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듦에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곤 한다.
가장 애석한 건, 우리는 우리의 싫은 부분을 고치기 힘들 때도 있다는 거다.
“에푸칭!”
내 경우는, 내 재채기 소리가 싫었다.
이유는 생략한다.
이 재채기 소리 때문에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비웃음과 조롱과 모멸을 감내했는지 셀 수도 없다.
에푸칭! 에푸칭! 연달아 세 번 재채기가 나왔다. 전자레인지에서 죽을 꺼내던 여도연이 실실 웃으며 나를 조롱했다.
“야, 깜찍이. 감기 걸렸냐?”
“크응.”
킁. 코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덧붙였다.
“내가 재채기할 때 비음 섞지 말랬지.”
“그게 마음대로 되냐......?”
그녀는 벌써 출근준비를 마쳤는지 정장을 걸치고 있었다. 경호원도 겸하느라 양복 바지를 입고 있다.
“슬슬 양복이 잘 어울린다?”
“야. 받아.”
나는 여도연이 건넨 닭죽을 받아들었다. 유독 대추랑 인삼이 많이 보인다. 그녀는 가볍게 소금을 뿌리며 이야기했다.
“엄마가 보내줬다.”
“아유, 뭐 이런 걸 다...”
여도연이 험악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평소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니는 통영에 연락 좀 하고 살아라. 엄마가 걱정하더라.”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거 알잖어. 맨날 같이 붙어다니면서 그러네. 누난 이미 아침 먹었지?“
“니가 지금 퍼먹는 거에서 고기만 다 골라 먹었다.”
“집구석에 게이트가 열렸나...?”
해석 : 사람 새끼냐?
물론 닭고기도 푸짐했다. 나는 피곤에 찌든 상태로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요즘 생활은 항상 이런 식이다.
여도연이 아침 다 먹고 출근준비도 모두 끝내면 그제서야 내가 일어난다. 덕분에 여도연이 내 양복까지 챙겨준다.
물론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가 심드렁하게 팔짱을 꼈다.
“너 어제 6시간도 안 잤지?”
“누나는 3시간도 안 자잖아.”
“나는, 임마, 그거고.”
강체술사.
육체계 각성자.
근접계 이능자.
어태커.
탱커.
포워드.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호칭들이 난무하고 있다. 딱히 정해진 명칭은 없다. 방송사마다 다른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초능력자에 대한 연구는 ‘치열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덕분에 여도연이 참 특별한 초능력자인 것도 알게 되었다.
보통 강체술사들은 힘을 주거나 정신을 집중해야 몸이 단단해진댄다.
게다가.
누구는 팔만 강하고,
누구는 다리만 강하고,
누구는 고무처럼 강하고,
누구는 바위처럼 강하고,
누구는 단단한 게 아니라 힘만 세고.
각성자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근데 여도연 같은 경우는 평소에도 몸이 단단하댄다. 심지어 단단한 거에 더해서 힘도 세다.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이게 참 드문 케이스라고 한다. 천화란이 그랬다.
물론 그만큼 마석을 많이 먹어야 강해지긴 하지만, 마석은 돈과 권력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 여도연은 마석을 엄청나게 흡수했다.
그래서 가끔 여도연이 싸우는 걸 보면 참 무섭다. 초능력과 격투기가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발휘하더라.
“누나, 물 좀.”
물론 지금은 내 물셔틀이다.
"아, 무울...!"
“아, 씨, 진짜!”
여도연은 '손이없어 발이없어'라고 질문해봐야 내가 얄미운 표정으로 의족을 흔들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물을 내왔다.
냠. 나는 죽을 씹으며 어정쩡한 발음으로 질문했다.
“긍데 사람이 잠을 3시간도 안 자는 게 말이 되나...?”
아리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여도연이 피식 웃어보였다.
“나도 이게 사람인가 싶다.”
*
“아, 예, 유감입니다.”
- 이게 동네 깡패들 하는 짓이랑 뭐가 달라요! 헌터들이 까부순 건물이 몇 채인지 아십니까!?
“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그게 괴수를 잡다 발생한 손실이라, 법적으로 보상을 못 드리는 점-”
- 멀쩡한 건물 다아! 때려 부숴놓고! 주민들 반발은 싹 무시하시는 겁니까? 그러고도 국회의원이라고 하실 수 있어요!?
“아, 유감입니다. 부시장님.”
- 허! 나, 참...! 아니, 이봐요. 한 의원님. 자꾸 그렇게 뭉개려고 하시는데. 이번에는 똑바로 안 넘어갈 겁니다. 건물 피해 보상 못하면 더 이상 지원 없습니다!
뚝.
의정부 시장 대행을 맡은 부시장이 통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작게 한숨쉬며 이호정에게 손짓하자 녀석이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무덤덤하게 읊조렸다.
“이번에 아파트 몇 개 부쉈다고 주민들이 피켓 좀 들었는데. 이 새끼가 겁도 없이 개기네. 초짜라서 그런가.”
“다음 시장 선거를 노리는 걸까요.”
“어차피 돈 못받을 거 알면서도 주민들 비위 좀 맞춰주고 시장 해먹겠다는 거 같은데. 그렇게는 못 놔두지.”
어디서 헌터들 활동에 깽판을 쳐놓고 감히 정치질을 하려고 들어?
“2호야. 캐비닛에 있는 거 몇 개 주워다가 검찰에 쏴버려. 바로 짤라버리게.”
“행정에 공백이 생길, 아. 서울에서 구청장 하던 인사 중에 적당한 사람 찾아볼게요. 말만 잘 들으면 되나요?”
“그래. 나한테 컨펌 받고서 계엄사령관한테 팩스 보내라.”
이호정을 비서에서 보좌관으로 승진시킨 마당이라 밑에 인턴 둘 정도 두고 있으니, 아마 근시일 내로 처리될 안건이었다.
나는 비협조적인 부시장 하나를 갈아치우고서, 슬슬 운영되기 시작한 고아원의 예산집행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양일호가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문서라 퍽 보기 편했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니, 많은 것을 바꾸었다.
대검찰청에 이능수사부가 생기고,
경찰청에 괴수대응국이 마련되었으며,
심지어 이능 관리부를 만들자는 말까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왔다.
이능관리부, 헌터관리부, 초인관리부, 뭐. 막 그런 게 생기면 장관 1순위는 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승문을 장관으로!' 라고 외쳤으니까.
장관하면 좋겠지. 에꾸스 타고 의전도 받고, 한장관님 소리 들으면서 대통령이랑 매일 사진도 박고, 나라의 모든 헌터들을 한 손에 쥐고.
근데 헌터는 이미 내 손에 들어와 있었다.
쓸데없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가급적이면 실용적이고, 안전하게.
그래서 나는 국회와 여론을 움직여 그걸 저지했다.
내게 과한 힘이 들어가는 걸 우려했던 그들 또한 밝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힘이 강해질수록 적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강하다.
굳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길드가 경찰청 괴수대응국 산하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게 만들었다.
앞으로 국군보다 중요해질 단체를 고작
'행전안전부' 산하에 있는
'경찰청'의
'괴수대응국'과 협조하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결론은 개꿀이었다.
첫째, 경찰청에선 길드를 절대 못 건드린다. 내가 있기 때문이다. 즉, 공권력의 압박에서 자유롭다.
둘째, 헌터들이 김영란법 대상자가 되긴 했지만, 우리는 행안부로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가예산을 배당받았다. 정확히는 내가 따왔다.
명확한 직위 없는 실권자.
이로써 나는 어둠 속의 실력자로 거듭났다. 뭔가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캐릭터다.
다만, 그게 내 과로의 원인이었다.
명확하게 정해진 직위는 없는데, 여러 단체를 컨트롤하다보니, 이것저것 다 하고 있다.
심지어 중요한 일이라 남한테 맡길 수도 없다. 양일호와 이호정을 반쯤 갈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 노릇이다.
공직유관단체 지정과정에서 업무위탁 따오고. 자본금 출연 재출연 반복하면서 지분율 유지하면서 돈세탁하고.
감사원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예산규모 100억원 이하로 맞추느라 기재부 장관 행안부 장관이랑 고기 구워 먹으면서 쇼부치고.
괴수 시체 치우는 팀 만들고. 괴수 시체 분해하는 팀 만들고. 괴수 시체 분석하는 팀 만들고. 천화란 연구소랑 어떻게 잘 기워붙이고.
무엇보다.
사람 살리는 일에 장난질치는 새끼들 매달아버리고.
그런 일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사회정의 구현하느라 수명이 깎이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차재균 스타일의 방어적 권력을 내 방식대로 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수들을 조지는 시스템을 한 땀 한 땀 공들여 조각하고 있다.
헌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의원님, 새치 생기셨는데요...?”
지나가던 양일호가 말했다.
길드 헌터들이 쓸 차량 제공기업 명단을 뽑아보던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양일호가 호다다닥 달려와 거울을 내밀었다. 그리고 손수 내 머리를 헤집으며 흰머리를 찾아주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거울을 보았다.
이마 위쪽에 흰머리가 조금 있었다.
그리고, 양가 통틀어 우리 집안에는 새치가 없었다.
즉,
“아, 안돼...!”
이건 순수하게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거였다.
*
그날 저녁. 업무를 마치고. 평소처럼 양일호, 이호정과 함께 고깃집으로 향했다. 여도연은 괴수 잡으러 갔다.
늘 함께 저녁식사를 하긴 하지만,
......무언가.
뭔가 한창때 커플 집에 못 가게 잡아두고 강제로 회식시키는 기분이 종종 든다. 나는 자리에 앉아 물수건을 돌리며 말문을 텄다.
“얘, 얘들아?”
양일호와 이호정이 동시에 퀭한 얼굴로 슬그머니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부하 눈치보는 상사인가.
“호, 혹시 나랑 밥 같이 먹는게 싫은 건, 아, 아니지...?”
“예?”
“내가 애초에 이런 질문도 안 하고 알아서 잘 집에 보내줘야 하는데, 괜히 눈치없게 저녁 같이 먹자고 달라붙는 건 아니지...?”
“형 지금 졸리죠?”
“어떻게 알았어?”
“제 경험상, 보통 술 취한 거랑 잠에 취한 거랑 반응이 비슷하더라고요.”
“근데?”
“......형 술 취하면 조금 찐따같아요.”
*
양일호는 고깃집 좌석에 앉아 옆구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아까 이호정이 팔꿈치로 양일호의 옆구리를 가격한 탓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까칠하게 머리를 뒤로 묶으며 내게 말했다.
“지금 얘랑 집 사려고 돈 모으는 중이거든요. 근데 오빠 덕분에 밥값 엄청 아끼고 있으니까 너무 마음쓰지 마세요.”
“...돈 때문에 같이 밥 먹어준다는 거냐?”
“으음, 친구비?”
이호정은 장난스레 웃으며 태연하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강제 야근까지 시키는데 친구비 정도는 내줘야지.
우리는 한참동안 소고기를 냠냠 씹어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오늘은 그나마 안심했다.”
“왜요?”
“이제는 초당 0.1명이 죽는댄다.”
“허, 죽으면 죽는거지 그런 통계가 어떻게 나오는 거래요?”
“지난 5개월동안 130만명이 죽었다고.”
“......아.”
“사태 초 1달동안 300만명 죽어나간 것 치고는 많이 줄어든 거지.”
이호정이 스마트폰을 보며 말을 흘렸다.
“어어, 방금 국방부 오피셜 떴는데. 서울 외곽은 구조작업이 거의 끝났다네요?”
“개뻥이야. 이제 절반 조금 넘게 끝났다고 장관한테 들었어.”
“아, 언론플레이?”
“경제 살리려고 안전 분위기 조성하는 중이긴 한데. 괴수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와중이라......”
양일호가 새삼스레 말문을 텄다.
“아, 저, 아는 선배가 대검 헌터수사부 들어갔는데. 각성자가 또 사람 죽였대요.”
“그, 아직도 못 잡은 실험체는 아니고?”
“그냥 과실치사라던데요. 어떤 여자가 각성하자마자 남편을 죽였다네요. 막, 설거지하던 사람 어깨 잡으니까 전기가 통해가지구...”
“근데 왜 다들 헌터수사부라 그러는 거에요?”
“각성자중에 괴물 사냥 안한다고 버팅기는 사람이 많잖아. '각성자가 괴수를 잡아야 한다' 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야. 각성하면 자연스럽게 호칭이 사냥꾼이 되는 거지. 아마 보도지침에도 있을걸? '헌터', '사냥꾼'이라는 말을 자주 쓰라고.”
“이번에 유호엽 시신 나왔다네요.”
“아, 국민 MC......”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계속했다.
요즘 맨날 서류로 만지는 게 죽음이라 다들 조금씩 무뎌진 상태였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뉴스에서도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했다.
- 유명 여배우 이송하 씨와 그 매니저에 얽힌 이야기가 세간의 슬픔을 모으고 있습니다. 매니저는 이송하 씨를 살리기 위해 몸을 던져......
“요즘은 저런 게 다 뉴스로 나오냐......”
“어젯밤에 서초구에서 가스폭발로 26명이 죽었다는 소리보단 저거 방송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던데.”
“아니, 의원님은 그런 거 어디서 들으시는 거에요?”
“나 요즘 헌터들 이미지 관리하느라 방송국 사장들이랑 술 마시고 다니잖아. 사장들 다 죽은 바람에 실무진이 사장노릇하고 있어서 그런가, 썰이 되게 재미있더라고.”
양일호와 함께 소고기를 씹으며 노가리를 까고 있으니, 이호정이 문득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석호니?”
이호정은 충격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시호야? 얘, 너 시호니? 무슨 일이야. 응!?”
시호는 강석호의 4번째 동생이었다. 이호정이 심상찮은 표정으로 스피커 폰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강시호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끄흡..! 사, 살, 려주세요...! 무서워...! 으으아...! 아으! 으흐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