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 북풍北風 (5)
정치인의 생리라는 게 있다.
간단히 말해 카메라 앞에서 물고 뜯고 난 다음에, 사우나에서 노가리 까며 악수를 나누는 거다.
왜 그러느냐.
한 번에 못 죽이면 역풍이 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숨통을 끊을 자신이 없다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게 최선책이다.
고로, 누군가를 공격할 때는.
킬각 잘 재서 덤벼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를 손에 쥔 자가 대국을 쓸어간다고 하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정보를 알아야 각을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
나는 피채원이 가장 무서웠다.
* * *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실인가.
나는 누구의 판에 올라와 있는가.
“......일단 감기자님이 파악하신 현 상황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어떤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지도 알겠고요.”
차재균이 숨통을 끊으라. 이 말 아닌가.
허나 그게 말처럼 쉽겠나.
정보가 더 필요하다.
“감기자님과, 우리 피채원 양은, 대체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아낸 겁니까?”
나는 현 상황을 되돌아보며 최대한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기자 하나랑, 고등학생 하나가,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지하벙커에 잠입했다는 소리가 썩 신빙성이 있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점점 말하면서도 뭔가 느낌이 쎄하다는 거다.
“지하 벙커에서 자행된 실험인데, 어떻게 이런 사진이나 실험 기록들을 가지고, 오실 수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몇몇 가정들이 저절로 떠오르고, 마침내 충격적인 추측 하나가 뇌리에 스쳤다.
“그, 무슨, 내부에 협력자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 이럴 수는......”
테이블이 침묵에 잠겼다.
“......”
“......”
“......협력자, 있습니까?”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이 곧 긍정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감기자가 먼저 운을 텄다.
“확실히, 생체실험에 대한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었습니다. 제가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군사시설에 침투하겠습니까?”
솔직히 이 아저씨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취재할 길이 막혀 한참 고민하고 있을 적에, 채원이가 먼저 저를 찾아왔습니다.”
“......”
“그리고 인근 야산으로 저를 안내-”
“그만.”
피채원이 대화를 끊고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어캣처럼 주변을 휙 휙 둘러보았다.
감기자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들었니!?”
“이, 근처...!”
“이런...!”
그는 가방을 매고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원들이 이 근처까지 쫓아왔습니다!”
“뭐, 뭐요?”
“차량을 준비해뒀으니 일단 일어나시죠!”
“우, 우리도 타고 온 차-”
“제 껀 대포찹니다!”
이거 뭐하는 아저씨야.
“갑시다!”
......그리고 피채원은 또 뭐고. 설마 미래시未來視가 아니었나?
잠시 멍한 정신으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턱, 피채원이 내 소맷자락을 꾹꾹 당겨 나를 불렀다.
“죄송하지만......”
“......”
“저는 귀가 조금 좋을 뿐이에요......”
나는 멍한 눈으로 녀석을 돌아보았다.
옥상 문이 열리는 걸 예지한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들었다?
헬리콥터가 떨어지는 걸 들은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들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녀석을 따라 펜션을 나갔다.
피채원은 늘 그렇듯 쓰게 미소짓고 있다.
*
우리는 감기자의 봉고차에 올라 한적한 도시의 홈플러스 4층 식당가로 향했다.
인파 속에 섞여 사람이 드문 가게를 골라 일식 돈까스 네 개를 시켜놓고 둘러앉았다.
음식이 나왔지만 피채원과 나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고, 홍선아만 무표정인지 웃는 건지 모를 얼굴로 냠냠거리며 돈까스를 찍어먹었다.
감기자가 피곤한 눈치로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피채원 양이 찾아왔다고요.”
“아, 네. 채원이가 절 찾아왔었지요.”
감기자는 목이 타는지 물 한 컵을 들이키고 말을 이어갔다.
“채원이가 절 밤중에 불러내더니 인근 야산으로 안내했습니다. 거기에서 쓰러져 있던 이윤아 씨를 만났지요.”
“......내부자를 만난 겁니까?”
감기자가 쓰게 미소지었다.
“만나기만 했겠습니까?”
“예?”
“인터뷰도 땄습니다.”
스윽,
누군가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아가씨.
언뜻 평범했으나 눈이 완벽하게 검정색이라는 점에서 일반인은 아니었다.
나는 무릎을 흔들어 홍선아의 허벅지를 툭 툭 쳤다.
수틀리면 바로 태워버리라는 신호였다. 홍선아도 나를 툭 쳤다.
“......”
"......"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반갑습, 니다.”
검은 눈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자나 표범이 으르렁대며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 같았다.
“그으, 저 범죄자가 아, 칵! 콜록! 케엑!”
인간처럼 말하는 게 무리가 오는지, 녀석은 심하게 기침하며 초록색 가래를 토해냈다.
......식탁이 녹아내렸다.
검은 눈은 시무룩하게 입가를 닦고서, 킁 훌쩍이며 감기자를 쳐다봤다.
보다 못한 감기자가 대신 설명에 나섰다.
“......이쪽은 시흥에서 대학 다니던 이윤아 씨입니다. 청송교도소 수감자 면회갔다가 같이 잡혀서 실험당하신 분입니다.”
“아, 수감자 출신이 아니라는 겁니까?”
감기자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썩 믿기 힘든 소리였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윤아 씨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계속했습니다. 채원이도 많은 도움을 줬고요. 세 명이서 그동안 첩보영화 몇 편 찍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거지요?”
감기자에게 물었지만, 검은 눈이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검은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지가 지보고 믿을만 하댄다.
...심지어 억울한 표정으로 울먹이고 있다.
“저, 저, 아빠가 깡패...! 면회 갔다가, 트럭에 죄수 싣는 거 봤. 콜록! 군인들 저 잡아갔...!”
검은 눈은 쩍쩍 갈라지다 못해 찢어진 목소리로 항변했다.
“억울해요...! 저, 저, 징짜...!”
이젠 울먹이며 코를 훌쩍이기까지 한다. 피채원이 쓰게 웃으며 등을 두들겨주자, 검은 눈의 실험체는 휴지로 노란색 눈물을 닦아냈다.
감기자가 측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말해도 돼.”
“아, 저씨...! 저 진짜...!”
“그래, 그래......”
검은 눈은 내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눈치였으나, 울분에 찼는지 말을 못하고 꺽꺽대며 엎드려 울었다.
근데 이 여자가 범죄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범죄자, 아니에요.”
미심쩍은 내 눈빛을 눈치챘는지, 피채원이 슬프게 미소띄며 검은 눈의 등을 토닥였다. 검은 눈은 다시금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의, 원님이라고 하셨-”
퍽.
머리통이 터졌다.
머리 잃은 이윤아의 몸뚱아리가 너저분하게 쓰러졌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눈가에 튀긴 핏방울을 닦아냈다. 모두가 경악하며 몸서리쳤다.
탕-!
그제서야 총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창문이 깨져 있었다.
저격이었다.
*
경찰이 와서 사건을 수습했다.
자잘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아니, 군인도 하시고, 경찰도 하시고, 나중에는 국회의원도 하시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나는 순경 차림의 장대령과 함께 경찰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지하국회를 포위하고 있던, 그 군인인 척하던 국정원이다.
“대테러 보안국 장과장입니다.”
장과장은 실눈을 배시시 기울이며 히죽였다. 나는 심드렁하게 창문 밖을 쳐다봤다.
“어째 길이 익숙합니다.”
“계엄 사령부로 모시는 중입니다.”
“차차관님이 부르신 겁니까? 마침 저도 찾아뵈려고 했는데.”
장과장은 썩 피곤해보였다. 나는 덤덤히 물었다.
“잠을 잘 못 주무신 모양입니다.”
“아아, 예. 의원님 친구분들이 살짝 곤란한 일을 벌이셔서......”
“친구라기에는 좀......”
일단 꼬리를 자르고 봤지만, 장과장은 말없이 미소지을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언덕길 끝에 계엄사령부가 눈에 들어왔다.
*
익숙한 율무차 향기가 풍겨온다.
“아, 오셨습니까?”
차재균은 내게 율무차 한 잔을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차차관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그는 무덤덤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충격이 크실 것으로 압니다.”
나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댔고, 그는 내 앞에 마주앉아 율무차를 홀짝였다.
나는 직구를 던졌다.
“초능력자 특수부대를 만들기 위해 범죄자들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셨고. 마지막 처리 과정에서 실험체들이 탈출해서 계엄령이 터진 상황 맞습니까?”
차재균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예.”
해석 : 내가 했다는 걸 너한테 명백히 밝혔으니까, 넌 이제 나랑 같은 팀이 되거나, 이 자리에서 영원히 입을 다물게 될 거야.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어버리자, 차재균이 피식 웃으며 율무차를 홀짝였다.
“그으, 담배피는 사람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걸 아십니까?”
갑자기 튀어나온 담배 이야기.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간접흡연 말씀하시는 겁니까?”
“흡연자는 필터라도 있지. 옆에 있는 사람은 꼼짝없이 독을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주름진 눈을 기울이며 쓰게 웃었다.
“그래서 저는 멀쩡한데, 마누라가 죽었습니다. 스물 아홉에.”
“......아.”
“꼴에 출세한 군인이라고 집에서 뻐끔뻐끔 피워대고 있었으니. 암에 안 걸리는 게 이상하지요. 그이는 사실 암으로 죽은 게 아니라 제가 죽인 겁니다.”
차재균의 목소리에 높낮이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부쩍 풀어진 태도로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례식 끝나고 들어온 집구석에 2살짜리 딸내미가 앵앵거리고 있었는데. 그 자그마한 포대기 안고서 저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차재균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제가, 그래서, 30년 동안 딸래미 하나만 바라보면서 산 거 아니겠습니까. 애미 죽인 홀애비 밑에서 곱고 참하게 자라줘서 참 고맙지요.”
그는 지갑에서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부쩍 친근한 태도로 책상을 건너 내게 사진을 보여줬다. 심지어 사진 속 인물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요, 요, 이게 제 딸 재희입니다. 옆에는 우리 변호사 송서방. 그 밑에 쪼그만 강아지 둘이 우리 손녀들.”
“......”
“유모차에 탄 녀석이 수민이고, 아빠 다리에 매달려 있는 녀석이 수정이입니다. 귀엽지요?”
차재균은 체면도 없이 실실 웃었다.
“사태 첫날에 시체를 치웠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사진을 지갑에 끼워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깊게 기대었다.
그는 다리를 꼬고, 깍지 낀 손을 무릎에 올렸다. 그리고 한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뜻 후련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나지막히 내게 말했다.
“의원님이 예전에 제게 여쭈셨던 말씀이 있지요.
제 목표가 무엇이냐.
제가 그때 뭐라 그랬습니까?”
그가 말했던 대답이 내 입에서 새어나왔다.
“......괴수, 말살.”
차재균이 말했다.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보다 군인다운 군인이 말했다.
“저는 군인이고, 제가 하는 모든 일이 결국 살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나름 제가 훌륭한 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웃는다.
“일일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
“가장 적은 사람과, 가장 많은 괴물이 죽을 겁니다.”
늙은 복수귀가 활짝 웃는다.
“저보다 더한 애국자가 없을 겁니다. 이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