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31화 (31/296)

EP 7 - 북풍北風 (2)

중국이 한반도에 괴수를 밀어 넣었다. 동북 국경의 모든 괴수를 한반도에 미친 듯이 쑤셔 박았다고 했다.

북한은 상의도 없이 핵폭탄을 터뜨렸다. 도와달라고 먼저 말하면 모양 빠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낙진 가지고 러시안룰렛하게 생겼다.

북풍北風이 분다.

“우선, 과격한 발언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나는 단상 옆으로 나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정말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이게 신문 1면이다.

“헌데.”

작은 침묵. 다음 발언에 기대를 집중시킨다.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가 필요 없는 세상입니까?”

* * *

지금 이 순간을 위해 3일 밤낮동안 한숨도 자지 않았다. 나는 충혈된 눈빛을 이글거리며,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문을 텄다.

“한국 공군은 MK84라는 폭탄을 사용합니다. 개당 3100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350만원입니다.”

어제 집구석에서 미친놈처럼 소리지르며 목을 긁었다. 마이크에는 잔뜩 갈라져버린 쇠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라 걱정에 잠 못 드는 젊은 정치가 컨셉이다.

“한국 공군의 전폭기 F-15K에는 폭탄 7개를 실을 수 있습니다.

2500만원입니다.

그리고 북한을 돕기 위해 전폭기 40대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억입니다.”

나는 차재균에게 받은 서류더미를 팔락팔락 흔들었다.

물론 명목상으로는 내가 몰래 빼돌린 작전 계획서다.

“작전 계획서입니다. 3차 공습까지 계획되어 있습니다.

총합 30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폭기들을 마련하기 위해 1, 2차 FX 사업을 벌였고, 각각 4조 6천억, 2조 9천억의 예산을 소모했습니다.”

나는 무표정으로 서류뭉치를 바닥에 힘껏 집어던졌다. 종이더미가 철썩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7조 8천억을 들여 준비한 전폭기로,

10억원어치 폭탄들을 3번씩 소모할 겁니다.

또한, 지금은 폭탄과 항공유를 원활히 보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좌중은 조용했고, 생방송을 알리는 빨간 카메라 불빛만 빛나고 있었다.

“‘괴수피해복구재단’에는 괴수에게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이 있습니다.

허나, 자금 문제 때문에 아직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0억이면 6000명의 고아를 1달동안 먹여살릴 수 있는 돈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씹어뱉는다.

서서히 말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지금 전쟁고아들이 먹을 식량을 빼앗은 이유는, 중국이 괴수를 한반도로 밀었기 때문이고, 북한이 정권 연명을 위해 핵폭탄으로 우리를 협박했기 때문입니다.”

차분하지만 분노가 느껴지도록. 나는 다크써클 짙은 눈매를 한껏 찡그리며 차분하게 중얼거렸다.

“이해합니다. 이게 국제사회고, 이게 정치지요. 모두가 자국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불사합니다. 중국도 그렇고 북한도 그랬습니다.”

전국민에게 묻는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침묵하지요?”

허공에 삿대질하며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분노조절장애처럼 순식간에 목이 터져라 악을 지른다.

빠르고 일그러진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따박따박 터져 나왔다.

말끝 마디마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단상을 내리찔렀다.

끔찍하게 갈라진 목에서 절규가 터져나왔다.

“우리땅에!

괴수를 보내고!

방사능을 뿌리는데!

우리나라 윗대가리들은!

뭐하고 있느냐는 거에요!

지금!”

쾅! 마지막에는 단상이 부서져라 주먹을 내리쳤다.

기자들 몇몇이 입을 막았다.

나는 정치권의 금도를 넘어섰다.

물론, 이미 합의된 탈선이었다.

나는 침통한 표정으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2백만 명, 2백만 명이 죽었습니다.”

울분에 찬 젊은 정치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지금 이 연설자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협상이 오갔었는가. 양판석이 지금쯤 TV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겠지.

“게이트에선 끊임없이 괴물들이 쏟아지고.

서울 시민들의 절반이...!

집 안에 갇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가 길드를 내세우며 괴대특위에 명분을 세웠지만, 실상 길드는 나 혼자서 세운 조직이었다. 국회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거지.

그게 내가 지금 그들을 비토할 수 있는 이유였다.

기브 앤 테이크.

“그런데 국군은...!”

게다가, 내 ‘비판’은 국군을 주 타깃으로 잡았다.

“국군은 왜 눈앞에 고통받는 국민들을 두고 북한 정권을 돕습니까...?”

그리고.

군은 국민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군 통수권이야 정치권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원옥분이 아니라 차재균이 실질적으로 쥐고 있는 상황.

내가 아무리 여기서 욕해도 흠집 하나 안 난다.

섀도우 복싱.

내가 지금 하는 짓거리의 본질이다. 재미있는 건 섀도우 복싱을 하는데 상금이 나온다.

여론이 뜨겁게 달구어질수록 내 인지도는 높아지겠지. 누누이 말하지만 정치인은 원래 관심을 먹고 사는 짐승이다.

그리고.

이제. 차재균은 북쪽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서 지원을 축소하겠다’

*

나는 가열차게 차재균을 욕했지만,

실상은 둘 다 이득을 보는 상황이다.

게다가.

차재균의 정치 참여까지 억제할 수 있었다.

군인으로서의 차재균은 내 공격에 흠집 하나 안 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차재균은 상당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가 짜낸 묘수였다.

힘의 균형. 그리고 공동의 이익.

나는 군부와 국회를 비토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한다.

국회는 내 업적을 뺏어 괴대특위에 추진력을 넣는다.

원옥분은 차재균을 몸빵으로 삼아 안전하게 권한대행에 오른다.

대신, 차재균은 ‘절대적’ 군권을 정치권에게 묵인 받는다. 겸사겸사 대북지원 축소까지 가능해진 상황.

각자가 자신의 살점을 떼어 다정하게 서로의 입에 넣어주는 형국이었다. 이게 한국식 정치다. 창조경제.

나는 연설을 마무리지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언은 오직 저 한승문 의원의 개인적 의견이며, 모든 정치적 책임 또한 제게 있음을 알립니다. 또, 저는 지금부터 군 작전을 유출한 혐의로 경찰에 자수하겠습니다.”

어차피 면책특권 때문에 못 잡아넣는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고, 애초에 다 짜고친 거라서 경찰도 안 건드린다는 거는 비밀이었다.

“......단, 마지막으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동남풍을 기원할 차례다.

“저는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헌신하시는 정부 각료분들의 도움을 받아, 기상청의 잔여 인원들을 규합하여 바람의 방향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여름 계절풍의 영향으로 대륙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즉, 동남풍이 붑니다.

방사능 낙진이란 기본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잿가루입니다. 낙진은 북쪽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부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이 공포에 눈이 멀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각 지자체의 안내에 협조와 배려를 아끼지 말아주셨으면 하는, 진심어린 부탁을 마지막으로 첨언하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추욱 늘어진 상태로 비틀거리며 경찰관들의 부축을 받아 경찰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시무룩하게 고개를 추욱 늘어뜨렸다.

서서히 움직이는 경찰차 안에서 생각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동남풍이 불지 안불지는 모른다. 사람이 할 일은 다 이루었다. 나머지는 하늘이 할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온전히 수행했다.

후련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후우......”

정치생활 참 스펙타클하게 한다.

1개월 차 국회의원 생활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

경찰서 감금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자마자 끝났다.

국회의원 10명(나와 원옥분을 제외한 전원)이 경찰서 앞으로 나와서, 한승문을 석방하라고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서 앞에서 늙은 정치가와 젊은 정치가가 악수하며 화해하고, 눈물의 포옹을 나누며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선언했다.

양판석의 작전이 마무리되었다.

1일차. 차재균이 반쪽짜리 사이다를 던지고.

2일차. 원옥분이 취임하자마자 국뽕을 터뜨린다.

3일차. 국회와 길드가 나서 후속타를 갈기고.

4일차. 내가 국뽕의 부작용을 완화시킨다.

5일차. 국민 대통합.

단 5일.

5일만에 나라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재부 차관이 전하길 시장에 사재기하려는 사람을 경찰이 잡아 조져도 반발이 없고, 여론이 잠잠해지니 헛짓거리하던 기업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양판석은 금세 국회에서 특수법안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아마 나중에 물타기 할 때 스르륵 통과시킬 물건들이었다.

차재균이 골치를 썩이던 대규모 피난민 시위도 잠정 해산되었고, 북한쪽 지원은 크게 축소되었다. 지들 짓거리 때문에 나빠진 여론이라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원옥분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세종시 정부청사를 근거지로 삼아 행정부 기반을 복구하기 시작했고, 개짓거리하던 재벌 몇을 잡아 조지며 기강을 잡았다.

무엇보다.

한승문 재단에 대한 인지도가 수직상승했고, 고아원 운영을 위한 모금이 자발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모금 시작 이틀만에 6억이 모였다.

“이게 나라지......”

나는 만족스럽게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베개를 껴안고 몸을 굴렸다. 포근하다.

잠도 못 자고 얼마나 치밀하게 작전을 준비했는가. 우리나라 최고권력들과 함께 커다란 선동질을 감행하니까 정신이 바스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즐거운 휴가를 지새웠다.

오랜만에 이모랑 쇼핑몰에서 새 양복과 의족을 맞췄고, 기자들 데리고 길드에 가서 헌터들이랑 사진 몇 장 박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모부가 차려준 회 두 접시를 뚝딱 해치우고서, 여도연과 함께 소파에 누워 주말 예능을 봤다.

둥그런 발목을 벅벅 긁었다.

오늘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

쿡. 누군가 내 볼을 찔렀다.

“야.”

“......”

“씹냐?”

쿡. 쿡. 나는 폭력에 굴종하지 않고 자는 척했다.

“그 나이 먹고 토끼무늬 수면바지를 입고 싶냐?”

“아아니, 지는 3번째 서랍에 토끼잠옷 숨겨놓- 아! 악! 끼얏!”

여도연이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나는 몽롱한 눈빛으로 침대에 앉아 헤롱헤롱거렸다. 여도연이 무덤덤하게 쏘아붙였다.

“야, 27살 어린이. 빨리 안 일어나?”

“지는 28살이면서...”

“닥쳐.”

“난 20대 중반이고, 닌 20대 후반이엌!”

찰싹! 여도연이 내 이마를 찰지게 때리자, 기운 없는 몸이 침대에 털썩 쓰러졌다.

“일어나.”

“차라리 죽여라......”

“진짜?”

나는 뭉툭한 발목을 바둥바둥 흔들었다.

“의족 채워줘.”

“아오......”

여도연은 인상을 팍 쓰면서 의족을 꼼꼼하게 채워줬다.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다듬었다.

“나와.”

“으응......”

나는 여도연의 손을 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도연은 비틀거리는 나를 부축하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흐릿한 시야가 돌아왔다.

“......”

“......”

현관에는 피채원이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도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야, 나 수면바진데.”

“어.”

“갈아입으라고 말은 해줘야하는 거 아니냐?”

“했잖아.”

“그게 갈아입으라고 한 거야?”

“어.”

“사람새끼냐?”

여도연은 악마처럼 씨익 미소지으며 나를 툭 내비두고 방으로 돌아갔고, 피채원은 묘한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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