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 핵폭탄급 대사건 (3)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의전서열’이라는 것에 따라 정해진다.
단, ‘행정부’ 인사에 한해서다.
국가의전서열에는 당연히 여야 대표나 대법관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얘네는 입법부랑 사법부라서 대통령이 ‘절대’ 못 된다.
3권분립 때문이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철저한 분리.
즉,
국무총리
기재부 장관
교육부
과기부
외교부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행안부
문체부
식품부
산자부
보건부
환경부
노동부
여가부
국토부
해수부
중기부
이들이 현재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3권 분립의 지엄한 법칙이 존재하는 마당에, 절대로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노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지금 국무위원들 중에 권한대행을 맡을 사람이 있냐가 문제인데......”
해석 : 쓸만한 놈 있냐?
“이 시국에 권한대행 맡겠다는 사람은 드물지 않겠습니까? 커다란 비판에 직면할 게 뻔한데요. 차라리 의원 내각제로 개헌을 하는 방향은 어떻겠습니까?”
해석 : 걍 의원들 대가리가 총리 해먹자!
“12명가지고 무슨 개헌입니까! 개헌은! 국민들 정서에 맞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야지요. 12명밖에 안 남은 이상 민주적 정당성도 그만큼 줄었습니다!”
해석 : 지금 대통령 민주당이제? 장관들도 다 민주당이제? 근데 지금 니가 의원들 중에 총리 뽑자는 건, 공화당 의원이 대빵 해먹겠다는 거 아이가?
“아아니, 지금 비례대표 후보자들도 순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즉시 의원으로 만들어서 의원재적수를 다시 늘리고-”
해석 : 허수아비 몇 놈 몸빵시켜서 들이밀면 되지 임마! 공화당 동지들. 지원사격 부탁한다. 우리가 7명이고 민주당이 5명이다.
일리있는 소리였다. 원래 비례대표 의원이 궐원되면, 그 밑 순위에 있던 사람이 즉시 자리를 채우니 말이다.
다만.
“현 시점에 의원들이 죽었다는 게 아니라, 생존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궐원으로 한 겁니다. 비례대표 후보자 승계시켰는데 의원이 멀쩡히 살아 돌아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해석 : 마! 기카믄 우리 12명이 다 못해먹잖아!
“장의원님 말씀 잘하셨습니다. 공직선거법 200조 2항에 보면, 애초에 비례대표 승계는 선관위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에요. 행정적 절차를 어지럽히지는 맙시다.”
해석 : 미쳤냐? 12등분해서 처먹으면 될 거를. 그냥 선관위 책임으로 돌려서 뭉개고 넘어가 빡통아.
“201조 2항, 219조 2항, 223조를 보면 쟁송으로 인해 효력이 애매한 경우는 보궐선거도 아예 안 합니다. 법리적 해석이 없는데 섣불리 처신하는 건, 국민들을 혼란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해석 : 쓰에끼가 말이야. 상도덕을 지켜야지! 으데 당권 잡을라고 밥상을 엎으려 들어.
국회의원은 원래 밥그릇에 굉장히 센시티브한 생물들이었다. 우리 법꾸라지들이 단체로 징징거리며 핑계를 창조했다.
TV에서나 또라이 코스프레하는 거지 진짜 또라이가 국회의원 해먹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면 정치판 고인물이 멘탈 나가서 또라이가 되거나.
참 똑똑한 양반들이다. 저러다 역풍 맞으면 엿되는데. 암튼 난 입 다물고 있었으니 상관 없다.
양판석이 사람좋게 웃으며 발언권을 잡았다.
“일단 국무위원들 중에 의원들부터 제해 봅시다. 차근차근 하다 보면 모두 의견이 맞는 구석이 있을 겁니다.”
해석 : 헤이 에브리바디 리슨
원래는 장관 중에 권한대행을 뽑아야 하는 게 정상이나. 우리나라의 기괴한 정치풍조가 여기서 난항을 불러왔다.
커다란 스크린에 자기 아이패드 화면을 띄워놓은 양판석이, 전자펜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그 이유가 뭐냐.
한국은
국회의원(입법)이 장관(행정)을
겸직할 수 있었다.
3권분립에 위배되는 사항이긴 하나,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를 짬뽕시킨 나라라서 그랬다.
근데 웃기는 게, ‘국회의원 겸 장관’은 3권분립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될 수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장관이 국회의원을 겸직했다.
원래 이 바닥이 사람 돌려쓰기가 심한 판이니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권한대행 할 사람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아주 큰 문제였다.
“자아, 일단 겸직자 제했습니다.”
양판석이 스크린에 몇 명의 명단을 남겼다.
“여기서 실종자랑 사망자도 제하겠습니다.”
원래 장관들 집무실은 세종시에 있었지만, 보통 실무實務는 차관이 하고 정무政務를 장관이 담당하기 때문에, 장관들은 대체로 서울에 따로 만든 집무실에 거주했다.
그래서 어지간한 양반들이 죄다 죽었다.
식품부 장관 - 낙선한 대선 집권 공신
국토부 장관 - 대통령이랑 친한 교수
“자, 두 명 남았습니다. 일단 식품부 장관이 법률상 권한대행 확정입니다.”
양판석은 스크린에 화면을 띄워두고 신나게 리듬을 타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노동요를 부르듯 흥얼거리며 대통령감을 추려냈다.
“헌데, 여기서 식품부 장관이 ‘모종의 압력’으로 자진 사퇴했고.”
해석 : 얘는 차재균이 이미 보내버렸고.
지익. 양판석이 패드에 전자펜으로 줄을 긋자, 스크린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졌다.
“국토부 장관 또한 갑작스럽게 지병을 호소하며 요양원에 장기 입원했습니다.”
해석 : 얘도 차재균이 보내버렸네?
결국 이름 두 개가 전부 지워졌다.
양판석이 껄껄 웃었다.
“이야, 이거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해석 : 차재균 이 새끼, 우리 겐세이 치는데?
*
“......그, 날.”
원옥분 의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 트라우마가 될만한 날이긴 했다.
임기 첫 날에 게이트가 열린 그 날.
“보좌관 등에 업혀서 국회를 나왔어요. 검찰 수사관 시절부터 28년을 함께한 친구였지요.”
그녀는 무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중얼거렸다. 썩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언행이었다.
“......해괴한 요술을 쓰면서 괴물들을 몰아내더니 병원 앞에서 과다출혈로 죽었습니다. 이미 기절했던 절 그 앞에 내려다 놓고요.”
그녀는 흐린 눈빛으로 손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달변은 아닌지라 말이 어눌했지만 그 참담한 분위기가 모두를 휘어잡았다.
원옥분 여사는 처연히 미소지었다.
물론 신경장애로 인해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사무실에 깡패 새끼들이 사시미 들고 처들어와서 눈알 그어버려도 바락바락 개기던 사람이에요 내가. 근데 정치라는 게 참 재밌습니다. 17년만에 사람을 꼰대로 만들어버렸어.”
그녀는 재미없는 농담이라는 듯 자조했다.
“근데. 내 공직인생 모두를 같이한 이이가 죽으니까.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이다. 내가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싶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
원옥분이 다시 중얼거렸다.
“이대로 가면 나라 망합니다.”
싸늘한 경고다.
“공직인생 28년만에 제대로 된 애국이라는 걸 해보고 싶은데.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서 국회가 대체 뭘 합니까?”
양판석이 부드럽게 그 의견을 받았다.
“우리 원의원님의 생각에 대해서는 마음깊이 동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여 그으, 안案이 두 개가 있는데 어찌 들어보시렵니까?”
“말씀해보시지요. 양의원님.”
“첫째. 지금부터 38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
공직선거법상, 대통령이 없어지면 60일 내로 보궐선거를 시행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원장인 대법관도 죽었고, 관련 고위 공무원들도 싹 다 죽은 상태다. 아니면 실종.
그리고.
“괴수 때문에 집에 갇힌 국민이 수백만입니다. 언제 서울을 수복할 줄 알고 투표를 합니까?”
어떤 의원의 반론이 정확했다. 양판석 또한 느물거리며 그 말을 받았다.
“그렇지요. 그렇게 뽑힌 대통령은 국민이 인정해주지도 않을 겁니다. 아마 대통령 보궐선거가 시행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만큼 행정력의 공백도 클 것이고.”
이제 두 번째 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아, 둘째. 국회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장관을, 금뱃지 떼버린 다음에 권한대행으로 삼는 겁니다.”
해석 : 상도덕이고 나발이고 걍 밀어붙여.
“......그게 됩니까?”
“안 될 건 없지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마당에.”
이걸 못 알아먹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5선 국회의원. 당선 확정 나자마자 장관 임명.
검사계의 전설. 사법연수원 기수 고인물.
현직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순서 7위.
원옥분.
양판석이 묘수를 던졌다.
“......”
원옥분이 금뱃지 떼고 대통령 권한대행 해먹으라는 거다. 모두가 자연스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녀가 한 말이 있다.
‘공직인생 28년만에 제대로 된 애국이라는 걸 해보고 싶은데.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서 국회가 대체 뭘 합니까?’
해석 : 대통령을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 대통령 하고 싶다는 소리다.
*
어쩌면 양판석이 처음부터 노린 게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거였다. 괜히 말 빙빙 돌리면서 원옥분의 의중을 떠본 거다.
나는 지금껏 대화의 흐름을 돌아보았다.
처음에 양판석이 대통령 감이 없다고 해서,
(해석 : 옥분이, 대통령 할래?)
원옥분이 28년지기 보좌관 이야기를 꺼냈다.
(해석 : 할래.)
그리고 그 말을 받은 양판석이 자연스럽게 원옥분을 추대했다.
(해석 : 해라.)
결론적으로 그녀는 잠시 숙고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대답은 뻔했다.
참, 내.
정치란 이토록 오묘한 것이었다. 지금껏 12명이 나눈 기나긴 회의가 결국 두 잠룡의 은밀한 대화에 불과했다.
다만, 나는 이후 이어진 회의에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녹음기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게다가 군복입은 국정원이 이 주변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도청기가 있다한들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또 양판석이 말하길,
이들은 모두 우리보다 일찍 구조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차재균에게 ‘보호’받고 있다가 막 풀려났다고 했다.
차재균이 내민 작전 동의서에 싸인한 다음 신변보호를 이유로 어디 호텔에 갇혀있었다지. 아마 탄핵을 염려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아마 예전에 양판석과 내가 먼저 나서서 차재균의 근심걱정(지상작전사령부)을 해소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호텔 신세를 졌을 게 뻔했다.
차재균은 탄핵 걱정 없이 안전하게 군부를 먹었다. 지상작전사령부, 계룡대, 합동참모부, 주한미군, 등.
심지어 거기에는 우리 지분도 컸다. 우리가 차재균 빼고 모두 내란사범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었는가.
“......”
“......”
양판석과 눈이 마주쳤다.
양판석 또한 분위기에 불을 질러놓고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이미 쿠데타가 성공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그것도 우리 손으로.
*
나는 도청기와 녹음기를 염려해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차재균이 쥐고 있는 권력이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물론, 금도라는 게 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12명이 짜고 차재균을 탄핵시켜버렸다간 그가 군대를 움직일 것이었다. 차재균이 우리 12명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민중이 들고 일어날 것이었다.
정치에는 이런 금지된 기술이 몇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건 좀 선을 넘은 것 같습니다.”
“흐음?”
양판석은 내게 녹음기 하나를 들이밀었다.
방금 전 지하국회의 회의록이다.
“이걸, 누구한테 갖다 주라고요?”
“차재균.”
양판석의 태연스런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네가 이걸 강북 계엄사령부에 가져다주게.”
“아니, 양의원님! 이 무슨!?”
너구리가 웃었다.
“못 막을 짐승이면 등 위에 타야지.”
이제야 감이 왔다.
양판석은 고의적으로 국회와 군부 사이를 이간질시킨 다음, 나를 통해 차재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방금 선이라고 했나?”
"......"
“원칙이 없는 게 내 원칙이야.”
그는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 손에 녹음기를 올려두었다.
“예전에 요트몰고 한강 나올 적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기를 바라네.”
그가 내 어깨를 토닥치며 지나갔다.
“자네는 내 과야.”
양판석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를 두고 어딘가로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는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손아귀에 놓인 녹음기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양판석의 계략은 간단했다.
국회랑 군대랑 싸움붙이고 지는 양다리 걸친다는 거다. 아마 원옥분이 고기방패가 되겠지.
겉으로는 적대하나, 물 밑에서 손을 잡는다.
기존 방침과 다르지 않다.
여러모로, 박쥐같은 전략이다.
허나,
나는 양판석의 마지막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 참.”
박쥐는 박쥐를 알아본다는 걸까.
아니면 내가 정치를 양판석에게 배워서 그런걸까.
아이러니한 일이다.
나는 양판석이 건넨 녹음기 ‘하나’를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 속엔 이제 녹음기 ‘두 개’가 있다.
내가 신경쓰던 녹음기는 국정원 물건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