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 핵폭탄급 대사건 (1)
깔다구. 까지메기.
L. japonicus.
우리는 그를 ‘농어’라고 부른다.
8월의 농어는 그 어느 때보다 맛있다. 농어는 11월 즈음부터 산란을 시작하기 때문에, 산란을 준비중인 여름에 가장 맛난 것이다.
“너 실종되자마자 이모 짤릴 뻔했어. 알아? 12일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면서 살았는데! 너 어린 시절 신상까지 싹 털려서 조리돌림 당하는 거 보면서......!”
나는 그 회백색으로 반들거리는 살점을 조심스레 집었다. 젓가락 끝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고, 그 촉촉한 살점을 초장에 담구면 첫사랑을 마주친 것처럼 심장이 들뜬다.
“정치인이 왜 쓸데없이 사고현장 들락거리다 민폐끼치냐고! 그냥 전국민이 미쳐 날뛰었어! 그 틈에 온갖 정치꾼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고!
가뜩이나 나라 망하게 생겼는데, 사람들 욕받이 무녀 노릇이라도 하고 싶었던 거니!?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주나라 무왕이 천하를 통일할 적, 배 위에 농어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길吉한 징조라고 하였다. 그 성심을 담아 농어를 입 안에 넣는다.
아. 입 안에 바다가 있다.
“......너 듣고 있는 거 맞니?”
“네, 이모. 듣고 있습니다.”
회 위에 레몬즙을 쥐어짜던 이모부가 배시시 웃었다.
“마! 맛있나!”
“개꿀 존맛탱.”
“마이 무라!”
이모가 한탄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꺼억!”
나는 정확한 발음으로 이모를 도발했다. 우리 인텔리한 대형로펌 변소정 변호사님은 금세 눈이 뒤집혀 역성을 내질렀다.
“야! 이! 간나새끼야! 니는......!”
“도연이 엄마. 참어... 승문이잖어...”
“나 화장실 앞에서 근무하다 온 사람이야!”
“지, 진짜?”
설마 대형 로펌에서 책상을 화장실로 빼겠는가. 그냥 눈칫밥을 먹었다는 말이겠지. 헌데 이모부는 진심으로 놀라며 이모를 걱정했다.
“......에휴, 말을 말아야지.”
이모는 이모부가 자기를 걱정하는 게 뭇내 좋은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새침하게 농어회를 한 점 집어먹었다.
나는 진중하게 덧붙였다.
“농어가 기억력 회복이랑 치매 예방에 좋대요. 특히 소화불량에도 좋고, 오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어서-”
“너 국회에서 낚시하고 다녔니?”
“양판석 의원님 요트 모시잖아요. 가끔 서해에서 낚싯바늘에 지렁이 꿰어드렸죠.”
“별 걸 다한다 진짜......”
나는 까칠하게 구는 이모에게 팩트를 날렸다.
“남편이 생선가게하는데 그것도 모르면 어떡합니까!”
“어머, 얘 봐라. 지금 변호사한테 말싸움걸어?”
“크흠! 국회의 권위가-”
“마! 쫌!”
여도연이 흉흉한 눈빛으로 으르렁댔다.
입에 농어회 세 개를 처넣은 상태다. 그녀는 보기드문 부산 사투리까지 구사했다.
“뭐 무때는 쫌! 으어!? 무라!”
여도연은 거의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녀는 깁스를 안 한 왼손으로, 어설프게 회를 집다가 식탁에 흘렸다.
나는 젓가락으로 그녀가 떨어뜨린 회를 여도연의 입 근처로 가져갔다가, 낼름 집어먹었다.
“기헼!”
팔꿈치로 갈비뼈를 맞았다.
“니들은 언제까지 그러고 놀 거니?”
“아, 애가 내꺼 뺏어무따아!”
“그래도 의원이야. 남들보는 앞에서 그러지 말어.”
엄마와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여도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남들 안보는 데에선 때려도 된다는 소린가. 이걸 굳이 거론하면 한 대 더 맞을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수북히 쌓여있던 회들이 전부 뱃속으로 사라지고, 이모부가 주방에서 수박 한 통을 테이블로 가져왔다.
“아이고 사장님, 서비스에요?”
“에, 에헤이. 상황극 걸지 마라. 내 못한다.”
“더운데 마침 잘 됐네. 여보 칼 줘봐. 내가 짤라 줄게요.”
장마가 끝났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무더위가 찾아왔고, 농어가 가장 맛있는 계절을 맞이했으며, 서울에서는 오늘도 초당 1. 4명의 사람이 죽고 있다.
오늘도 우리 여도식 씨는 꽃중년 티를 폴폴 내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고 있었고,
잘생기고 착한 남자 잡아서 내가 먹여살리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한 변소정 씨는 흐뭇하게 눈호강을 하고 있었다.
“이모부 근육이 좋아요 얼굴이 좋아요?”
“둘 다.”
뻔뻔하게 대답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나는 좋은 게 좋다는 마음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 없는동안 나라 꼬라지가 어땠나요?”
“......”
이모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일단 모든 원망이 너한테 쏟아졌지.”
“예?”
“너 같은 놈들이 정치인이라고 설친답시고, 뭐. 그래서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2명뿐인 국회가 하는 짓이 뭐가 있냐고......”
상당히 아이러니한 이야기였다. 특히 지금 가게 구석에 놓인 TV에서 앵커가 열렬하게 나를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대충 감이 잡힌다.
세상은 좆같이 굴러가는데 원망할 사람이 없다.
대통령도 죽었고, 딱히 명확한 책임자가 없다.
사실 진짜 실세는 차재균이다만, 그는 상당히 영리하게 자기 부하를 계엄사령관에 앉혀놓고 고기방패를 시전하는 중이었다.
뭐, 애초에 이 상황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기도 했다. 다만, 기분 거지같은데 욕도 못하면 기분이 더 나쁜 법이다.
헌데, 이 와중에 내가 미친짓을 저질렀다. 아마 전국민이 하나되어 한승문 개새끼를 외쳤겠지.
“그러면 지금 사람들이 날 좋아하는 이유가, 살짝 미안해서 그런 거기도 하겠네요. 욕하던 놈이 1200명을 구해왔으니......”
“언론이던 누구던 다 철판 깔고 칭찬하는 거야. 너무 신나서 나대다간 역풍맞는다. 너.”
이모는 까칠하게 쏘아붙이고서는 홱 고개를 돌렸다.
결국 그녀가 말한 모든 말들이 걱정이라는 점에서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 그래. 우리 회사 사장이 내일모래 점심밥먹자고 하던데. 조금 역겹긴 해도 너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일단 말은 전한다.”
“아, 저 공식일정 있는데.”
“음? 국회도 없는데 무슨 공식일정?”
*
“자아, 하나, 둘, 세엣, 까트!”
나는 가운데 휠체어에 앉아 테이프를 잘랐고, 폭죽이 터짐과 동시에 카메라 셔터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길드 출범기념 테이프 커팅식이다.
우리는
‘괴수피해복구재단 산하 이능력용역조합 개업’
이라는 현수막 아래에 있었다.
사람들은 아마
‘한승문재단 산하 길드’
라고 부르겠지.
마침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의원님, 압구정 진입 이전부터 재단을 설립하셨던데 한 말씀만 해주시죠.”
“게이트 사태와 초능력에 관해서, 국가는 진즉 신중한 대응방안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이 지금 결실을 맺었다고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의원님이 사조직을 만들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겸직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설립을 주도했을 뿐 운영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김은 외국인입니다만, 공익기관의 장을 맡아도 되는 겁니까?”
여기서는 화낼 타이밍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랐고, 군인으로서도 한국을 지켰고, 초능력자로서 한국인 1200명을 구했습니다.”
“아, 그-”
“질문 더 있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얼빵한 신입 기자에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게 이런 이슈 메이킹이었다.
툭하면 누구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마당에, 이런 사이다로 간신히 버티는 게 요즘 국민들이었다. 나는 살포시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식이 끝나고. 차량에 탈 무렵.
저 멀리 인파속에 섞여있는 홍선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방긋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나도 태연하게 눈웃음치며 손을 흔들었다. 대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나는 연극 동아리였다.
미소를 지우고 차에 탑승하자 양일호가 엑셀을 밟았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이호정이 보고를 시작했다.
“삼남도 광역 시장들이 단체 기자회견을 가졌다네요. 수도권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답니다.”
“욕 좀 얻어먹더니 생각이 바뀌었나보군.”
지자체장들은 지금까지 피난민들 수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확히는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자기 나와바리 표를 받아야 하는데, 난민들 받으면 나와바리 주민들이 싫어한다. 그래서 난민들을 외면한 것이다.
그들은 수도권 피난민의 수용에 대해, 살짝 떠넘기기 식으로 기싸움을 벌였다.
그게 지금까지 용인될 수 있었던 건 단연코 내 덕분이었다. 그들은 나를 가열차게 씹어대며 언론플레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한승문이라는 특급 고기방패가 사라지고, 강력한 역풍까지 몰아치는 지금에는.
“양판석 의원님한테 제대로 두들겨 맞겠군.”
기다렸다는 듯 이호정이 첩보를 전해왔다. 그녀를 정무비서관으로 올려준 이후, 이호정은 내 우체통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양의원님이 자주 쓰시던 칼 있잖아요?”
부산지검에 박아둔 자기 사위네 라인을 의미했다.
“어어, 나도 선거철에 덕 좀 봤는데.”
“캐비닛에서 연장 챙겨서 휘두르기 직전이래요.”
“아니, 부산지검 검사장이 어떻게 지자체장을 조져?”
한참 운전에 열중하던 양일호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 바닥은 연수원 짬밥이랑 대학동기로 묶여있어가지고. 어지간하면 다 조지더라구요.”
“아아, 맞다. 니 변호사였지.”
“,,,,,,!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7급 수행비서가 따져봐야 하나도 안 무섭다. 왼발 브레이크 밟는 새끼한테 운전 맡겨준 걸 감사하게 여겨 임마!”
“딱 한 번 그런 거 가지고! 진짜!”
이호정이 무덤덤하게 미소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의원님은 왼발 브레이크 못 밟으시겠네요?”
“사람새끼냐?”
의족 있잖아 이 새끼야 의족. 여기서 따져봐야 나만 한심해지는 꼴이니 나는 뒷목을 잡고 고개를 젖혔다.
이 악마같은 연놈들은 지들끼리 낄낄대며 운전을 계속했다.
“......니들 언젠가 다 짤라버린다. 진짜.”
“우웅. 잘못했어요오...”
“저두 잘못했어요오... 오빠아...”
이제 다들 살만한 모양인지 평소 분위기가 나온다. 의사당 구석탱이에 쪼그려 앉아 꼴사납게 컵라면 끓여먹던 멤버들이다.
“......”
여기서 강석호가 정색하면서 니들 아무리 그래도 형님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고. 나는 강석호를 진지충이라고 놀려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후우......”
강석호는 길드로 들어갔다.
우리는 살짝 허전하게 입을 다물었다.
“석호는 좀 괜찮대냐?”
“아, 넵. 호정이랑 같이 병문안 종종 다녔는데. 손가락 두 개 짤린 거 빼고는 멀쩡하대요.”
“폐에 화상입었다며.”
“천화란 소장님이 고쳐주시고 가셨어요.”
“아.”
그러고보니 천화란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경기도 성남 병원에서 장기입원을 거쳤고, 곧장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겸사겸사 양판석과 함께 부산 나들이를 다니며 얼굴팔이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허나 천화란의 연구소는 강북에 있었다. 감기자는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으나, 나는 아직 물 들어올 때 노 젓느라 올라갈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나 없는 동안 혼자 연구소 관리 다 하셨다며?”
“개업부터 보안까지 전부 챙기셨어요. 지금은 아예 개인 연구실로 운영되고 있고요. 마력을 다룰 줄 아는 화학자가 없으니......”
상당히 막중한 짐을 짊어지고 있다. 아마 지구상에 몇 안되는 초능력 연구소일 터인데.
“......전화는 몇 번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찾아봬야겠지?”
“시간은 이번주 주말부터 날 것 같아요. 아직 인터뷰랑 지역구 사무실 관련-”
띠리리리!
양판석 의원 전화에 지정해둔 벨소리가 울리자, 나는 순식간에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대었다. 일종의 반사신경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아아. 걸자마자 받은 걸 보니 보좌관 물이 아직 덜 빠진 모양이구만.
“아이고, 의원님! 어쩐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조만간 지하국회에서 만나지.
“예?”
-국회의원 12명이 모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