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 사냥꾼들 (7)
“아, 안녕하세요......”
덩치 큰 강석호의 뒤에는 작은 꼬맹이 하나가 숨어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안다.
“......안녕? 시호야. 아저씨 기억나니?”
이 아이는 강석호네 넷째 동생이었다. 그리고 석호는 동생 네 명을 키우는 소년가장이었다.
왜 얘 하나만 있을까.
* * *
“다, 다 죽었습니다. 형님.”
“......”
“제가 가니까, 애 하나만 숨어서......”
강석호는 소주 여섯 병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중얼거렸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이미 말라붙은 모양이었다.
“그, 때에. 제가 괴물을 죽였습니다. 남자화장실 변기통에서 며칠동안 숨어있다 나갔는데, 그때 춘식이 아저씨를......”
그리고 홍선아가 합류하고, 아파트 단지로 가서 농성을 벌인다. 그곳을 기점으로 주변에 고립된 사람들을 모으고, 비로소 조직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데이비드 김은 압도적인 무력과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는 때로 멍청할 정도로 사람을 구했고, 수많은 모험 끝에 모두를 구해낸 영웅이었다
내가 이걸 알고있는 이유는, 지금 강석호가 똑같은 이야기를 여덟 번째 반복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야, 야...”
“제가아, 그 사람 반만 강했어도, 우진이랑 소영이, 그리고 소정이를 잃지는 않았을 겁니다.”
“......애 듣는다. 임마.”
나는 불안한 기색으로 강시호를 보았지만, 이 꼬맹이는 멍한 얼굴로 자기 형 품에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강석호는 강시호를 껴안고 한참동안 중얼거렸다.
“이제 얘밖에 없습니다... 얘 뿐이에요...”
“......그래. 그래.”
“형님......”
나는 이 다음에 나올 말을 알고 있었다.
저 죽으면 얘 좀 지켜주십쇼.
강석호는 이 부탁을 하려고 모든 감정을 지운 상태였다.
왜 나를 구하러오지 않았냐. 몇 년을 같이 지냈는데 니들끼리만 도망쳤느냐. 그런 말은 일절 없었다.
장학금으로 대학 졸업하고. 상하차 알바 하면서 동생 4명을 먹여 살린 국회 공무원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처절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여덟 번째 대답이었다.
*
결국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강석호를 통해 조직의 내사를 캐낼 생각이었으나, 나는 12번이나 강시호를 지켜주겠다고 맹세하고서 강석호를 돌려보냈다.
흐린 서울에 밤이 찾아왔고, 하루종일 세상을 덮었던 먹구름은 빗줄기가 되어 세상에 떨어졌다.
커튼 사이로 빗소리가 들려온다. 행여 빛이 새어나갈까봐 불을 전부 꺼둔 상태다.
감기자와 여도연은 각자 방에서 잠든 상태였으나, 나는 이 새벽 2시 18분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뭐하는 새낀지 모르겠다.
착한놈인가. 나쁜놈인가.
아니. 착해야 하는가, 나빠야 하는가.
자신만만하게 승산있는 도박이라며 서울까지 와서는, 갑자기 열린 게이트에 순식간에 추락하고.
갑작스런 위협에 내 사람만 먼저 챙겨놓고는, 죽은 군인들 군번줄만 하루종일 만지고 있고.
온갖 잘난 척 냉정한 척 다해놓고는 늑대 앞에 죽으러 기어들어가고.
강석호한테는 말도 제대로 못 붙이고.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어중간한 병신새끼.
자괴감이 든다.
도저히 양판석처럼 못 살겠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 내가 사회의 부품으로서 가장 쓸모있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이름을 떨쳤던 대학시절도 아니다. 운전기사 주제에 양판석의 총애를 받던 비서 시절도 아니다. 그도 아니면 국회의원? 그 또한 형편없다.
국회의사당에 괴물이 떨어지고.
내 사람들을 챙겨 서울을 빠져나올 적.
그때의 내가 가장 빛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저 권력에 눈이 먼 어중간한 위정자에 불과하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최고의 지도자였다. 나도 내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인 줄 몰랐었다.
그때와 지금의 나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지금 나는 모든 것을 재어보고 있다.
권력, 가족, 양심, 도덕. 의리.
그때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잡스러운 것들 생각할 시간동안, 활로를 찾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했으며, 일행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다.
나는 그때 해야할 일을 했다.
다른 건 머리에 없었다.
어중간하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초심을 찾았다.
할 일을 한다.
흐린 서울에 빗줄기가 쏟아지던 새벽 2시 41분.
나는 8시간에 걸친 고심 끝에 활로를 찾아냈다.
*
“서울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습니다.”
나는 다크써클 흉흉한 눈을 빛내며 데이비드 김을 찾아갔다.
“사람들 모으세요.”
그럴 짬도 없는 주제에 나는 그에게 명령했고, 그는 피식 웃더니 캠프의 모든 간부들을 소집했다.
“우리는 지하철로 빠져나갑니다.”
나는 간부들 앞에 아파트 경비실에서 구해온 커다란 서울 지도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빨간 유성매직으로, 강남 압구정에서, 5시 방향으로 거침없이 쫙 그어버렸다.
“압구정 캠프의 1200명 모두. 신분당선 구간으로 경기도 성남까지 걸어갑니다. 질문 받겠습니다.”
뽁! 빨간 매직 뚜껑을 닫고 책상 위에 굴렸지만, 아무도 질문을 시작하지 않았다.
“질문 없습니까?”
그제서야 어제 내 말을 믿을 수 있냐고 지껄였던 아저씨가 분을 내기 시작했다.
“당신 미쳤습니까?”
“뭐요.”
“우리가 그 생각 안 해본 줄 아세요!?”
지하철을 이용한 탈출 방안은 모두가 생각해봄직한 수단이었다.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사태 터지자마자 온갖 사람이 지하철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괴물들도 내려갔고요! 후방에만 있다 와서 모르셨던 겁니까?”
“압니다.”
군 통수권자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태연하게 대꾸하자 그가 내 자격을 의심했다.
“......당신 국회의원 맞아요? 지금 우리 다 죽이려는 거야!?”
“국회의원 맞고요. 국회의원 하기 전에는 양판석 의원 보좌관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양판석 의원님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으로서, 신분당선 착공 관련 국정감사에 참여하신 분입니다. 저도 그때 옆에 있었고요.”
신분당선.
서울 강남과,
서울에서 4시 방향에 자리한 성남시
를 이어주는 지하철 노선이다.
“지하철에 괴수들이 들끓는다고 하셨지요?”
우리가 정상적으로 지하철을 통해 성남으로 빠져나가려면.
‘압구정-신사-잠원-교대....’ 방향으로 3호선을 거쳐 한참동안 빙 돌아가야 했다.
왜나하면 성남으로 향하는 신분당선은 강남역이 종점이다.
우리는 환승을 위해 한참동안 괴수들을 헤치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만 했다.
다만.
“지하철에 사람이 많이 몰려서 괴수들이 들끓는다면, 사람이 안 몰렸던 지하철로 가면 됩니다.”
- 찌익 !
나는 압구정 바로 옆의 신사역, 그리고 논현, 신논현, 강남을 일직선으로 거침없이 그어버렸다.
지도상으로, 여기는 지하철이 없었다.
당연하다. 아직 공사중인 곳이니까.
“여기는 2016년에 착공한 신분당선 확장 구간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빨간 펜을 들이밀며 확고하게 말을 이어갔다.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뛰고 있다.
“아직 공사중인 곳이지만 통로는 전부 뚫렸습니다. 직접 가봐서 압니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압구정역은 여기 아파트단지 바로 앞에 있습니다.
거기로 들어가서 신사역까지만 도달할 수 있다면, 굳이 3호선을 따라 빙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고작 한 정거장만 뚫으면 됩니다.”
서울에서 5시 방향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압구정-신사역-강남역-성남.
내가 제시한 최단코스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홍선아가 손을 들었다.
“저어, 신분당선이 강남역이 종점이라고 하셨나요?”
“예.”
“그으, 신사역에서 강남역까지는 프리패스라는 말씀이시죠? 공사중인 노선이라서.”
“예.”
“그러면 강남역에서 성남까진 어떻게 가실 거에요? 거기는 원래부터 있던 구간이라, 사람이 많이 몰렸을 테고......”
괴물들 천지가 아니겠느냐 라는 말이었다.
나는 묵묵히 강남과 성남 사이에 대각선으로 끼어있는 커다란 산맥에 원을 그렸다.
“청계산, 구룡산, 인릉산. 신분당선에 걸쳐있는 커다란 산들입니다.”
“......”
“거기에 지금 대한민국 제 7 기동군단이 주둔해있습니다.”
나는 충혈된 눈빛을 흉흉하게 빛내며 말 한 마디마다 빨간 매직을 책상에 쿡 쿡 찍어댔다.
“한국군 최대 규모이고,
국군 전차의 과반수를 보유한 데다,
모든 보병이 기계화 보병이고,
아무튼 무지하게 빠릅니다.
만약 전쟁터지면, 국군에서 유일하게 즉시 북한으로 치고 올라가는 군대가 바로 여깁니다.”
차재균 옆에 붙어있다보니 나도 밀리터리 전문가 흉내는 낼 줄 알게 되었다.
효과는 나쁘지 않았는지 사람들이 대충 수긍하는 기색이다.
“강남역에서 성남까지 긴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7 기동군단이 우리를 마중나올 겁니다.”
“군대와 연락이 닿은 겁니까!?”
이름 모를 중년이 내게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붉은 매직으로 홍선아를 가리켰다.
“홍선아 양이 맨 앞에서 길을 뚫을 겁니다.”
“으음? 저요? 제가요!?”
“지하철을 가득 매운 괴수들을 불살라버릴 겁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모든 지하철에 제연시설이 설치된 상태다. 제연시설이 아니더라도 연기는 어떻게든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자, 군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다. 전국민이 주목하는 압구정 구출작전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여기를 군용위성으로 주시하고 있겠습니까? 안 그러겠습니까?”
차재균이 우리를 구하려고 보는 건 아닐 것이다. 비행괴수들이 서울을 빠져나오나 확인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이곳을 감시중이겠지.
그건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
“헌데. 압구정에서 1200명이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놓치겠습니까?
그리고,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정도로 검은 연기가 일직선으로 올라온다면.
누구든 군대를 보내겠습니까? 안 보내겠습니까?”
“......”
“우리는 신사역을 뚫고 강남역까지만 가면 됩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를테고, 군대가 우리를 구하러 신분당선 강남역으로 마중을 나올 겁니다. 저는 우리의 국군을 믿습니다.”
“잠깐.”
데이비드 김이 미간을 꾹꾹 눌러피며 나를 제지했다.
“이거 홍선아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거 아닌가?”
나는 말없이 그녀에게 절뚝이며 걸어갔다. 데이비드 김이 말을 덧붙였다.
“맨 앞에서 괴수를 혼자 전부 상대하란 소리 아닌가? 초능력은 무제한이 아니야.”
나는 홍선아의 손을 붙잡았다.
“가, 갑자기 이러시면...!”
그리고 반대쪽 손으로 불을 피워올렸다.
“......하!”
“저는 접촉한 사람의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젠장!”
데이비드 김이 한 방 먹었다는 듯 낄낄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두 명이 길을 뚫을 거고. 나머지 초능력자들은 후방을 맡습니다. 매연이 빠져나가는 시간에 맞춰 1200명이 천천히 이동하시면 됩니다.”
나는 자신있게 미소지으며 세부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감기자는 흥미롭게 미소지으며 이 모든 장면을 캠코더로 담아내고 있었다.
*
그로부터 10일 후.
7월 29일.
나는 홍선아와 어깨동무를 한 채로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왔다. 얼굴을 쓸으니 검댕이가 묻어나온다.
코끝에 매연 향기가 배어버렸고, 잿가루가 들어간 눈가는 끔찍하게 따갑다.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이 나온다.
숨 쉴 때마다 재를 토해내는 것 같다. 기침이 멈추지를 않는다. 홍선아는 반쯤 내게 매달려 있었다.
터널에서 빠져나오자 우렁찬 빗소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우리의 몸을 씻어냈다.
헤에. 홍선아는 앞을 바라보며 작게 웃더니, 고개를 푸욱 떨구고서 바닥에 쓰러졌다. 나 또한 덩달아 넘어졌다.
군인들이 뭐라뭐라 소리치며 우리를 부축했다.
압구정 탈출작전.
총 인원 1231명
부상자 754명
중상자 95명
사망자 0명
7월의 장마철.
게이트 사태 발발 이후,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