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22화 (22/296)

EP 5 - 사냥꾼들 (6)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방 한가운데에 앉아 십수명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새빨개진 눈시울을 훔치며 서서히 말을 이어갔다.

“동생을, 다시 만난 바람에......”

예상과 같았다. 강석호는 여도연과 비슷한 종류의 각성자였다. 또한, 데이비드 김이 이끄는 1조의 조원이었다.

첫 만남에서 얻어낸 정보는 대강 이러했다. 기껏해야 30초가량의 대화였는지라 별다른 정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나는 압구정 캠프의 주요 간부들을 상대로 본론을 털어놓았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서울비상계엄사령부에서 온 한승문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내 인사에 홍선아가 해맑게 박수를 한 번 쳤으나, 나머지가 박수를 치지 않는 바람에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어떤 할머니 하나가 내게 질문했다.

“그럼... 나라에서 우릴 구하러 오겠다는 소린가?”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 *

군부의 구출작전에 대한 모든 설명이 끝났다. 군부가 압구정 캠프를 파악하고서 방치하고 있었다는 말만 빼고는.

“......고생하셨군.”

데이비드 김이 짧게 치하했다.

다른 사람들은 크게 충격 받은 표정이었고, 홍선아만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눈매를 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구출은 이제 그른 건가요?”

“아뇨. 하늘이 안전하다는 전제 하에 계획했던 기존 작전이 파기된 것이지, 국가는 여러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어떤 아저씨가 다분히 흥분한 기색으로 따져물었다. 다들 은연중에 동조하는 기색이다.

이 양반이 더 말하게 두면 안 된다. 대화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 밑천 들키면 나가리다.

나는 최대한 진중하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작전이 무엇이었고, 왜 작전이 실패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지금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여기에 온 이유는 두가지다. 홍선아. 언론.

헌데, 모든 일이 엉켰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단순한 불운의 연속이고, 이따금 거치는 실패일 수도 있다.

헌데, 몸도, 마음도, 초능력도, 고작 반쪽짜리 병신인 나는, 절대로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실수하면 죽는 사람이다.

늑대 앞의 나는 지나치게 무력했고, 국회의원 당선된 지 1달도 안된 운전기사 새끼는 너무나도 충동적인 애송이었다.

머릿속으로 되새긴다. 나는 좆밥이다.

그리고 대가리에 ‘겸손’과 ‘간절함’이라는 것을 박아 넣었다. 다시는 넘어지지 않으리라.

나는 이를 악물고 미소지었다.

“이제,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홍선아와 언론을 취하러 이곳에 찾아왔고, 강석호와 민생을 핑계로 대었으나.

“첫째는 제가 아끼는 동생을 찾기 위함이었고.”

이제는 핑계가 진실이 되어버렸다.

“둘째는, 제 존재 자체로 여러분께 안심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배짱을 부렸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에 단 둘 뿐인 국회의원입니다. 군부에서 초능력자 TF를 운영하고 있고, 괴수피해복구재단의 설립 책임자입니다.”

개뿔도 없는 좆밥은 허세라도 잘 부려야 살아남는다.

“그리고 전 이 캠프의 마지막 인원과 함께 탈출하기로 약속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원래 정치인들이 내뱉는 어지간한 말들이 이런 허세의 일종이었음으로.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금 더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

“구출은 없을 겁니다.”

“젠장.....”

캠프 간부들이 돌아간 이후, 나는 데이비드 김과 홍선아와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이들이 조직의 1, 2인자였다.

“차재균 차관은 상당히 냉정한 인물입니다. 잘라내기 정도야 눈 감고도 할 위인이지요.”

나는 일부러 차재균이라는 인물에 대해 경고했다.

이 사람들이 그 사람 말고 나랑 더 친하게 지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우리는 우리가 구출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 탈출하거나.”

홍선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간부들 사이 이야기지만, 조직이 슬슬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있어요. 애초부터 기워붙인 모임이라 춘식이 아저씨 없으면 콩가루-”

“선아야.”

“앗! 죄송합니다!”

홍선아는 아차 싶은지 금방 입을 다물었지만, 나는 금세 속사정을 파악했다.

이 콩가루 같은 조직이 아직도 퍽 훌륭하게 생존하고 있던 까닭은, 단 하나였다.

가장 처음부터 이 조직을 세운 압도적인 공헌자가 있었고,

그 공헌자가 뛰어난 통솔력으로 이들을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분과 실권을 갖춘 초인.

데이비드 김. 한국이름 김춘식.

그게 이 압구정 캠프가 아직까지 유지되는 이유였다.

그가 내게 허심탄회하게 질문했다.

“당신은 정확히 뭐하는 사람이지?”

“국회와 정부 사이를 오가는 초능력자 관련 업무의 총책임자입니다. 지금 초능력 관련해서 저보다 더 권한이 많은 사람은 차재균 차관님 빼고 없습니다.”

“이거 대단하신 양반이었군.”

그는 피식 웃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사실 탈출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번 나왔어. 다만,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안정적이었던 바람에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기 싫었던 거지.”

“......탈출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까?”

홍선아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살짝 심통맞은 구석으로 대답했다.

“각성자는 몰라도 민간인들은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목숨이 위험하니까요. 그래두 뭐, 춘식이 아저씨가 그 사람들 의견을 존중해줬죠.”

가마솥에 갇힌 거북이가 나갈 생각은 않고,

등껍질 속으로 대가리를 집어넣는다. 이건가.

의외로 데이비드 김은 냉정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현 시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게 무서워서 탈출을 안했다면 그건 이미 틀린 말입니다. 비행괴수가 나온 이상 아파트도 더 이상 안전하지만은-”

쾅 ㅡ !

“......않지요.”

데이비드 김이 순식간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혔다.

“이런 썅!”

저어 멀리 건물에 대형 박쥐 한 마리가 벌집에서 애벌레를 빼먹듯, 아파트 창문에서 사람을 빼먹고 있었다.

하늘에서 박쥐 여럿이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실로 소름끼치는 풍경이다. 사람 하나가 지상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당장 나와요!”

홍선아가 소리치자 김춘식이 뒤쪽으로 몸을 뺐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ㅡ!!

불의 파도.

일렁이는 화염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었다.

커다란 불의 일렁임이 수십 미터의 허공을 날아 박쥐 떼를 쓸어버렸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뜨거운 공기가 방 안을 데웠다.

......얘. 불기둥도 못 쓴다고 하지 않았었나.

“......헤헤.”

불꽃에 몸부림치며 추락하는 괴수들을 배경으로, 홍선아는 몽롱하게 풀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힘들다 그랬지 못한다곤 안했거든, 요오......”

나는 앞으로 쓰러지는 그녀를 받아들었다. 머리카락이 방금 드라이라도 한 것처럼 따스했다. 데이비드 김이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서둘러야겠군.”

*

“아야, 방금 뭐꼬?”

“아파트에 괴물이 습격했습니다.”

“옘병, 내는 빨리 가봐야 쓰것다.”

여도연을 간병하던 치료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의사 할매라고 불리는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녀는 여도연에 대해 설명했다.

“살거죽은 다 부치났는데 피를 쪼매 많이 흘려가 넋을 놔부렀어. 무어. 각승자야 워낙 튼튼하니께 잠 잘 자다 보믄 일으날기야.”

나는 현관문을 나서는 의사 할매를 배웅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안방에서는 여도연이 곤히 잠들어 있다.

“......허어.”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감기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무사히 오긴 왔습니다?”

“돌아갈 방법이 문제지요.”

데이비드 김에게 듣기로는 캠프 총원이 1200명 정도라고 했다. 그중에 각성자는 대충 마흔 명. 어느 쪽 인원이든 간에 놀라 자빠질만한 수치였다.

우리는 창문 너머 흐린 하늘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장마철이다. 게이트는 먹구름에 숨어 보이지도 않았다.

“후우......”

나는 한숨지으며 현실을 한탄했다.

차재균이 도와줄지도 의문이고 애초에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수천명과 함께 탈출한단 말인가.

나는 진중하고 엄숙하게 결론지었다.

개노답이다.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예?”

카메라 렌즈를 안경닦이로 문지르던 감기자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으음. 제가 의원님보다는 15년 정도 어른인데. 살짝만 조언드려도 될까요?”

그 15년은 종군기자로서의 15년이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이시길래 허락까지 맡으십니까?”

“사실 살아보고 남는 건 후회뿐이잖습니까.”

갑자기 철학적인 주제가 던져졌다.

“아아, 그때는 이렇게 할 걸. 저때는 요렇게 할 걸.... 근데 생각해보면 그 말이, 우리가 뭔 짓을 하든 더 좋은 방법이 나중에 생각난다는 뜻이잖아요?”

그는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듯 피식 미소지었다.

“또 그걸 더 생각해보면? 당장 방법이 없어보여도, 실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못 찾고 있다는 말도 되는 거죠.”

“......결국은 더 노력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아니, 뭐, 전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드렸는데, 또 보면 결론적으로.”

감기자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참...! 내!”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고 감기자는 체신머리없게 껄껄댔다.

“헤헤헤......”

“이제 좀 살만 하신가 봅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 위트있는 사람입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꾹 참고 다니는 거지, 언젠가 의원님이랑 술자리 만들면 배꼽잡고 웃겨죽일 자신도 있어요.”

“아, 예! 알겠습니다!”

위트는 무슨. 나는 징글맞다는 표정으로 그를 떨쳐냈다. 그리고 여도연이 잠든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너무 죽상으로 살지 마세요.”

그때, 감기자가 툭 내뱉었다.

“정치인들 특징이 맨날 웃고 다니는데 눈빛이 갔다는 겁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인생이 텅 비어요.”

이제야 말뜻이 이해가 갔다. 더 노력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어떨 땐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넘기는 것도 괜찮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그 증겁니다.”

“......”

“뭐! 제가 문과라서 이런 소리 자주 합니다. 필요하신 부분만 잘 골라서 들어주십쇼. 조금 피곤하신 것 같길래 몇 마디 붙였습니다.”

감기자는 아리송하게 미소지으며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참동안 문고리를 잡고서 그가 있던 소파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

침대 맡에 앉았다. 등에 붕대를 감은 여도연이 엎드린 채 누워있었다. 하얀 붕대가 벌써 시뻘겋게 물들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잔근육이 맨질맨질하게 튀어나와 있다. 이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야.”

“......”

“자냐?”

그녀는 대답이 없다.

나는 묵묵히 이불을 어깨춤으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녀의 곁을 지켰다.

선수 경력 끝내고 처음으로 기르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어느새 어깨까지 자라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땋으며 시간을 때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씨뻘놈아......”

“깼네.”

“내가 머리 건드리지 말라 그랬지......”

그녀는 나를 툭 건드렸다. 때렸다기엔 너무나도 미약한 힘이었다. 나는 그녀가 걷어낸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

“여기 압구정 캠프야. 감기자님도, 나도 무사하고.”

“......어으. 어어.”

“여기 치료사분이 처치해줬어. 세균 감염같은 경우는 각성자 정도면 알아서 면역이라더라. 이쪽에서도 나름 연구가 진행된 모양이야.”

“으으......”

아무래도 약기운이 덜 가신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임마...”

갑자기 그녀가 취객처럼 중얼거렸다.

“나 봐봐.”

나는 시키는대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도연이 맥없는 눈빛으로 내 눈을 직시했다. 그리고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구렁이같은 새끼야......”

“뭐요.”

“힘들면 말을 해 좀. 새끼, 진짜...”

“......취했어?”

그녀는 풀린 눈으로 몽롱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람 잡아먹는것도 아무나 하는 줄 아냐......”

“......”

“눈깔 좀 그렇게 뜨고 다니지 말라고...”

나는 말없이 문을 닫고 방을 나섰다.

똑. 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구멍으로 누구인지 확인하고서, 밝게 미소지으며 문을 열었다.

“석호야!”

“아, 저어,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래. 그래. 들어와!”

할 일이 많다.

얘가 나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 파악해야 했고, 조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떤지. 조직의 내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사해야 했다.

그를 위해 나는 우선 환하게 미소지었다.

다시 정치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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