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 사냥꾼들 (3)
최대 규모 피난민 구조 작전 중심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화염술사를 포섭함과 동시에 메스컴을 받는다.
하늘은 안전하고 전투헬기가 근방에 이미 파견된 상태였다. 작은 마을 하나를 혼자 개박살낼 수 있는 헬기가 있는데, 어떻게 위험할 수가 있겠는가.
썩 괜찮은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누가 게이트가 또 열리고, 심지어 바로 뒤에 생기고, 게다가 처음으로 비행괴수가 나올 줄 알았느냐는 말인가.
결과는 정해졌고, 변명은 필요없다. 도박을 말아먹었다.
어쩌겠는가. 한탄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실익을 계산하고, 차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부터 개평이라도 주워 처먹으려면 최선을 다해야 했다.
* * *
저어 멀리 종합운동장이랑 경기고등학교 보이는 거 보니까 청담동이다. 양판석 의원 손녀가 여기 다닌다.
가끔 차 태워주느라 지리는 대충 안다. 주민센터 방향 도로로 쭉 가면 압구정이다.
저기 하늘에 열린 게이트에서 슬슬 괴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헬기 몇 대가 다가와 헬파이어 미사일을 갈기긴 했지만, 제공권을 잡기에는 무리였다. 애초에 아파치는 공대지 전투헬기니까.
심지어 여긴 게이트 바로 아래다. 수족관에 송사리떼 풀어놓듯 박쥐날개 단 살덩어리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구출은 글렀다.
옥상에 있는 군인은 셋. 여도연과 나까지 합치면 총 다섯.
군 병원에서 챙긴 의족이 뭇내 헐겁다. 걸을 순 있어도 뛰지는 못하겠다.
나는 옥상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구출은 글렀습니다. 일단 안으로-”
- 콱 !
문을 열자마자 길고 마른 손이 튀어나와 나를 붙잡았다. 문제는 그 손이 보라색이라는 거다.
보통 사람 손보다 세 배 정도는 길고 가늘었다. 거미 다리를 보는 것 같다.
문 틈에서 두 턱 달린 살덩이가 흉측한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노오란 고름이 가득 찬 다섯 개의 눈알이 뭇내 혐오스럽다.
괴물의 입이 기괴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고, 내 머리를 집어삼키기 직전.
- 탕 !
한 군인이 괴물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직후, 내가 반응할 새도 없이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나를 뒤쪽으로 던져버린 여도연이 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눈에서 살기가 흐른다.
그녀는 겁도 없이 괴물의 아가리에 주먹을 쳐넣어 이빨을 으깨버렸다.
그리고 그 손으로 아래턱을 당겨 입을 연 다음, 반대쪽 손으로 어퍼컷을 날려 입천장을 뚫어버렸다.
여도연이 거칠게 손을 빼내어 바닥에 탁 털자, 뇌가 파괴당한 괴물이 맥없이 털썩 쓰러졌다.
그녀는 험악한 눈빛으로 우리를 살피더니, 작게 턱짓하고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선 헬기들이 도주하며 괴물들에게 미사일을 날렸고, 끔찍한 괴수의 울음소리가 흐린 서울의 하늘에 울려퍼졌다.
아까 괴수를 총으로 쏜 군인이 나를 일으켜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반군들이 흘린 Ak47만 썼는데 K2는 처음이네요.”
익숙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군인을 돌아보았다.
“아, 으음. 17년차 종군기자면 사격은 기본입니다."
낮설지만 익숙한 얼굴.
맨 얼굴의 감기자가 능글맞게 씨익 미소지었다.
“저, 사실 패션안경이라.”
*
나, 여도연, 군인 둘, 그리고 군인인 척하는 종군기자 하나는 평범한 사무실에 들어와 있었다.
전기는 끊겼는지 불은 켜지지 않고, 닫혀버린 커튼 사이로 옅은 회색의 하늘빛만이 사방을 매웠다.
사람 없는 사무실에 싸늘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소, 령님이.”
군인 하나가 의자에 주저앉아 눈시울을 훔쳤다.
“우리 살리려고......!”
다른 군인이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전우를 위로했다. 아무래도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살짝 시간이 남는다.
나는 황당한 기색으로 감기자를 추궁했다.
“......여긴 대체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능글맞은 대답을 돌려줬다.
“이 정도 경력이면 다아-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 멍청한 질문이었다. 나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왜 오신 겁니까?”
감기자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내게 달라붙어 속삭였다.
“군이 압구정 캠프를 일부러 구조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알았지.
"혹시 아십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정말입니까?”
“뭐어, 서울 외곽부터 수복하는 게 전략 골자 아니었습니까? 군은 잘 모르지만 차관님께서 다 생각이-”
드르륵.
순간 등골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나만 들은 건 아닌 모양이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자세를 낮추었다.
이름모를 군인이 눈썰미도 좋게 무언가를 가리켰다.
사무실 저편, 의자 하나가 살짝 움직였다.
여도연이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고, 나머지 일행은 총부리를 겨누었다.
책상 아래서 검은 형체가 스르륵 올라왔다.
사람 모양이다.
“흐....!”
여자 목소리다.
“혹시 사, 사람이세요....!?”
말을 했다. 인간이다.
나는 그제서야 스마트폰 불빛으로 그녀의 형체를 확인했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우리 쪽으로 손을 들고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군인 둘이 총부리를 내렸다.
“아! 괜찮으십니까!”
“아...! 사, 사람! 사람이다!”
여도연이 여자를 부축해주러 나아가려 하길래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피투성이의 여자는 일그러진 웃음으로 터덜터덜 우리에게 걸어왔다.
나는 일단 감기자와 여도연이 저 여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손톱으로 그들의 손등에 X자를 긁었다.
우리는 방금 옥상 문 앞에서 기다리던 괴수를 잡았다.
헌데, 이 여자는 건물 안에 괴수가 돌아다는데 고작 책상 밑에 숨어있었단 말인가.
설령 급한 상황이라 숨어들었다곤 해도, 고작 책상 밑에 숨어있는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확률은 드물었다.
초능력자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아마 이 여자는 괴수로부터 ‘숨을 필요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숨었겠는가.
*
“아, 아래층에 사람들이 있어요”
“다행이군요.”
여자는 군인들 사이에서 떨리는 손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우리는 사방을 경계하며 비상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갔다.
물론 내가 경계하는 건 내부의 적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일부러 그 여자의 바로 뒤쪽으로 접근해 군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압구정 캠프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차, 차라리 복귀는-”
“여기 청담동입니다. 당장 몸을 지키려면 바로 옆에 있는 캠프에 합류하는 게 더 나아요.”
나는 말하는 와중에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는 피투성이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라고는 하나 몇 주 굶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문득 시선을 뒤쪽으로 흘렸다. 순간 눈이 마주친 바람에 살짝 표정이 무너졌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휙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여, 여기에 다 모여있어요.”
한 군인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다른 병사가 총부리를 다시금 올렸다.
그리고.
“너희들도 여기에 들어갈 거고요.”
군인들 사이에 있던 여자가 양손을 군인들 옆구리에 쑤셔 박았다.
당황한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그저 총이 연사되며 바닥으로 쓰러질 뿐.
그녀는 군인들 몸속에서 무언가를 빼냈다. 뭔가 질질 끌려나옴과 동시에 한 군인은 쓰러지고, 다른 군인은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비상계단 문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끔찍한 냄새가 확 풍겨오는 것을 본다면, 여기에 뭐가 있을지는 간단했다.
식량 창고.
감기자는 여자의 손이 군인들을 파고들었을 때 총부리를 겨누었고, 군인들 몸속에서 손이 빠지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허나.
손으로 방탄복을 뜷어버리는데 총알이 박히겠는가.
사실 잘 모른다.
총알이 안 박혔을 수도 있고, 감기자가 총을 못맞춘 것일 수도 있고, 그녀가 총을 피한 것일 수도 있다.
하나 확실한 건,
“아쉽네요."
아까 그녀의 바로 뒤쪽으로 다가간 내가 이 새끼한테 붙잡혔다는 거였다.
"한 번에 가면 편하잖아요..."
녀석은 내 목을 쥐고서 고기방패로 삼았다.
여도연이 다급한 얼굴로 전전긍긍했고, 감기자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나는 그녀에게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진중하게 손을 뻗었다.
“감기자님, 저는 괜찮으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쏘지 말라고요.”
“네?”
나는 내 목을 뜯어버릴 것처럼 잡고있는 여자의 손을 턱 붙잡았다.
“내가...!”
그리고 앞으로 매쳐버렸다.
“격투기 선수랑 몇 년을 살았는데!”
나는 이 미친 살인마와 신체능력이 완벽하게 동일한 상황이다.
녀석은 내 목을 쥐어뜯으려 했으나 조금 따가울 정도로 목을 할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엎어진 살인마의 시각을 빼앗았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자연스레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이후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경련하며 뒤쪽으로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여자가 우리를 데려가려고 했던 현관문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물 쓰레기통이었다.
*
다행히 건물 아래쪽에는 괴물도 사람도 없었다. ‘이었던 것’들만 가득했을 뿐이지.
우리는 그나마 깨끗한 숙직실 하나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오는 길에 화장실에 구토를 두 번인가 한 참이었다.
여도연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수도가 끊기는 바람에 손을 씻을 수도 없다. 아직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떨리는 손으로 훔쳤다. 얼굴에 피가 조금 묻었으리라.
감기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런 걸까요.”
이유야 다양했다.
생존자 그룹 내에서 몹쓸 짓을 당하기 직전에 각성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다 미쳐버린 걸수도 있다.
아니면 식량이 부족해서 ‘제비뽑기’를 하다 본인이 희생자로 뽑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죽인 걸수도 있다.
“......그게, 지금 생각해봐야 도움될만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나는 떨리는 손에 묻은 피와 살점을 숙직실 이불에 닦아내며 정신을 다잡았다.
“적이 아군 둘을 죽였고. 우리는 적 하나를 죽였습니다. 자세한 건 생각하지 맙시다.”
"그, 그래도......"
감기자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세상이, 어쩌다가......”
17년 경력의 종군기자가 끔찍한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 이랬다’라는 핑계도 통하지 않겠지.
슬슬 인정할 때가 되었다.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창문 틈새로 보이는 흐린 하늘에, 시퍼런 게이트가 흉흉하게 빛나고 있다.
압구정, 서울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진정 종말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