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 큰 그림에는 큰 붓이 필요하다 (2)
“......고아원이요?”
“네, 전쟁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쟁고아들이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차재균은 여기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일단 괴수부터 몰아내고 처리해도 되는 일 같습니다만.”
“초능력자 찾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지요.”
“어린애는 초능력자 못 됩니까?”
믿을만한 사람이 초능력자인지 확인할 바에는,
초능력자가 우리를 믿게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차재균은 무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에게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받아들인 고아들이 모두 초능력자는 아니겠지요. 또, 모두 어린애는 아닐 겁니다.”
피채원의 경우도 있고 말이다.
“갈 곳 잃은 미성년자들을 우리가 품어주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재능’있는 친구들에게 일자리도 좀 만들어주고 말입니다.”
고아들 중 마석을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은, 국정원이나 ‘사회복지’에 투입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도 썩 나쁜 일은 아니다. 차재균이 내게 확인 차 물었다.
“이게 초능력자들을 관리할 조직입니까?”
“재단에서 운영할 교육복지 사업이기도 합니다.”
나는 자신있게 미소지었다.
사실, 국회의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입법도 최소 10명이 필요하고, 어지간한 의결은 수백명이 필요하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사실 마찬가지다.
지금 국정감사를 하겠는가? 아니면 예산안을 짜겠는가? 아직은 사태 초기라서 그렇지, 다들 곧 국회의원이 허수아비라는 걸 알 거다.
허수아비가 되기 싫으면 몸집을 불려야 한다. 사람들이 날 ‘의원’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초능력자들의 용역업체를 만들어서, 기반시설 피해를 복구하고, 괴수를 잡으며, 내가 부릴 수 있는 사조직을 만드는 동시에, 사회적 이미지를 관리하고, 내 영향력을 키운다.
초능력 연구단지를 만들어서, 초능력 관련 연구를 독점하고, 군사기밀로 관리될 0급 정보들을 엿보며, 내 영향력을 키운다.
고아원을 만들어서 이 한승문이의 사회적 존재감을 키우고, 국정원-보안사령부와 커넥션을 만들며, 다양한 초능력자들과 교류하고, 내 영향력을 키운다.
게다가 일자리 창출까지.
이게 정치지.
나는 흡족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습니까 차관님?”
“......좋습니다. 다 좋아요. 그런데.”
돈은 어디서 구하려고 하십니까?
핵심적인 질문과 함께 차재균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차재균을 가리켰다.
“차관님이요.”
난 여기에 내 돈 들일 생각이 없었다.
사실 돈이 없는 게 더 큰 이유다.
*
“사회복지 사업은 군에게 의뢰금을 받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고,
연구개발 사업 또한 군에게 투자금을 받고 연구 성과를 공유할 겁니다.”
“......”
“교육복지 사업은 국군의 기부금을 받고서, 고아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줄 예정이고요.”
차재균은 계엄사령관임과 동시에 국군 통수권자다.
‘통수권’이라 함은 ‘군령권’과 ‘군정권’이 합쳐진 상위 권한이다.
여기서
군령권은 작전 지휘권이고,
군정권은 군사 ‘행정’권이다.
인사, 군수, 편제, 등.
군대의 돈줄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즉,
“차관님이 도와주시면 전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차재균이 책상에 손가락을 튕겼다.
톡.
“억지로 만든 재단 내부에 공익사업 세 개를 굴리면서 초능력자를 관리하고.”
톡.
“법적 절차는 계엄사령관 권한으로 뭉개면서.”
톡.
“말이 공익사업이지, 사실상 방위산업체를 굴리겠다는 뜻 아닙니까?”
나는 자랑스레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재균이 덧붙였다.
“심지어 사실상 군산복합체고요.”
군산복합체 軍産複合體
군부와 방산업체의 상호의존체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의원님.”
“예.”
“미쳤습니까?”
방산비리라고 부른다.
차재균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저는 방산비리를 척결한 공로로 차관이 된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걸 혐오하기도 하고요.”
“네.”
“아무리 국난이라고 한들, 썩 꺼림칙한 일입니다.”
차재균은 나를 압박하며 무섭게 째려봤다.
갑자기 차관이 깜찍하게 군다. 여기서 시무룩해질 이유가 없다. 일종의 테스트 같기도 하다.
내 경험상, 이런 높은 사람들은 종종 큰일을 맡길만한 사람인가 간을 보고는 했다. 내가 여기서 도망친다면 아마 이 아이디어를 자기가 써먹겠지.
무엇보다, 꺼림칙하다고 했지 안한다고는 안했다.
나는 의뭉스레 미소지었다.
“차관님.”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깍지 낀 두 손 위에 턱을 올려놨다.
“그래서 안하실 겁니까?”
허. 나를 무섭게 째려보던 차재균이 갑자기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무슨 개그라도 본 것처럼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댔다.
차재균이 작게 눈물까지 훔치며 내게 말했다.
“한승문 의원님.”
“예.”
“이거 사실 다 제 권한으로 진행되는 거 아닙니까?”
해석: 나는 이 좋은 방법을 ‘못’한게 아니라, ‘안’하고 있었다. 머리가 나빠서.
사실상의 수락이었다.
나는 흡족스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차관님.”
“제가 군에 있다 보니까 머리가 굳은 건지, 아니면 한의원님이 특출나신 건지 모르겠군요.”
“저, 정치외교학과랑 경제학과 복수전공했습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녁에 서류 가져오십시오.”
*
“역시 사람이 이래서 공부를 해야 돼!”
“닥쳐 기득권.”
휠체어를 끌던 여도연이 내 정수리에 콩 하고 꿀밤을 먹였다. 나는 실실대며 말을 이어갔다.
“구호, 연구, 교육, 복지. 이걸 이끌어가는 한승문 재단, 그리고 한승문 의원! 이게 얼마나 좋은 그림이야?”
“쯧. 또 까부네. 근데 국회의원은 다른 직업 못하지 않냐?”
“그걸 겸직금지 원칙이라고 하는데, 공익 목적의 명예직은 예외야.”
물론 그게 법적으로 인정될지는 ‘다른’ 문제였고,
또, 그게 진짜로 명예직일지는 ‘틀린’ 문제였다.
“뭐어, 문제가 있든 없든 국회의장한테 신고하고서, 윤리심사자문위원회한테 통과받으면 되는 일이긴 한데......”
나는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거꾸로 된 세상에서 여도연의 얼굴이 보였고, 나는 히죽 미소지었다.
“지금 세상에 그게 되겠냐?”
- 찰싹 !
“아앜!”
“징그럽다. 얼굴 치워라.”
여도연이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찍었다.
"때리고 나서 말하면 뭔 소용이냐...?"
고통을 가시려 얼굴을 매만지고 있으니, 여도연이 내게 물었다.
“근데 아까 무슨 이야기 한 거야?”
“이해 못했어?”
“R 뭐시기. 영어나올 때부터 한 귀로 흘렸는데.”
“사실 누나가 몰라도 상관없긴 해”
“그럼 나는 왜 데려온 거냐?”
내가 대단한 초능력자를 데리고 있다고 과시하기 위해서.
“병풍.”
여도연이 뒤통수를 찰지게 때렸지만, 나는 혓바닥을 멈추지 않았다.
“누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자면, 군대 돈으로 재단 하나를 만들어서, 재단에서 용역, 연구소, 고아원을 굴리면서, 초능력자 전체를 컨트롤하겠다는 거지. 오케이?”
여도연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누나 대학은 어떻게 졸업했어?”
“나 대학 중퇴하고 선수생활한 거 알면서 한 소리야?”
“어.”
여도연이 자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승문아.”
“응?”
“지금 이 휠체어 누가 끌고 있는지 잘 생각해라.”
“죄송합니다.”
- 덜컹 !
휠체어가 돌부리에 부딪혀 흔들렸다. 혀 깨물었다. 나는 금방 발끈해서 뒤통수를 흔들며 여도연의 배를 콩콩 찍었다.
“운전 똑바로 못해!?”
휠체어를 끄는 사람이 거기 탄 사람 목을 조르는 건, 참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
“아저씨 목 빨개!”
“아줌마한테 맞아서 그래.”
“언니한테 이를 거야!”
“얼마면 되겠니?”
나는 만원 한 장을 돌돌 말아서 감지윤의 주머니에 넣었다. 지켜보던 천화란이 웃음지으며 대꾸했다.
“감사해요, 의원님. 본업으로 다시 돌아왔네요.”
“아뇨, 수락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천화란 씨는 리서치 앤 디벨롭먼트 업체를 맡아주시면 돼요.”
옆에 있던 감기자가 갸웃거렸다.
“리서치, 뭐요?”
“연구개발업체요. 천화란 씨에게 초능력자 연구를 맡기고 싶어서요.”
홀몸도 아닌데 현장에 보낼 수는 없고. 금수저고.
천화란이 다치면 나도 후폭풍을 받을 수도 있다.
감기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거렸다.
“아하! R&D요? 발음이 너무 한국적이라 못알아들었습니다.”
“으흠. 한국대라서 그런가...?”
“오! 후배님이셨네?”
쓰읍. 그러고보니 기자도 고학력 직업이었다. 메이저 신문사 국제부면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가볍게 머리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천화란 씨는 리서치 앤-”
“그냥 연구개발이라고 하시죠.”
“원래 영어는 자주 써야 늡니다.”
*
- 끼익 !
여도연이 낡은 창고의 문을 힘껏 열었다. 안에는 우리가 지난번에 봤던 탄약통이 널려있었다.
“누나 저거 테이블에 올려놔.”
여도연이 ‘손이없어 발이없어?’라는 눈빛으로 째려보길래, 나는 얄밉게 왼쪽 다리를 파닥파닥 흔들었다.
터억. 그녀가 탄약통을 책상에 올려놨고, 뚜껑을 열자 은은하게 빛나는 보석 조각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함부로 흡수했다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누나가 먼저 조금씩 흡수하고, 괜찮다 싶으면 그 다음에 지윤이한테 조금씩 넣자.”
“내가 실험용 생쥐냐?”
“약해서 괴수한테 당하는 것보다야 낫잖아. 천천히 몸 상태 봐가면서 부어.”
살짝 비현실적인 풍경이 이어졌다. 은은하게 빛나는 보석 파편들이 두 사람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도연이 옷자락으로 보석 한 줌을 쥐고서는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 치덕치덕 뭉갰다.
“.....뭐하냐.”
“이거 왜 안 들어가냐?”
이건 또 이상하네.
“왜 나는 마석 흡수 못하지?”
“혼자선 초능력 못 쓰는 장애인이라 그런 거 아니야?”
“조용히 좀 하세요 이 고졸아.”
여도연은 험상궂게 히죽이며 내 몸에 묻은 보석 가루를 더듬거리며 흡수했다.
‘왜 나는 마석을 못 흡수하나’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니, 내 몸에 묻은 마석을 흡수하던 여도연이 허벅지를 엄지손가락으로 콱 눌렀다.
“아! 뭐해!”
“허벅지 튼실하네.”
“맨날 한쪽 다리로 콩콩거리니까 튼실하지!”
“남자는 허벅지야.”
“모솔이 섹드립치는 것만큼 웃긴 게 없어요.”
하! 여도연이 살짝 발끈했다.
“못이랑 안은 좀 구분하면 안 되냐?”
“누나 고등학교때 여친있는 애한테 연애편지 쓰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지금까지 모른척한 거지 사실 다 알-”
“닥쳐! 이 개새끼야!”
어도연이 새빨개진 얼굴로 눈이 뒤집혀 내 멱살을 붙잡았고, 옆에서 마석을 흡수하던 감지윤이 해맑게 외쳤다.
“닥쳐!”
“헙...!”
여도연이 입을 막았다. 감지윤이 해맑게 웃는다.
“개새끼!”
“지, 지윤아. 그런 말 쓰면 못써.”
“개새끼!”
“그거 나쁜 말이야. 나쁜 말 쓰면 나쁜 어린-”
“닥쳐!”
여도연은 몰랐겠지만, 순간 그녀의 손이 움찔거린 것을 나는 보았다.
“요즘 누가 애 교육을 그렇게 시키냐?”
쯧. 나는 혀를 차며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지윤아. 아저씨가 만 원 줄테니까. 앞으로 ‘닥쳐’랑 ‘개새끼’란 말은 절대로 쓰지 말자.”
“응!”
“그래, 약속.”
“약소옥!”
나는 감지윤 양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계약했고, 여도연 씨(28, 모솔)에게 공증까지 받았다.
여도연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애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
우리는 감지윤의 손을 잡고 생활관으로 돌아갔고, 지윤이가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아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닥쳐 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