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 새로운 시대의 필승전략 (4)
“여도연 씨.”
차재균 차관이 담담하게 말했다.
“입대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저 여잔데요.”
* * *
차차관이 으스러진 휠체어 손잡이를 살짝 매만졌다. 상당히 인상 깊어 보인다.
“허어......”
“초능력자가 보석을 흡수하면 강해진다는 게, 아무래도 맞는 것 같습니다만.”
차재균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모든 전선에서 나온 마석을 여도연 씨에게 흡수시킨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여도연이 흠칫했지만, 나는 휠체어에 앉아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캡틴 코리아가 되거나 과부하 때문에 뻥 터지겠지요. 어쩌면 괴물로 변할지도 모르고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는 참 슬플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생체실험은 딴 놈 가지고 해라.
“한승문 의원님.”
“예.”
“잠시 산책 좀 하지요.”
*
다른 일행들은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60대 초반의 국군실세는 산책이라는 말에 무색하게, 나를 으슥한 통제구역의 밀실로 데려갔다.
그는 의자를 하나 끌고와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우선, 귀중한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괴수 대응에 관한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신다고 하셨지요? 전시戰時국회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국회에는 특별 위원회라는 게 있다.
특별한 상황에 임시로 설치되는 위원회다.
내가 설치하자고 말한 그거다.
그리고 대체로 '아주' 강력하다.
윤리특위가 국회의원의 자격과 징계를 관장했고, 예결특위는 예산안을 심사한다. 국가의 목줄을 틀어잡는 힘이다.
괴수 대응 특별 위원회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무슨 업무를 담당하게 될지 모르는 위원회였지만, 모든 특별위원회가 그렇듯 아마 아주 위력적이고 공격적인 권한을 가지게 될 위원회였다.
차재균이 내게 큰그림을 보여줬다.
“국가 전선 단위에서 수거된 마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초능력자들을 모아 전술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얼빵한 초능력자 하나 데려다가 우리 편으로 만들고서. 마석 무제한으로 쏟아 부읍시다. 죽나 안죽나 보게요.”
“생체실험을 하자는 겁니까?”
“안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톡. 톡. 톡.
차재균 차관은 다리를 꼬고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눈을 감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저는 서울 지역의 계엄 사령관입니다. ‘서울’의 모든 사법권과 행정권을 쥐고 있지요.”
“네.”
“국정원 본부는 서울 서초구에 있습니다.”
상당히 위력적인 말이다.
“그러니...... 초능력자를 징집해서 마석을 투자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국방정보본부도 있고, 사용 가능한 정보기관은 충분합니다.”
이 양반이 왜 날 데려왔을까.
“제가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시킬 게 있어서 데려왔겠지. 아니나 다를까 차재균 차관이 금세 말을 꺼냈다.
“국회에 신설될 괴수대응 특별위원회에서는, 이번 사태에 관한 ‘비현실적’ 현상들에 대한 관련 법안을 주로 다루시게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해석: 괴수대응 특별위원회는 존나 쎌 것 같은데.
“그렇겠지요.”
“초능력자 관리 법안에 대해서 국가의 안위를 감안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해석: 초능력자 단도리 할건데 협조 좀 해라.
대충 떠오르는 게 몇 가지 있다.
초능력자 이민 금지,
의무적인 국군 입대,
범죄 시 즉결 처형,
마석 강제 국유화.
등, 등.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 양반 심기 거스르면 큰일날 것 같아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입법에 있어 국난이라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제구역의 밀실에서 악수가 오갔다.
*
“어쩌죠.”
상황을 들은 양판석이 침음성을 내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쑥덕거렸다.
“초능력자 군대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저라도 그랬겠습니다.”
초능력자의 유용성이 이미 확인되었다.
차재균이 초능력자 군대를 데리고 독재를 할 생각인지 구국救國을 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생기면 진짜 존나 쎌 거라는 건 분명했다.
게다가, 계엄령 해제는 대통령이랑 국회가 하는 건데 지금 둘 다 없다.
국군 통수권, 계엄사령관, 초능력자 군대.
차재균이 대한민국 황제가 되게 생겼다 지금.
“빨리 국회의원을 모아야겠습니다.”
제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령을 해제시킬 수 있다.
차재균의 왼팔을 자를 수 있다는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국회의원들이 모이면 탄핵소추를 올릴 수 있다. 탄핵되려면 헌법재판소가 심판해야 하지만, 장관대행(군 통수권)은 즉각적으로 정지된다.
차재균의 오른팔을 자를 수 있다는 거다.
차재균이 영웅일지 악당일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정치라는게 적과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 학문이었다.
내가 사는 게 우선이니까.
*
“어디 갔다왔어?”
“높으신 분들이랑 실뜨기하고 옴.”
여도연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때리려고 했지만,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렸다.
문득, 한강변에서 여도연이 나를 꽉 껴안고서 질질 짜던 게 생각났다. 나를 힘껏 업고서 달리기도 했고, 그냥 나랑 계속 붙어있었다.
근데 난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
“딱히 강해진 느낌은 없었는데...?”
“뭐?”
“한 번 쳐봐.”
손을 내밀자 그녀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툭하고 손등을 건드렸다. 이러면 측정이 안 된다.
“아, 좀 더 세게!”
“쯧......”
그녀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내 손바닥에 약한 펀치를 날렸다. 그닥 강력하지는 않다.
안되겠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나는 내 뒤에서 휠체어를 잡고 있는 그녀의 허리춤을 콩콩 두들겼다. 뒤통수로.
“뭐야? 왜 이렇게 말랑해?”
“......”
“운동 때려친 지 얼마나 됐다고 뱃살 생긴 거야?”
- 빠악 !
“아아아앜!”
“앗...!”
내 뒤통수를 전력으로 후려친 여도연이 화들짝 놀라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괘, 괜찮냐?”
“흐으! 아, 아으으! 아으...!”
“다친 거 아니야!?”
“아, 으으, 두개골, 두개골!”
여도연이 기겁해서 의사를 부르러 일어나길래, 나는 잽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고 방긋 웃었다.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은데?”
“......”
“휠체어 손잡이 으스러뜨린 사람이 때린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맨날 맞는 그 느낌이었고, 뱃살도 말랑했고......”
내 말에 여도연이 방긋 미소지었다.
“그럼, 세상에서 마음 놓고 때릴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이라는 거네?”
*
“형, 괜찮아요?”
“아으, 어, 어어어.”
양일호가 침대에 널부러진 나를 툭툭 건드렸다.
“누님이 복날 개 패듯이 때리시던데.”
“자주 맞아서 이제 익숙해.”
여도연은 나를 곤죽으로 만들고서 쒸익쒸익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나도 초능력자라는 게 명확해졌다. 여도연한테 그렇게 맞고도 멀쩡한 게 일단 비정상이다.
이호정이 어디서 다시 구두를 구했는지 또각또각 내게 다가왔다. 누더기같았던 중단발도 깔끔하게 빗어내린 상태였다.
“니는 이런 환경에서도 꾸미기가 가능하냐?”
심지어 찢어졌던 스타킹도 새것으로 바뀌었다.
“높으신 분들이랑 실뜨기하고 오셨다고 했죠?”
“어어. 차관님이 잘하시더라.”
“실뜨기 하시는 동안 일호랑 같이 정보 모아놨는데. 보고 들으시겠어요?”
“우리 보좌관들이 일을 참 잘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앉았다. 이호정이 새침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신경쓰실 건 대충 세 가지 정도에요.
첫째, 지금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최소 백만.
둘째, UN에서 이걸 ‘게이트 사태’라고 명명하고 비상 지침을 내렸어요. 근데 각 나라별로 알아서 하라는 수준이니까 신경쓰실 필요는 없고......”
중요한 건 이거죠. 이호정이 스마트폰을 건네줬다. 인터넷 기사와 커뮤니티 사이트의 캡쳐본이다.
“마지막, 초능력자들에 대한 썰이 퍼지고 있어요.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에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만......”
“시체, 괴수, 초능력, 그냥. 별별 사진이 막 올라와요. 인터넷이든 현실이든 통제가 불가능한 건 똑같네요.”
양일호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이제 어떻게 하실 거에요?”
“......뭐어, 필승전략을 써야지.”
늘 하던대로.
*
“피난작전이 대강 수립됐어. 지금 서울 북부에 방어선이 형성된 모양이네. 고양-의정부-남양주. 대충 어딘지는 알지?”
모른다.
“네. 서울 북부에서 막을 수 있다면 다행이네요.”
“그래. 지금 피난민들은 경기 북부 동두천이랑 포천에 모아놨어. 순차적으로 강원도 방향으로 넓게 수용할 모양이야.”
양판석이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서 보여줬다.
“강북은 순조로워. 문제는 강남이야.”
“일 났습니까?”
“일이라면 일이지. 괴수가 안양에서 발견됐어.”
제기랄.
“......경기도까지 퍼졌다는 거네요.”
“7군단이 워낙 급하게 이동하느라 포위망이 뜷린 모양이네. 임시 기동타격대를 만들어 후방을 정리하겠다고는 하는데, 괴수랑 민간인이랑 섞여있는 판이라......”
문득. 이럴 때 초능력자들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탱크나 미사일이 안 쓰이더라도, 건물은 놔두고 괴물만 죽일 수 있는 사람들.
“......초능력자 부대가 좀 절실한데요.”
“으음?”
“아니, 여도연이 괴물 잡고. 감지윤이 사람 둥둥 띄워서 대피시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시키지는 않을 거지만.”
양판석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군인의 일은 군인에게 맡긴다.
우리는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권력구도가 뒤집힐 것 같은데요. 제 추측이 맞습니까?”
“이미 피라미드 꼭대기가 무너졌지. 아래에서 기어 올라가는 일만 남았어.”
비참하지만.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괴물과의 싸움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권력자가 모두 죽었다. 그 자리를 두고 혈전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과 사람끼리의 싸움이.
“세력을 키우려면 국회의원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
차재균이 총부리 겨누면 끝나는 게임이다.
“의원님은 지하국회로 가서 의원들을 모아주십시오. 괴수대응 특별위원회가 설립돼야 사람들이 국회를 호구로 안 봅니다.”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인가.”
“저는 강북에 남겠습니다.”
양판석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린가?”
“차재균 차관이 이미 초능력자 부대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보고 국정원까지 운운하지 않았습니까.”
양판석은 국회의원을 모은다.
“차재균 차관이 과연 우리 편일지, 아니면 독재자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능력자가 아주 중요해진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나는 초능력자를 모은다.
“혼란스런 미래를 준비하려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재균과 양판석이 같은 팀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른다.
안개 속의 정국이다.
상관없다.
“양판석 의원님의 심복으로서,
차재균 차관 옆에 남겠습니다.”
이긴 쪽에 붙는다.
EP 3
새로운 시대의 필승전략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