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 붉은 한강의 초능력자 (3)
"......통신 끊겼네."
서울에 있는 케이블 통신건물이 작살이 났다는 뜻이었다.
"누나, 아까 캡쳐한 지도 있지?"
"어."
"그거 잠깐 줘봐."
모닥불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띄워둔 사진들을 줌인 줌아웃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군 부대와 접촉하는 걸 목표로 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파주시를 지나 전방 군부대로 합류하거나.
둘째. 으슥한 곳에 짱박혀서 군부대를 기다리거나.
이호정이 하이힐을 손에 들고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막아놓은 창문 너머를 슬쩍 살폈다.
"......오빠, 아까 어머님이 서울 인근에 열린 구멍에서 괴물들이 떨어졌다고 했죠."
"어어."
그녀는 양일호에게 손짓했다.
"일호. 반대쪽 창문에 하늘에 그, 괴물 떨어지는 구멍 열려있나 봐봐."
일호가 헐레벌떡 일어나 창문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호정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기 추측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후우...... 솔직히 여기서 더 움직이고 싶진 않은데요. 하늘 구멍이 여의도, 그러니까 서울 중심부에만 퍼져있듯 열려있어요. 뭐 점같은게 툭툭 떨어지는 거 보니까 괴물들도 아직 쏟아지고 있고요."
"서울 중심에서 최대한 멀어지자 이거지?"
이호정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미 해가 저물었다. 밖은 어둡다. 우리는 공포와 피로에 떨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한 쪽으로 넘어져버렸다. 의족이 없으니 순식간에 사람이 진짜 병신이 되었다.
살짝 열이 뻗쳐서 한숨을 내쉬니, 양일호가 쪼르르 달려와 나를 잡아 일으켜주었다.
"형......"
"고맙다. 창문 좀 보자."
이호정이 내 손을 잡고 창가 자리를 내주었다.
어두운 밤. 도시의 야경에 검은 물감을 칠한듯 어둡다.
어제까지만 해도 네온과 형광으로 빛나던 서울은 우리의 현실처럼 어둡고, 소란스런 웅성임은 낮의 죽음을 추모하듯 고요하다.
달도 구름에 가려진 가운데, 하늘에 열린 구멍들에서 시퍼런 불빛이 퍼져나온다. 아직도 점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툭 툭 지상에 떨어진다.
"......한강을 건너와서 다행이야."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빌딩 하나가 무너진다. 강남은 지금도 괴물들 소굴이다.
결단을 내렸다.
"이동합시다."
"네...!?"
"괴물들은 지금도 강남에서 깽판을 치고 있어요. 낮이든 밤이든 상관 없다는 겁니다."
다들 꺼리는 기색이다.
"방금 한강 건너에서 빌딩이 무너지는 걸 봤습니다. 지금도 괴물들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가 운좋게 서울 중심에서 멀어진 것 뿐이지, 괴물들은 지금도 발발거리면서 사람을 잡아 죽이고 있습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알아 듣겠지. 다행히도 다들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상황에 쉬자고 징징대면 버리고 간다. 진짜.
"일단 파주시 중심으로 들어가면 인구 밀집 지형이니까. 한강 강변을 따라서 쭉 올라갑시다. 도촌이랑 구산 IC 지나면 파주 출판단지고. 아마 국군이 지금 거기에 있을 겁니다."
다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감기자네 딸이 조금 이상하다.
"......얘야. 괜찮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괴물한테 물렸을 때 빼면 쭈욱 멍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다. 감기자가 슬픈 얼굴로 아이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건가. 나는 확인차 아이에게 물었다.
"꼬마야, 지금 뭐하고 있어?"
"......봐요."
"응?"
"파란 먼지가 둥둥 떠다녀......"
감기자와 그 마누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이에게 정신질환이 생긴 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독 허공을 쳐다보고만 있다.
"......뭐가 보이니?"
"파란 거요."
아이가 허공에 헛손질하기 시작했다.
"막, 움직여..."
"......만져지니?"
"네... 예뻐요."
이거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이름이 뭐였죠."
"지윤입니다. 감지윤."
"그래, 지윤아."
나는 감지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파란 먼지 만지면 무슨 기분이야?"
"그냥. 그냥 그래요."
"얼마나 많아?"
"세상에 꽉 찼어요..."
"뿌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 파란 먼지들이 세상을 가득 채웠어?"
"네......"
얘도 뭔가 있다. 미친 것 같지는 않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아까부터 구석에서 울던 여학생이다.
"아, 아저씨...!"
"어어, 학생. 무슨 일이야?"
학생은 불안한 눈빛으로 바들바들 떨며 내게 더듬거렸다.
"우, 와, 와요. 그거. 그, 온다. 와."
"으응?"
"커다란 거...!"
학생이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붙잡고 땡깡피우듯 울었다.
뭐가 온다는 지는 뻔한 이야기였다.
"쉬이...!"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짐을 챙기던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순식간에 공장이 조용해졌다.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철퍽.
물에 젖은 대걸레가 질질 끌려오는 소리다.
-철퍽.
존나 큰 대걸레다. 썩은 물비린내가 갑자기 확 풍겨왔다.
다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순식간에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어디서 나는 소리냐. 씨팔.
우리는 공장의 한쪽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직접 핸드폰 전원을 끄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들 핸드폰을 끄라고 말없이 지시했다.
뭔가. 공장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 나가야 한다.
나는 조용히 손가락질로 반대편 문을 가리켰다. 제발 눈치없이 뛰는 새끼가 없어야 할 텐데.
사람들이 살금살금 공장 후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나를 들어 업었다.
-스르륵.
공장 문에 무언가 닿았다.
-끼이익.
문이, 열린다.
모닥불 불빛에 검은 형체가 드러난다.
액체. 눈알. 혓바닥. 이빨. 검은색.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 번도 본적 없는 형태다.
"비명지르지 말고 뛰어."
좆같이 생긴 건 분명했다. 괴물이 잠시 꿀렁이더니 바닥에 촤악 퍼지며 우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입을 막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도연과 나는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빠져나와 문을 걸어잠구었다.
"이거 열려있다. 빨리 타요!"
가장 먼저 달려나간 감기자가 누가 버린 승용차 운전석에 올랐다.
-쾅!
두 번이면 충분했다.
-쾅!
걸어잠군 문이 부서지는 것에는.
괴물이 순식간에 뛰쳐나오더니 스르륵 움직이며 이쪽을 쫓아왔다.
아니 근데 시발 승용차에 다 못 타잖아. 9명인데.
어두워서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씨발놈에 승용차가 사람 많이 쑤셔박은 상태로 먼저 출발해버린 것은 분명했다.
아마 감기자가 운전석을 잡은 상태였으니, 지 가족들 다 탄 거 확인하고 엑셀을 밟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누나에게 업힌 상태로 중얼거렸다.
"내가 씨발 요트에 사람 태우지 말쟀지."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해?"
"아가리 좀 다물어!"
여도연이 순식간에 하얀 벤츠 하나를 점프로 뛰어넘었다. 심지어 나를 업고서.
괴물은 벤츠를 집어삼키며 꿈틀꿈틀 이쪽으로 밀려왔다. 슬라임인가 저게 씨팔.
그녀가 허둥지둥 내게 물었다.
"야, 야, 이제 어떡해!"
"일단 튀어."
"아아악! 씨발!"
"괜히 소리지르지 말고."
"확 버리고 간다!"
"그러시든가요."
이제서야 여기 남아있는 인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양판석, 이름모를 학생, 그리고 우리.
양판석은 입을 막고 어디 트럭 아래로 숨어들었고, 학생은 지금 노래방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괴물의 타겟은 우리.
여도연이 거의 파쿠르를 하며 도망치고 있었지만,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누나, 나 버리고 튀어. 파주로."
"닥쳐! 이 개새끼야!"
"다리병신 데리고 같이 뒤질래?"
"씨발! 쫌!"
누나는 거칠게 소리치며 다시한번 괴물의 공격을 회피했다.
"아, 아까!"
양판석이 소리지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었는데 지금 처음으로 그의 역성을 들었다. 그가 트럭 밑에서 힘껏 소리질렀다.
"괴물이 모닥불을 피했어!"
양판석 의원이 취향이 옛스러운 사람인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는 어디서 홍콩영화 본 건 있어가지고 지포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였다. 물론 그 라이터는 나에게 있다.
그리고, 지포 라이터는 불을 킨 채로,
던질 수 있다.
"제발 뒤져라."
간절하게 기도하며 불 붙은 라이터를 괴물에게 툭 던졌다. 괴물이 꿈틀대며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 --!!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명소리와 함께 괴물이 불타기 시작했다. 여도연은 한참동안 더 도망친 다음 자리에서 멈췄고, 양판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트럭 밑에서 기어나왔다.
그가 한껏 미소지으며 터덜터덜 걸어와 내 옆에 멈춰섰다.
"잘 타는구만."
"감사합니다, 의원님."
"죽을 뻔했으면 좀 놀라는 척이라도 하게."
그는 여도연에게 업혀있는 내 어깨를 툭 쳤다. 여도연은 멍한 얼굴로 꿈틀대며 타들어가는 괴물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리가 밝아졌다.
"그나저나, 처자도 참 대단하구만."
"......아, 감사, 합니다."
"한승문이한테는 이야기 많이 들었네. 사이좋은 남매라고 하던-"
나는 대화를 끊어버렸다.
"일단 숨죠. 너무 밝은데."
탁 트인 공간에 커다란 모닥불을 피워놓은 꼴이다. 양판석이 나를 불렀다. 손에 파란 보석을 들고 있었다.
"승문이. 방금 괴물 시체에서 이게-"
"저, 저기! 저기이!"
노래방 건물에서 막 빠져나온 학생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파란색 털 달린 5M짜리 고릴라 새끼가, 날카로운 이빨을 우물거리며 시뻘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차마 도망치라고 말할 시간도 없었다.
괴물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달려들었
- 쾅!
르노 삼성 자동차 프리미엄 디젤 중형 세단 SM6가 압도적인 속도로 달려와서 교통사고를 내버렸다.
괴물은 순식간에 뒤로 나자빠졌고, 근육덩어리를 받아버려서 그런지 차가 망가지지는 않은 것 같다.
대신 범퍼를 조져버린 자동차가 털털 후진해서 우리 앞에 멈춰섰다. 깨진 창문 사이로 피를 주륵주륵 흘리는 감기자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빨리 타요!"
문짝도 박살나서 차에 타기는 참 쉬웠다. 시트에 유리조각이 널려있는 게 단점이긴 했지만, 뒤지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양판석이 순식간에 조수석을 차지했고, 여도연은 나를 안으로 밀어넣더니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차량이 출발하려는 찰나,
"버리지 말아주세요! 제발!"
이름모를 학생이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아까 건물 속으로 숨어들어간 바람에 거리가 좀 멀다.
파란 원숭이가 정신을 차렸다. 시뻘건 눈으로 쒸익쒸익대며 쿵쾅쿵쾅 우리에게 달려온다.
"감기자님 살짝 감속."
그는 군말없이 속도를 살짝 줄였다.
나는 문짝이 날아간 차 문으로 몸통을 내밀어, 학생에게 손을 뻗었다.
"빨리 와!"
"아저씨!!"
자동차를 쫓아오는 학생, 그리고 그를 쫓아오는 괴물. 간절하게 뻗은 두 손.
오늘 영화를 몇 번이나 찍는지 모르겠다.
그때.
학생이 넘어졌다.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쟤 넘어졌어요."
감기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여도연도 지금만큼은 침묵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