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5화 (5/296)

EP 2 - 붉은 한강의 초능력자 (2)

"승문이, 아니. 한 의원. 이리 와보게."

감기자 마누라 천화란이 안고있던 애기 볼을 쿡쿡 찌르던 나는, 양판석의 부름에 일어나 쪼르르 달려갔다.

양판석이 '승문이' 부르면 자동으로 달려가는 게 루틴이 되어버렸다. 슬프다.

"일산대교가 무너졌어."

좆됐다.

내가 좆됐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리가 무너져서가 아니다.

양판석은 이미 무너져 한강을 틀어막은 일산대교를 보며 한탄했다.

"이걸 어쩌나... 요트로 못 가겠는데."

"강변, 강변에 대요."

"으음?"

"북쪽, 강변! 오른쪽 강변으로 빨리!"

괴물은 사람을 조진다. 다리를 무너뜨리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근데 괴물이 왜 아래로 가는가. 사람은 다리 위에 훨씬 많은데. 고로, 괴물이 다리 아래로 내려와서 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을 박살냈다는 건 조금 무리가 있었다.

어쩌면 지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거대로 좆된 거고. 문제는 그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양화대교를 비롯한 수많은 다리들의 아래를 지났다. 그 다리들은 멀쩡했다. 문제는 일산대교가 가장 바깥쪽에 있는 다리라는 거다.

바다에서 뭔가 한강으로 들어와서 다리를 뽀갰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즉,

"물 속에도 괴물이 있을 수 있어요."

설명할 시간따위 없었다. 양판석은 즉시 전속력으로 북쪽 강변을 향해 나아갔다.

그게 실책이었다.

갑작스레 커진 엔진 소리가, 물 속에 있는 놈을 부른 것이다.

-쿵!

한 차례 커다란 충격이 요트를 강타했다. 요트는 북쪽 강변을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꺄아아아악!"

-쿵!

아까보다 강한 충격이 요트를 강타했다.

나는 목청껏 소리쳤다.

"지금 요트 가는 방향으로 헤엄쳐! 그쪽으로 가야 해!"

-콰지직!

세 번째 충격은 소리가 달랐다. 요트 뒷부분이 개작살이 났다는 걸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침착하자. 뒤쪽에서의 공격이 점차 요트를 파괴한다면, 지금 요트 옆문으로 나가는 건 도박이다.

나는 소화기를 꺼내 누나에게 힘껏 굴렸다.

"누나! 이걸로 요트 앞쪽 깨버려!"

여도연이 소화기를 들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힘차게 앞유리를 찍어 깨뜨렸다. 나는 정장을 벗어 양판석을 파편에서 보호했다.

요트가 강변에 가깝다.

"요트 앞유리로 나가!"

누나와 내 보좌관들이 내 말에 따라 요트 앞쪽으로 왔다. 사실 보면 자살행위다. 출구가 좁디좁은 앞쪽 창문 말고는 없으니까.

그래서 학생들이 요트 옆으로 나갔다. 가족들은 어쩔 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우지끈!

네 번째 충격에 학생 둘이 한강에 떨어졌다. 아직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한명은 엉엉 울며 요트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누나와 양판석이 이미 요트 앞 창문을 통해 배 갑판으로 빠져나갔고, 일호가 뒤에서 이호 엉덩이를 힘껏 밀어주며 그녀를 탈출시키고 있다.

가족들도 슬슬 요트 앞으로 오고 있다.

-쾅!

선실 뒤쪽이 개작살이 나며 괴물의 상판떼기가 훤히 드러났다. 요트가 불타고 있다. 사람들이 요트 앞쪽으로 미친듯이 달려왔다. 씨발 이제 내가 나가야 하는데.

괴물은 30m짜리 거대 악어다. 눈깔이 6개가 달렸고, 이빨은 훨씬 더 날카롭다. 그리고 보라색이다.

"꺄아악!"

그리고 입에서 촉수도 쏜다. 감기자네 어린 딸내미가 발목을 붙잡혔다.

나와 감기자가 자연스레 딸내미의 양 손을 각각 붙잡았다.

"지윤아아!"

"아빠아아아!"

끔찍한 대치상황이다.

괴물의 아가리에서 나온 촉수에 붙잡힌 여자아이.

그리고 그 손을 붙잡고 있는 아버지.

와 나.

뒤를 보니 요트가 강변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뭍으로 내리고 있다.

앞에는 거대 악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아가리에서 나온 촉수가 여자애를 잡았고, 감기자와 내가 딸아이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나는 판단이 빠른 사람이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내가 여자애 손을 놓는다면, 부녀父女가 쌍으로 아가리로 딸려 들어갈테고. 괴물이 이들을 씹는동안 나는 탈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찰나의 고민이다.

나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괴물의 촉수를 발로 걷어차며 넘어졌다.

촉수가 풀렸고, 딸아이가 감기자의 품에 안겼다.

괴물이 입을 닫아버렸다.

내 발이 녀석에게 물렸다.

"승문아아!!"

여도연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녀가 몸으로 유리창을 깨고 내게 달려왔다.

허나 늦는다. 악어는 내 발을 문 상태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

나는 여도연의 손에 구출되었다.

의족을 잃어버렸고 말이다.

악어가 요트 잔해를 냠냠냠 처먹는동안, 여도연이 순식간에 나를 잡아들고 밖으로 탈출했다.

악어가 다시 나를 물어뜯으려 들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내 텅 빈 옷자락을 물어뜯었을 따름이었다.

"한 의원!"

"아아! 의원님!"

우리는 간신히 강변에 올라섰다. 요트가 코 앞에서 물 속으로 끌려갔고, 나는 여도연의 품에 안긴 채 지친 숨을 헐떡였다.

"이게 등이야 가슴이야......"

"닥쳐...! 이 개씨발놈아...!"

그녀는 나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내 머리에 코를 박고 펑펑 울었다.

감기자가 울먹이며 내게 다가왔다.

"의, 의원님...! 저, 정말, 감사...!"

그는 내 텅 빈 왼쪽 발을 보고 털썩 무릎끓었다.

"감사합니다...! 우리 지윤이, 의원님이 살려주셨습니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중얼거렸다.

"누나."

"뭐."

"앞으로 내 다리, 교통사고때문이라 그러지 말고, 한강에서 악어가 물어갔다고 그래."

그녀의 백허그가 목조르기로 변했다.

"켁! 크엑! 캬아아악!"

"......뒤져 이 새끼야."

감지윤은 멍하게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고, 감기자는 그제서야 내 다리가 원래 장애였다는 걸 알고 미소를 되찾았다.

양판석은 반쯤 죽은 얼굴로 털썩 누워서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있었고, 양일호와 이호정은 서로 껴안고 정열의 키스를 나누었다.

친구 두 명을 잃은 학생 하나만이, 멍한 얼굴로 붉은 한강을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유일한 친구였다.

......문득 생각해봤는데.

여도연이 나를 구출할 때의 움직임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의 것에 가까웠다.

*

"......해가 집니다. 빨리 움직이지요."

나는 이제 못 걷는다. 왼쪽 발목 아래가 없기 때문이다.

누나와 감기자가 나를 부축해주었다.

무너진 다리에서 이따금 신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걸 신경쓸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질척거리는 한강변의 진흙을 온통 묻히고서, 물에 젖은 파김치 상태로 인근 폐공장으로 들어갔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공장이었겠지만 이제부터 폐공장이다.

양판석이 공장 문 앞에서 침음성을 내뱉었다.

"이런, 잠겼군."

추측을 실험해볼 때다.

"누나. 저 자물쇠 손으로 부숴봐."

"......뒤지고 싶냐?"

"아니, 진짜로."

여도연은 항상 내 기분을 잘 파악했다. 내가 진지한 걸 알고서 살짝 못미더운 기색으로 자물쇠를 집었다.

-으지직!

"우왓!"

"꺗!"

"허어...!"

"흐에!?"

"씨빨."

온갖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마지막 씨빨은 여도연 본인의 감탄사였다.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들어가지요."

슬슬 저녁놀이 저물고 있었다. 우리는 폐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

다행히도 이 공장은 원단 만드는 곳이었고, 우리는 따뜻한 이불을 구할 수 있었다.

다들 쫄딱 젖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특히 감기자네 막내아들, 갓난아기 상태가 살짝 매롱이었다.

양판석 의원. 여도연. 양일호. 이호정.

감기자, 마누라, 딸, 아들.

친구 두명 잃은 학생.

이게 우리 일행이었고, 암묵적인 리더는 나였다. 판단력, 희생정신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대표인 감기자는 조심스레 내게 부탁했다.

"혹시 불을 피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불이 괴물들을 끌어모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바들바들 떨면서 밤을 지샌다면 갓난아이는 죽을 수도 있고, 대부분이 감기에 걸릴 것이다.

"......일호, 이호야. 여기 널려있는 천쪼가리들로 공장 환풍구, 문틈, 등등, 빛 새어나갈 구석 전부 막자. 누나도 좀 도와줘."

"아, 감사합니다...!"

"감기자님 라이터 있습니까?"

감기자는 흡연자였는지 몸을 뒤적거리더니, 당황스런 얼굴로 아까 빠뜨렸나 보다고 말했다.

그래. 양판석이 흡연자였다.

"의원님, 혹시 라이터......"

"나 라이터 안 들고 다니는데......"

그래. 이 할아버지는 항상 누가 옆에서 담뱃불을 붙여주는 사람이었다.

"아, 맞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내게 왜 아직도 자네한테 있나?"

"돌려드리는 걸 까먹어서......"

"앞으로는 불 안 붙여줄 거야?"

"이건 앞으로도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살짝 웃음이 나왔다.

친구 잃은 학생만이 구석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있었다.

*

"의원님 덕분에 오늘 목숨을 몇 번이나 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의원이라뇨. 임기 첫 날도 아직 안 지났는데......"

"그래도 선출직이신데요. 그나저나 첫 날이셨습니까?"

"어째 그렇게 됐네요......"

우리는 캠프 파이어처럼 불 주변에 둘러앉아 몸을 녹이고 있었다.

"......형, 뭘까요?"

양일호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지만,

"내가 어찌 알겠니."

이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누나."

"......"

"누나."

"어."

여도연은 아까 자물쇠를 손으로 부순 것 때문에 줄곧 심각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까 나 악어한테 끌려가기 직전에. 몸으로 유리창 부쉈잖아."

"......"

"안 다쳤어?"

이건 걱정과 동시에 다른 뜻을 내포했다.

"......어."

"내 생각에는 그때 누나는 사람 속도로 안 움직였는데."

"알아."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멀쩡한 사람 갑자기 괴물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불안감이 섞인 눈빛이 사이에 오갔다.

"근거도 없는 소린데 말이야. 어차피 하늘에서 괴물이 떨어진 마당에 개연성 운운하는 것도 지겨울 것 같아서 그러는데."

"......"

"동생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누나가 그, 뭔가. 변한 거 아닐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모닥불 타는 소리만 들려왔다.

"괴물이 떨어졌는데, 사람이 강해지는 것 정도는 가능한 일이잖아."

"......"

"아무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누나와 동생 사이의 다정한 대화였지만, 나는 이미 이걸 사실로 규정지었다.

아무도 여도연을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배척하면 내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의미지만 나는 이들에게 경고했다.

딱히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히.

나도 뭔가 좀 바뀌었다는 느낌이 있다.

괴물의 아가리 앞에서 겁먹지 않고, 순식간에 발차기 하나로 촉수를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발을 뺐다.

그렇게 강력해진 여도연이 나를 힘껏 껴안았는데, 뼈가 부러지지도 않고 멀쩡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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