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 - 붉은 한강의 초능력자 (1)
"가장 먼저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어디로 가죠?"
"군대."
여도연이 짤막하게 대답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군부대가 어디죠?"
나는 장애인 미필이라 모른다. 여도연, 이호정은 여자고. 양판석은 국가유공자 따려고 빽써서 배트남전쟁 갔다왔다.
남는 군필자는 양일호 뿐이다.
"그래. 일호야. 여기서 가장 가까운 군부대가 어디야?"
양일호가 말했다.
"......군대 갔다왔다고 국군 주둔지를 어떻게 다 알아요."
"아, 그렇네."
"형, 미필이죠?"
"......17사단. 수도방위사령부."
양판석 의원이 눈빛을 빛냈다.
"나 초선때 국방위원회였어."
"역시 양의원님이십니다."
"17사단은 인천이고, 수방사는 관악에 있어."
17사단은 서쪽, 수방사는 남쪽이다. 한강을 따라가려면 17사단 쪽으로 가는 게 낫겠지만.
17사단이나 수방사가 저 괴물들을 잡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그쪽은 대체로 소총 든 육군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걸로 저 집채만한 잡것들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군의 대다수는 전방에 위치한다. 여기서 북쪽이다.
"......북쪽으로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귀를 쫑긋거렸다.
"일단 군대랑 합류를 해야 하는데. 탱크랑 포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일호야, 지금 인터넷 되냐?"
"아, 한 번 볼게요. ......안되는데요 형."
"그러면 여의도만 좆된, 아니. 괴물들이 나온 게 아니라는 소리네. 너 통신사 뭐야?"
"KSK요."
"다른 통신사 쓰는 분들도 확인해주세요."
누나와 이호정이 각각 대답했다.
"LU+ 인터넷 돼."
"MU 통신사 인터넷 끊겼어요."
나는 안도하며 지시했다.
"누나, 아직 인터넷 안 끊긴동안 강북 지도 검색해서 대충 우리 근처 다 캡쳐해. 특히 한강 왼쪽으로 따라 올라가서, 파주에 있는 군부대로 가는 방향. 전부."
여도연이 핸드폰을 붙잡고 미칠듯이 스크린샷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의원님, 한강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방사와 17사단 쪽으로 향하기에는 다소 불안한-"
"핵심만 말하게."
"17사단이고 수방사고 씹창날 것 같습니다. 대충 파주에 탱크모는 양반들 있을 것 같은데, 그쪽으로 가시죠."
"이미 그리로 향하고 있네."
"감사합니다."
미필이라 잘 모르지만, 파주가 최전선인 건 안다. 탱크랑 대포가 있겠지. 아니나다를까 내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제 2 기갑여단이 있었다.
"파주에 있는 제 2 기갑여단 쪽으로 가시죠. 사람들 많은 데 가면 괴물 몰립니다."
나는 한가지 문제를 더 짚고 넘어갔다.
가족.
"누나, 이모랑 이모부 어디있어?"
"아까 전화했어. 통영에 있대."
"괴물은?"
"몰라. 없는 것 같아."
일단 경상남도에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일호는 고아원 출신이다. 가족도 없고, 애인은 사랑 안하고, 지인은 우리 뿐이다.
그렇다면 이호정.
"호정아, 너희 가족들은 무사-"
"안 챙겨도 돼요."
가족들이랑 사이가 좆같은 모양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선 다행인 일이다.
문제는 양판석 의원.
지역구가 전라도에 있어서 일가친척이 다 그곳에 살고, 사위네 식구는 사위가 부산지검에 근무하느라 그쪽에 있다.
문제는 서울 명문고에 다니는 유일한 손녀. 가끔 내가 등굣길도 태워다주곤 했던 아이라 안면도 살짝 있다.
"......양의원님. 손녀분께서 혹."
"수학여행 갔어. 경주로. 이게 무슨 천운인지......"
"그럼 가족분들께서는 다들 안전하신 모양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래."
다들 챙겨야 할 군식구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파주-
-띠리리링! 띠리리링!
전화다. 나는 조심스레 전화기를 들었다. 이모다.
"여보세요?"
-스, 승문아! 서울에 지금...!
"도연이 누나랑 저랑 모두 무사합니다. 안전하게 탈출 중이고요. 혹시 그쪽에도 괴물 나왔습니까?"
-하으으...! 다행이야. 주여, 진짜...!
"괴물 나왔어요?"
-아니, 안 나왔어......
다행이다.
"변소정 변호사님. 냉철한 머리로 지금까지 본 뉴스를, 핵심만 딱딱 요약해서 정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서, 서울에 생물학 테러가 나서. 국회의사당이 무너졌다고. 막, 이상한 괴물들이. 후우......
이모는 작게 심호흡했다. 옆에서 이모부가 자, 잠깐만 바꿔봐! 라고 난리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그에게 전화기를 넘기지 않았다.
-서울 중부에 떨어진 괴생명체들이 사람을 죽이고 있고, 일대에 비상계엄 선포하고 국군이 진압한댔어.
"그럼, 핸드폰 배터리가 귀중한 상황이라 일단 끊겠습니다. 사랑하고요, 부디 안전하세요. 무사히 돌아가겠습니다. 이모부한테도 안부 전해주시고요. 가급적이면 통화는 이쪽에서 먼저 드리겠습니다."
뚝.
"자, 파주로 갑시다. 계엄령 떨어졌고 국군이 나섰다네요."
"......"
"......"
다들 날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양판석 의원이 운전하다가 나를 툭 건드렸다.
"자네는 내 과야."
*
강석호는 어떻게 됐을까.
라는 말 따위 지껄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호정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일어나 내게 접근했다.
"저, 저기. 사람......"
그녀는 배 아래를 가리켰다.
요트 조종실 안이라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십수명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손을 흔들며 뭐라뭐라 외치고 있었다. 무슨 말일지는 뻔했다.
몇몇 사람들은 강에 뛰어들어 이쪽으로 헤엄쳐 다가오기도 했다. 물론 무리한 시도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호정의 양 볼에 찰싹 소리나게 손을 갖다대었다. 그녀의 머리통을 내가 쥐고 있는 모양새였다.
"식량, 안전, 주도권."
피난이 장기화될 시 그들을 먹일 수 있는 식량. 그들이 내포한 공격 가능성. 불특정 다수 집단이 형성될 시 발생할 주도권 다툼.
그들을 태울 수 없는 이유였다. 이호정은 묵묵히 구석으로 돌아가 쪼그려 주저앉았다. 국회 보좌관이면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다.
-빠악!
여도연이 내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내가 씨발 널 그렇게 가르쳤디?"
"......말로 해, 말로."
나는 욱신거리는 얼굴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태워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찬성 : 이호정, 양일호, 여도연
반대 : 양판석, 나
다시 말하지만, 양판석 의원은 적을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배를 돌리지. 단, 이번이 마지막일세."
*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젊은 사모님이 아이를 붙잡고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옆에서 여도연, 양일호, 이호정이 사람들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새로 충원된 인력은 7명. 요트가 워낙 커서 딱 맞게 수용이 가능했다.
그들은 간신히 요트에 올라타 허옇게 질린 얼굴로 경련을 일으켰다. 누군가는 난간을 잡고 토악질을 하기도 했다.
여도연이 살짝 미안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평소랑 똑같이 험악하고 사나운 얼굴이었지만, 왼쪽 눈매가 살짝 좁혀져 있는 건 미안한 얼굴이었다.
"......안 아프냐?"
"아픈데."
지 아빠 닮아서 사과를 잘 못한다. 그녀는 말없이 홱 돌아서서 선실로 들어갔다. 하루이틀 그런 것도 아니고 용서하기로 했다.
*
양판석 의원이 한강에서 분노의 질주를 하는 동안, 우리는 선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일가족 4명. 학생들 3명. 대충 그렇게 보였다.
다들 우물쭈물하는 가운데, 일가족의 가장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 철이라고 합니다. 가족들이랑 피크닉을 나왔는데, 갑자기-"
말이 길어지려는 것 같아서 걱정스런 얼굴로 손을 붙잡았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이네요."
"사, 살아서 다행입니다. 그냥. 예.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 와이프 천화란, 딸 감지윤, 아들 감 석입니다."
여자는 엉엉 우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고, 옆에 멍한 얼굴로 이쁘장한 딸이 손을 붙잡고 있었다.
"니가 지윤이니? 못 볼 걸 봤구나. 괜찮아?"
"......"
나는 무릎을 끓고 꼬맹이와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초등학교 갓 들어간 여자애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영 불쌍했다.
이번에는 학생들의 자기소개 차례였다.
"아, 안녕하세요! 지나입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지나 양. 고등학생이에요?"
"네."
녀석은 정신이 없는지 단답으로 대화를 끊어버리고 멍하게 허공을 쳐다봤다. 나는 친구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학생들은 이름이 뭐니?"
"......아, 저는 김재훈입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지막 학생은 갑자기 펑펑 울며 바닥에 엎어지는 바람에 이름을 알지 못했다. 어차피 외우지는 않을 거라서 상관 없었지만, 학생 두 명이 친구의 오열에 달라붙어 같이 울어버렸다.
요트 안은 졸지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
나는 양의원 옆에 서서 나아가는 요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뒤에서는 누나랑 1,2호가 붙어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과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지 않나?"
양판석 의원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걸 말한 바람에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뭐가, 말입니까?"
"뒤에 있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느라. 이 풍경을 못 보는 거 말일세."
나는 요트 조종석 너머로 보이는 붉은 한강을 바라보았다.
다리에서 사람이 떨어졌고, 팔다리 조각이 둥둥 떠다녔다. 요트는 둥둥 떠다니는 시체를 치고 나아갔으며, 이따금 기적적으로 여기까지 헤엄쳐온 사람들을 치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묵묵히 요트 프로펠러로 사람을 갈아버리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 광경을 안보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수 있을까 신기해서 뒤쪽을 살짝 바라보았다.
"이게 정치인이 하는 일이야."
양판석이 묵묵히 요트를 몰았다.
"국민을 끔찍한 현실에서 탈출시키고. 혼자 모든 걸 감내하며 몰고 나가는 게지."
"......"
"이따금 끔찍한 현실을 엿본 국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책망할 때도 있지만, 정치인은 계속 나아가야 해. 그래야 나라가 살아."
그는 나를 바라보며 히죽 미소지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굳이 생각하기 싫었다.
"나는 요트를 몰 테니. 자네는 국민들을 현실에서 떼어놓으라. 이 말일세."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사람들이 창문 밖의 풍경을 보지 못하게, 배시시 웃으며 그들에게 합류했다.
"어째, 통성명은 끝내셨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반겨줬다. 특히 일가족의 아버지가 내게 두 손으로 악수를 건넸다.
"아이고, 국회의원님이신 줄을 모르고 있었네요."
"아, 네.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랏일하시는 분이라 성품이 고우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들 살려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창문 밖의 풍경을 슬쩍 엿보았다. 하지만 낯빛 하나 안 바뀌고 배시시 미소지었다.
"저는 한국신문 감 철이라고 합니다. 감기자라고 불러주십쇼."
창문 밖으로 붉은 한강이 지나갔고, 우리는 그를 배경으로 미소지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이름을 외울만한 사람인 것 같다.
또.
감기자가 일어났음에도 사람들이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니, 양판석의 말도 살짝 묘한 구석이 있었다.
정치인은 국민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닌 척 다 알고 있다.
그냥, 알면서도 가끔 방관할 때가 있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