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너를 죽게 한 것은 한낱 사고가 아니다, 그건 철저한 계획의 실행이며 행한 자는 신 자체이다,”
“여신님께서 저를…… 죽이셨다는 말씀이세요?”
떨리는 목소리의 나를 바라보던 아르타나 여신이 이내 입을 열었다.
“계획은 모든 신이 함께하였으나 너를 죽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맞다.”
“아…….”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나를 죽였다고 말하는 신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뭐가 있을까.
“왜요……?”
대체 왜?
왜 나를 죽인 거지? 남들보다 행복한 삶을 산 것도 아니었는데,
늘 남들보다 앞서기보다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거 바라지 않으면서, 철저하게 나의 주제를 파악하며.
누군가 나를 품어 주기만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됐다. 나는 남들과 시작점이 달랐고, 한눈파는 사이 그들은 저 멀리 가 있었으니까,
“욕심내지도 않았는데 왜, 대체…….”
그저 평범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나를 알고, 나를 지킬 수 있고, 나를 위할 수 있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요……?”
변변한 친인척 하나 없이 홀로 세상에 남은,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은 내가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 게 죄인가요? 나를 위해서 산 게 잘못인가요? 조금 더 주위를 살펴야만 했던 건가요?”
나보다 더 특별하고 나보다 더 암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그들을 위해 살아야만 했던 걸까.
“그러면 저는요?”
그럼 나는 누가 챙겨 주지?
나는 아플 때 괜찮냐고 물어 주는 지인이나 끼니 거르지 말라며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없다.
나를 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고, 그래서 나를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러면 안 됐던 건가요? 제 아픔을 모른 척하고서라도 남을 위해야만 했던 건가요?”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모든 세계가, 애써 부정하고 있던 사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저는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건가요?”
아르타나 여신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침묵에서 또 한 번 내 안에 무언가가 쓰러지는 걸 느꼈다.
“저는 처음부터, 존재해선 안 됐던 거군요.”
나는 그 세상에서 숨 쉬어서는 안 됐고, 나를 위해서 살아서도 안 됐던 거다.
죽었어야 할 목숨이니 남을 위해 사는 게 옳았던 거다.
“그러면 저는 왜 만드셨어요?”
신조차 나를 버렸는데, 나를 왜 그 세상에 살아가게 했던 걸까. 왜 나는 나를 원치 않는 곳에서 태어나 부정당하고 스스로에게조차 비수를 꽂아야 했던 걸까.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올려다보자, 조용히 나를 바라만 보고 있던 아르타나 여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그곳에 존재해서는 안 됐다는 말은 사실이다.”
‘아…….’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허무함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사이, 아르타나 여신은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네가 버려졌기 때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지.”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함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타나 여신은 하던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는 원래 그곳에 태어날 영혼이 아니었다. 그런 평범한 집안이 아닌, 더 특별하고 고귀한 곳.”
그녀는 멍하니 허공을 보는 나를 향해 말했다.
“탄제리크 저택 같은 곳 말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탄제리크 저택에서 태어나야 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설마.’
나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믿기지 않는 가설을 떨리는 목소리로 뱉어 냈다.
“애초에, 영혼이 바뀌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이 몸의 주인과……?”
그 말에 아르타나 여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록시나 탄제리크와 영혼이 바뀌었다. 본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 주변인들도 너와 그 몸의 아이에게 이질감을 느꼈던 거고.”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혼이 바뀌다니, 태어나야 할 세계가 아닌 곳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그때, 나는 아주 오래전에 묻어 두었던 말 한마디를 떠올렸다.
‘정이 안 가요. 내가 낳은 애 같지가 않아.’
나를 고아원에 보내며 부모가 남긴 유일한 말이었다.
‘원장님한테 들었을 땐, 정말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었는데.’
한때 나를 낳아 준 부모에 대해 궁금해할 때가 있었다. 부모님에 대해 알려달라고 조르고 졸라서 들은 말이 고작 그거였는데.
“그게, 영혼이 바뀌어서였다고?”
중얼거림에도 아르타나 여신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니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몸이 원래 너였으니.”
‘원래 록시나여야 했다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결국은 너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다. 네가 록시나라는 것을.”
“절, 찾아오신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으나 아르타나 여신은 여전히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둘의 영혼이 바뀐 것은 명백한 나의 실수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지 않니. 그래서 나의 실책을 바로잡았을 때 네가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게끔 루엔트 제국의 이야기를 만들어 미리 네게 보냈던 것이다.”
“제가 그 소설을 본 것조차, 신께서 의도하신 거라고요.”
나는 바람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
“그 이야기는 네게 닥칠 미래 중 최악을 그리고 있다. 대신 네 미래를 바꿀 수 있도록 내 힘을 나누어 주고 이전 생의 기억을 남겨 둔 것이다.”
“하.”
나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는 의미로 내게 힘을 준 거라고.’
폭주할 기미가 보이면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아프게 만드는 신성력이 결국 다 나를 위한 일이었다니.
“……결국 제 의견은 조금도 있지 않았네요.”
나는 록시나로서의 삶에서도 결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여태껏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다 신의 의도였다니.
‘대체 어떤 게 나의 의지이고 어디까지가 신의 의도인 거지?’
머리가 복잡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려 왔다.
나는 문득문득 올라오는 울컥함을 애써 눌러 낸 채 물었다.
“그럼 얼마 전 내려온 신탁도,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과 관련되어 있나요?”
‘제발…….’
나는 제발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게 의무처럼 주어진 일은 더 이상 없다고. 이제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그러나 오랫동안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내가 살며시 눈을 뜨고 여신을 마주한 순간.
“하…….”
나는 나의 바람 따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냉정한 눈빛이 내게 아직 남은 역할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제가 뭘 더 해야 하나요?”
여기서 뭘 얼마나 더.
여태껏 흔들려 줬으면 됐잖아.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줬으면 됐잖아.
그들의 실수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가 둘이었다. 이유 없이 가족에게 거부당해야 했고, 평생을 외로워야 했다. 죽기 직전까지.
“제가 뭘 해야 끝낼 수 있는데요? 그전에, 제게 정말 자유라는 게 있긴 한 건가요?”
이제는 내가 하는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그들의 의도인 것만 같았다.
이 순간조차, 여신에게 하는 말과 모든 움직임이 내 의지가 아닌 것 같다는 착각마저 일었다.
“뭘 하면 끝낼 수 있나요? 언제쯤 제게서 시선을 떼시겠어요?”
나는 신의 힘을 받았다. 신성력을 발현할 때와 폭주할 때는 차라리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로웠으나, 그래도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힘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신이 내게 닿았다는 증거인 이 힘을, 그 누구에게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이걸 사용하는 순간마저 신의 의도일 테고, 신성력에 온전히 의지하는 순간 나는 자유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입술을 깨문 채 묻는 내게 아르타나 여신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빛과 어둠의 공생은 필연이다.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는 법. 다만, 어둠은 늘 빛에 의해 그을리는 것은 아니지.”
빛이 어둠 속에 만들어 둔 그을음을 찾아내거라. 너의 미래를 방해하는 그을음을 찾아 깨끗이 도려내거라.
“어둠이 가는 곳에 빛이 있으니, 네가 선택하는 자가 제국에서 가장 찬란한 자가 될 지어다.”
아르타나 여신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어둠의 선택이 빛을 안내하리라.”
그 말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빛은 바로 로이스터였다.
‘어둠의 선택이 빛을 안내하리라.’
만약 신탁 속 어둠이 의미하는 바가 나라면, 나의 선택이 차기 황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어둠과 빛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을 기다리거라.”
그때 비로소 빛과 어둠이 하나 된다면, 마침내 스며들 수 있다.
이 제국과 한 가문에서.
아르타나 여신은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하는 공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용서 말거라.”
……가 ……면 ……모든 ……주…….
여신과 멀어지던 순간,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언뜻 떠올렸던 것도 같았다.
‘무슨 말이었더라.’
그리고 내가 그 말에 대한 의미를 떠올리기도 전,
자꾸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으나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쏟아지는 빛과 함께 스르르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