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나는 마차에 앉아 창문으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금방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바로 가자고 했잖아.”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아슬론의 모습에 나는 살짝 시선을 들었다.
“하지만 대신전은 수도와 꽤 거리가 있잖아요. 준비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일러도 내일쯤일 거라 생각했죠.”
그러나 나와 아슬론 윈터쳇이 대신전으로 떠나기 위한 준비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준비했으니까.’
아무래도 헤이녹스가 미리 언질을 준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내게 필요한 물건을 이리도 빨리 준비했을 리 없으니까.
“난 마차 체질이 아닌데 말이야.”
아슬론은 내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팔짱을 꼈다.
“공작가 마차는 탈 만하더니만, 이 마차는 왜 이리 삐걱거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마차도 삐걱거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평소 공작가에서 사용하는 마차와는 확연히 뒤떨어질 뿐.
“어쩔 수 없었어요. 대신전에 간다는 걸 동네방네 소문내며 다닐 순 없으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오기 위해서는 가문의 모양도 새겨 둘 수 없었고, 평소 타고 다니는 전용 마차를 탈 수도 없었다.
“포털을 사용 못 하니 불편하네.”
중얼거림과도 같은 아슬론의 말에 나는 조용히 동의했다.
‘포털이라도 사용했다면 훨씬 시간도 단축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포털을 사용하면 흔적이 남아 오래 걸리더라도 마차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람이 몇 안 되니 시간이 더 걸리진 않을 거예요.”
인원은 나와 아슬론, 그리고 마차를 끌고 있는 마부 하나뿐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쉬우니까.’
하지만 이번 대신전으로 행하는 인원은 셋이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늦지 않게 대신전에 도착하고, 신탁에 대한 진실을 얻은 후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
그 목적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고,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가 생길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신전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 * *
“사람이…… 없네요?”
대신전은 가장 신성하다는 곳답게 커다랬지만, 그 주위를 돌아다니는 신관이나 신도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들 안에서 기도라도 하고 있나?’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무리 신성한 곳이라도 인적 하나 없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탁을 분석하느라 바쁜가?’
우선은 대신관이 선언하듯 해석을 내놓았지만, 대신전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대신관이 한 말이 전부 기정사실화되어 제국민이 받아들이기 전에 대신전에서도 해석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야만 했다.
‘해석을 해야 해서 이리 조용한 건가?’
하지만 이 적막이 납득되지 않는 건 아슬론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래도 이상해. 신탁을 해석하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대신전 전체가 이토록 고요하다니. 그 흔한 수습 신관조차 볼 수 없잖아.”
아슬론은 이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설마…….”
“아!”
나는 발목 근처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런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눈을 잠시 감았다 뜨는 사이 안개 같은 빛이 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게 신성력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안개가 신성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더더욱.
‘처음 보는 거라고, 이런 건.’
신성력 폭주를 했던 날에도 안개 같은 무언가가 나를 덮은 적은 있었지만, 그 정도가 달랐다.
그때는 금방이라도 모든 걸 삼켜 버릴 태풍과도 같았다면, 지금은 이 알 수 없는 안개는 고요하기만 했다.
꼭 지금의 대신전처럼.
“스승님!”
내가 안개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아슬론 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렇게 천천히 사람을 덮어 버리는 안개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몸집을 불려 가는 안개에 초조해하고 있는 사이,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스승님……?”
나는 보이지 않는 아슬론의 모습에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스승님 어디 계세요?”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사방이 죄다 안개였다. 그 탓에 내 다리는 정강이 아래로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분명히 대신전에 도착했고, 아슬론과 함께 신관을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았으며 지나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런 힘을 쓸 만한 인물은 근처에 없었다고,’
나를 지금 이곳으로 이끈 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만만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하나를 이토록 소리 없이 빠르게 데리고 올 수 있는 자라면 보통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닐 테니까.
“누구라도 있으면 대답해 보세요!”
혹여 안개 밖에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크게 외쳐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스승님께서 걱정하시겠는데.’
갑자기 내가 사라졌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내가 중얼거리는 순간,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신원을 모르는 사람을 향해 옅은 적대감을 보이는 순간 드러난 이의 정체는,
“오랜만이구나.”
신. 이 세상을 만들고 관장하는 대 루앤트 제국의 수호자,
‘아르타나 여신.’
그녀는 아르타나 여신이었다.
그녀는 약 10년 전 내가 처음 보았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와 지금의 머리 방향 정도랄까.
그녀는 조금도 나이가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많이 자랐구나.”
아르타나 여신은 예전에 보았던 그 어린아이가 이리 컸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이는 가장 생명력이 있어. 자라고 변하고 또 물드는 모습이 그만큼 선명한 존재가 더 없으니까.”
그리고 꽤나 긴 시간 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르타나 여신은 이내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이곳에 불려 왔는지 궁금하겠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무엇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공간. 이 전이의 공간에 내가 다시 와야 했던 이유가 대체 뭐였을까.
아르타나 여신은 그녀를 끈질기게 쫓는 시선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
그녀의 질문에 나는 무척이나 어색한 것을 들었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죽음……?’
내가 죽은 것은 오토바이에 치여서였다. 그것도 억울하게. 그리고 그때 나를 쳤던 건, 분명 그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잠깐.’
그때 그 오토바이에 운전자가 있었던가?
“아니야. 그럴 리가…….”
분명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다. 몸이 공중에 뜨는 와중에도 이토록 허무한 죽음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운전자가 없는 거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운전자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운전자가 없어…….”
나를 친 운전자가 없었다. 그 오토바이는 분명히 나를 향해 돌진했지만 운전자는 없었다.
나는 죽었지만 나를 죽인 사람은 없었다.
“말도 안 돼.”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모습을 아르타나 여신은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건 불가능하잖아요. 제가 죽은 곳은 경사진 곳도 아니었어요. 운전자도 없는 오토바이가 제게 달려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건 그냥 골목이었다고요. 여느 곳과 다름없는 골목.”
“그래. 네가 죽은 곳은 골목이었다.”
떨리는 눈동자를 한 나와는 달리 아르타나 여신은 지나치리만큼 차분했다.
“너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죽었다. 네게 달려들던 한 오토바이에 의해.”
어떻게 아르타나 여신이 빙의 전의 나까지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는 분명히 오토바이에 치여 죽은 게 맞는데, 대체 왜 운전자가 기억에 없는 거죠?”
떨리는 목소리로 간절히 묻는 나를, 아르타나 여신은 무감한 눈으로 내려 보며 말했다.
“너를 죽인 이가 없으니까.”
‘그게 무슨…….’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죽인 ‘사람’이 없다고 해야겠구나.”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여신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내 태도에도 아르타나 여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차갑지 않지만 다정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오토바이에 죽은 것은 누군가의 실수 따위가 아니다. 그건 다분히 의도적이었지. 명확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었다.”
나는 밀려오는 믿기 어려운 사실들에 흔들리는 몸을 바로 한 채 애써 물었다.
“대체 누가 그랬다는 거예요? 대체 누가……!”
“신.”
아르타나 여신은 조금은 날이 선 목소리에도 고저 없이 말했다.
“너를 죽인 건 신이다.”
주변을 유영하던 안개가 멈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