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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게 신성력이라니요 (66)화 (66/106)

<66화>

“제가 알고 있다는 게 무슨…….”

나는 아슬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아.”

‘설마.’

내가 빙의를 한 것 때문인가? 내가 이세계에서 넘어온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록시나가 된 것이 세계의 오류일 거란 생각은 종종 했었다.

그리고 왜 하필 록시나로 빙의한 것인지, 그렇다면 원래의 록시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의문은 끝없이 피어오르는데 어딘가에도 말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럼 아슬론은 내가 빙의했다는 걸 아는 건가?’

어떻게? 신의 계시라도 받았나? 이세계에서 건너온 존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리를 붙잡았다.

“나도 잘 몰라. 네가 왜 신에게 선택을 받았는지는. 그 이유는 너만이 알 거라는 이야기야.”

아슬론은 그의 신성력으로 내 주위를 감싸며 말했다.

“신의 선택은 너만이 알고 있는 비밀 때문일 가능성이 높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죽은 공작 부인 때문일 수도 있고.”

“공작 부인이라면……. 제 어머니 말이에여?”

뜻밖의 인물이 언급되자 나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어머니가 왜, 혹시 어머니도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건가여?”

“그건 아니야.”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마주쳤던 탄제리크 공작 부인에게는 신성력이 전혀 없었어. 애초에 신성력이 신과의 통로라는 걸 감안했을 때, 공작 부인과 신 사이에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아.”

“그렇다면 왜 어머니가…….”

“널 낳은 사람이잖아.”

아슬론은 나의 눈앞에 신성력을 이용해 신전의 모습을 그려 나갔다.

“공작 부인은 신전에 자주 왔지만 신의 선택을 받지는 않았어. 다만, 그녀가 품고 있던 아이가 그 선택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

“그게 저라구여?”

“그래. 그리고 수많은 신도들 중에 너여야 했던 이유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만이 알 테고.”

아슬론은 이쯤 되면 나 역시도 짚이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나여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신의 과오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게 단순한 우연이 아닌 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록시나가 된 것에도 이유가 있는 걸까?

거창한 이유 없이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모든 것이 전부 의심스러워졌다.

“네가 어떤 이유로 선택을 받았든, 나는 너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아슬론은 나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는 청렴한 신의 종으로서 너를 도울 자격이 있다.”

그는 꼼지락거리는 내 손가락을 바라보다 말을 했다.

“그걸로 네 힘을 누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아슬론은 내 손가락에 끼운 아티팩트를 향해 턱짓했다.

“그거 당분간만 써. 그렇게 힘을 억누르면 부작용만 일어날 뿐이야.”

“그런데 그러케 되면 제 힘을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업써여.”

‘그러다 또 폭주해서 누군가를 다치게 하면 어떻게 해.’

“단순하게 신성력을 거두는 법으론 그 힘을 다루기 힘들지.”

나는 내 속을 완전히 꿰뚫은 아슬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케 하죠……?”

그러자 아슬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어떤 방법이여?”

“널 안정시킬 매개체를 찾는 거야.”

“안정시킬…… 매개체여?”

“그래. 그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동물이나 식물 같은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일 수도 있어.”

“그걸 어떠케 차자여……?”

“너에게 맞는 매개라면 그 근처에만 가도 숨통이 트일 거야. 마치 숨을 참다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그런 존재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잘 모르게써여. 생각나는 게 업는데 어떡하져……?”

앞으로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해 울 것 같던 순간, 아슬론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 찾으면 되겠네, 그럼.”

“녜?”

“앞으로 나랑 찾으러 다니면 된다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폭주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야.”

“정말여……?”

‘아슬론은 여기에 헤이녹스 때문에 온 거 아니었나?’

그가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들었지만, 그게 나라는 걸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아니라면 그는 계속 그 사람을 찾아 떠돌아야 할 텐데, 이곳에 묶여 있어도 되는 걸까?

“저 때문에…….”

내가 미안함을 담아 올려다보자,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신전을 나온 것도 어차피 신의 목소리 때문이었어. 그가 선택한 자가 누군지 나는 찾아야 했으니까.”

“아…….”

“그런데 이제 찾았으니 떠돌 필요 없겠네.”

“만약 그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제가 아니면여……?”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면? 나보다 특별한 누군가였다면? 나보다 더 빛나는 자였다면?

생각할수록 바닥이 되는 기분에 고개를 떨구자 아슬론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아이가 너라는 건 내가 확신해. 네 신성력이 그걸 증명하니까.”

그는 아티팩트 사이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내 신성력을 가리켰다.

“난 이렇게 새하얀 신성력 본 적 없어. 단 한 번도. 고작 새어 나오는 정도인데도 이렇게나 빛나잖아. 이런 건 그 대단하다는 대신관도, 나도 없어.”

“…….”

“설령 네가 아니더라도 내 선택이니 원망 안 해. 나는 그저.”

그는 내 새파란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돕고 싶을 뿐이야.”

이게 나의 선택이니까.

* * *

자작은 채굴을 멈추라는 헤이녹스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걸 멈추면 영지는 뭘 먹고삽니까?”

“잠깐이면 된다. 원인이 파악될 때까지면 충분해.”

“시간은 얼마면…….”

“2주.”

“아…….”

헤이녹스는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자작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았다.

“그, 그것이 저희 영지는 땅이 척박해서 곡식이 자라지를 않습니다. 완전히 채굴에 의존하고 있어서…….”

“상황을 수습하려면 당연한 거 아닌가?”

헤이녹스의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자작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영지민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우선은 원인만 파악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이유를 알면 일이 더 커지지는 않을 테고,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 후에 생각해도…….”

“그 후에? 후라면 언제를 말하는 거지?”

“한 사흘만 채굴을 멈추시면…….”

“자작이 다스리는 영지는.”

헤이녹스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말했다,

“2주 채굴을 멈추면 살 수가 없나?”

“예?”

“고작 2주 멈추는데 영지가 흔들릴 정도라면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공작님, 그것이 아니고…….”

자작은 무어라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지 입만 달싹거렸다,

“그것이…….”

“말해 보게.”

“자, 자작령은 채굴을 통해 먹고사는 영지이다 보니 2주나 일을 멈춘다면 영지민들도 크게 당황할 겁니다. 차라리 원인만 빠르게 파악하고 나머지는 후에 맡기는 것이…….”

“영지민은 이 원인 모를 병에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안 그런가?”

“그러니 원인만 먼저 파악하자는 의미로…….”

“이미 병에 걸린 영지민은 포기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뜻은 아닙니다……!”

헤이녹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자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부정했다.

“절대 그런 뜻은 아니고, 저는 그저 아직 건강한 영지민들이라도 먹고살 상황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직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곳에 다시 영지민을 보내겠다고? 그냥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런 건, 그런 의미는 절대…….”

날카로운 헤이녹스의 말에 자작은 여전히 부인하면서도 제대로 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식량이 걱정이라면 공작가에서 지원해 주지. 동부의 테리온즈에서도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영지민들이 배곯을 걱정은 없겠군.”

이어진 말에도 헨튼 자작이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헤이녹스가 차갑게 물었다.

“아니면 무언가 숨기는 거라도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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