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 *
헤이녹스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진 헨튼 자작이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공작님! 저는 절대 그런 의도가…….”
“안토니오 세르보스는 내 주치의라고 말했다, 그를 신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그의 주인인 나를 의심한다는 것과 같다.”
헤이녹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자작을 내려다보았다.
“자작과는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을 것 같군.”
“공작님, 잠시만요!!”
자작은 황급히 헤이녹스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오해십니다. 저는 절대로 공작가나 공작님을 무시하려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저 어찌 외지인인 저 의원이 저보다 더 헴델의 사정을 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
“정말 이유를 모르겠나.”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말해 주시면 당장 고치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헤이녹스는 자작이 거의 울 듯한 모습으로 애원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공작님께서 헴델에 관해 그리 잘 아실 줄은 몰랐습니다. 주치의 역시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 생각했고요. 부디 제 착각을 용서해 주십시오!”
납작이 엎드린 자작에게서 귀족의 긍지나 품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헤이녹스가 그를 용서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자작과 대화를 더 이어 가야 할 이유는 있었다.
“자작이 헴델 마을에 대해 아는 걸 다 말해 보게.”
“헴델 마을이라면, 제 영지 중에서도 작은 마을에 속합니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까 싶어 자작은 황급히 대답했다.
“광산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 예. 헴델 마을 근처에 있는 곳입니다. 안 그래도 영지가 척박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지 뭡니까.”
그의 말에 헤이녹스는 소파에 앉아 팔짱을 꼈다.
“채굴은 영지민이 하나?”
“예. 광산과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부터 먼 곳까지 차례로 돌아가며 채굴합니다.”
“매장된 자원은 철인가?”
“철이 나오는 광산과 히펜이 나오는 광산, 이렇게 둘이 있습니다.”
“히펜은 어디에 쓰는 광물이지?”
헤이녹스는 이미 보고를 받은 사항임에도 자작에게 직접 물었다.
“북부에서만 난다고 들었네만.”
“아, 맞습니다. 보석을 세공하는 장비에 사용되는 광물이라 값이 많이 나가는 편입니다. 헴델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지요.”
“세공이라.”
보석을 세공할 때는 일반적인 철이나 중금속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막 캐낸 원석은 그리 쉽게 깨지지도 않을뿐더러, 투박한 도구로는 세밀한 세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히펜을 캘 땐 주민들 말고 무엇이 사용되지?”
자작은 그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특별히 더 사용되는 것은 없습니다. 영지민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없고요.”
“그게 문제군.”
‘광산을 채굴하는데 안전 수칙 안내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 사람을 밀어 넣으면서 간단한 주의조차 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이 일을 가볍게 여긴다는 의미였다.
“히펜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나.”
“문제……. 잘 모르겠습니다.”
“채굴하며 나오는 가루다. 중금속보다 독하고 작은 게 특징이지.”
그런 히펜이 몸속으로 들어간다면 독성이 쌓인다.
안토니오는 헤이녹스 옆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
“몸속에 히펜의 독성이 쌓이면 가장 두드러지는 증상이 각혈입니다.”
“각혈?”
자작은 처음 듣는 얘기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지금 이 전염병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설마…… 증상이 각혈인 것도 모르셨습니까?”
“아예 몰랐던 건 아니고, 그냥 대략만 파악하고 있던…….”
안토니오의 황당하다는 물음에 자작은 우물쭈물했다.
“주민들에게 식량은 보냈나?”
“그, 그건 자작가에도 지금 먹을 것이 부족해서…….”
“결국 보내지 않았다는 얘기군,”
헤이녹스는 자작가 정문으로 들어올 때, 저택에서 나오던 마차 한 대를 떠올렸다.
‘베스 상회 로고가 있었으니 찻잔을 샀겠군.’
베스 상회는 동방의 찻잔이나 도자기를 높은 값에 파는 것으로 유명했다.
먼 타국의 문화를 소장하는 것에서 자신이 속한 가문의 우월함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귀족들은 그 희귀함에 열광했다.
자작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자작은 동방의 문화에 들일 돈은 있는 모양이야.”
“그, 그것이…….”
헤이녹스가 떠보듯 묻는 말에도 헨튼 자작은 쉽게 긴장했다.
무어라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헤이녹스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수습할 능력도, 자금도 없다면 내게 맡기지.”
“예? 공작님께서 말입니까?”
헨튼 자작은 그의 말에 화색하며 말했다.
“그래 주신다면 자작가는 절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말만 하시면…….”
“채굴을 멈춰라”
“예……?”
벙찐 얼굴의 자작을 두고 헤이녹스가 재차 말했다.
“채굴을 멈추라고 말했다,”
* * *
아슬론 윈터쳇 역시 여신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신전에 있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여신을 본 적은 없어.”
“그럼 여신이라는 존재는 어떠케 믿는 건가요?”
‘어떻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를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믿을 수 있지? 일평생을 신전에서 보내면서?’
그러자 아슬론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그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믿을 뿐이야. 존재한다고 믿지 않으면 세계가 무너지니까.”
“그럼 신의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건…….”
“그래서 내가 차기 대신관이었던 거야.”
대신관은 곧 신의 뜻을 따르는 자.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에게는 신의 가호가 다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대신관은 늙었잖아. 신의 비호가 다 떨어지기 전에 뒤를 이을 사람을 찾아야지.”
“그게 스승님이구여?”
“그런 셈이지.”
“스승님은 무슨 이야기를 들으셔써여?”
‘아슬론은 어떤 얘기를 들었던 걸까.’
지금의 대신관이 아슬론 윈터쳇을 자신의 후계로 점 찍은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물론 아슬론의 능력이 좋은 건 맞지만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무턱대고 후작 부인에게 반말을 하고 내게도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걸 보면 눈치를 보는 편도 아닌 것 같고.
그러자 아슬론이 그의 신성력을 거두었다 흩뿌리기를 반복했다.
“알다시피 내가 좀 똑똑해서.”
‘반박은 못 하겠는데 묘하게 기분 나빠.’
나의 껄끄러운 눈빛에도 아슬론은 아랑곳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겠지. 하필이면 신전에 있는 모든 신관이 참여하는 예배 시간에 들어 버렸거든. 신의 계시를.”
“하필이면여?”
마치 하기 싫은 일을 당했다는 듯한 아슬론의 표현에 내가 되물었다.
“그럼 오히려 더 조은 거 아니에여?”
평범한 공녀로 살고 싶었지만 신성력이 발현되어 난감한 나와는 달리, 아슬론은 평생을 신관으로 살려 했을 텐데 왜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나는 평생을 신전에서 살 생각이었어.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는 그 순간에서도 신전에 있었고.”
“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다른 신관들이 더 잘해 주자나여.”
“그건 그렇지.”
뭐가 재밌는지 짧게 웃음을 터뜨린 아슬론이 이내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신의 목소리를 듣고 대신관이 되면 신전에서 평생 살 수가 없어져. 대신관이라는 자리도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니까. 대신관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 더 이상 신전에 있을 가치가 없게 되거든.”
“아…….”
“그래서 내게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이 싫었어.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불안함에 괴로웠으니까.”
아슬론은 그가 자라 온 신전이라는 집에서 버려질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신관이라는 자리에 올라가 온 제국민의 찬양을 받기보단 안정적이고 조용한 평신관의 자리에 머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와는 다른 내용이 들려오더라. 원래는 소리가 섞여 제대로 해석하기도 어려웠거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만 선명했어.”
아슬론은 과거의 그날을 떠올리듯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신의 과오로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준다는 이야기였지. 해석의 여지도 없이 확실했어.”
“스승님은 그게 저라구 생각하시는 거구여?”
“생각이 아니고 확신. 나는 그게 너라고 확신해. 너도 들었다며 그 목소리.”
“그렇기는 한데…….”
“나는 너를 찾아야만 했어. 원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였고. 대신관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것도 그것 때문이야. 대신관은 나와 같은 계시를 받지 않았으니까 내 선택을 이해할 리 없었지.”
아슬론이 하는 말에도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같은 의문이 떠올렸다.
‘왜 하필 나였던 걸까.’
왜 나여야만 했을까. 이곳에서 나고 자라지도 않았고, 어느 날 이곳에 뚝 떨어진 불순물 같은 존재인 나를.
“저는, 잘 모르게써여. 사실 제가 아파서 헛것을 들은 걸 수도 있구여.”
“아니. 그럴 리 없어.”
불확실하다며 말하는 나의 모습에도 아슬론은 흔들림이 없었다.
“신은 헛것으로도 등장하지 않아. 그런 게 가능했다면 여신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 없지.”
“아…….”
그러고 보니 아르타나 여신의 모습을 봤다는 한 명도 없다. 대신관은 물론이고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황실의 일원이나 여주인공조차.
“신은 선택하는 거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 될 존재에게만 보이는 거지.”
“그게 왜 저였던 걸까여.”
나는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혼란스러운 내 표정을 바라보던 아슬론은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알고 있을 텐데. 왜 너여야만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