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식사나 하거라.”
내가 반짝이는 눈으로 헤이녹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부끄러워하는 듯한 태도에 나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나와 헤이녹스가 대화하는 사이에 식탁에는 갖가지 요리들이 세팅되고 있었다.
정말 갖가지로.
갓 구운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부터 수프 종류만 해도 세 가지였고, 굽기가 다른 윤기 나는 스테이크와 버터 냄새가 풍기는 새우구이, 조개구이, 가시가 발린 것과 발리지 않은 생선구이까지.
동부에서 구하기 쉬운 해산물부터 구하기 어려운 재료까지 죄다 식탁 위에 올라 있었다.
‘지금, 아침인데?’
내가 멍한 눈으로 식탁 위 음식들을 바라보자, 테리온즈 후작이 한 번 헛기침을 한 후 말했다.
“더 먹고 싶은 게 있거든 주저하지 말고 말하거라. 뭐든 구해 줄 테니. 우선은 아침이니 간단하게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간단…….”
‘이게 어딜 봐서 간단…….’
내가 간단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이어 가는데, 건너편 후작 부부의 옆에 앉아 있던 렌자드가 식기를 들며 말했다.
“조개다!”
“조개 조아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렌자드가 접시 위에 덜어 둔 조개의 껍질을 까며 말했다.
“응. 맛있잖아. 푸이치도 해 주긴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어.”
“그래?”
내가 궁금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렌자드가 껍질을 벗긴 조갯살이 담긴 접시를 밀어 주었다.
“먹어 봐. 너도 분명 좋아할걸?”
“웅, 고마어.”
내가 자리로 끌어와 포크를 들자, 옆에 앉아 있던 체드만이 자신의 접시를 밀어 주며 말했다.
“록시나, 이것도 먹어 봐. 가시가 이미 발린 거라 먹기도 좋을 거야.”
“아, 웅. 고마어.”
내가 조개부터 먹어야 할지 생선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데, 후작 부인이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했다.
“록시나가 많이 좋은가 보구나. 이리 챙기는 걸 보니.”
그러자 렌자드가 새로 받은 접시 위 조개를 까며 대답했다.
“록시나는 착해요. 가끔 짜증을 내기는 하는데, 그래도 좋아요.”
“짜증을 내는데도?”
“네. 사실은 짜증 낼 때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저 자식이.’
내가 생선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노려보자, 렌자드가 헤헤 웃었다.
‘무서워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가 짜증을 내면 조심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뭐? 하나도 안 무서워?’
문득 드는 배신감에 식기를 내려놓으려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체드만이 웃으며 말했다.
“렌자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록시나가 기분 나빠하잖아.”
체드만의 부드러운 지적에 렌자드가 헙, 하는 소리를 냈다.
“기분 나빴어? 그럴 줄 몰랐어, 미안.”
“돼써.”
내가 새침한 표정으로 입에 쏙 생선을 넣은 채 오물거리자, 헤이녹스가 조용히 냅킨을 내밀었다.
“입가에 묻었다.”
“그래여?”
냅킨을 집어 든 내가 입가를 톡톡 닦고 있는데, 어째선지 후작 부부가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여……?”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웃자, 부인이 부드러운 미소를 그린 채 말했다.
“아니다. 그냥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랬어.”
“아아.”
‘내가 그런 소리를 좀 듣긴 하지.’
쿠키나 파이를 먹을 때에도 푸이치는 내 먹는 모습을 보면 매일같이 디저트를 만들 맛이 난다고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렌자드가 준 조개를 집어 입에 넣는데,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던 테리온즈 후작이 입을 열었다.
“록시나는 동부에서 하고 싶은 게 없느냐?”
“하고 시픈 거여?”
나는 후작의 말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부에 뭐가 있지? 일단 바닷가 근처니까 해변은 있을 거고……. 또 어떤 게 있으려나.’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렌자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동부에 오면 시장은 꼭 가야 돼. 다른 나라에서도 배가 많이 들어와서 특이한 물건이 많거든.”
“그래?”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후작이 말을 이어 갔다.
“수도에서도 보기 어려운 물건이 많이 있으니 가 보는 것도 좋을 거다.”
“그러쿠나.”
‘제국에서 볼 수 없는 거라면 뭐가 있으려나?’
내가 문득 드는 호기심에 시장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렌자드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리고 저녁에 시계탑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아!”
“시계탑?”
내가 식기를 든 채로 렌자드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체드만이 동의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계탑이라면 정말 가 볼 만해. 해가 지는 모습이 바다 위에 비치는 걸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거든.”
“가 본 적 이써?”
내 물음에 체드만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응. 예전에 어머니랑 한 번 가 본 적이 있어.”
“아, 그러쿠나아.”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프리실라의 존재에 나는 입을 다문 채 음식만 오물거렸다.
그러자 조용히 식사만 하던 헤이녹스가 입을 열었다.
“프리실라도 시계탑을 좋아했다. 노을이 지는 걸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으니.”
“아아.”
내가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거리는데 헤이녹스가 그리움인지 쓸쓸함인지 모를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동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자신의 방과 시계탑이라고 했다. 바다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이유였지.”
그는 말하면서도 소리 하나 없이 스테이크를 썰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 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네에.”
그 이후로는 침묵만이 흘렀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프리실라라는 이름만 나오면 왜인지 몸이 굳어 버리곤 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렌자드와 체드만 또한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후작 부부 역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본 그들은 누군가를 원망한다기보단 생각이 깊은 표정이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 불편함 속에서 태연한 사람은 헤이녹스뿐이었다.
* * *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도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은 나는,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아가.”
방으로 가던 복도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자, 테리온즈 부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아까 보니 식사를 너무 급하게 하더구나. 속이 불편하지는 않니?”
“음…….”
가만 생각해 보니 무언가 얹힌 듯 속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게 체해서는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갠차나여.”
“그래, 다행이구나.”
잠시 고민하듯 침묵하던 부인은 이내 입을 열었다.
“엄마가 보고 싶지는 않니?”
“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어제 부인에게서 프리실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잠깐 프리실라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게 ‘보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과연 내가 프리실라를 엄마라 여길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 역시 끊이질 않고 있었고.
“잘…… 모르게써여.”
내가 마지못해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부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 궁금하지는 않니? 프리실라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길래 나와 닮았다고 하는 걸까. 프리실라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나의 어디와 닮아 있다고 하는 것인지. 그저 후작 부인의 듣기 좋은 소리였을 뿐인지도.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후작 부인이 이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함께 보러 가지 않겠니?”
‘어…….’
나는 후작 부인의 말에 순간적으로 멈추어 섰다.
‘프리실라의 묘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심지어는 생일을 축하받는 와중에도, 프리실라의 기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프리실라의 죽음에 나의 잘못은 없다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일은 또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사람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렌자드와 체드만의 어머니였고, 헤이녹스의 아내였다. 동시에 나의 생모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걸.’
프리실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맞장구치기엔 아는 게 없었고, 모른 척하기엔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상대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데.’
모두가 나의 앞에서는 프리실라의 이야기를 꺼렸다. 마치 언급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내가 아무것도 몰라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후작 부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꺼리던 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 주는 게 좋아서.
나도 프리실라가 궁금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남은 사람들의 말만 들어도 그녀가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는 그녀가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말해 달라 부탁할 수가 없었다. 먼저 프리실라를 언급해선 안 될 것만 같았다.
헤이녹스나 앤이 종종 혼잣말하듯 말하는 프리실라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모든 상황들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마치 나에게 선을 긋는 것만 같아서. 알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고, 그 선을 넘어서면 무례하다 여겨지는 하나의 손님처럼.
가끔씩은 탄제리크가에 있음에도 내가 외부인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었다. 그게 나를 향한 배려인 줄 알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후작 부인이 내게 프리실라의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사실은 기뻤다.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을 사람이 프리실라를 알려 준다는 건, 어쩌면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된다는 건 아닐까.
‘궁금해.’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나를 향한 배려가 서운하게 느껴졌던 건, 간혹 공허함이 밀려온 이유는 뭔지.
내가 그녀의 딸이 맞는지.
나는 고개를 들어 후작 부인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저 갈래여. 가고 시퍼요.”
머릿속에 떠올라 정처 없이 헤매던 그 의문들이, 프리실라의 묘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내가 프리실라를 알고 싶은 것에,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