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여기 있는 놈들 전부 지하실로 옮겨라. 직접 심문하겠다.”
대로로 나온 뒤, 헤이녹스는 퍼렐 경의 인솔하에 끌려온 패거리의 처분을 명한 뒤 마차에 올랐다.
헤이녹스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나는 호위들의 어깨에 들쳐지는 패거리를 멍하니 보다 문득 덩치 큰 남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가만 보니 얘, 그 새끼랑 닮았잖아?’
‘맞네. 그 새끼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어.’
‘너 그 새끼 딸이냐?’
‘마치 나에게서 누군가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도.
‘……헤이녹스겠지.’
내가 흔하게 생긴 얼굴도 아닌 데다가.
‘나는 헤이녹스와 무척 닮았으니까.’
그렇다면 그 덩치 큰 남자와 헤이녹스는 무슨 관계인 걸까.
‘헤이녹스가 그 남자를 딱히 기억하는 눈치는 아니었는데.’
그 남자가 일방적으로 헤이녹스는 아는 건가?
‘물론 이 제국에서 헤이녹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하지만.’
하지만 내가 품은 의문의 종류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나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헤이녹스를 떠올렸다.
그 말인 즉, 그는 헤이녹스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
이곳은 수도다. 이곳의 사람들이 사교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헤이녹스의 얼굴까지 아는 경우는 드물거니와, 영지 역시 서부에 있어 왕래가 잦은 편도 아니다.
헤이녹스가 수도에 올라오는 경우는 두 가지. 황제가 그를 불렀거나, 그가 황제에게 불만이 있거나.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 패거리에게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찝찝하긴 하지만…… 헤이녹스도 이미 저 사람들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었어.’
뜻밖의 생일 축하를 받고 첫 나들이에 신성력 폭주까지.
‘처음에 날카로운 신성력이 달려드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
“어?!”
나는 황급히 눈을 뜨고 헤이녹스의 손을 붙잡았다.
“왜 그러지?”
의아해하는 헤이녹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의 손을 살피기에 집중했다.
“여기……!”
‘내가 이걸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헤이녹스의 손바닥에는 길게 남은 상처.
‘내 신성력으로 인해 다친 거잖아.’
신성력이 가시 돋친 모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헤이녹스의 상처는 꽤 깊었다.
“안 아프세여……?”
내가 상처를 바라보며 묻자, 헤이녹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 정도 상처는 금방 낫는다. 신경 쓸 것 없어.”
그러면서 주먹을 쥐어 상처를 가리려는 헤이녹스의 행동에 나는 왜인지 화가 났다.
“……저한테 똑가튼 상처가 있었으면요.”
나는 헤이녹스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만약 저한테두 똑가튼 상처가 있었으면 어떠셨을 거 가타요?”
그러자 헤이녹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럴 리는 없을 거다. 절대 다치게 두지 않을 테니까.”
“저두 그래여. 저두 아빠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여.”
나는 어쩐지 이상한 표정의 헤이녹스를 바라보았다.
“그론데 제가 지켜 주지 못했으니까…….”
‘왜 자신을 함부로 여기는 걸까.’
헤이녹스를 보며 종종 들었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왜 헤이녹스는 자신을 아끼지 않는 걸까.
제국의 영웅, 서부의 주인, 압도적인 무력.
화려한 수식어는 하나같이 헤이녹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으면서 대체 왜…….’
저택에서 마주친 헤이녹스는 언제나 잠 부족으로 예민하거나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저 공작이라 일이 많은가보다 했지만.’
볼수록 그가 일부러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그래서 늘 날이 서 있는.
“왜 맨날 바빠여?”
어째서 마음 편히 쉬질 못해?
“왜 소파에서 자시는 거에여……?”
등받이 있는 의자에 앉아 겨우 십여 분 눈을 붙이고, 깨어나면 서류를 처리하고 검술을 단련하고…….
“왜…….”
더 이어갈 말을 찾던 내가 고개를 들자 헤이녹스가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마차 밖을 보려는 순간, 가만히 분위기를 살피던 렌자드가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왜 그러눈…….”
“너 지금 울어……?”
투둑-
나는 볼 위로 축축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손으로 황급히 볼을 닦아 내자 따뜻한 물방울이 묻어났다.
“아…….”
내가 멍하니 손을 바라보고만 있자, 렌자드가 소매로 얼굴을 닦아 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다친 데 있어?”
렌자드가 걱정스럽다는 듯 내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다친 곳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러자 체드만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게 건넸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이따 어디가 아플지도 몰라. 그땐 참지 말고 이야기해야 해.”
나는 체드만과 렌자드의 걱정 섞인 말을 들으며 가만히 헤이녹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헤이녹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참지 말고…….”
“아빠.”
나는 헤이녹스와 눈을 마주쳤다.
새파란 눈. 나와 같은 올라간 눈꼬리와 차가운 눈동자.
나는 그와 정말 많이 닮아 있었다.
“나는 아빠랑 오래오래 가치 살고 시퍼요.”
내가 누군가를 닮았다는 건 이런 거구나.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 때로는 서로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렇게나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 만난 닮음은 너무나 따뜻했고.
‘나는 이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
나 이제 행복하고 싶어요.
많이 힘들었으니까, 괴로웠으니까, 포기하고 싶지만 그러질 못했으니까.
처음부터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걱정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느껴 보지 못했더라면, 그랬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애써 눈물을 닦으며 무의식적으로 사과하려는데, 체드만이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울고 싶으면 울어.”
“…….”
“쏟아 내야 그칠 수도 있으니까.”
“아…….”
웃기게도, 나는 체드만의 그 말 한마디에 더는 눈물을 닦아 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흘려 버렸기에.
‘정말 행복했는데, 생일 선물도 받고 축하도 받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나 정말 기뻐, 기쁜데…….’
정말 기쁜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데, 그런데 사실은, 조금 힘들었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생일 축하를 받는다는 것, 진심 어린 선물을 받는다는 것,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있다는 것.
처음은 낯설어서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제가, 제가 잘 몰라서…….”
사랑을 받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몰랐고, 그래서 순식간에 몰려온 애정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모두 절 챙겨 주는 게, 정말 어색한데…… 그런데도 너무 좋아서여.”
잘 다루지도 못하는 신성력을 개방하고, 폭주하듯 달려드는 힘에 정말 이대로는 나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순간, 처음 죽었던 그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아, 또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는 건가 싶었을 때, 나를 지켜 준 게 다른 사람도 아닌 헤이녹스라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아빠. 아직도 조금은 낯선 그 단어.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발음해 보았다.
“지켜 주셔서…… 감사해여.”
헤이녹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마차 밖으로 빠르게 바뀌는 밤거리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에게는 동시에 너무 많은 장면이 쏟아져, 아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 * *
“록시나는.”
“잠드셨다고 합니다.”
헤이녹스가 가운을 걸치며 나오자 집사가 수건을 건넸다.
“오늘도 바로 집무실로 가십니까?”
집사의 물음에 헤이녹스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본채는 몇 시쯤 소등하나.”
헤이녹스는 이 저택의 주인이었으나 본채의 소등 시간은 알지 못했다.
그는 늘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소등이 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잠자리에 든 적 없었다.
헤이녹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집사는 수십 년의 경력자답게 능숙하게 대답했다.
“자정이 지나면 계단 근처와 복도를 제외한 본채는 일괄 소등합니다.”
“자정이라…….”
시계는 어느덧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헤이녹스는 창틀을 손가락으로 툭툭 친 후 몸을 돌렸다.
“시간이 많지 않군.”
“그럼 오늘은…….”
“자정까지만 일하겠어.”
프리실라가 죽은 뒤로 단 한 번도 자정을 안 넘긴 적이 없던 헤이녹스이기에 집사는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침실에서 주무시겠습니까?”
“그래.”
열려 있던 커튼을 친 헤이녹스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누가 내게 일찍 좀 자라고 해서 말이야.”
“공작님께 말입니까?”
“그래.”
헤이녹스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했다.
“어떤 맹랑한 녀석이 말이지. 내가 쉬지 않는 게 불만이라 하더군.”
“감히 공작님께 누가 그런 말을……! 제가 잡아 호되게 가르치겠습니다. 특징이라도 말해 주시면 반드시 찾아내 정신을 차리게……!”
“됐네.”
헤이녹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무례하게 군 사용인을 처벌할 기세인 집사를 만류하며 벽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대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예?”
집사가 헤이녹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자, 헤이녹스는 무언가를 떠올리듯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도 밉지가 않으니…….”
헤이녹스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던 록시나를 떠올렸다.
‘신성력이 정신을 많이 잡아먹었나 보군.’
선택받은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마력과 검력, 그리고 신성력은 사용자의 정신을 크게 갉아먹는 일이었다.
헤이녹스 본인 또한 검기를 사용하는 소드마스터이기에 록시나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지 알 수 있었다.
‘성인 남성에게 주어져도 버거운 힘이다. 자칫 힘이 폭주해 걷잡을 수 없어지면 사용자는 대부분 죽음에 이르니.’
오늘, 거대한 신성력의 소용돌이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록시나를 보았을 때 그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록시나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초자연적인 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
‘그 작은 몸으로…… 잘 버텨 주었어.’
헤이녹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은 저주라 믿었다.
그릇이 되지 못하는 자가 힘을 다루면 얼마 견디지 못하고 깨져 버린다.
건장한 성인에게 발현되어도 위험한 힘이었다.
그런데 대신관을 능가할 정도의 엄청난 힘이 고작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발현된 것은 어찌 보면 저주였고, 사망 선고와 가까웠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신성력이 록시나를 공격하기 전에 막아 냈으니.’
하지만 아직 록시나의 신성력은 안정되지 않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다름없었다.
“록시나에게 신성력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겠군.”
그리고 마력은 마법사에게, 검력은 소드마스터, 신성력은 신관에게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신전인데.’
아무리 추측뿐이더라도 지금의 신전은 신뢰할 수 없었다.
어쩌면 프리실라의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니.
그러자, 가만히 듣던 집사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동부에 가 보는 건 어떠십니까.”
헤이녹스는 고민하듯 팔짱을 꼈다.
“동부라…….”
생일을 축하받으며 울던 록시나를 본 순간 떠올랐던 곳이었다.
헤이녹스가 그 말을 되뇌는 사이 집사가 의견을 이어 나갔다.
“테리온즈는 신전에 가장 많이 기부하는 가문이 아닙니까. 기도실 방문도 잦은 데다 가까이 지내는 신관도 많은 편이니 어쩌면 신성력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헤이녹스가 여전히 생각에 잠긴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집사는 그런 그의 표정을 살핀 뒤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곳엔 공작 부인도 계시잖습니까.”
“한튼.”
“예, 공작님.”
헤이녹스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 집사의 하얗게 센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이 저택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45년입니다.”
“오래되었군.”
헤이녹스는 과거의 어떤 날을 떠올리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일정을 앞당겨야겠군.”
헤이녹스는 무언가를 그리는 듯한 눈을 한 채 말했다.
“많이 변했겠어. 그들도,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