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내가 쓰러진 남자를 향해 팔을 뻗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그리고 뒤에서부터 나를 꽉 잡는 손이 느껴졌다.
“이거 놔!”
“록시나.”
“이거 놓으라고!”
“록시나 탄제리크!”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나의 몸을 돌린 후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진정해라.”
‘……헤이녹스?’
헤아릴 수 없는 심해, 어쩌면 밤보다 더 어둠 같은 푸른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워.’
문득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해, 위험해.’
어느덧 주위를 잠식시켜 버린 헤이녹스의 검기에 신성력은 거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욱!!”
전보다 더 요동치는 신성력에 나는 허리를 숙이며 헛구역질했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신성력은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숨 쉬어라. 정신을 잃어선 안 돼.”
“수, 숨이…… 숨이 너무…….”
나는 숨을 가파르게 내쉬며 헤이녹스를 올려다보았다.
“공작님, 숨이, 저 숨이…….”
“눈을 감으면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기억을 잃는다.”
헤이녹스가 하는 말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점점 더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에 생각나는 단어라고는 ‘살고 싶다’ 뿐이었다.
“기억을 잃으면 영원히 힘을 통제할 수 없어. 숨을 들이마시고 정신을 붙잡는 것에…….”
“아버지…….”
나는 고통스러움에 핏발 선 눈으로 헤이녹스를 바라보며 힘겹게 말했다.
“아버지, 아빠…… 나 너무 아파. 너무 아파요…… 아빠…….”
애원하는 나를 보는 헤이녹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힘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잦아들면서 동시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나 너무 힘든데…….”
“안 된다, 록시나. 지금 눈을 감으면……!”
푹-
그때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린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빠?”
“……당하는 건 오랜만인데.”
통제에서 벗어난 신성력이 나를 향해 뾰족한 날을 세우며 달려드는 걸 헤이녹스가 붙잡고 있었다.
“아빠!”
나는 쓰러져 가던 몸을 힘겹게 지탱하며 일어섰다.
“그거 놓으세요!”
내가 헤이녹스를 향해 손을 뻗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포박하던 퍼렐 경이 다가와 내 손길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아가씨.”
“이거 놔요! 지금 아빠가, 아빠 손이!”
나는 헤이녹스의 손에서 흘러내리는 짙은 피를 보며 소리쳤다.
“아빠가 다쳤다고……!”
“지금 공녀님이 나섰다간 일이 더 커질 뿐입니다. 먼저 수도의 저택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십시오.”
‘휴식……?’
나는 단호하게 말하는 퍼렐 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뇌까렸다.
“휴식을 취하라고……?”
헤이녹스의 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양의 피를 쏟아 내고 있었다.
소드마스터로 일반인보다 몇 배는 빠른 회복력을 가진 그도 신성력에 베인 상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저걸 보고…… 그냥 저택으로 가라고?”
나를 바닥에 내려둠과 동시에 신성력을 향해 달려든 헤이녹스를 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신성력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됐어.’
스스로 힘을 제어조차 하지 못하면서 벌인 무모한 행동 때문에 헤이녹스가 다치고 있었다.
‘신성력 때문에.’
헤이녹스를 공격하던 신성력은 어느새 한쪽에서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
아티팩트를 빼며 이런 상황이 오리란 걸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건 그저 막연한 생각에 불과했다. 그 위험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고개를 들고 점점 커지는 신성력의 소용돌이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공간에서, 그 무엇보다 폭력적인 저 힘을 다룰 수 있는 건,
‘나뿐이야.’
헤이녹스는 검기를 다루는 검사일 뿐. 신성력에 대항할 순 있어도 신성력을 다룰 순 없다.
상대가 힘에 부칠수록 거대해지는 저 신성력을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버둥거리던 손과 발을 멈추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직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는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무언가를 시도해 볼 이유는 충분했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여전히 몸속에 남은 울렁임의 여운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자 몸속에 남은 신성력의 움직임이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내듯이.’
나는 아티팩트를 주며 헤이녹스가 말한 것을 떠올렸다.
‘흐름을 바꾸려고 하지 마.’
신성력과 마력 역시 하나의 자연.
자연은 인간보다도 먼저 존재하고 있었고, 드물게 선택받은 누군가가 그들의 힘을 빌려 쓸 수 있을 뿐이다.
‘귀속하려 들어선 안 돼.’
오래된 만큼 고집도, 그 세기도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이 갖지 못한 힘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는 권력과 동시에 책임이 필요했고,
‘힘의 주인에 따라 폭력성이 결정된다.’
신성력을 지배할 것인지, 함께할 것인지.
택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퍼렐 경.”
나는 퍼렐 경의 팔을 뿌리치며 씨익 하고 웃었다.
“미안해요.”
“그게 무슨…….”
나는 그대로 신성력이 만든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었다.
“록시나!!”
소리치는 헤이녹스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 * *
신성력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가 모든 걸 쓸어 갔던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귀가 멍할 정도로 적막한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죄송해요.’
뒤에서 외치던 헤이녹스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했지만,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한시가 급하니까.’
헤이녹스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폭주를 막아야만 했다.
‘고통스럽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건 아마 이것 때문이겠지.’
신성력이 발현된 후부터 지금까지 아티팩트를 이용해 강제적으로 그 힘을 눌러 왔다.
그렇게 억눌러 왔던 힘을 한 번에 개방해 버리니 정돈되지 않는 게 당연하고.
‘게다가 나는 신성력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니까.’
신성력이 발현된 후, 나는 그 힘을 숨기는 데에 급급했다.
‘나를 주인으로 인식하지 않았으니 공격하려 들었던 거겠지.’
그리고 그 결과, 나를 지키려는 헤이녹스가 다쳤다.
내 신성력 때문에.
‘신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둘 순 없어.’
아티팩트로 힘을 억제하는 것도, 신전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숨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나 스스로가 힘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해.’
나는 소용돌이 속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헤이녹스의 표정을 떠올렸다.
‘처음 신성력이 발현되었을 때도 비슷한 얼굴이었는데.’
당황, 경악, 혼란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헤이녹스에게서 느껴진 감정은 명백히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나를 잃을까 하는 염려로 이어져 있다.
이제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게 무관심한 것도, 아내의 목숨과 맞바꾼 나를 원망하는 것도 아니란 걸.
신성력의 공격에 손바닥이 넝마가 되어 가면서도 나를 지켜 준 건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헤이녹스는 딸인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는 거야.’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가족의 애정. 이제 탄제리크는 내게 그걸 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모습 보고 싶지 않아.’
만약 신성력이 헤이녹스의 목이나 심장을 찔렀더라면, 만약 그가 공격을 막지 못했더라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그 자리에 있던 게 렌자드나 체드만이었더라면.
‘그건 절대 안 돼.’
내 곁에 소중해져 버린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 힘을 다룰 수 있어야 했다.
* * *
‘나 때문이야…….’
로이스터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 소용돌이를 죄책감 어린 얼굴로 바라봤다.
‘내가 괜히 황궁을 나와서.’
로이스터가 황궁을 나온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떠돌이 무녀였던 그의 어머니 나오미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로이스터에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곤 잠들기 직전,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세상은 넓답니다. 배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저는 황자님이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황궁 밖에는 뭐가 있을까.
‘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일들이 있기에 과거를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눈에서 그리움이 느껴지는 걸까.’
로이스터와 나오미는 황궁에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거처를 황후의 정원 구석에 있는 아펠라 궁으로 한정 짓고 곳곳에서 감시하는 이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로이스터는 황궁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다.
나오미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밖을 보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로이스터는 담벼락 근처에 있는 개구멍으로 몰래 황궁을 빠져나와 밖을 구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오미가 알려 주지 않은 게 있었다.
세상은 넓은 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다양한 사람이 모두 친절하지는 않다는 걸.
그렇게 낯선 곳에서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덩치의 남자들에게 당하고 있을 때 나타난 게 록시나였다.
‘용사님.’
로이스터는 아펠라 궁 앞에서 만났던 소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당당했고, 자신을 위해 정체 모를 힘까지 쏟아 냈다.
로이스터는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덩치 큰 남자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가는 것과 소녀의 뒤로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무언가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소녀가 사용했던 그 힘은 무엇인지, 왜 그녀를 공격한 건지, 그리고 그 거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머릿속이 뒤엉켜 멍하니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2황자님 맞으십니까.”
소녀가 소용돌이에 들어가기 직전, 그녀를 붙잡고 있던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잠시, 질문을 한 기사가 소녀와 꽤 가까운 사이로 보였다는 것을 떠올린 로이스터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사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소용돌이를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