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이 줄어드는 게 당연한데, 이상하게도 거리는 전보다 더 붐비고 있었다.
렌자드는 복잡해진 거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폭죽 때문일 거야.”
체드만이 일찍이 문을 닫은 상점들을 보며 말했다.
“황실이 주최하는 축제는 폭죽으로 마무리하거든. 빛은 풍요를 의미하니까.”
‘그래서 상점이 일찍 닫은 거였구나.’
축제 기간에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왜 일찍 가게 문을 닫았나 했다.
‘폭죽이 터지는 걸 보기 위해서겠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폭죽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과 구경해 본 적 없으니까.’
비록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곤 하지만, 헤이녹스는 본래가 바쁜 사람이다.
기사단의 관리부터 제국의 대소사까지 전부 그의 손을 거쳐야만 했으니까.
이미 많은 시간을 낭비했으니 폭죽이 터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겠지.
나는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헤이녹스를 바라봤다.
“이제 가여.”
고개를 돌리면서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자, 헤이녹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구경하고 싶지 않나?”
“그건 아니지만…….”
“그럼 보고 가지.”
나는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헤이녹스를 올려다봤다.
“바쁘시지 않아여?”
“바쁘다.”
“그롬 얼른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여?”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보좌관도 그러라고 둔 것이니.”
‘아…….’
어쩐지 집무실에서 곡소리를 내며 헤이녹스를 애타게 부르고 있을 케인이 보이는 듯했다.
‘매정한 주인 만나 고생이 많아…….’
내가 케인의 짙은 다크서클을 떠올리며 위로하고 있을 때, 주변을 둘러보던 렌자드가 내 손을 잡아챘다.
“저기로 가자! 사람들이 몰리는 걸 보니 뭐가 있나 봐.”
“곧 폭죽이 터질 테니 광장으로 가려는 거야. 거기가 제일 잘 보이거든.”
체드만이 등불처럼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저기로 가서 볼래?”
‘이왕 구경할 거면 잘 보이는 게 좋겠지.’
내가 긍정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렌자드가 잡은 내 손을 흔들었다.
“빨리 가자. 늦으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늦게 도착해 자리가 없을까 조급해졌는지, 렌자드는 내 손을 잡은 채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렌자드를 멈춰 세우려던 나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주변과 확연히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점점 짙어지는 것 같아.’
달라진 건 없었다. 아까와 같이 사람이 많았고 광장은 더욱 붐볐으며,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건…….’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와는 다른, 어딘가 상처가 나고 어두운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는 나서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았겠지만 어쩐지 지금만큼은 모른 척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미 렌자드의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렌자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처음 나와 본 이 수도의 거리에서, 심지어 축제까지 있어 더욱 복잡한 밤에 멋모르는 어린 여자애가 길을 잃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렌자드의 손을 놓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머리로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다리는 더욱 깊은 골목으로 움직였다.
“하아, 하아…….”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멈춰선 채 숨을 고르며 발견한 것은,
“로이스터……?”
비운의 2황자, 로이스터 필리티움이었다.
믿기지 않게도 로이스터는 깊고 어두운 골목에 있었다. 그것도 어떤 패거리에게 붙잡힌 채로.
‘쟤가 여기 왜 있어……?’
황실의 일원은 국무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황궁을 나올 수 없었고, 만약 사적인 일정이 생긴다면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만 했다.
‘물론 로이스터에게 제대로 된 호위가 있을 리는 없지만.’
황후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견제하는 마당에, 황제가 대놓고 로이스터를 챙겨 줄 순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로이스터의 모습은 조금도 고귀한 황실의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바닥을 뒹굴어 더러워진 옷과 얼굴, 그리고 상처가 난 팔다리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아직 작고 어린, 너무도 무력한 아이일 뿐이었다.
렌자드나 체드만처럼 검을 배워 본 적도 없었고, 헤이녹스처럼 주위를 압도시키는 검기도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더 커지면…….’
차라리 이곳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잖아.’
일대의 사람들은 일찍이 폭죽이 터지는 것을 보러 간 지 오래였다.
작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 중 불이 켜져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길가에는 인적 하나 없었다.
내가 방법을 찾기 위해 황급히 머리를 굴리던 그때, 잠시 멈춘 듯했던 발길질이 더욱 거세졌다.
“너 벙어리냐? 사람이 뭔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무리 중 덩치가 큰 남자가 입을 꾹 다문 채 그를 노려보는 로이스터를 계속해서 위협했다.
“…….”
로이스터는 얼룩덜룩해진 손을 꽉 움켜쥐면서도 남자를 노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좀 날랜 거 같아 보이길래 날치기라도 시킬까 했더니…….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 안 되겠네.”
남자는 로이스터의 핏발 선 눈을 마주치며 킬킬 웃었다.
“꼭 이런 새끼들이 돈 들고 튀거든. 은혜도 모르고.”
그러더니 로이스터의 턱을 거칠게 붙잡은 채 요리조리 돌렸다.
“생긴 건 꽤 반반한데…….”
남자가 손에 힘을 주며 로이스터의 얼굴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이거 팔아 버릴까?”
‘미쳤어.’
믿을 수가 없었다.
저렇게 어린아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저 잔인함이.
그러면서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못하는 저 웃음소리가 끔찍했다.
여전히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더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발길질을 이어 가려는 듯 다리를 들어 올리는 패거리들에, 결국 나는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아티팩트 반지를 빼 버렸다.
“욱!”
갑작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에 속이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틀리는 듯한 속에 머리까지 어지러웠지만, 나는 애써 몸의 중심을 잡은 채 일어섰다.
‘로이스터……!’
신성력을 다루는 방법 같은 건 아직 배워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방금 전, 알 수 없는 기운 때문에 이곳까지 달려왔던 것처럼, 넘쳐흐르는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점점 커지는 신성력이 주변을 휘감았다.
나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로이스터에게 다가갔다.
“나이 든 귀족한테 팔아 버리면 꽤 짭짤할…….”
“당장, 멈춰.”
골목 앞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뭐야 저건.”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빼내 뒤로 따라온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피식 웃었다.
“겁도 없이 여기를 혼자 왔냐, 꼬맹아?”
“…….”
나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저건…….’
가까이서 보니, 남자의 팔에 길게 난 흉터가 보였다.
‘칼에 베인 건가?’
점점 뿌옇게 변하는 시야에 애써 힘을 주며 흉터를 바라보는데, 옆에 있던 남자가 눈을 크게 뜨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 보니 얘, 그 새끼랑 닮았잖아?”
남자는 내게 점점 다가오더니 이내 확신하듯 말했다.
“맞네. 그 새끼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어.”
“……다가오지 마.”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거리자, 남자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너 그 새끼 딸이냐?”
“다가오지 말라고!!”
그 순간,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신성력이 순식간에 뾰족하게 변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윽!!!”
남자는 허벅지를 파고드는 신성력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 이 계집애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다가오지 말라고 했잖아.”
신성력이 날카롭게 변한 순간부터 혀 짧은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허벅지를 꽉 붙잡고 있는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었어. 내가 오지 말라고 했잖아.”
“미, 미쳤어.”
남자의 두려움은 나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요동쳤다.
로이스터를 에워싸고 있던 남은 패거리들도 두려움에 잠겼는지 그대로 굳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라고 얕보던 그의 비웃음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앉은 채로 뒤로 가기 위해 버둥거리던 그는, 좀처럼 벌려지지 않는 간격에 결국 소리치듯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그는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를 숨기지 않은 채 덜덜 떨며 말했다.
“원하는 걸 말하라고?”
“그래! 뭐든 좋으니 살려만 준다면…….”
“나는.”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네가 여기서 사라지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