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결국 케이크는 저택의 모두와 함께 나눠 먹기로 했다.
무슨 생각으로 헤이녹스가 이렇게 많은 디저트를 주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었다.
모두가 맛볼 디저트를 고르느라 여념이 없을 때, 렌자드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정말 다 줘도 괜찮겠어?”
“응?”
“아니, 이 디저트 엄청 구하기 어렵다던데 저렇게 다 줘도 괜찮겠냐고. 게다가 너 달달한 거 좋아하잖아.”
“음…….”
내가 렌자드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헤이녹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깟 디저트는 언제든 구할 수 있다. 아예 그 파티시에를 고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헤이녹스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풉……!”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헤이녹스는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웃기지?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할 거 같나?”
“아녀, 아녀! 그게 아니라…….”
“아니라?”
재촉하듯 되물어오는 헤이녹스에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셔서여! 파티시에가 여기에 오는 게 실타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싫을 수가 있지?”
헤이녹스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탄제리크 가문만큼 보상이 두둑한 곳도 없지. 매일 같은 디저트를 만들고 파는 것보다 이곳에서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걸 개발하는 게 그에게도 더 좋은 기회일 거다.”
“그래두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내가 반박을 하기 위해 몸을 앞으로 빼는 순간, 체드만이 기우뚱거리는 내 어깨를 붙잡았다.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탄제리크인데.”
“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세 명의 눈동자에 나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맞다. 얘네 다 탄제리크였지.’
적어도 체드만은 이성적인 사고를 할 거라고 믿은 내가 바보였다.
‘그래도 체드만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평소 헤이녹스와 후계자라는 자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 오던 체드만이었다.
체드만은 렌자드보다 신중했고 헤이녹스보다 융통성 있었다.
‘그러니까 무조건 가문의 편을 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체드만도 어쩔 수 없는 탄제리크인 모양이다. 오만하고, 거만하고 아름다운 탄제리크.
탄제리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니 정말 가문의 후계자다운 말이었다.
‘너네만 몰라, 너네만!’
확실히 보상이 두둑하긴 했다. 심지어 황실보다도 더 많은 액수가 지급되니까. 그런데,
‘그만큼 부려 먹잖아!’
시종을 고용하고 탄제리크 가문만큼 잘 이용하는 곳도 드물 거다.
‘절대 쉽게 보상을 주려 하지 않으니까.’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퇴직금만을 챙겨 준 채 위로 하나 없이 그 길로 잘라 버리는 게 탄제리크였다.
‘그게 문제라는 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의 헤이녹스에 한숨을 쉬었다.
‘이런 말을 하면 분명, ‘나태한 자에게 위로가 왜 필요하지? 퇴직금을 넉넉히 챙겨 주었다면 된 거 아닌가.’라고 하겠지.’
보통은 사용인을 그렇게 쉽게 자르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시종을 뽑아 교육시키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헤이녹스는 단호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탄제리크에게 교육에 드는 비용은 푼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탄제리크의 금고는 절대 마르지 않는다더니.’
당연히 과장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이해가 되네. 왜 헤이녹스가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나는 케이크를 잘라 입에 넣었다.
조용히 케이크를 먹는 나를 바라보던 렌자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라.”
“해.”
헤이녹스와 체드만이 허락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렌자드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나, 아직 록시나에게 주지 못한 선물이 있어.”
“선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렌자드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응, 근데 그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잠시 머뭇거리던 렌자드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같이 축제에 가는 게 어때?”
‘축제라면…….’
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는 사이 체드만이 말했다.
“수도에서 열리는 봄 축제 말하는 거지? 황실이 주최하는.”
“응! 규모가 꽤 커서 볼만한 게 많대.”
렌자드가 신나서 말을 잇자, 헤이녹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시움이라면 나쁘지 않지. 황실에서 주최하는 축제니 위험도 덜 할 거다.”
헤이녹스가 동의하듯 말하자 신이 난 렌자드가 나를 보며 조르듯 말했다.
“록시나. 같이 가자. 볼 것도 많고, 아버지께서도 위험하지 않다잖아.”
“덜 위험하다고 했다.”
“응? 일 년에 한 번씩만 오는 봄 축제인데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음…….”
‘갑자기 신성력이 발현되면 어떡하지?’
앓아누워 있던 사이 헤이녹스가 임시방편으로 신성력을 제어하는 아티팩트를 구해 와서 괜찮을 것 같긴 한데…….
‘헤이녹스도 별말 없는 거 보면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옆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렌자드의 눈빛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써. 나두 가께.”
“정말이지?!”
렌자드는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지금 출발하자! 나 얼른 옷 갈아입고 올게!”
“그래…….”
누가 봐도 신난 게 틀림없는 렌자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앤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아가씨도 옷 갈아입으셔요.”
“응? 왜? 나 이 옷 좋은데…….”
‘앤이랑 다른 시녀들이 같이 만들어 준 옷이라 오늘 하루 종일 입고 있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나는 곧 이어지는 앤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서 갈 때 너무 좋은 옷은 입지 않은 게 좋아요. 특히 많은 사람이 몰리는 축제 날에는 더더욱요. 아무리 경비대가 구역별로 지키고 있다 해도, 어딜 가나 소매치기는 있는 법이거든요.”
“아, 그럼 렌자드도…….”
“거리에 나갈 때 종종 입으셨던 기성품을 입으실 거예요.”
“그러쿠나…….”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앤이 내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준비하러 가실까요?”
* * *
앤이 나에게 딱 맞는 기성품을 가져와 입히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았을 때만 해도 좋았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준비를 끝마치고 저택 입구에 도착하기 전까진 말이다.
‘도대체 헤이녹스가 저기에 왜 있는 거야…….’
늘 바빴던 그이기에, 당연히 동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축제에 흥미를 붙이거나 즐거워할 성격도 아니고.
‘근데 대체 왜 있냐는 말이야…….’
싫은 건 아닌데 예상과 너무 달라서 좀 당황스럽달까?
내가 문 앞에 멈춰서 머뭇거리고 있자, 나를 발견한 헤이녹스가 다가왔다.
“늦었구나.”
“구, 구래여? 금방 나온 건데…….”
“탓을 하려던 건 아니다.”
그러더니 헤이녹스는 허리를 수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어…….”
‘어쩌란 거지?’
내가 어찌할 줄 몰라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자, 헤이녹스가 팔을 뻗으며 말했다.
“허리를 굽히면 넌 내 목에 팔을 두르면 된다.”
“녜에.”
“록시나, 어서 타!”
렌자드는 먼저 준비를 끝마친 뒤 이미 내려와 있던 모양인지, 벌써 마차 안에 타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형도 아까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체드만두?”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랜만의 외출이 꼭 가족 나들이가 된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황실 연회에 간 이후로 외출한 건 처음이지?”
“웅.”
“기대해도 좋아! 아버지께서도 인정하신 축제니까 분명 재미있을 거야.”
들뜬 기색이 역력한 렌자드의 목소리에 나는 느리게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러쿠나…….”
‘아, 속 안 좋아…….’
헤이녹스의 승전 기념 연회에 가기 위해 탔던 마차는 푹신한 쿠션이 깔린 데다가 내구성이 견고해 마차가 움직이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근데 이건…….’
신분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탄 목재 마차는 길가의 돌 하나 밟은 것만으로도 차체가 울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창틈 새로 들어오는 공기를 마시며 애써 속을 달래고 있는 내게 헤이녹스가 물었다.
“불편한 곳이 있는 모양인데.”
“아, 아무것두 아니…….”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말한 나를 바라보는 헤이녹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더 말할 기운도 없어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덜컹거림에 잠에서 깼다.
‘그새 잠이 들었나 보네.’
마차가 무슨 돌에라도 걸렸나 싶어 눈을 살짝 뜨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헤이녹스와 눈이 마주쳤다.
“공쟉님, 왜 천장에 계세여?”
잠이 덜 깬 건가 싶어 몽롱한 목소리로 묻자 옆에서 렌자드가 호들갑을 떨었다.
“록시나, 많이 아파? 내가 괜히 나오자고 했나……?”
“아니, 아냐 구냥…….”
내가 혼란스러움에 눈만 도르르 굴리자, 헤이녹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설마 본인이 누워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내가 누워 있다고……?’
헤이녹스에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그제서야 마차 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 근처에 창문이 있다는 것과 마차가 멈춰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헤이녹스의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는 것까지.
“어, 어…….”
‘언제 누웠지!’
아무래도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헤이녹스의 다리 위로 쓰러진 모양이었다.
‘무거웠을 텐데…….’
헤이녹스가 어처구니없어했을 걸 상상하니 절로 민망함이 몰려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송해여…… 제가 멀미가 조금 나 가지구…….”
“됐다.”
헤이녹스는 평소의 냉정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네가 편했다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