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복도를 걷는 앤의 뒷모습은 유난히 들떠 보였다.
나이에 비해 언제나 어른스럽던 앤이었기에 나는 조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들뜬 걸까? 어디 휴가라도 나가나?’
그러고 보니 쉴 때가 되긴 했다. 5년 전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휴가가 얼마나 간절했을까.’
빡빡한 저택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지 상상하니 눈시울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나조차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쿠키가 먹고 싶다, 파이가 먹고 싶다 그랬는데 얼마나 귀찮았을까.’
물론 그게 앤의 일이긴 했지만, 부르튼 손을 볼 때마다 측은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혹여 휴가를 안 간다고 해도 이번엔 내가 꼭 가라고 해야겠다.’
내가 괜스레 찡해지는 코끝을 훌쩍이며 복도를 걷던 그때였다.
“아가씨.”
계단 앞에서 멈춰선 앤이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 보세요.”
‘뭐지?’
나는 어쩐지 벅차 보이는 앤의 표정에 의아해했지만, 어서 가라는 듯 휘젓는 손짓에 계단을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앤의 표정은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뭐가 있길래…….’
여전히 알 수 없는 앤의 행동을 곱씹던 그때였다.
“록시나!”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눈앞에 차례로 들어오는 광경에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이게…….”
홀에는 탄제리크 저택의 사용인들은 물론이고 렌자드와 체드만, 심지어 헤이녹스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나를 불렀던 렌자드는 평소보다 더 신난 표정으로 계단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 내려와!!”
“어? 어!”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에 가만히 눈만 깜박이던 나는 재차 재촉하는 렌자드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홀에 도착하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하나같이 밝은 얼굴과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왜 요기에 다 모여 있는 거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모두의 얼굴에 근심은 없어 보여 다행이긴 했지만, 여전히 의아함은 가시질 않고 있었다.
“모두 어쩐 일루…….”
내가 눈을 도르르 굴리며 홀을 살피자, 체드만이 내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록시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오늘?”
나는 좀 전에 나누었던 앤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엄마가 떠난 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황급히 입을 다문 채 주변을 훑었다.
분명 신성력이 발현되기 전, 헤이녹스는 내게 잘못이 없다고 했으니 프리실라를 언급하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누구든 그녀의 죽음을 상기하는 게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표정이 안 좋아졌잖아.’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어떠한 기대로 부풀어 올라 있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앉았다.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던 헤이녹스의 목소리가 너무도 간절해서, 그 기억에 내가 또 실수를 해 버렸나 보다.
아직까지 이 저택의 사람들에게 프리실라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일 테니까.
이유 모를 실망감도 잠시, 나는 냉각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구냥 못 들은 걸로 하면…….”
“네 생일이다.”
애써 어색하게 웃어 보이던 나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일순간 하던 말을 멈춰 버렸다.
고개를 들자 마주한 건 헤이녹스였다.
계단에서 내려올 때부터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그는,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태어난 날이지.”
“…….”
“몰랐다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설마.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
프리실라의 기일은 곧 록시나의 생일이다. 그 정도 사실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알고만 있을 뿐이다.
록시나가 태어난 건 프리실라의 죽음과 같으니까, 생일에 이런 축하 같은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이날은 저택 모두가 괴로워지는 순간이니까.’
프리실라를 그리워할 테니까. 나 정도는 챙겨 주지 못해도, 하루쯤은 내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다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프리실라는 그런 사람이니까. 프리실라는 그런 애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껏 그렇게 생각해 왔었는데.
“생일 축하한다, 록시나.”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정말로.”
“공녀님, 생일 축하드려요!!”
정말이지 이런 건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조용히 넘어갈지언정 축하 같은 건 꿈에서조차 꾸지 못한 일이었는데.
믿기지 않게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사실이었다.
활짝 웃는 렌자드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게 미소 짓는 체드만, 어쩐지 눈에 물기를 머금은 듯한 사용인들과 헤이녹스.
그래. 헤이녹스.
바로 앞에서 나와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틀림없는 헤이녹스였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노기도, 살갗이 베일 것만 같은 냉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헤이녹스의 얼굴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지만, 왜인지 차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네 첫 생일 파티잖아. 그래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렌자드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그 드넓은 탄제리크의 홀이 가득 차 있었다.
곳곳에 자리 잡은 디저트들과 각양각색의 상자들, 어째선지 실내에 위치해 느리게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분수까지.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들인 티가 났다.
“마음에 들어?”
하지만 나는 렌자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목을 턱 하고 틀어막은 듯 무겁게 매여 왔기 때문에.
“록시나?”
내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자 렌자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홀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뭔가 싫어하는 게 있는 거야? 말만 해 봐. 금방 치울 테니까.”
‘아니야, 그런 거.’
그 짧은 대답이 입안에서만 맴돌다 발화되지 못한 채 꺼져 버렸다.
무언가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점점 표정이 굳어 가는 사용인들과 체드만, 렌자드가 보였음에도 나는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록시나…… 너 울어?”
‘내가?’
나는 느리게 눈가를 쓸어 보았다. 손가락에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이, 일단은 울지 말고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만 말해 주면…….”
‘내가 운다고?’
나는 볼을 타고 흐른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다시 맺히는 걸 보고 나서야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울고 이썼구나…….”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내가 왜 우는 걸까? 신성력이 발현된 게 많이 아팠던가? 아직도 후유증이 남을 만큼?
아니었다. 열이 난 것도, 몸살이 난 듯 온몸이 떨렸던 것도. 전부 나은 지 한참이 아닌가.
“군데 왜 울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도 내가 왜 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그간 열심히 파티까지 준비했건만, 그 당사자가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으니.
‘황당하겠지.’
마치 내게 못된 짓이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나는 당황스러울 그들을 떠올리며 서둘러 눈가를 닦아 냈다.
“아, 그게…… 이거눈 눈에 머가 들어가서…….”
“록시나.”
“정말이에여. 너무 고마운데, 잠깐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록시나 탄제리크.”
나는 내 양어깨를 붙잡은 채 눈을 마주쳐 오는 헤이녹스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진짠데…… 진짜 조은데.”
“그래.”
“진짜 너무 고마어서…… 그냥 눈에 머가 들어가서…….”
“그랬군.”
“슬픈 거 아니고, 이건 정말 행복해서…….”
어느덧 헤이녹스의 품에 안긴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저 정말 행복한데…….”
나는 그때 깨달았다.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감정은 행복과 같은 단순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란 걸.
‘믿기지가 않아서.’
누군가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게, 나를 위해 준다는 게, 울고 있는 나를 안아 주고 쓰다듬어 준다는 게, 그게 헤이녹스라는 게.
느리게 정수리부터 뒤통수를 쓸어내리는 투박한 손길에 나는 그만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록시나…….”
내가 울음을 터뜨리자 당황한 렌자드가 다가와 차마 손은 뻗지 못한 채 발만 동동거렸다.
그러자 멀찍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만 반복하며 움찔거리던 체드만은 가까이 와 울음소리와 함께 들썩이는 내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따뜻해…….’
등과 머리 위로 느껴지는 온기가 눈물 나게 따뜻했다. 내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진심 어린 위로.
섣불리 괜찮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 투박한 손길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는 듯했다.
근처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계단을 내려왔을 때부터 눈에 물기가 어려 있던 이들이 결국 눈물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이 온도가 너무 포근해서, 이따금씩 코를 훌쩍이는 그 소리가 반가워서.
아주 조금, 눈물이 났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헤이녹스의 품에서 펑펑 울던 나는 점점 잦아드는 눈물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헤이녹스에게 안겨 높은 곳에서 다시 홀을 살펴보자 당황스러움에 경황이 없어 보지 못했던 것들이 차례로 눈에 담기기 시작했다.
렌자드가 선물이라며 내민 보석 달린 머리띠와 체드만의 제국사 전집 동화 스무 편 외에도 홀 곳곳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저 상표는 저번에 앤이 하루 종일 줄을 서도 못 산다던 그 디저트 가게 같은데.’
오랜만에 앤을 만나러 서부로 온 언니에게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를 먹이고 싶다며 호기롭게 줄을 섰던 그녀는, 몇 시간을 꼬박 기다렸음에도 디저트가 전부 팔렸다는 말에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콧대 높은 귀족들은 대신 사용인을 보내 사 오게 할 정도로 상류층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가게였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거리의 다음 블록을 쭉 돌아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수두룩했다며 투덜거리던 앤의 목소리가 기억났다.
그 파티시에의 직업 정신이 꽤나 투철해서, 귀족이란 이유로 줄을 새치기하면 아예 디저트는 팔지도 않는다던데.
‘도대체 저 많은 디저트는 어디서 난 거냐고.’
이 정도면 디저트 가게를 털어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방에 조각 케이크와 마카롱, 각종 과일이 올라간 파이가 널려 있었다.
‘저거 다 먹었다간 이가 모두 썩어 버릴 거야.’
분명히 그럴 거다. 디저트 위에 뿌려진 슈가 파우더와 초콜릿 장식이 ‘나 달아요’ 하며 소리를 치고 있었으니까.
‘저 많은 걸 도대체 어떻게 구해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먹기는 해야겠지.’
나는 헤이녹스의 품에서 내려와 디저트가 놓인 트레이로 다가갔다.
‘손이 닿을……! 리가 없지.’
트레이가 성인의 키에 맞춰 나와서 그런지, 내가 있는 힘껏 뻗은 손으론 어림도 없었다.
“앤. 이고 내려 줘.”
결국 나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올망올망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앤은 꽉 쥐고 있던 손수건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서둘러 다가왔다.
“아가씨, 어떤 거 드실래요? 코코넛 가루가 올라간 레몬 크림 케이크도 맛있고, 이 딸기 케이크는 생크림이 그렇게 맛있대요.”
나는 간단히 디저트를 설명하며 어떤 걸 고를 거냐 묻는 앤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떤 거라니? 당연히…….’
“종류별루.”
전부 먹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