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에게 신성력이라니요 (25)화 (25/106)

<25화>

“그치만 제가 실수를 했는걸여…….”

내가 소심하게 그의 말에 반박하자,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헤이녹스가 입을 열었다.

“너는 네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어…… 엄마라구 부른 거여……?”

내 대답에도 헤이녹스는 전과 같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이게 아닌가?’

“아니묜 케드릭 앞에서 막 얘기한고……?”

하지만 헤이녹스는 여전히 똑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게…….”

‘이게 아니면 뭐지?’

나는 내가 또 뭔가 잘못한 게 있는지 황급히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침 먹기 전에 쿠키 두 개 먹은 거? 하지만 그건 헤이녹스가 모를 텐데…… 아니면 내가 로이스터를 만났다는 걸 아는 건가?’

만약 내가 2황자인 로이스터를 만났음을 알고 있다면 화가 났을 수도 있다.

‘2황자랑 친해지는 건 가문에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니까.’

사실상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로이스터와 연을 만드는 것은 황후에게 더한 경계심과 적의를 받는 일밖에 되지 못한다.

‘이거네.’

헤이녹스는 가문에 자칫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일을 저지른 나 때문에 화가 난 게 분명했다.

‘그래. 이건 확실한 내 잘못이야. 인정하자.’

내가 나의 실수를 인정하기 위해 입술을 열었을 때였다.

“너는 잘못한 게 없다.”

머리 위로 내려앉는 헤이녹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는 어딘가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

“…….”

“네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헤이녹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머니라 부르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이냐. 네가 나와 프리실라의 아이임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네가 나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 같은 말은…… 제발 하지 말거라.”

입술을 세게 짓씹으며 힘겹게 말을 내뱉은 헤이녹스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마차 안에는 다시금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바퀴 아래 깔리는 모래와 중간중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울렸다.

한동안 눈을 감고 숨을 쉬었다 내뱉었다만 반복하던 헤이녹스는, 창밖으로 탄제리크 저택이 보일 때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프리실라에 대해 궁금한 건 없느냐.”

‘프리실라라니.’

헤이녹스의 입에서 먼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던 이름이었다.

‘죽을 때까지 언급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놀랍게도 헤이녹스는 먼저 프리실라에 대해 언급했다.

‘프리실라에 대해 궁금한 점이라.’

헤이녹스와 프리실라에 대해 대화할 거라고는 예상치도 못했기에 딱히 질문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이라면.’

프리실라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앤과 렌자드를 보았을 때마다 들었던 의문.

“엄마는 어떤 사람이어써여?”

도대체 프리실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나 햇살 같은 사람이었으면 세상을 떠나고 몇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남은 이들이 그녀를 그리워하는 걸까.

“엄마가 저를 가져쓸 때…… 기뻐해써여?”

프리실라는 아이를 사랑했을까? 도대체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줄 수 있었던 걸까.

“……프리실라는.”

이런 곤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헤이녹스는 느리지만 차분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무척 기뻐했다. 네가 배 속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리고 네가 그토록 그리던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히 웃었다.”

헤이녹스의 눈을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는 그 뒤에 그리운 무언가를 그리는 듯했다.

“아주 예쁜 아이일 거라고. 아침마다 직접 머리를 빗어 주고, 땋아 줄 거라고, 그리 말했었다.”

프리실라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헤이녹스의 입가에는 어느덧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지고 싶은 건 무엇이든 주고,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게 해 줄 거라 했었지.”

“…….”

“그러다간 버릇이 나빠질 거라는 내 말에도 아랑곳 않았다. 사랑하는 딸이 버릇 좀 나쁘면 어떠냐며 나중에 너를 혼낼 생각은 하지도 말라더구나.”

“…….”

“매일 밤 너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 주고, 식사를 하고 나면 산책을 하며 정원에 가득한 꽃냄새를 맡았지. 그리고 너를 낳던 날에는…….”

헤이녹스는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네게 미안하다며 울었다. 아무래도 너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안아 주지도, 사랑한다 말하지도 못할 것 같다고.”

“…….”

“어머니의 품에 한 번 안기지 못할 너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만 흘렸다. 숨이 점점 꺼져 가는 순간에도.”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헤이녹스가 회상을 끝낸 듯 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프리실라는 네게 많이 미안해했고, 또…… 많이 사랑했다.”

“…….”

“프리실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

헤이녹스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이제는 내가 답할 차례였다. 내가 얼마나 그녀를 궁금해했는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그런데…….’

자꾸만 목이 메어 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미처 삼키지 못한 이 감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프리실라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기에, 그 사랑을 베풀 줄도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아낄 수가 있지?’

남아 있는 남편과 다른 아이들까지 두고 떠날 만큼.

‘아, 어떻게 해.’

아이를 사랑했던 프리실라의 맑은 웃음을 그릴 때마다, 아주 깊은 곳이 점점 크게 요동쳤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나는 프리실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녀가 나를 사랑했음 또한 느낀 적 없었다.

‘그런데도 왜…….’

아주 오래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것만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마치 헤이녹스의 감정이 전달이라도 된 것처럼.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밀려오는 감정의 폭풍에 잠식될 것만 같았다.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려 할 때마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시야를 흐리게 했다.

내가 가슴팍을 움켜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놀란 헤이녹스가 단번에 나를 안아 들었다.

“록시나! 정신 차리거라, 록시나!”

“하아…… 하아…….”

나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느리게 헤이녹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쟉, 하아……. 공쟉님…….”

“그래. 여기 있으니 말하거라.”

“저, 자꾸만 여기가 아파여…….”

나는 가슴팍 위의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너무 슬퍼서……, 마음이 너무 아파여…….”

아무리 숨을 쉬어도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더 크게 헐떡이며 눈가로 눈물을 흘려보냈다.

때마침 마차가 멈추고 헤이녹스는 나를 안은 채 저택으로 뛰어갔다.

“주치의! 당장 주치의를 불러와!”

나와 헤이녹스를 맞이하려던 집사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나의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애써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와 방으로 안내했다.

록시나를 침대 위에 눕힌 헤이녹스는 늦어지는 주치의에 마음이 조급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헤이녹스가 집사를 향해 다시 소리치려는 순간, 주치의가 도착했다. 급하게 달려온 기색이 역력한 주치의는 헤이녹스의 사나운 기세에 주춤거렸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찰이나 해.”

헤이녹스는 짧게 일갈한 후 고개를 돌려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나는 소용돌이치는 듯한 속에 점점 열이 올랐다.

‘토할 것 같아…….’

불덩이가 배 속에서 요동치는 것 같았다.

‘너무 뜨거워…….’

속을 한바탕 헤집은 불덩이는 목과 손가락, 발끝을 차례로 훑어 내려갔다.

‘속이 너무 안 좋아…….’

난생처음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밤낮없이 일할 때도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머리 사이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이마 아래로 흘러내리는 감각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귀는 먹먹한데…….’

시야가 뿌옇게 변하고, 소리는 웅웅 대며 뭉개지는데 감각만은 선명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쉴 때 공기가 폐를 스치는 것과 땀이 흐르는, 그리고 불덩이가 몸 안을 헤집는 감각이 선명했다.

‘왜 이러는 건데…….’

이건 감기도, 몸살도 아니다. 이런 병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없다.

나는 흐려지는 눈으로 주치의의 진단 결과만을 기다렸다.

서둘러 나를 진찰하기 시작한 주치의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맥 짚기만을 반복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반복되는 주치의의 행동에 헤이녹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저, 그게……, 맥이 조금 이상…….”

당황한 주치의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려는 때였다.

“아버지!”

“록시나!!”

방문을 시끄럽게 열고 소리치며 들어온 건 체드만과 렌자드였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나에게 렌자드가 달려왔다.

“너 왜 그래!!”

“나도…… 하아…… 몰라.”

‘알면 이러고 있겠니.’

나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러자 렌자드는 내 배를 덮고 있던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렸다.

‘더운데…….’

몸에서 열이 나 더웠지만, 이불을 덮어 주는 렌자드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렌자드는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이불을 꼼꼼하게 덮으며 말했다.

“일단 말하지 말아 봐.”

‘네가 물어봤잖아.’

왜 그러냐고 먼저 물어본 건 렌자드였다.

‘그런데 말하지 말라는 건 무슨 심보야.’

내가 속으로 꿍얼거리며 불평하고 있는데, 갑자기 명치 부근에서 무언가 솟구치듯 꿈틀댔다.

“윽!!”

지금까지 느껴 왔던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움직임이었다.

빨리 원인을 찾으라며 소리치는 헤이녹스와 그 옆에서 닦달하는 체드만,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며 울부짖는 렌자드가 차례로 눈에 담겼다.

방 안의 모든 존재가 느리게 보이고 몸은 붕 뜨는 것만 같았다.

오토바이에 치여 죽을 때도 이랬다.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과 그 가운데 정지한 듯 떠 있는 내 모습.

‘하…….’

허탈했다. 내가 살아 보겠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데. 아직 프리실라가 죽은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해 뭐라 소리치는 렌자드가 보였다.

“눈 떠! 눈 뜨라고!!”

내 팔을 꽉 쥐고 말하는 렌자드의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조금은…… 감동이네.’

나랑 영원히 앙숙처럼 지낼 줄 알았건만. 나 때문에 저렇게 우는 렌자드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삼 원작과 변한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동안, 체드만은 헤이녹스를 붙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제발 록시나 좀 살려 주십시오! 저는 아직…… 아직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다는 말입니다!”

“…….”

“아버지……!”

헤이녹스는 답지 않게 소란을 부리며 매달리는 체드만을 내려다본 후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두 번째 생을 얻고서도 이렇게 어이없게.

어쩌면 신은 이미 죽을 운명이었던 내가 안타까워 잠깐이나마 록시나로 살게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참 빌어먹을 동정이다.’

이렇게 쉽게 다시 가져갈 것이었다면 주지 않는 게 나았을 목숨이다.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사람들과, 내 팔을 쥐고 울부짖는 렌자드와, 멍하니 나를 바라만 보는 헤이녹스와, 미안하다며 소리치는 체드만과.

‘진짜 가족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언젠지 모를 때부터 희망은 차근히 쌓여 왔던 모양이다. 절대 가까워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쩌면 나도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강한 척하며 온갖 풍파를 견뎌냈지만, 누군가 함께 폭풍을 맞아 주길 바랐나 보다.

여전히 심장을 감싸고 있는 아릿한 통증에서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이뤄지지 못할 소원과 함께 천천히 눈을 감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