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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게 신성력이라니요 (18)화 (18/106)

<18화>

* * *

“성생님.”

“예, 공녀님.”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디칼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이 갑짜기 변하믄 어떠케 되나여?”

“갑자기 변한다고요?”

“녜.”

“어떻게 말입니까?”

디칼이 감이 잡히지 않는 듯 묻자 나는 지난 며칠간 있었던 기이한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로니까 그게여…….”

* * *

3일 전이었다. 그날은 일찍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는 않고, 침대 위에 누워 이불과 함께 뒹굴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가씨.”

“왜에?”

나는 쿠키를 가지러 내려갔던 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의아해 물었다.

“쿠키는?”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또 왜…….”

앤이 저렇게 의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때면 언제나 불안함이 엄습했다.

‘저번에 연회 때도 저런 얼굴이었지.’

나 또 어디가? 그 불편한 자리를 가라고?

‘싫어…….’

연회장은 너무 밝고, 사람이 많고, 답답하다.

꽉 막힌 귀족들과 같이 있으려니 나까지 이상해지는 거 같단 말이다.

“앤. 나 오늘운 아무 데도 안 나갈 꺼야…….”

“어제도 방 안에만 계셨잖아요.”

“그거눈 어제고, 오늘운 오늘이자나.”

하지만 앤은 단호했다.

“안 돼요, 공녀님. 오늘은 꼭 가셔야 해요.”

“대체 모길래 그래…….”

“공작님께서 함께 시내 구경을 하자고 하셨어요!”

“머, 머라구? 내가 잘못 들었나?”

벌써 귀가 안 좋은가? 뭐 헛것이 들리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 파낸 후 다시 물었다.

“방굼 모라고…….”

“공작님께서 함께 외출하자고 하셨다니까요?”

‘오 지져스…….’

제게 왜 이러시나요……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차라리 렌자드를 보내 주세요! 제발요!’

하지만 내 간절한 기도에도 바뀌는 건 없었다.

아니지,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은 걸까? 이렇게 내 눈앞에 헤이녹스가 서 있는 걸 보면.

“공쟉님.”

“록시나, 왔구나.”

헤이녹스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나를 발견하자 계단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손을 잡거라.”

“앤이 이써서 괜찬…….”

“잡거라.”

“예.”

나는 괜한 오기를 더 부리지 않고 손을 뻗어 헤이녹스를 잡았다.

“구론데, 어쩐 일루 부르신 고에여……?”

헤이녹스는 내게 자문을 구할 일도 없고, 딱히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호출에 의아할 수밖에.

“혹시 제가 멀 잘못한 게 이따거나…….”

“아니. 넌 잘못한 것 없다.”

헤이녹스는 내 말을 단호하게 자르며 갑작스레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생각해 보니 너와 그 흔한 거리 구경 한번 가 보지 않았더구나.”

“그, 그랬나여?”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 가눈데여?”

“마차 닿는 대로.”

‘와우…….’

저택을 벗어나 시내로 향하는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과일을 파는 사람, 향신료를 파는 사람, 골목길 중간중간에 약초를 다리는 약방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정신없이 창밖으로 구경하는 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

“일단 내리지.”

먼저 내린 헤이녹스가 내 몸을 들어 마차에서 빼냈다.

“요기가 어디…….”

나는 다른 곳과는 달리 더 화려한 간판에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헤이녹스는 여전히 나를 안아 든 채로 대답했다.

“의상실이다.”

“의상실이여?”

“그래. 네 옷을 몇 벌 맞추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갑자기?’

그러더니 나를 데리곤 의상실로 들어가서 그 안에 있던 드레스와 실내복을 싹 휩쓸고 왔다.

* * *

“제가 얼마나 당황했눈지 아세여?”

내가 주먹을 꽉 쥐며 말하자, 디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레스를 맞추면 좋은 것 아닌가요?”

“아, 물론 좋기는 하져…….”

“그럼 뭐가 문제죠?”

디칼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자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팡팡 쳤다.

“아니, 구로니까 갑짜기! 하루아침에 바꼈다니까여!”

“하루아침에요?”

디칼은 그제야 핵심을 파악했는지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하루아침에 바꼈다라……. 그건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닌데요.”

“역시 그러쳐? 성생님도 그러케 생각하시져?”

“예. 사람이 순식간에 바뀌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공녀님께선 뭐 짐작 가시는 일이 있으신가요?”

“아녀! 그걸 알았다면 저두 이러케 답답하지 않아쓸 꺼예여.”

진짜 이 헤이녹스가 왜 이러는 걸까.

갑자기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그래서 앞으로 개과천선하고 딸에게 잘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겠지.

헤이녹스는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인간의 운명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데다가 프리실라가 죽어갈 때 빌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도 신은 저 버렸으니까.

‘깨달은 게 아니라면 설마…… 몹쓸 병이라도 걸렸나?!’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말도 안 돼! 헤이녹스가 죽는다고?’

헤이녹스가 죽는다. 그 말은 내가 알고 있는 원작이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는 걸 뜻한다.

황가는 이때다 싶어 탄제리크의 힘을 분산시킬 거고, 덕분에 남주는 아무런 방해 없이 황제가 되겠지.

그건 이곳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의미했다.

가문의 근간이 흔들리고 헤이녹스를 따르던 가신들 역시 뿔뿔이 흩어지고.

그렇게 지지 가문과 지도자가 사라진 탄제리크는 머지않아 몰락의 길을 걷게…….

‘안 돼! 여태 내가 세운 계획은 탄제리크가 부강한 가문이어야 실행 가능하단 말이야!’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몸으로 움직여야겠어.

“성생님, 아무래도 안 되겠네여.”

“뭘 말씀하시는…….”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디칼을 향해 소리쳤다.

“공쟉님 몸보신 좀 해 줘야게써여!”

일명, 헤이녹스 몸보신시키기. 그의 원만한 흑막 생활을 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공쟉님운 어디 계셔?”

“아, 수업 끝나서 뵈러 가시려고요?”

“음…… 구론 셈이지……?”

내가 말끝을 흐리자 앤이 갸웃거렸다.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으세요?”

“아, 아니. 앤, 나 팔 아프다아.”

내가 두 팔을 뻗고 어색하게 칭얼거리자 앤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안아 올렸다.

‘앤이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원래 나는 수업 끝나고 헤이녹스에게 마지못해서 갔으니까.

‘갑자기 적극적이니 의아하겠지.’

하지만 내게는 헤이녹스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다.

‘바로 건강 관리를 해 주어야 하기 때문!’

가문의 건재를 위해 나는 헤이녹스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

‘반드시 헤이녹스의 일정을 파헤치고 말겠어.’

음식과 옷, 업무까지 전부!

이래 봬도 헤이녹스는 서부의 수장으로서 할 일이 엄청 많았다. 그러면 분명 과로도 자주 하겠지.

‘과로는 만병의 근원!’

나는 헤이녹스의 과로를 막기 위해 앞으로 그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그게 설령 집 앞마당에서 쿠키를 먹는 것뿐일지언정!

‘케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당분간 헤이녹스는 일을 못 하게 될 거다. 왜냐하면 내가 못 하게 할 거거든.

‘아. 들린다, 들려. 케인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

벌써부터 케인의 머리털 빠지는 모습이 눈앞을 어른거렸다.

‘미안해. 야근 수당은 잘 챙겨 주라고 할게.’

나는 앤에게 안겨 집무실에 가면서 케인의 노고를 향한 눈물을 찔끔 흘려 주었다.

* * *

“공작님, 록시나 아가씨 오셨습니다.”

“들어와라.”

내가 집무실로 들어서자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낯의 헤이녹스가 나를 반겼다.

“수업이 끝났나 보구나.”

“녜.”

‘저거 봐 봐. 오늘도 과로했구만.’

헤이녹스 눈 아래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어째, 전장에서 돌아왔을 때보다도 피곤해 보이냐.’

내가 안쓰러움을 담아 그를 쳐다보자 헤이녹스가 눈썹 한쪽을 까닥대며 물었다.

“앉지 않을 건가?”

“아, 아녀. 앉을 거예여.”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소파를 낑낑대며 올라갔다.

“의자를 바꿔야겠군…….”

“녜?”

나는 집중을 하며 올라가느라 헤이녹스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해 되물었다.

“머라고 하셔써여?”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 뭐라고 한 거 같은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헤이녹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수업은 어땠지?”

“아, 오눌은 제국 역사를 배워써여!”

“아직 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거눈 저번 주에 다 끝나써여!”

“……그렇구나.”

헤이녹스는 의자 팔걸이에 팔을 기대며 말했다.

“어렵지는 않은가? 제국 역사가 꽤 길 텐데.”

“음…… 쪼금여?”

헤이녹스 말대로 제국 역사는 길었다. 이 땅에 건국된 지 무려 800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그만큼 역사에 실리는 양도 방대했다.

“그래두 별루 여렵지눈 않아써여.”

디칼이 지루하지 않도록 역할극처럼 설명해 주어서인지 딱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다 성생님 덕분이져.”

‘고마워요, 디칼!’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디칼의 노고에 고마움의 인사를 보내고 있자, 헤이녹스가 재차 입을 열었다.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지?”

“음……. 4대 황졔 아헤루티안의 툴루족 동맹까지여.”

“빠르구나.”

헤이녹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헤이녹스의 안색을 살폈다.

‘조금 피부가 거칠어진 것 같기도 하고…….’

시선을 아래로 둔 헤이녹스는 유난히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

“혹시…… 잠 못 자셨써여?”

헤이녹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치자, 나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게…… 졸린 것처럼 보여서여…….”

“……티 나나?”

헤이녹스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마나 주무셨눈데여?”

“……못 잔 지 사흘쯤 됐구나.”

“공쟉님!”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사흘이나 잠을 안 자다니,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공작도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제국의 단 네 개뿐인 공작가를 이끄는 수장이라면 그에 마땅한 책임도 져야 하는 법이다.

‘새삼 헤이녹스가 대단해 보이네.’

내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자 헤이녹스가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천천히 하셔두 되자나여.”

“오늘까지 끝내야 해서.”

“왜여?”

나는 고개를 숙이며 중얼대듯 물었다.

“방금 뭐라고…….”

“다른 사람들운 일 안 한대여? 참나, 돈을 받눈데 빈둥대구 그러묜 안 되져!”

지금도 어디선가 코피 흘리며 일하고 있을 케인이 듣는다면 분명 쓰러질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울컥하는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원래 공쟉님이며눈 좀 놀 줄도 알아야 돼여.”

“……아.”

“가끔운 다른 사람들한테 일 다 떠넘기구 놀 줄도 알아야…….”

“……큭.”

“……?”

나는 갑작스레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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