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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116화 (117/124)

116화

선수를 칠 거라면, 여기 오기 전에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잠시 황당하다는 듯 황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교황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교황은 식은땀을 연신 흘리며 황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여자가 뭐로 보이나요?”

황녀가 내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교황은 배를 부여잡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로 보인다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황제가 당한 독에 당했다는 사람치고는 그리 위중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황녀를 흘긋 보았다. 저 독침에는 다른 독이 발린 것이 틀림없었다. 황녀는 애초에 음독 사건의 범인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사건은 벌어지지도 않았고, 지금 일어난 일은 모두 황제의 자작극이었다.

하물며 그녀에게 그런 독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전하…….”

아무도 말리지 않는 상황이니 나라도 나서서 그녀를 만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심히 갈등되는 와중에 교황은 뺨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 못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보다 더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흐읍, 지금 원하는 게 앞에 있는 분에 대한 증언입니까?”

간헐적으로 고통이 찾아오는지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베로니카 황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전하, 이렇게 하시면 제가 정말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맞아요. 그 증언이 필요해요.”

내 말을 사뿐히 무시한 황녀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한 고운 선율이었지만, 외려 그것이 고압적으로 느껴졌다. 비단 나만 그리 느끼는 건 아닌지 교황의 얼굴이 차차 굳어졌다.

“지금 저에게 거짓을 증언하라 종용하는 겁니까?”

“잘 알고 있으니 따로 설명할 수고는 없겠네요.”

“황녀!”

큰 소리를 낸 교황은 금방 다시 복통이 찾아왔는지 허리를 숙였다. 보는 사람도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물론 엘렌은 이쪽을 흥미 어린 시선으로 보며 즐겁다는 듯 빙글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계속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황녀가 말했다.

“지금 증언서를 작성하세요. 로위나 카시어스는 황족이 금기를 범해 인위적으로 영혼이 소멸 되었으며 그 빈자리에…… 음. 예전에 죽었던 아이의 영혼이 들어갔다고 하면 되겠네요.”

베로니카 황녀의 말을 듣던 교황의 푸른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했다.

“그게 사실입니까? 황실이 금기를 범했다는 이야기가.”

교황은 황실의 금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황족들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사실이에요. 친애하는 내 동생이 영혼을 대가로 시간을 돌렸죠.”

교황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놀랍지 않은지 베로니카 황녀는 단조로운 어조로 답했다. 교황은 탄식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곤란함과 난감함이 얽힌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그리 설명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는 한참 있다가 입술을 떼었다. 그 말에 베로니카 황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러면 증언서를 써줄 건가요?”

“못 합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분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증언서를 작성하는 건 성법에 어긋나는 행위…….”

길게 이어지는 교황의 말에 베로니카 황녀는 이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

“그럼 죽는 수밖엔.”

“……”

서늘히 읊조린 베로니카 황녀는 뒤돌아 교황을 등졌다. 어쩐지 그녀 어깨너머로 느껴지는 교황의 시선이 더 험악해지는 듯했다. 베로니카 황녀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나에게 선택지를 말했다.

“차후 방안으로 교황을 입막음하는 후처리도 나쁘진 않은 방향이에요.”

“전하. 정말 이대로 놔두실 생각이신 건가요?”

“안 놔두면, 고문이라도 할까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마침 고문 전문가도 여기 있고.”

베로니카 황녀가 엘렌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엘렌이 해맑게 웃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 고문을 하는 건 내 전문이지.”

연둣빛 눈동자에서 광기가 엿보였다. 그 모습을 본 교황이 다급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이 중에 가장 정상인은 나라는 것을 뒤늦게 파악한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성하, 전하께서 쓴 독이 무언지 저도 모릅니다. 하오나 목숨이 촌각을 다툴지도 모르는 독이니 전하의 말씀에 따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말하면서도 사실 베로니카 황녀가 쓴 독이 목숨에 위해가 가는 독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목숨이 위태한 독이었다면, 지금 교황은 말조차 못 한 채 사경을 헤매고 있을 가능성이 컸을 테니. 그러나 교황은 독에 당했다는 공포감과 복부에서 이어지는 통증에 그러한 이성적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크흡…….”

내 차분한 설득에 교황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입을 덜덜 떨며 말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황녀가 도도하게 고개를 까닥였다.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교황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내가 살고 싶어서.”

“…….”

교황은 그 이유가 전부냐는 얼굴로 베로니카 황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대로 놔두면 안셀모는 또 시간을 돌리기 위해 또 다른 영혼을 제물로 바치겠죠.”

“금기를 범했다는 근거는 있습니까?”

“지금 로위나의 존재가 근거죠.”

교황은 황녀의 말에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를 보는 시선엔 복잡한 심경이 묻어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해독제를 주십시오.”

“지금 나한테 없어요. 다른 장소에 숨겨뒀거든.”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혹여라도 여기 있는 사람이 몸수색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요.”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가늠은 안 되었지만, 진짜라면 대단한 준비성이었다.

‘아니, 여기 오기 전에 언질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여기 오자마자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피곤이 몰려왔다. 열심히 슬픈 연기를 하는 와중에 엘렌은 갑자기 피를 토하지 않나, 황녀는 독침을 교황에게 찔러넣지 않나.

다사다난한 하루가 어서 끝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이 상태로 증언서를 작성하면 분명히 의심을 받을 겁니다.”

교황은 복부를 부여잡은 채 베로니카 황녀에게 말했다. 돌려서 해독제부터 내놓으라 말하는 그에게 황녀는 여상한 말투로 답했다.

“아침에 먹었던 식사가 잘못되었다고 하세요. 그리고 증언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로위나 카시어스의 무고함을 강조하는 거예요. 철저한 피해자로 낙인을 찍어주면 더 좋겠군요.”

“하…….”

벽과 대화하는 듯한 갑갑한 얼굴이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모습에 동정심마저 들었지만, 이쪽도 그의 상황을 배려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저렇게 날을 세우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달려왔는데 그게 모두 연기였고, 독침을 맞으며 해독제를 빌미로 협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나라면 벌써 환멸이 나서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 오히려 저 정도의 반응은 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성자가 맞긴 하지.

“혹시 모르니까 나도 같이 따라가지.”

엘렌은 어린아이로 변한 뒤, 교황의 옆에 붙었다. 교황은 순식간에 어린아이로 변한 엘렌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하다가 복통이 찾아왔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그들이 치료실을 나가고 베로니카 황녀와 남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독이에요?”

“몸에 좋은 여러 약초를 섞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몸에 좋은 약초. 하지만 약초를 여럿 섞으면 독과 같은 효능을 발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녀의 농담 같은 말장난에 웃음이 나오지 않아 정색하며 물었다.

“……설마 진짜 해독제가 없으면 죽는 건가요?”

“죽을 만큼 괴롭겠죠.”

죽을 독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정말 교황이 죽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터였다. 베로니카 황녀는 엘렌만큼 미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변비약 효능이 있는 약초랑 지사제 효능이 있는 약초랑 섞었어요. 그것도 강력한 아이들로.”

“아…….”

“변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은 가고 싶은데, 동시에 나오지는 않고. 재밌는 독이죠.”

어떤 독인지 완전히 감이 잡혔다. 절로 ‘으.’ 하고 인상이 찌푸려졌다. 베로니카 황녀는 그런 나를 뭉근히 보더니 내 팔을 잡았다.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요.”

터키석처럼 아름다운 청록색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괜히 불안해진 나는 그녀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그러나 어차피 코앞에 있는 입장에선 무의미하고 미약한 반항에 불과했다.

“엘렌 알렉산드로. 속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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