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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112화 (113/124)

112화

어느 정도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단락이 끝난 후, 어머니는 먼저 아랫사람들의 입단속을 시켜야 한다고 나섰고, 아버지는 황궁에 갈 채비를 꾸리겠다며 나갔다.

자연스럽게 나는 방에 베로니카 황녀와 단둘이 남겨졌다.

황녀는 다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지 창틀을 보고 있었다.

“사이가 나빠지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조금 부럽네요, 로위나.”

곧바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입을 다물었던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성급히 입을 열었다.

“각자 다 삐걱하는 면도 있답니다. 전하. 제가 부모님 앞에 나타난 것도 7년 만이고요….”

말하고 보니 영락없는 후레자식이었다.

“그렇긴 하죠.”

황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후레자식이라는 말에 긍정한 건 아닐 텐데, 괜히 뜨끔해서 민망했다.

“어느 가족은 합심해서 친딸을 죽이려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에요.”

“아…….”

차라리 이 대화는 내가 후레자식이라는 이야기로 끝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황녀는 내 모습을 보고 작게 피식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요. 우울해 보이길래 웃으라고 한 얘기인데.”

“그, 런가요.”

그런 말을 웃으라고 꺼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반항 어린 시선을 보내자 황녀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녀가 그렇게 소리를 내고 웃는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독특한 분이야.’

웃음 코드가 아무래도 일반적인 기준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어라, 무슨 재밌는 거 있어? 나도 알려줘.”

등 뒤에서 엘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도 돌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얼굴만 보면 열이 오를 것 같았다. 걱정하는 사람 속도 모르고, 매일 사라지기나 하지.

“그래서 황태자를 막을 방법은 찾았어?”

“아니. 황족에게만 전해지던 금기 마법이라 마탑에 있는 서재엔 없는 모양이더라. 그래서 말인데-”

순간 앞에서 꽃과 풀향기가 훅하고 끼쳤다. 그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바로 앞에 엘렌의 얼굴이 있었다.

“헉! 미친놈아!”

깜짝 놀라 뒤로 벌러덩 넘어질 뻔했으나 엘렌이 마법으로 넘어지려던 나를 세웠다.

“하하, 놀랐어?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로엔이 날 외면하길래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어, 얼마나 중요한 얘기인데.”

귓가에 내 맥박이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놀라기만 하면 될 텐데 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내가 듣기에 안 중요한 얘기면 한 대 쳐도 돼?”

“마음대로.”

엘렌이 어깨를 으쓱이며 경쾌하게 웃었다. 하나도 두렵지 않다는 그의 얼굴을 보니 왠지 오기가 생겼다.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그의 눈웃음이 짙어졌다. 그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황태자, 그냥 죽일까?”

“미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던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슨 저런 말을 웃으면서 하는 거람!

그러나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누굴 죽인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튀어나왔지만, 해결책이 그것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을 하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이 자리에는 엘렌과 나만 단둘이 있는 게 아니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황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만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엘렌이 내 속마음을 읽고 있다는 걸 순간적으로 망각한 나는 그의 머리통을 잡고 내 어깨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지금 전하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한 거야.”

그의 귀가 왜인지 잔뜩 붉어져 있었다. 그대로 나에게 머리통이 잡힌 채로 그가 대답했다.

“깔끔한 해결책이 그것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지나치게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대책이었다.

“평생 도망자로 살고 싶어?”

“나는 로엔이 옆에 있으면 상관없는데?”

그가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며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본 나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네?”

누굴 같은 도망자로 만들려고. 나는 그를 휙 뒤로 밀었다.

그리고 황녀를 다시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청록색 눈동자는 흥미로운 것을 관찰하는 듯 보였다.

“이런, 사이가 좋아 보였는데 아쉽네요. 내가 신경 쓰이면 잠깐 자리 좀 비워줄까요?”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바를 한 박자 늦게 깨닫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상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전하.”

“그리고 이야기 다 들렸어요.”

“죄송합니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황녀의 앞에서 동생을 죽일 모의를 가졌다는 건 큰 무례였다. 황실에 대한 권위를 괄시하는 행위였다.

보이다마다. 엘렌은 충분히 황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사과 외엔 할 말도 없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태평한 어조로 말했다.

“도망자가 되어서 쫓길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최후의 수단이 그것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나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잔잔한 목소리가 숙인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친동생인데. 뒷말은 잇지 못했다. 이미 친동생은 친누이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황녀도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옅게 웃었다.

“난 바보가 아니에요. 없는 죄를 물어 날 반역으로 모는 애는 내 동생이 아니죠.”

그녀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 말을 이었다.

눈동자에 스치듯 보인 감정은 씁쓸함과 차가운 분노였다.

“하지만 안셀모가 이쪽에서 자신을 죽이러 올 거라는 걸 모를 리 없어요.”

“맞아. 보안이 굉장히 철저하던데. 하마터면 들킬 뻔했어.”

엘렌이 말했다.

“마탑을 간 게 아니라, 안셀모에게 간 거군요.”

“죽이기로 마음을 정한다면 미리 파악해둬야 하니까. 저번처럼 당할 수는 없지.”

“저번처럼?”

내가 묻자 엘렌이 그답지 않게 대답하는 걸 머뭇거렸다. 야단을 맞을까 봐 눈치를 보는 아이가 딱 저러지 않던가.

“설인을 봉인시켰던 고대 마도구. 사실 그거 내가 황태자를 죽이려고 했다가 당한 거였거든.”

“뭐어?”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그가 고대 마도구에 당했던 시점은 아일라가 용의자로 몰렸던 때였다. 나는 정확히 그가 사라졌던 시점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감옥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엘렌은 대답하는 대신 딴청을 피웠다. 시선을 회피하는 그에 정답을 얻은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었다.

나를 죄책감에 허덕이게 하려고 안달이 난 게 아니고선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이번엔 안셀모를 직접 건드리는 건 힘들겠군요. 저쪽에서 로위나를 합리적으로 처형시킬 수단이 있으니.”

베로니카 황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만약 황태자는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생각되면 바로 신전에 내가 썼던 책을 보고할 것이다.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반격을 하겠지.

내 생각을 읽은 엘렌이 말했다.

“그럼 먼저 신전을 없애버리는 건 어때?”

“농담이지?”

제발 저 가볍게 꺼낸 말이 농담이길 바랐다. 내가 그런 시선으로 엘렌을 보자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으로 생각하는 쪽이 편하다면, 로엔 마음대로 생각해.”

“응, 그건 농담이라고 생각할게.”

아무리 생각해도, 엘렌이 나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 계획대로 저희는 신전으로 향하는 게 좋겠어요.”

황녀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동하는 게 좋겠군요.”

“잠시만요. 가기 전에….”

나는 잠깐 말을 멈추다가 고민했다.

대공 부부는 엘렌이 정신을 잃었던 이유가 황태자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일을 도울 것이었다.

짐짓 알렉산드로 대공 가문까지 휘말리게 할 수는 없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일은 가문 간의 일로 번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말을 해 놓는 쪽이 대공 저하께도 미리 방책을 세울 시간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이미 황태자 쪽에서 대공 저하를 만났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더욱 우리도 대공 저하를 만나 이야기를 해 놓아야 했다. 엘렌이 나에게 말했다.

“글쎄, 모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알아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고. 그가 뒤에 있는 말은 흘리듯 중얼거려 제대로 듣지 못한 나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엘렌은 어딘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대공한테 알리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듯하군요.”

황녀도 엘렌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신전에 가기 전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녀는 약간 재밌는 일을 떠올렸다는 듯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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