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길에 오른 황태자는 황궁에서 황녀가 발견되었다고 말한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잡았습니까?”
“지금 황궁 내부를 샅샅이 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황태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왜 진작 황궁 안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지?
누님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을 터인데.
도망자를 택할 바엔 황궁에 남을 사람이었다. 그가 아는 누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참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황태자는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남자에 관해 물었다.
“엘렌 알렉산드로도 발견되었습니까?”
황태자의 예상대로라면 엘렌 알렉산드로는 황녀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함께 있었다면 황녀가 목격되는 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엘렌 알렉산드로를 떠올린 황태자의 금안이 탁해졌다.
‘성가시게 되었군.’
가능하면 죽이려고 고대 마도구까지 사용했지만, 효용 기한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가 엘렌 알렉산드로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시간을 돌리기 직전, 그는 알렉산드로 대공자의 정보를 얻었다.
엘렌 알렉산드로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에 황태자는 드물게 당황했다. 그래서 시간을 돌리자마자 일찌감치 엘렌 알렉산드로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으나 쉽지 않았다. 오히려 대공자는 무언가 눈치라도 챈 듯 황태자비가 된 고티에 제국의 황녀인 에테르나에게 접근했다.
‘그때 완전히 죽였어야 했는데.’
음산해진 눈빛에 기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제일 먼저 황녀를 목격했습니까?”
“마구간 지기라고 합니다.”
“이름은?”
“이벨 하브라고 합니다.”
“궁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것까지는… 죄송합니다.”
단순히 마구간 지기라고만 전달받은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목격자의 신원에 대해 자세히 살피지 못한 건 불찰이었다.
“지금 인원 중에 이벨 하브라는 마구간 지기를 아는 이가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예.”
마차의 창문이 닫혔다. 마차는 계속 황궁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황태자의 미간은 미미하게 좁혀졌다.
별로 좋지 않은 직감이 들었다.
마차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황태자는 창문을 열었다.
아까 하문했던 기사였다.
“한 명이 알고 있었는데, 궁에서 처음 본 건 1년 전이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거 말고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뭐든 좋습니다. 인상착의라던가.”
“젊은 남자에 평범한 인상이라고 합니다. 마구간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말을 좋아하는 청년이라고 하더군요.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을 닫았다. 1년 정도 궁에서 일한 마구간 지기.
의심스러울 여지가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거슬렸다.
평범한 인상이라는 건 누군가의 세작이 될 최적의 용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곳에 오자마자 때마침 황녀가 목격되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황녀가 목격된 것이 사실이라면 당장 그녀를 죽여야만 했다.
황녀는 지금쯤이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도 남았을 테니.
지금쯤 무언가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엘렌 알렉산드로와 접촉했다면 그 행동은 더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더 골치가 아픈 건 그녀가 에르도안 공작과 접촉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건 황태자인 그에게도 퍽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어 섰다. 황태자는 창문을 열었다. 왜인지 모를 불안감에 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또 무슨 일입니까?”
“그게…….”
어물쩍거리던 기사를 옆으로 밀어낸 바이올렛이 바짝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차분한 보라색 눈동자에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였다.
“에르도안 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황태자의 눈빛이 서릿발같이 차갑게 식었다.
“여기에 온 목적은 말합니까?”
“태자 전하를 뵈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익숙한 흑마가 황태자의 눈에 들어왔다.
에르도안 공작이 평소 타고 다니는 명마였다.
큰 전쟁에서 승전한 뒤, 궁에서 열린 축하연에 참가하러 제도에 들어왔을 때도 저 말을 탔던 것을 기억했다.
“…이야기를 들어보죠.”
그의 승낙이 떨어지자 바이올렛이 자리를 비켜섰다. 리카르도가 천천히 마차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사냥꾼처럼 은밀하고 날카롭게 마차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리카르도의 인사에 마차 안에서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의 안전을 지켜야 할 본분을 제치고 올 만큼 중대한 일이길 바라. 공.”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공.”
하아, 황태자는 한숨을 참지 않고 길게 내뱉었다. 철부지를 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그게 날 보러 온 이유인가?”
찬물을 끼얹은 듯 흉악해지는 분위기에 주위에 있던 기사들은 얼굴을 굳혔다.
모두 잠시 자리라도 벗어나고 싶은 표정이었다.
“공의 호기심이 폐하의 안위보다 중요한 일이라니, 유감이네.”
그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않던 리카르도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폐하의 안전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공.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황금을 녹인 듯한 금색 눈동자와 얼음 같은 푸른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폐하께선 곧 깨어나실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