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왜 갑자기 돌아간 걸까.’
처음에 황태자가 찾아왔을 때는 처리하지 못한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황녀가 황궁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금방 그는 저택을 나가 궁으로 돌아갔다.
‘최소한 나를 가담자로 만들어 함께 죄를 묻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래서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처음 황태자를 보았을 때 심장이 저 심연 밑으로 떨어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냐. 그러면 공작 가문도 함께 연루가 될 테니.’
아까 엘렌에게 말했듯이 아직 황위에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황태자가 카시어스 공작 가문을 쳐내는 건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황태자는 아직 내가 카시어스 공녀의 영혼을 제물로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다행스러운 착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불안해야 할지. 양쪽 다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느낌이라 기분이 더러웠다.
“하아. 모르겠다.”
그대로 푹신한 내 침대 위에 누웠다.
“뭐야, 정말 여기서 잔 거야?”
침대에서 온통 꽃이랑 풀냄새가 났다. 엘렌이 남긴 향이었다.
“숲 한가운데에 온 기분이네.”
그 향을 맡으니 신기하게도 복잡하게 머릿속을 부유했던 생각의 잔재가 깔끔하게 비워졌다.
그러나 익숙한 체향에 엘렌이 떠올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혼자 마음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의외인 건 엘렌이 직접 나서서 황태자를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마법을 사용했는데, 가만히 두고 보는 모습은 그에겐 평범한 사람보다 더한 인내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성격대로 행동했더라면 이미 황태자나 엘렌, 둘 중 한 명은 몸 성히 있지 않았겠지.
높은 확률로 그쪽은 황태자가 되었을 것이다.
고대 마법조차 혼자서 해독해서 깨어난 괴물 같은 녀석을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엘렌의 마법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대마법사라는 호칭은 허투루 생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그의 힘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아마도 남의 관심을 귀찮게 여기는 성격 때문인 것 같기는 한데.
마탑주로 있는 이유는 아마 엘렌이 가문 후계자가 되기 싫어 도피처로 마탑을 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면 수도원으로 가도 되었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엘렌에겐 마탑보다 수도원이 더 좋은 선택지였으리라.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엘렌에게 그렇게 크게 단점으로 작용될 것 같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결속되다시피 살아가야 하는 결혼을 그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거기다가 그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자유롭게 숲을 누비는 게 취미였으니.
‘수도원은 기본이 단체 생활이고, 자유 활동이 힘드니까 그런 건가.’
엘렌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뺨에 키스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버렸다.
“아, 정말! 걔는 왜 갑자기 그런 거야!”
다시 얼굴이 홧홧해졌다.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황궁에 원망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