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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101화 (102/124)

101화

깜짝 놀라 나는 헉, 숨을 들이켰다.

아직 아버지에게 황제가 황태자의 편에 서서 이러한 일을 꾸몄다는 건 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황제가 배후에 있다는 걸 파악한 건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황제만큼은 아니지만, 황태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아버지가 황태자의 앞에서 그런 질문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질 줄은 몰랐다.

황태자는 그 질문에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공은 어찌 생각합니까?

‘이놈 보게.’

전형적으로 곤란한 질문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부정할 줄 알았던 그가 상대에게 의심의 여지를 남기는 대답을 왜 한 건지는 의문이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기실 황녀가 반역 혐의로 도망자 신세니 논외로 치면 황태자에게 계승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위인은 황제의 조카이자 제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리카르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제국보다 어릴 때부터 태어나고 자란 북부에 마음이 가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황태자는 이미 황위 계승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작저를 거리낌 없이 방문했을지도 모르고.

‘절대 안 돼.’

그가 황위에 오르면 막을 사람이 없어진다. 게다가 설인의 일이 벌어지기 전, 황제가 가지는 권력은 리카르도가 대적할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무고한 사람을 제물로 바쳐 시간을 돌리지 않았는가.

‘혹시 어쩌면 한 번이 아닐 수도 있지.’

시간을 돌리기 위해 희생된 사람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최악의 가정까지 떠올랐다.

이런저런 가정을 세워도 그가 황위에 오른다면 제국의 명운이 어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황태자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운 기색이 채 숨겨지지 않았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가 가면을 벗는 일이 있을지나 궁금했다. 되돌아온 질문에 아버지는 침묵했다. 그의 대답이 궁금했던 나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답을 기다렸다.

-폐하를 알현하고 싶습니다.

-공.

황태자는 그의 대답에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마법구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감정이 결여된 사람처럼 건조했다.

-공은 어느 쪽인지 확실히 하고 싶군요.

늘 의뭉스러운 의도를 숨기고 모호하게 대화를 흐리던 황태자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앞에서 속내를 보였다.

-저는 폐하의 편입니다. 전하.

아버지의 단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엔 탄식이 나왔다.

‘결국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구나.’

몇십 년간 고집해온 그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되니 맥이 탁 풀렸다. 더 이상 이 둘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아졌다.

“꺼?”

푸른 머리 색의 작은 머리통이 불쑥 튀어나와 내 시선을 가득 채웠다. 나에게 시선을 맞춘 엘렌이 물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지까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어제처럼 아버지가 나에게 이 대화를 사실대로 말해주진 않을 것이었다.

황태자가 말했다.

-이야기가 잘 풀리겠군요.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아버지는 짧은 시간 내에 어떤 결심을 굳힌 것처럼 아까와 다른 목소리로 물었다. 언뜻 들으면 방금 자다 깬 사람처럼 목이 잠긴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면 로위나의 일도 폐하의 뜻입니까?

-…….

처음으로 황태자가 침묵했다. 나까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저런 질문을 한 저의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마음 같아선 엘렌을 저 방에 보내고 싶은데….

“가?”

엘렌이 다시 물었다. 아까처럼 천진무구한 얼굴로 묻는 그에게 나는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마리어스.’

그들은 수련을 통해 보통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로 오감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저곳을 호위하고 있는데, 짐짓 엘렌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걸리는 점이 한 가지가 아니었다.

황태자가 고대 마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의 능력 범주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는 거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엘렌을 저곳에 잠복시켰다간 들킬 위험을 배제할 수 없었다.

‘고대 마도구는 아일라만 사용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책에는 정확히 아일라만이 고대 마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하나의 조건을 만족시켜서 그렇다고.

‘그 조건이 설마.’

단 하나, 추측되는 게 있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사람은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야.”

“그 소설, 막 쓴 글인 줄 알았는데….”

아일라에게 여주인공의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구색을 맞춘 설정이라 생각했건만, 의외로 디테일한 면이 있었다.

“어쩌면 그 책이 벌어진 상황을 그대로 적어놓은 걸 수도 있지.”

“그 말은 그 책이 누가 지어낸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엘렌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또한 확언하기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대체 그 책을 적은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순간 정신이 팔린 사이, 마법구에서 황태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내 뜻입니다. 공녀에 관한 일은 모두 제가 관리하죠.

한참 만에 나온 대답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든 건조한 음색이었다. 애초에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거짓처럼 들리기도 했고, 진실처럼 들리기도 했다.

‘관리.’

어감이 주는 뉘앙스가 불쾌했다. 관리한다는 게 내 목숨줄까지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누가 누굴 관리하고 자빠졌나. 속으로 한껏 비꼬며 마법구에 귀를 기울였다.

-질문은 끝입니까? 저는 모두 사실대로 말했으니 공작도 사실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정말 어제 자택에 온 사람이 공녀 한 사람뿐입니까?

-…….

이번에는 아버지가 침묵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긴장이 되어 목이 탔다. 황태자에게 나와 같이 온 소년에 관해 말한다면 분명 황태자는 엘렌을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사실을 고할 것이었다. 그의 입으로 황제의 편이라고 말을 했으니까.

그리고 황제의 편은 곧 황태자의 편에 서는 것을 말하기에.

엘렌에게 어서 자리를 피하라는 말을 하려다가, 마법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말에 입을 굳혔다.

-예. 제 아이 혼자 왔습니다. 태자 전하께서 우려하시는 상황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멍하게 입을 벌리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와중에.

“내가 말했잖아.”

엘렌이 입을 열었다. 그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나를 보는 시선에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다.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이 그랬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고 말하려다가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는 내 감정에 눈앞이 흐려 그가 내 가족에 관해 어떤 좋은 말을 하든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로엔한테 미움 사기는 싫었거든.”

“넌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퉁명스럽게 대꾸했으나 왜인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난스레 대꾸한 그의 말은 심각한 상황으로 착잡한 나를 묘하게 안심시켰다.

“연인한테 말고 그런 짓은 하지 마. 미움 사기 싫으면.”

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새초롬한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시간이 흐를수록 장난기는 줄지 않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소년 같은 모습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로엔은 내가 미워졌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애가 할 법한 질문을 하면서도 전혀 괴리감이 없었다.

내 얼굴에서 그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뭉근하고 집요한 시선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행동을 멈추었다. 생각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내가 그때 기분이 나빴나?

맞다, 아니다. 둘 중 고르라면 확실히 아니다, 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그렇게 대답해버리면, 상황이 조금 이상해질 것 같은데.

엘렌이 조금 가깝다 싶을 정도로 얼굴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마치 내 생각에 끼어들고 싶다는 듯이.

“그럼 우린 연인이야?”

내 머릿속에 스친 일련의 생각을 계속 읽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처음 던진 질문에 사로잡혀 뒤늦게 그의 질문을 뒤늦게 곱씹은 나는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뭐, 뭐?

그제야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를 보는 시선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잠깐만, 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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