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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94화 (95/124)

94화

응접실에 네 사람이 앉았다.

부모님과 나, 엘렌까지. 아버지는 고집 세게 입술을 다문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하자, 어머니가 바로 그의 얼굴 앞에 손을 들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요?”

“치우시오.”

두 사람의 암묵적인 눈싸움에 나는 당황했다. 늘 아버지에게 순종적이었던, 내가 알던 어머니가 맞나?

“괜찮아요, 저도 아버지께 할 말이 있거든요.”

중재를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바짝 얼었다. 어머니의 얼굴엔 걱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제일 이상한 건 아버지였다.

아까부터 계속 나에게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바라보던 아버지가 내 말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기치 않은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기실 아버지만큼은 나를 보자마자 역정을 내며 쫓아내리라 생각했다. 뺨을 맞을 각오까지 했었는데, 아버지는 의외로 순순히 내 말에 따라 응접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엘렌이 앉았다.

나를 보던 아버지의 시선이 엘렌에게 옮겨붙었다.

나는 어떤 말로 화두를 꺼내야 할지 고민하며 차만 홀짝였다.

다시 나를 보던 아버지도 할 말을 하려는 듯 계속 입술을 달싹이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찻잔에 손을 뻗었다. 어색하고 미묘하게 차가운 분위기에서 엘렌은 태평스럽게 테이블에 있는 과자에 손을 뻗었다.

딸칵. 앞에서 찻잔이 접시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찻잔을 내려놓은 채 착잡한 시선으로 내 옆자리를 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누구냐.”

“아이요? 아.”

아버지의 시선이 엘렌에게 못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황궁에서 그를 찾으려고 하는데, 아버지에게 그가 엘렌임을 밝혀도 괜찮을까. 이미 부모님은 어릴 적 엘렌을 알고 있었기에 알아차렸을지도 몰랐다.

“설마… 아들이냐?”

“콜록!”

차를 마시다가 사레가 걸린 나는 거칠게 기침했다. 엘렌이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들겼다. 해수가 멈추자, 나는 기침으로 인해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아니에요.”

빠르게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어머니 또한 말없이 고민 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오해를 하고 있던 사람이 하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당황한 얼굴로 엘렌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과자를 먹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저게 진심으로 물어본 거였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긴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딸이 어린애를 데리고 오면 그런 오해를 할 만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가 그런 오해를 할 거라 생각지 못해 더욱 당황스러웠다.

“잠깐 맡게 된 아이예요.”

“네가 아이를 맡아 준다고?”

나와 같은 색의 눈동자가 의심의 빛을 품었다.

“부양자가 너에게 얼마나 큰 돈을 쥐여주었길래 맡은 애를 여기까지 데려오는 거냐.”

“돈 때문이 아니라 불쌍해서 맡은 거예요.”

누굴 돈만 보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아는 건가.

“그럼 이 아이에게는 따로 방을 내어주겠다.”

아버지가 종을 흔들어 하인을 불렀다.

“이 아이를 손님방에 안내해라.”

“그러실 필요 없어요.”

“뭐?”

“그게, 분리 불안장애라서요.”

내가 그를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진위를 판별하기 위함이었다. 앞으로 내가 던질 질문엔 대답에 대한 진위를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내 변명을 들은 엘렌은 내 옆에 와서 찰싹 붙었다.

“누나랑 같이 있을래요.”

내 말에 신빙성을 주는 건 고맙지만, 거의 나를 껴안다시피 달라붙은 그에 당황스러웠다.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단순히 어린애가 치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 애가 어떤 이인지 알고 있는 나는 낯이 뜨거웠다.

저리 떨어지라고 눈짓했지만, 그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

이게 웬일이람. 내 이상한 변명에 이의조차 표하지 않고, 아버지는 마뜩잖은 얼굴로 하인을 물렸다.

시간이 흘러서 아버지도 많이 변한 걸까.

“…….”

나와 아버지는 조용히 시선을 교환한 채 입을 다물었다. 서로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지만,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원래부터 살가운 딸이 되지 못했고, 아버지도 다정한 아버지는 아니었으니. 이런 건 완전히 아버지를 닮은 듯해서 괜히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는 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네가 나처럼 고집불통 소고집이라는 건 알고 있지.”

그가 후, 한숨을 짧고 굵게 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황태자와 그 사이에 오간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질문했으나, 돌아온 대답에 말이 턱 막혔다.

기습적으로 공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적어도 아버지가 고집이 센 건 알고 계시네요.”

“그 버르장머리 없는 말대꾸도 여전하고 말이다.”

“타고나길 이렇게 타고났으니 포기하세요.”

내 퉁명스러운 대꾸에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희끗희끗하고 숱이 없는 아버지의 머리에 시선이 갔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어도 숱이 많았는데 그의 머리는 누가 잡고 뜯은 것처럼 휑했다.

“완전히 돌아온 거니?”

어머니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로위나 카시어스.”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들어간 힘은 미약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가문에 돌아오는 거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일단 눈앞에 벌어진 일부터 해결하고 난 뒤였다.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제 생사가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실대로 말씀해주세요.”

“…….”

“아버지, 황태자 전하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계세요?”

“모른다.”

“알고 계시는군요.”

떨어진 시간이 7년이라도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이상이었다. 아버지는 거짓말을 할 때 미간을 좁혔다. 엘렌은 내 몸에 달라붙은 채 내 등에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손가락으로 적었다. 거짓말임이 확실해지자 나는 이곳에 온 이유이자 본론을 꺼냈다.

“태자 전하한테 무슨 부탁을 하신 건가요?”

“나는 전하께 어떤 부탁도 드린 적이 없다.”

“아버지!”

내가 답답한 얼굴로 소리쳐도,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엘렌이 있어 아버지가 황태자에게 무슨 부탁을 한 것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가 왜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

“어머니는 알고 계세요?”

“……그것이.”

“알고 계시는군요.”

“로위나, 전부 널 위해서 하는 일이란다. 우리는 네가 위장 결혼으로 작위를 산 사실도 알고 있었어.”

“부인.”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질책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 라는 의미를 담은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눈빛에 점점 불안해졌다. 대체 어떤 부탁을 했길래 내 앞에서 숨기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날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러면 제가 황궁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어요?”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엘렌은 내 등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떤 부탁을 하신 건지 말씀해주세요.”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널 잘 봐달라고 했었다.”

한참 만에 아버지에게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구체적으로요.”

“네가 폐하의 음독 사건 용의자인 아일라 레니에의 후견자인 이상 혐의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

“그래서 그 혐의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요?”

“그래, 네가 카시어스 사람임을 밝히고 싶지 않았으니 뒤에서 간청을 드리는 방법밖엔 없었다.”

“부탁을 받는 대가는 이 모든 일에 눈을 감는 건가요?”

침묵은 동조나 다름이 없음을,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로위나.”

더욱 무거워진 분위기에 어머니가 안타까운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하아. 아버지가 절 그리 위해주시는 분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아직도 그 일을 원망하고 있느냐?”

아버지는 내가 동생에게 후계위를 위임해준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날카롭고 질책하는 말투와 다르게 어둡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 제가 한 말은 그 일과는 연관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는 완전히 돌아온 게냐?”

아버지는 어머니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나에게 다시 던졌다.

“두 분께서 솔직히 말씀해주신다면,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볼게요.”

“로위나!”

아버지가 노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버릇없이 구는 딸의 모습에 퍽이나 화가 난 듯했다. 하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가 그리 사라지고, 남은 이들은 행복했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 애초에 저는 두 분의 행복을 위해 사라져드린 거예요.”

대답에 한시의 고민은 없었다.

“뭐?”

“동생의 후계자 승계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으니 사라져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 사라진 거예요.”

“로위나!”

벌떡 일어난 아버지가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안절부절못한 시선으로 보며 창백히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라 믿기지 않을 만큼 힘없고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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