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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84화 (85/124)

84화

10년 전보다 새치가 많이 늘었고, 근심이 많았는지 자잘한 주름이 얼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에게서 은근한 기백이 느껴졌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내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었지만.

“네가 왜 여기에…….”

나는 옆에 있는 창문을 흘긋 보았다. 여기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도망이 아니라 자살 행위가 되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내 단호한 대답에 알렉산드로 대공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근엄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절로 분위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하며, 압박감이 들었다.

“로위나, 네가 지금 그 사건의 조사단장이라는 게 확실해졌구나.”

한참 만에 입을 연 알렉산드로 대공은 탄식처럼 말을 내뱉었다. 어감이 조금 이상했지만, 나는 일단 부정부터 하고 봤다.

“아니라니까요.”

눈에 투시경을 내재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한눈에 나임을 알아본단 말인가? 내가 빠르게 재반박을 했지만, 이미 그 안에서 결론을 내린 듯 그는 다시 한 번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세상에나!”

세월이 흘러 그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물론 그를 보는 내 미간의 주름도 깊어지는 듯했다.

‘아니라는 내 말은 들리지도 않나?’

예전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황태자의 사무실을 휘저어놓은 것부터 지금의 일까지 생각하면 엘렌이 무척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

지독한 정적이 응접실을 잠식했다. 나와 대공은 서로를 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대공은 마르그리트 부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로위나라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라 입을 열지 못하는 듯했다. 나 또한 다짜고짜 로위나냐고 묻는 대공에 당혹스러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소문이라도 퍼트리면 큰일인데.’

어쭙잖은 귀족이 소문을 퍼트리는 거면 차라리 헛소리라고 치부할 귀족이 많아서 굳이 해명할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만, 그 사람이 알렉산드로 대공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여기서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대공 저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필리아 마르그리트라고 합니다. 예기치 못한 방문으로 단장을 하지 못하여 가면을 쓴 부분은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손짓으로 응접실에 있는 하인들과 하녀들을 밖으로 물렸다.

그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나는 콧방귀만 뀌며 나가라고 열심히 손짓했다.

이윽고 응접실엔 대공과 나만 남겨진 채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나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이 밤중에 손수 방문하신 것을 보면 꽤 급한 용건으로 보이는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럼 로위나 카시어스가 아니라는 말이오?”

대공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별로 유감스럽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이분에 대한 이름은 들어보긴 했어요. 젊은 공녀께서…… 안타까운 일이었죠.”

“……말투나 목소리가 딱 로위나인데 그 아이가 아니라고….”

목소리는 몰라도 대체 말투가 나 같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혹시 결혼하기 전 성이 무엇이었소?”

“…벨리사였습니다. 부모님 모두가 상인이셨거든요.”

“그렇군요.”

내 간단명료한 대답에 대공은 그제야 의심스러운 낯을 조금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잔여물처럼 그의 얼굴에 의심이 묻어 있었다.

“대공 저하. 밤중에 오신 이유가 저에 대한 호구조사 때문일 리는 없으실 텐데, 이젠 용건을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하오. 아들의 친구와 많이 닮은 듯하여 나도 모르게 흥분했소. 내 그 아이를 참 예뻐했지.”

“그렇군요.”

말끝에 붙은 사족에 조금 마음이 안 좋았으나, 모른 척하며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대공은 조금 섭섭한 얼굴이었다.

‘원래 이런 분이었나.’

엘렌과 대공저에 갈 땐, 워낙 대공님이 바쁘신 탓에 얼굴 보기가 힘들어 어떤 분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대공저에 오래 머물러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줄만 알고 있었는데.

“대공자의 일은 유감입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먼저 그가 여기에 온 용건을 대신 말하였다. 기약 없는 잠에 빠진 엘렌을 이런 의도로 언급한다는 것이 내키진 않았지만, 언제고 이 이야기를 질질 끌 수는 없었다.

아들의 언급에 알렉산드로 대공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래요. 그 아이를 마탑 같은 곳에 보내는 것이 아니었지.”

그는 차갑게 일갈했다.

“하지만, 마탑에 보내지 않았더라도 이런 일을 겪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하오.”

“…….”

“이 일엔 여러 가지 의문이 남소. 왜 엘렌이 그런 일을 겪게 되었는지, 누가 그랬는지. 그것도 왜 하필 폐하의 사건이 일어난 날 발생한 건지. 그리고, 그 일을 신문사에 제보한 건 누구인지.”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이미….

“내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아내었지. 바로 그 사람이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이라고 하던데.”

“……제가 제보한 게 맞습니다.”

대공의 정보력은 굉장했다. 나 또한 카시어스 공작 가문을 나오면서 혹여나 아버지가 대공에게 나를 찾아달라 요청할까 봐 걱정할 정도였다.

다행히 엘렌이 자신의 아버지 앞에 여러 가지 연막을 쳐둔 탓에 들키진 않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소.”

대공의 녹색 눈동자가 나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기필코 대답을 들어야 하겠다는 듯이.

“그걸 들으시러 오신 건가요?”

“들을 이야기 중 하나긴 하오.”

나에게 할 질문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레니에 후작 영애를 가르치는 마법사예요. 마탑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마법사죠. 레니에 영애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인지라, 저 또한 그 마법사와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기회가 닿아 그 사실을 건너서 들었고요.”

“그럼 신문사에 제보한 이유는 무엇이오?”

아까보다 나를 보는 눈초리가 더욱 강해졌다.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여기에 직접 오신 만큼 거짓을 말하면 대공 저하께 큰 무례를 범하는 일이겠지요.”

“사실대로 말해주면 좋겠소.”

“저하께선 제가 운영하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아시나요?”

“귀족들의 중매를 서는 사업이라고 들었소만.”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 말을 마치면 대공에게 멱살이라도 잡히는 건 아닐지 심히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엘렌의 소식을 편지로 전할 수 없으니, 신문사에 제보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와 엘렌의 관계를 물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문사에 제보를 한 이가 나라는 것이 황태자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것도 없었다.

“많은 사람에게 홍보가 되면 될수록 이득이 많은 사업이랍니다. 그러면 신문사와 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 이유로 제보를 했단 말이오?”

대공은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질타를 받을까 무서워 애써 대공 저하의 방문을 피해왔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내 사과에 대공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적어도 그를 감싸는 분위기가 아까와는 달라진 것을 보면, 그가 분노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살벌하면서도 무거운 침묵 속에 나도 모르게 긴장 어린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두 번째로 싫어하는 이가 말로만 죄송하다는 이오.”

“죄송… 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그의 말을 상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 첫 번째로 싫어하는 이는 누구일까. 물론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 그럼 어찌하면 대공 저하의 화가 풀리실까요?”

유독 신분이 깡패인 사람들이 나에게 화를 내는 일이 부쩍 많은 듯하여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대공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내가 던진 말이 무언가의 도화선이 된 게 아닐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예상한 반응은 ‘그런 사과 필요 없소!’라고 하면서 대공이 자리를 박차고 불쾌한 낯으로 백작저를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리를 박차기는커녕, 그는 내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까 화를 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첫 번째로 싫어하는 이는 한 입 갖고 두말하는 이요. 그러한 짓을 하다간 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옥의 불바다로 만들 의향도 아주 충만하오. 마지막으로 묻겠소. 부인은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소?”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한 입 갖고 두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예, 예…. 채, 책임지겠습니다.”

굳이 대공이 만드는 지옥의 불바다가 어떠한 건지 알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면 내 하나 부탁을 하지.”

그 부탁이 제발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지금부터 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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