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제보하러 왔어요.”
후드로 얼굴을 가린 채 제국에서 유명한 신문사인 ‘나디아’를 찾아왔다. 내 수상쩍은 행색에 신문사 직원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물건 안 사요. 광고도 안 해요.”
“잡상인 아니에요.”
“보험도 안 해요. 보험광고도 안 해요.”
“보험 판매원도 아니에요.”
“그러면…….”
“아니, 제보하러 왔다니까?”
“네네, 그러시겠죠.”
나는 어쩔 수 없이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될 줄 알고 준비한 것이지만, 초장부터 대놓고 이런 수를 써야 할 줄이야. 슬금슬금 내 뒤로 다가오는 사람은 팸플릿을 잔뜩 들고 있는 걸 보아선 잡상인이 여기에 많이 오는 듯싶었다.
“돈도 안 받으려나요?”
짤랑거리는 주머니를 받은 직원은 말없이 일어나, 신문사 내실로 안내했다.
역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 * *
현금은 역시 효과가 좋았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황태자가 알렉스를 추궁하고 있는 진풍경이 일어나 있었다.
내심 황태자가 신문을 들고 사무실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입을 열었다.
“어머, 전하. 무슨 일이신가요?”
“사장님!”
나를 발견하자마자 알렉스가 구원의 눈빛을 보내었다. 황태자가 알렉스의 앞에서 신문의 내용에 관해 묻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좋은 아침이에요, 전하.”
“별로 좋은 아침은 아닌 것 같군요.”
그가 한숨을 내쉬며 내 책상 위에 탁, 신문을 내려놓았다. 착각일까. 왜인지 그는 황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화가 나고 난감한 표정이었다.
“이건…….”
나는 책상 위에 있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신문의 맨 앞장에 엘렌에 관한 이야기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하였듯 알렉산드로 대공가의 아들이자, 마탑주인 엘렌이 마물의 숲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왕이면 음독 사건까지 연루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제보자가 나로 특정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엘렌이 마물의 숲에서 발견된 날을 특정하여 신문사에 제보했다.
바로 황실 무도회가 열린 날로.
그날이 무도회였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무도회에서 벌어진 황제의 음독 사건을 알고 있을 알렉산드로 대공이 이 신문을 본다면 엘렌과 그 사건의 연관성을 의심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엘렌의 통찰을 알고 있는 사람이 대공 부부였으니까. 정황상 엘렌이 입막음을 당했다고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모른단 말입니까?”
황태자가 알렉스에게 재차 날카롭게 물었다.
“네, 네. 저, 저는 잘 모르겠는데…….”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는 얼굴로 알렉스는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그 얼굴로 이쪽 좀 보지 마!’
나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간 황태자한테 나까지 알렉스와 한통속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그게 사실이긴 했지만.’
“안셀모, 왜 이리 화가 나 있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베로니카 황녀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머.”
신문을 본 그녀가 입을 가리며 눈썹을 휘었다. 하지만 저 입을 가린 손 아래에 미소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황녀가 신문에 실린 엘렌의 이름을 보고 말했다.
“황태자비랑 자주 같이 있던 남자네. 젊은 나이에 안됐어.”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는 듯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말의 내용도 이상했다. 저리 말하니 엘렌이 죽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는가. 베로니카 황녀는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왜 나를 보세요……?
“부인, 잠시 저 좀 보죠.”
한참 미간을 찌푸린 채 고심하는 얼굴이던 황태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 사무실을 나갔다.
싸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약간 몸에 한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과거에 직장 상사한테 깨질 때, 분명 이랬었는데.
그 분위기를 나만 느낀 게 아닌지, 나를 보는 알렉스와 베로니카 황녀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날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황태자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황태자의 집무실에 들어간 나는 휘둥그레져 실내를 보았다.
황태자의 책상을 제외하곤 바닥이며 테이블이며 난장판이었다. 하얀 꽃병은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카펫은 그로 인해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 이게…….”
설마 황태자가 한 짓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황태자와 단둘이 있는 이 상황이 그리 썩 좋게 흘러갈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줄 몰랐는데.’
황태자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움찔 놀란 나는 무심결에 팔을 올리며 가드 자세를 했다. 그러자 앞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슬쩍 팔을 내리니 황태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한 짓이 아닙니다.”
“네?”
나는 그의 말에 완전히 팔을 내리고 당황한 얼굴을 했다. 황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종을 흔들었다. 그러자 시종들이 일사불란하게 방으로 들어와 난장판이 된 실내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럼 누가 이런 짓을 했나요?”
이대로 황제가 붕어하면, 황위를 물려받을 것이 유력한 황태자의 집무실에서 이런 난동을 부리다니 엘렌만큼이나 미친 사람일 게 분명했다.
“아까 신문을 봤다면 쉬이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설마…… 알렉산드로 대공님이 그러셨단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부모님을 따라 알렉산드로 대공저에 갔을 당시가 떠올랐다. 알렉산드로 대공은 엘렌의 아버지라고 믿기지는 않을 정도로 중후하고 품위 있던 모습이 꽤 인상 깊은 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여기서 깽판을 치고 갔다는 것이 가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믿기지가 않네요.”
“대공이 아들 사랑이 굉장한 사람이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
대공과 엘렌. 부자끼리 티격태격하면서도 대공이 내심 엘렌을 아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휘젓고 갈 줄은 몰랐다. 이게 바로 부전자전이라는 건가?
“그 결과. 이 조사단의 존재까지 알아내고 갔으니, 아마 곧 공녀에게 만남을 시도할지도 모릅니다.”
“저, 저를 왜요?”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이렇게 난장판을 만들고 간 사람이 나를 만나려고 한다니까 간담이 서늘해져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이 신문에 제보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가 곤란하길 원했다면 성공적이라고 전해주고 싶군요.”
그런데 왜 나를 보시는지요?
나는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는 양 입을 열었다.
“그 신문에 실린 내용이 사실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전하께서 곤란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리카르도의 말이 사실이라면 필연적으로 엘렌의 일도 황태자가 벌인 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떠보려는 의도로 꺼낸 말이라는 걸 황태자가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황태자는 내 말뜻을 파악하지 못한 듯싶었다.
“밝힐 필요도 없습니다. 가십 하나에 대공이 황궁까지 행차해 난동을 부릴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 아들에 그 아버지라고 해야 할지.”
황태자는 그답지 않게 비아냥거리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자신의 일터에 누군가가 횡포를 부리고 간다면 불쾌할 일이었다.
하지만 부전자전을 논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조금 걸렸다.
하지만 이어진 황태자의 말에 나는 그 생각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왜 대공이 이 소식을 듣고 황궁에 찾아온 건지 모르겠는데, 부인은 혹시 아는지요?”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대공은 강력히 이 사건이 황제와 연관되어 있을 거라 주장하더군요. 어쩔 수 없지만, 대공이 저리 강경하게 나오니 누구의 소행인지 조사하는 건 조사단장인 공녀의 몫으로 할당될 것입니다.”
“제 몫이요?”
당황한 내 얼굴에 황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의 귀한 아들이 마물의 숲에서 발견된 날이 하필 무도회 날이라는 것은 충분히 의심스러운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일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죠.”
“…….”
집무실 책상에 걸터앉은 그가 여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엘렌 알렉산드로가 이 일과 연관이 있다면, 귀족들의 반역일 가능성이 커지겠군요. 그리고 나도 연루가 될 터이고.”
그의 말에 나는 빨리 이 집무실을 나서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내 앞에서 꺼내는 의도를 종잡을 수 없었다.
‘아니, 의도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 모르겠어.’
그가 이렇게까지 직접 자신의 속내를 나에게 밝힐 줄은 몰랐기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그의 속내인지도 불분명하지.
말없이 입 다물고 있는 나를 향해 황태자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나를 위해 황제를 죽인다는 발칙한 발상을 떠올린 귀족을 색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의 말뜻을 파악한 나는 점점 얼굴을 굳혔다. 손안에 있던 온기가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그 색출 작업은 아마 내가 아닌, 황태자가 직접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일이 많이 커지겠군요. 로위나 카시어스.”
카시어스 가문을 지키고 싶다면, 엘렌과 이 사건의 연결점을 끊어버리라는 뜻이다.
나는 그의 말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가 이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참고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당신이 로위나 카시어스라는 사실을 모른 척할 것이니, 혹여 정체가 발각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카시어스 공작 가문에 이 일을 알리면, 나를 가문의 세작으로 몰아 가문을 위험하게 만들겠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