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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7화 (78/124)

77화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마탑 앞에 마차가 세워져 있길래 다가갔는데 갑자기 납치당했어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이람. 어느 세상에 황궁으로 납치를 하는 납치범이 있단 말인가. 나는 옆에 지나다니는 황궁 사람들의 시선에 알렉스를 구석으로 이끌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말해봐요.”

“정확히 황금색 마차가 마탑에 서 있길래 귀한 손님인 줄 알고 길 안내를 하려고 했거든요. 마탑이 구조가 꽤 어려워서.”

저번에 리카르도가 마탑을 방문했을 때 그를 안내한 것이 알렉스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가갔는데 갑자기 마차 문이 열리면서, 네가 알렉스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맞다고 대답하니까 갑자기 마차에서 검은 손이 툭 튀어나와 제 멱살을 잡고 그대로 끌려왔어요.”

“누가 데려온 건데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 누군지는 잘…….”

설마, 베로니카 황녀?

알렉스에게 잠시 여기에서 기다리라 하곤, 나는 급히 사무실로 돌아갔다. 리카르도는 없었고, 조사단원들은 바쁘게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베로니카 황녀는 책상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병법서?’

그녀가 읽고 있는 책 내용에 나는 잠시 하려던 말을 잊었다. 베로니카 황녀는 우아하게 책장을 넘기며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여기서 가장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게 퍽 부럽기까지 했다.

“전하, 단둘이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드디어 나도 선택받았구나.”

“네?”

선택받았다고?

내 의아한 시선을 받은 베로니카 황녀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책을 탁 덮었다.

“매일 공작이랑만 단둘이 대화하길래 섭섭했어요.”

매일 그런 적은 없는데. 그 말에 반박했다간 괜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말 없이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왠지 회의실이라는 용도를 망각한 것 같지만, 아무렴 어때.

베로니카 황녀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알렉스를 데려온 분이 혹시 전하인가요?”

“알렉스?”

먼저 자리에 앉은 베로니카 황녀가 흥미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걔가 누구죠?”

모르는 척이라고 하기엔 무언가 작위적인 데가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녀가 알렉스의 존재를 모른 척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제가 아까 공작님과 황녀님께 부탁드렸던 건 기억이 나실까요?”

“그래, 부인이 마법사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었죠.”

“맞아요.”

그건 기억하면서 알렉스라는 이름은 기억을 하지 못한다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면 그 마법사가 지금쯤 도착했겠네. 방금 사람을 보냈었거든.”

“아하…… 네?”

그녀의 말을 한발 늦게 이해한 나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다. 알렉스를 모른다면서, 그를 데려온 게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그 마법사가 알렉스인가요?”

“이름은 몰라요. 잊어버렸어. 알렉스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그렇군요.”

어떻게 여기는 정상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황태자도 그렇고, 황녀도 그렇고. 둘 다 무언가 많이 이상한 남매들이었다.

* * *

“알렉스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알렉스가 황궁 안에서 계속 떠돌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황태자의 집무실로 왔다. 최종적으로 허가를 내리는 사람은 황태자였으니….

‘내가 데려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가시방석인지.’

일이 이렇게 된 것엔 황녀의 책임이 컸다. 황제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황태자는 살짝 피곤한 안색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옆에 황태자의 보좌관으로 보이는 남자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저건 과거에 내가 철야 근무를 연속으로 나흘 넘게 했을 때의 얼굴과 같은데.

한편, 처음으로 황태자를 본 알렉스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황녀에겐 이야기 들었습니다.”

황태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르도안 공작도 와서 말하더군요.”

“공작님이요?”

“마법사를 한 사람 천거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이름이 알렉스 사무엘.”

“…….”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분명 리카르도는 외부인을 들이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었나.

“그 두 명이 이렇게 추천한 사람이면 굉장한 마법사인가 보군요.”

황태자의 눈빛에 흥미가 어렸다. 알렉스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나를 연신 흘긋 보며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차마 인맥빨로 추천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황태자의 말에 모호하게 대답했다. 알렉스는 더욱 당황한 얼굴로 부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못한 채 쩔쩔매고 있었다.

“제 조사단에 들어온 걸 환영합니다. 알렉스 사무엘.”

황태자의 허락이 떨어졌고, 아일라를 볼 수 있게 되었건만 이상하게도 알렉스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아마 여기에 온 걸 후회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황태자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과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마르그리트 부인-”

그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둘이 할 말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아, 네.”

내가 알렉스를 흘긋 보자, 시선을 눈치챈 황태자가 보좌관에게 눈짓했다.

“귀한 인재니 사무실까지 잘 데려다주세요.”

보좌관은 핼쑥한 몰골로 알렉스를 데리고 나갔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다정하군요. 처음 보는 사람까지 걱정할 여유가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합니다.”

이거 칭찬이야, 비꼬는 거야? 말투가 너무 태연해서 무심결에 감사하다는 말이 흘러나올 뻔했다.

“아니요, 제가 저러다가 죽……을 뻔해서요. 괜히 제 생각이 나서 걱정되었답니다.”

실수로 전생에 과로로 죽었다는 말을 꺼낼 뻔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습니다, 부인.”

황태자는 살짝 웃었다.

“그건 부인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군요.”

이거 나보다 더한 악덕 상사 아니야?

문득 황태자의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게 나네?

“공녀, 일이 바쁘니까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어제 카시어스 공작 부부가 황궁을 방문했습니다.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이 황궁에 일한다는 이야기가 공작 가문에도 닿은 모양이더군요.”

“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공녀가 일하는 사무실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그래서 전하께선 무어라고…….”

“아무리 카시어스 공작 가문이라도 조사단의 위치를 알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공녀가 논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무엇을요?”

“이 사건에 대한 다른 귀족의 개입 여부. 그리고 반역의 가능성.”

“…….”

“그건 카시어스 공작 가문도 배제할 수 없는 문제죠. 공녀도 이 점은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럼요.”

나는 떼어지지 않은 입술을 억지로 달싹였다. 우리 가문이 반역이라고? 그가 단정하듯 말하지도 않았건만 괜히 가슴이 덜컥거렸다. 황태자는 그런 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금색 눈동자엔 기이한 빛이 감돌았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진실은 공녀가 밝혀낼 테니까요.”

* * *

“어, 어떡해요.”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잔뜩 울상을 짓고 서 있는 알렉스를 데리고 회의실에 들어왔다. 나는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이 백번 이해가 갔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들어오겠다고 한 건 알렉스예요….”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흐렸다. 책임을 회피하는 내 말에 알렉스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에게 나는 아침부터 줄곧 궁금했던 의문을 꺼내었다.

“엘렌의 상태는 어때요?”

“그때랑 똑같아요.”

알렉스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모로 심경이 복잡한 듯 보였다.

“알렉산드로 가문에 연통은 넣었어요?”

“그, 그게… 아니요….”

“아니, 왜요? 그런 일이 있는데!”

당연히 알렉산드로 가문에 연락을 넣었을 것을 예상한 나는 그의 대답에 펄쩍 뛰었다.

“그게, 마탑주님이 깨어나셔서 이 사실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해서…….”

“그것 때문에 이 일을 함구한다고요?”

황당한 얼굴을 하는 나에게 알렉스가 작게 반발했다.

“사장님은 마탑주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그의 말에 진지하게 과거 엘렌의 모습을 떠올렸다.

“……손속이 무자비하긴 하죠.”

내 말에 알렉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소식을 전했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될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얼굴로 알렉스는 공포에 젖었다.

그, 그렇게 엘렌이 악당 같은 캐릭터였나.

“그래도 그런 소식을 비밀로 할 수는 없는데…….”

차라리 내가 가서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알렉산드로 대공 부부는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이걸 어떡한담…….’

가면이라도 쓰고 가야 하나.

저번에 어머니에게 들킬 뻔한 일을 떠올리면, 좋은 선택지가 아님은 확실했다.

“내가 연통을 넣을게요.”

“사장님의 이름으로요?”

“그, 글쎄요.”

지금의 마르그리트 이름으로 연통을 넣는다면 엘렌과 나의 관계에 대해 캐물을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알렉산드로 가문과 엘렌이 절연하다시피 해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지만, 여전히 대공 부부는 엘렌의 인간관계엔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당신 집 아들이 혼수상태라는 말을 전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럼 설마 제 이름으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알렉스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얼굴을 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렉산드로 가문이 이 사실을 알게 하는 다른 방법도 존재했다. 바로 신문사 제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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