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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5화 (76/124)

75화

알렉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엘렌이 그런 것에 신경 쓸 사람이었다면 부모님과 그렇게 싸우지도 않았고, 척을 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 버린 이상 언제까지고 알렉스에게 사건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알렉스가 화들짝 놀랐다.

“아, 아일라가요?!”

“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놀라서….”

예상한 대로 알렉스는 예기치 않은 이야기를 듣고 놀란 얼굴을 했다. 그래도 당장 아일라를 구하러 가자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무작정 떼를 쓰는 사람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그러면 마탑주님과 그 일이 관련된 걸까요?”

알렉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며 엘렌을 바라보았다. 마물의 숲에 있었다고 하니, 사지가 성한 것이 다행스럽기보단 진위의 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친 곳은 없는 거죠?”

외관은 멀쩡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저 꼴로 마물의 숲에 방치되어 있었다니.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 알렉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긴장한 낯빛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뭐예요, 설마 다친 거예요?”

“정말 마물들이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아서…. 다들 신기한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럼 다친 곳은 없다는 이야기군. 왜 사람을 놀라게 하고 그런담.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엘렌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그러나 요지부동인 그를 보고,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급히 알렉스에게 물었다.

“이러면 굶어서 죽는 거 아니에요?”

“생체 시계가 아예 멈추어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하시던데요.”

“그럼 이미 죽은 거 아니야?!”

깜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알렉스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의학적으로 생체 시계가 멈추었단 말은 사망 선고가 아닌가!

“사, 살아 있으니까 저는 살려주세요.”

“……미, 미안해요.”

알렉스의 혈색이 금방 푸르죽죽해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이게 저주 마법인가요?”

“콜록콜록, 넵.”

‘그렇다면 이걸 어떤 놈이 걸었을까.’

어쩌면 음독 사건과 연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엘렌을 보던 알렉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일단 저주를 푸는 방법부터 찾아야….”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정말 한 번 세게 때려보면 깨어나지 않을까요?”

“안 돼요!”

“그렇게까지 기겁할 일은….”

반발이 거센 그의 반응에 나는 치켜들었던 주먹을 어쩔 수 없이 내렸다. 그간 나에게 쳤던 장난을 곱절로 갚아줄 생각이었는데, 아쉽게 되었군.

“사장님, 저도 그 조사단에 들어가면 안 될까요?”

알렉스가 웬일로 비장한 표정을 한 채 나에게 말했다. 순한 인상의 그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나는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말했다.

“알렉스가요?”

“네, 마탑주님이 저렇게 되신 것에 그 일이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아서요.”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야기를 처음 들은 알렉스조차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을 보면 더욱 의심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네.’

엘렌에게 사무실로 납치를 당하거나 잔심부름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알렉스가 그를 챙길 줄은 몰랐다. 엘렌이 성격은 안 좋아도 인복은 있나 보군.

“그리고 거기 들어가면… 아일라도 면회할 수 있나요?”

알렉스가 뱁새눈으로 슬쩍 뜨며 내 눈치를 보았다.

‘역시 그게 목적이었어.’

“아마도요.”

알렉스의 의도가 조금 불순하더라도 아일라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또래 친구인 알렉스가 아일라를 만난다면,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될 터였다.

“하지만 알렉스가 들어갈 수는 없을 거예요.”

이건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알렉스는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

정말 누가 봐도 곤히 잠든 사람의 얼굴을 한 엘렌을 보니 입안이 썼다.

‘이것도 반란군의 짓일까.’

원작에서 반란군이 이러한 저주 마법까지 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이제는 책의 내용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건 반증이 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인맥은 십분 사용하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었다.

* * *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음 날 오전, 황궁의 사무실에 나보다 먼저 출근한 사람은 베로니카 황녀와 리카르도, 단 두 명이었다. 다른 조사단원들이 더 출근하기 전에 얼른 틈을 타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늦게 그걸 깨달은 둘은 서로를 뭉근히 바라보다 나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서 누구에게 말을 건 것인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듯한 시선이었다. 묘하게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고, 공작님이요.”

그러자 이상하게도 희비가 갈리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니, 대체 왜들 그러는 건데요.

옆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가자 리카르도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

“황녀님?”

리카르도의 커다란 몸 뒤에 꼬랑지처럼 땋은 금발 머리가 살짝살짝 보였다. 베로니카 황녀 또한 사무실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도 조사단원이잖아요? 일이 얽힌 얘기라면 나도 들을 의무가 있지.”

그녀는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리카르도가 그녀의 길을 막았다.

“단장의 명입니다.”

“그럼 방향을 바꾸면 돼. 황궁에서 벌어지는 풍기문란을 감시하기 위해서, 이런 명분으로.”

“……그, 그건 오해예요.”

정말 오해가 맞았지만, 내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왠지 앞장서서 내가 기정사실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말 좀 해보세요, 공작님.”

“오해입니다.”

정말 영혼이라곤 한 톨도 없는 해명이었다. 리카르도에게 작은 배신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를 흘겨보아도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오해인지 아닌지는 내가 보고 판단할게요. 어서 들어가요. 다른 단원이 오기 전에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니.”

눈치는 굉장히 빨랐다. 그 빠른 눈치로 이 상황이 오해라는 것은 왜 파악하지 못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카르도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는 이 상황이 못마땅하다는 눈빛을 하면서도 순순히 황녀를 막던 팔을 내렸다.

“마법사를 영입하고 싶다는 말이군.”

다짜고짜 본론만 내뱉은 내 이야기를 들은 리카르도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내가 허락할게.”

갑자기 황녀가 입을 열었다. 리카르도와 나는 자연스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하께서요…?”

“황궁에는 훌륭한 마법사들이 있어. 물론 내 휘하에도 여럿 있지.”

그녀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작은 물망초가 개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미소였다.

휘하. 일전에 리카르도가 말하던 황녀의 비밀스러운 지원군을 가리키는 말일 터. 그녀의 말에 리카르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작 가문에도 훌륭한 마법사는 여럿 있습니다.”

“우리 마법사는 날씨도 바꿀 수 있어.”

“공작가의 마법사는 산도 옮길 수 있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무슨 이런 걸 가지고 경쟁한단 말인가. 심지어 대화 내용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중대한 사실을 한 가지 놓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했다.

“왜들 안 물어보세요?”

“무엇을?”

“……?”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마법사를 데려오려는 이유는 안 물어보시나요?”

“그대에게 어떠한 생각이 있겠지.”

“마법사 하나가 무슨 대수겠어.”

꽤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가볍기만 했다. 중대한 사건을 다루는 조사단에서 이래도 괜찮을까요? 하지만 윗전이 그렇다는데 나도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사실 이미 데려오고 싶은 마법사가 있어요. 이 사건의 관계자죠.”

“…관계자?”

“용의자의 절친한 친구예요.”

아일라를 용의자라고 칭하는 것이 조금 따끔했지만, 이 순간은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그럴 만도 한 것이, 하필 아일라가 데뷔탕트를 치르는 날 사건이 터져버려서 알렉스에 대한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여기에 외부인을 데려오는 건 안 될 거야.”

책상에 턱을 괸 채 베로니카 황녀가 말했다. 용의자의 절친한 친구라고 해도 사건 관계자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 것이다.

부러 아일라를 용의자라고 말한 노력이 무색해졌다.

‘역시.’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알렉스를 여기에 데려와 몰래 엘렌에 관한 일을 조사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게 또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나 또한 장담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하지만 내가 안셀모에게 부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죠.”

리카르도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황녀를 바라보았다. 약간 거부감을 느끼는 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을 살필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파격적인 말에 조금 당황한 나는 물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그럼. 일단 알렉스라는 마법사를 데려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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