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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4화 (75/124)

74화

알렉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일주일 넘게 마탑주께서 돌아오지 않아서 선배들이 찾으러 갔었는데, 마물의 숲에서 쓰러지신 채 발견되었어요.”

“마물의 숲… 또 이상한 실험이나 하려고 들어갔나 보네요.”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거기서 실험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들킨 모양이었다. 하지만 알렉스가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흔한 일이잖아요. 왜 새삼스럽게 울려고 해요. 알렉스.”

“흐,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흔하지 않아요!”

알렉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 깜짝 놀랐네.

이성을 잃은 그는 자신이 얼마나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지적했다.

“지, 진정해요, 알렉스. 그런데 흔한 일인데 흔하지 않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요?”

* * *

알렉스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마탑까지 와 버리고 말았다. 사건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한데, 이런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면 재판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별일이 아니라면 알렉스를 대신해서 엘렌에게 쏘아붙여 줄 생각이지만, 한편으론 일주일 넘게 내 앞에 보이지 않은 것도 그답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지 않는다고?’

알렉스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보단 와서 직접 보라고 보채는 바람에 마탑에 오는 동안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이라면 내가 아닌 다른 마법사를 찾아봐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래도 굳이 알렉스가 백작저까지 발걸음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마탑에서 백작저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삯 마차를 주고 탔더라도 족히 2시간은 넘게 걸리는 시간이었다.

잠들어 있는 엘렌을 본 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옷을 빨기는 했는지 나와 만났을 때와 똑같은 옷이었다. 다행히 더럽게 무언가가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늘 보던 엘렌, 그의 모습이었다.

“아주 잘 자고 있네요.”

혹시나 다친 곳이 있을까 샅샅이 눈대중으로 훑어봤으나 다친 곳은 아예 없었다. 잠버릇이 고약한지 자신을 덮은 담요가 옆에 처참히 뭉개져 있었다. 내가 그에게 담요를 덮어주기 위해 손을 뻗는데 옆에 있던 알렉스가 기겁하며 내 손을 붙들었다.

“만지시면 안 돼요!”

“네?”

“만지시면 주, 죽을 수도 있어요.”

그 말을 하는 알렉스의 낯이 워낙 진지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흠칫 손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마물의 숲에서 발견했다면서요. 그럼 엘렌은 어떻게 옮긴 거예요?”

“저희는 마법이라는 게 있어서….”

알렉스가 다가와 소곤거렸다. 행여라도 이야기를 엘렌이 들을 것이 두려운지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애초에 마물들이 득실득실한 숲에서 자고 있는데 어떠한 마물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게 너무 소름이 돋아요.”

“…….”

마물의 숲.

리카르도가 통치하는 북부에 있는 숲이었다. 그는 제국에 마물들이 들어가지 않게 북부를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게도 마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마물의 공격은 특정한 패턴을 가진 것도 아니라 실제로 만나면 감에 의지해서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카르도조차 마물의 숲을 들어가지 않는다. 위험하기보다는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수많은 마물을 상대해야 하기에 무척 성가시고 번거로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물이 손끝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마물도 사람을 가려가면서 공격했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사장님은 느껴지지 않으세요?”

“뭐가요?”

“어, 으스스하고 섬뜩하고… 끔찍한 기분이요.”

“전혀요. 우리가 마물의 숲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보다 더한 게 우리 앞에 있죠.”

알렉스의 시선이 엘렌에게 닿았다. 그러고 보니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렉스는 실내가 추운 것도 아닌데 입술 색이 파리했다. 어디 아픈 거냐 물어도 고개만 저었는데, 엘렌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니.

“그러면 어떻게 깨워요? 만지지도 못하는데. 소리를 친다 해도 저 잠꾸러기가 꿈쩍할 것 같지도 않고.”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굳이 깨워야 하나 싶기도 했다. 본인이 일어나고 싶으면 그때 일어나지 않을까?

“일어나면 연락 달라고 말 좀 전해주겠어요?”

내가 그대로 돌아서 나가려고 하자, 알렉스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일어나지 않는걸요! 이대로 영영 일어나지 않으시면 어떡해요?”

알렉스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꽤 걱정이 많은 타입인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엘렌의 앞에 앉았다.

옆에 보이는 막대기로 그를 쿡쿡 찔렀다.

“그, 그런 짓을 하시면!”

옆에서 보던 알렉스가 기겁하며 나를 말렸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요? 엘렌을 만지면 죽는 게 맞아요?”

아무리 인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자신을 만지기만 해도 죽는 마법을 거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었다.

알렉스가 내 말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만져본 사람이 없긴 하지만. 스승님도 만지지 말라고 하셨고, 마물도 다가오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은… 헉, 사장님!”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나는 엘렌의 머리를 덥석 잡았다. 일주일 동안 밖에 있다는 사람치곤 기름기 하나 없이 말끔하고, 부들부들했다.

“야, 일어나.”

만지다 보니 부드러워 중독성이 있었다. 엘렌의 머릿결이 이렇게 좋은 줄은 처음 알았다. 일어나면 어떻게 관리하는지나 물어볼까?

옆에서 알렉스는 히익, 거리며 간헐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는 건 나였다.

“그럼 나는 여기에 왜 데려온 거예요?”

만지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내가 깨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사장님은 마탑주님의…….”

“엘렌의… 뭐요?”

“치, 친구니까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친구라고 다를 거 있나요? 자는 사람을 깨우는 방법이면 때리면 되죠.”

나는 엘렌의 뺨을 아프지 않게 살짝살짝 때렸다. 아이 못지않게 매끈하고 보드라운 뺨이었다. 이것도 어떻게 관리하는 건지 물어봐야겠다.

“이 정도로는 안 되려나.”

나는 도구를 활용하기로 십분 마음을 먹으며 알렉스에게 물었다.

“혹시 몽둥이 같은 거 있어요?”

“네! 네?”

깜짝 놀라는 알렉스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농담이에요. 근데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어, 없어요.”

알렉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평범한 방법으로는 깨지 않을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저주 마법 같은 거에 걸린 것 같아서…….”

그가 슬금슬금 내 얼굴을 보더니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가 뭐라 말하는지는 똑똑히 들렸다. 중얼거리듯 말해도 나에게 들리게끔 말하는 것이 의도가 다분했다.

“동화 같은 데 보면… 숲에서 잠든 공주가 왕자님의….”

“자, 잠깐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그의 말을 멈추었다.

“농담이죠?”

“그렇지만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봐도 일어나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기다려봐요.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정말 엉뚱하기 그지없는 발상이었다.

“그러다 영영 일어나지 않으시면요?”

다시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엘렌이 잠이 깊게 들어 일어나지 않는 것과 내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엘렌, 엘렌! 일어나서 옆에서 널 걱정하는 갸륵한 마법사 좀 안심시켜봐!”

“…….”

그의 귀에 가까이 대고 소리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제야 그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역시 영락없이 곤히 잠든 모습이건만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선득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알렉스의 반응과 그가 했던 말 때문에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이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주 마법이 특기인 애가 되려 저주 마법에 당할 수도 있나요?”

“물 마법사라고 해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그거랑 이거는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내 중얼거림을 듣고 알렉스가 뭐가 이상했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타이밍이 공교로워.’

황제의 음독사건 이후, 그는 무언가 짚인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사라졌었다. 정말 수상쩍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날 데려온 이유는요? 진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우러 오란 건 아닐 테고.”

“마지막으로 마탑주님의 모습을 본 게 사장님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무언가 알지 않을까 싶어서 불렀는데….”

갈수록 알렉스의 목소리가 자신을 잃고 잦아들었다.

“……글쎄요. 한 가지 짚이는 거라면 있어요.”

내 말에 알렉스는 반색했다. 그리고 이어진 내 이야기를 들은 알렉스는 나처럼 고민에 빠진 얼굴을 했다. 종내 그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마탑주님이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가질 분이 아닌데… 그게 설령 황제 폐하의 일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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