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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3화 (74/124)

73화

귀족들의 반역.

내가 한 말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을 뜻한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물며 황태자인 그가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가 물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귀족을 발고하려면 증언뿐만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 겁니다.”

“발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리고 싶을 뿐이에요. 저희는 정치적인 부분과 관계없이 폐하를 음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던지고, 차를 마시는 척하며 그의 얼굴을 면밀히 살폈다. 경계심이나 다른 이상한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작은 그늘 안엔 걱정과 피곤이 뒤엉켜 있었다.

오히려 수상하기로 치자면 내 쪽이 더 수상할 것이다. 애써 여상한 얼굴로 포장하지만 외려 이런 행위가 더 수상하게 보일 것임을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와 대담할 때부터 방금 전 리카르도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황태자 쪽 사람들이 있었지.

리카르도의 말이 없어도 수사 과정에서 사건에 있던 귀족들을 조사하는 일은 빠질 수 없었다.

지극히 타당한 일이고, 필연적으로 거칠 과정이지만, 이미 리카르도의 말을 들은 후라서 그런지 그 행위가 곧 황태자를 조사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을 씻어버릴 수 없었다.

복잡한 내 속을 전혀 알지 못하는 황태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살펴보는 것이 옳습니다.”

나는 그렇게 깔끔하게 허락을 얻어낸 뒤, 아일라가 있다는 귀빈실로 시종의 안내를 받아 걸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허락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은 못 했는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황태자가 나와 아일라의 만남을 막아설 이유가 없기는 했다. 그런데 왜 그가 순순히 허락한 게 이다지도 찝찝한 걸까.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진 사이, 앞에서 안내하던 시종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입니다.”

시종은 부를 일이 있다면 귀빈실 안에 있는 당김줄을 당겨달라고 말한 후,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문에 노크를 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일라였다. 괜히 찡한 마음이 들었다.

“사, 사장님!”

문을 열고 온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아차리자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일라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조금 초췌하지만, 외관으로만 보면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다행인 일이지만 내가 발견하지 못한 학대가 있었을까 싶어 급히 그녀의 상태를 물었다.

“아일라, 괜찮아요? 누가 손대거나 한 건 아니죠?”

“네…… 저는 괜찮아요.”

아일라는 그리 말한 후, 입을 꾹 다물었다. 지난 일들이 떠올랐는지 그녀의 얼굴에 우울한 안개가 짙게 깔렸다. 다친 곳은 없어도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황제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모함을 받은 상태인데 어느 누가 태연할 수 있을까.

외려 아일라는 내 예상보다 꿋꿋하고 차분했다.

“소식 들었어요. 사장님이 조사단장이 되셨다고…… 그게 정말인가요?”

“맞아요, 그래서 내가 아일라를 보러 올 수 있던 거예요.”

“사장님, 저는, 저는 아니에요!”

언제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냐는 듯 아일라의 눈망울이 크게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나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녀는 내가 그녀를 용의자로서 신문하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간 다른 이들에게 범죄자 취급을 받아온 게 쌓였는지 그녀는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연회 때 그놈들한테 와인 한 바가지라도 뿌리고 오는 거였는데! 흐어엉!”

그녀는 울고 불며 한탄을 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과거일까지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그녀가 어떤 수모를 겪어 왔는지 활자로는 익히 읽었으나,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원작에서 리카르도와 결혼한 후, 아예 레니에 가문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이런 앙심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게, 오히려 그들이 신경이 쓰여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었다. 위로는 나중에 그녀가 완전히 구제된 뒤에 해도 늦지 않았다.

“…아일라. 여기 앉아보세요.”

“흐어, 흐어엉.”

울먹이면서도 그녀는 내 말에 고분고분 테이블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들고 온 책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겉에는 사건 자료집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약초학에 관해 적혀 있는 전문서적이었다.

나는 작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한번 읽어볼래요?”

내가 하는 행동을 울먹이는 눈으로 지켜보던 아일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고 책을 받아든 후, 읽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흐르자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마르며 이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다양하게 그려진 약초들의 그림과 상세한 설명을 눈으로 읽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이 책은 왜…….”

나는 입가에 검지를 대며 말했다.

“쉿, 아직은 비밀이에요. 여기에 얼마나 사람이 자주 들르나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 아일라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세안, 목욕할 때 도와주는 시녀들이 오거나 식사를 챙겨주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외엔 거의 없어요. 그리고 가끔 저를 취조하러 온 사람들이 있는 것 빼고는….”

조사단장을 맡는 조건 중에 하나로 아일라를 귀빈실로 옮겨달라는 것도 있었으나, 수발까지 드는 시녀까지 붙여진 것은 조금 의외였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 되나요?”

“하루 중에 대부분은 혼자 있어요……. 밖에 호위병이 있지만, 취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올 때를 제외하고는 안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요.”

그녀는 씁쓸하고 고독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을 혼자 감내하기는 힘들었으리라.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으나 나는 그녀에게 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어쩌면 이미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아일라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해요.”

“……네, 그런 것 같았어요.”

늘 아름답고 찬연하게 빛나던 금색 눈동자가 어둡게 침잠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저를 보면 반응이 다 비슷하거든요. 저처럼 젊은 여자가 황제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 두려운가 봐요.”

“아일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나는 밀려오는 한숨을 참았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조사해야 할 조사단원들마저 암묵적으로 아일라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일라도 여기에서 가만히 앉아 위에서 내려지는 판결만 기다리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는 그녀의 품에 아까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책을 안겨주었다.

“혼자 있을 때, 이걸 한번 공부해볼래요? 다만 이걸 공부하는 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해요.”

당황한 아일라를 두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일라가 폐하가 섭취한 독의 배합법을 알아내 주었으면 해요.”

나는 그녀에게 독에 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건넸다. 사실 직접 독이 담긴 와인을 가져오고 싶었으나 만약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한다면 아일라는 변명할 새도 없이 범인으로 확정 지어질 것이다.

서류를 본 아일라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변했다. 살짝 미소를 지은 채 나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비밀 공조 수사 같은 거예요.”

* * *

‘갈 길이 멀다.’

퇴근 후, 마차길에 오른 나는 창문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일라에겐 내가 그녀를 위해 조사단장이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격으로는 자신이 민폐를 끼쳤다며 울상을 지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

백작저에 도착하자 저번과 같이 익숙한 더벅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알렉스?”

“사장님!”

“이번에는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안경은 어쨌어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한달음에 걸어오는 그를 두고 물었다.

“안경은 제가 또 깨트릴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긁적이며 헤실 웃었다.

“깨지면 또 사면 되죠.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내 질문에 그는 우물쭈물 말하기를 꺼렸다. 하고 싶은 말이 조금 비밀스러운 이야기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백작저 안으로 이끌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응접실에 도착한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좀 내밀어볼래요?”

“네? 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곤 기함했다.

‘완전 얼음이잖아.’

저번처럼 안에다 저가 왔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소심하게 밖에서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있는 하인에게 벽난로에 있는 불을 더 강하게 지피라 하곤 알렉스에게 말했다.

“알렉스, 내가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말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어요?”

“그러면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려고…….”

그도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 줄은 알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한 톨의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는 건가?’

설마.

불현듯이 스친 생각에 입이 말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알렉스의 얼굴을 살폈다.

아일라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지면서 그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우려와 동떨어진,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장님, 마탑주께서 깨어나시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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