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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2화 (73/124)

72화

나는 행여 단원들이 발견할까 사무실이 아닌 회의실 안에 넣어둔 약초학 책을 꺼내었다. 그것을 본 리카르도가 말했다.

“독에 관한 배합법의 연구는 궁내의들이 하고 있지 않나?”

이 책을 보자마자 배합법과 바로 연결하다니, 사고가 놀라울 만큼 빠른 남자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맞아요”

“의외군. 반란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뜨끔.

처음 그를 부른 이유가 그러한 의도긴 했다. 하지만 뜻밖에 그가 사과를 건네자 내 생각도 바뀌었다. 하물며 언제까지나 나 혼자 배합법에 관한 사실을 숨기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일라를 만나고 싶어요. 방법이 있을까요?”

원작대로 그녀가 배합법을 알아내게 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희망이 있는 일이었다. 리카르도의 눈썹이 올라갔다. 의문 어린 그의 눈빛에 나는 입을 달싹였다. 지금 사실을 말해?

“어쩌면 그녀가 배합법을 알아낼 수도 있어요.”

“…….”

리카르도는 잠시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외려 나는 이러한 차분한 반응에 고마워해야 할 입장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미친 사람으로 보았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진 알고 있나?”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오필리아.”

리카르도의 표정이 더욱 진지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흘긋 문에 시선을 던지고 그는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어 말했다.

“지금 그대는 레니에 영애가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발언과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니에요! 나는 그런 의미로…!”

당황스러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빽 나왔다. 리카르도는 급히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차갑고 거친 손이 내 얼굴을 감쌌다.

차가운 온기가 열이 오른 얼굴에 닿자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 떨렸다. 시원한 시트러스 향이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균형을 잡지 못해 그에게 안겼던 때가 떠올랐다.

서로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기에 자신들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고 바짝 굳어 있었을 때였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벌컥.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닫혔다. 문에서 등을 지고 있는 리카르도는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누가 문을 열었는지 알았다. 베로니카 황녀였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란 법이 있나. 참 곤란하게 되었다.

“…으으음(손 좀 떼어주실래요).”

“…실례했군.”

리카르도가 천천히 손을 떼었다. 그의 귓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내 얼굴도 그와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필사적으로 얼굴에 오른 열을 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신체 반응이라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되는 계기만 되었다.

민망한 침묵을 깬 건 리카르도였다.

“방금 일이 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베로니카가 그런 일을 하고 다니는 성정은 아니니.”

“……그렇군요.”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능력이나 마법을 쓰지도 않았는데 리카르도는 문 너머의 목격자가 누군지 단숨에 파악한 듯했다. 검사로서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그런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부러운 능력이었다.

그러나 방금 들킨 장면은 어떤 해명을 하든지 간에 변명이나 핑계로 보일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장면이긴 했다.

‘누가 봐도 불륜처럼 보이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낯이 뜨거워졌다. 표면상이라지만 오필리아는 유부녀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리카르도의 말 중에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베로니카.’

그는 그녀를 부를 때 황태자처럼 격식을 갖춘 호칭을 붙여 부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베로니카와 리카르도 또한 사촌지간이었음을. 그리고 베로니카와 리카르도가 은근히 닮았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런 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혹시 공작님, 전하랑 많이 닮았다는 소리 안 들으세요?”

나는 내 머릿속에만 돌던 생각을 툭 밖으로 내뱉었다. 내 물음에 리카르도가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어느 쪽을 말하는 거지? 아니다.”

리카르도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든지 듣고 싶지 않군. 선택지가 둘 다 별로야.”

어느 쪽이 되었든 둘 다 그에겐 좋은 이미지는 아닌 듯했다. 웬만한 사람에겐 무감한 그가 저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했다.

‘둘 다 그 정도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나는 황태자와 황녀를 떠올렸다. 둘 다 인물만큼은 미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고혹적이었다.

하지만 황태자의 소문은 좋지 않았다. 여러 소문이 있었으나 특히나 나쁜 소문에 이바지하게 된 건 여성 편력이었다. 그의 권력이나 조각 같은 용모 때문에 영애들과 부인들은 그의 소문을 알면서도 다가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와 만난다는 건 명예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한편, 황녀는 워낙에 베일에 싸이다시피 한 사람인지라 이렇다 할 소문 같은 게 없었다. 있어 봤자 그녀는 아침 세수를 비싼 성수로 하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출처가 확실하지 않아 진짜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럼 공작님께서는 황녀님도 신뢰하지 못하나요?”

“……글쎄. 신뢰가 쌓일 정도로 돈독한 사이는 아니다.”

모호하게 말을 흘려보내는 그의 말에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태자 전하랑 황녀 전하 둘 중 한 명만 믿어야 한다면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처음 만나보는군. 꼭 선택해야 하는 건가?”

그는 생전에 맛보지 못한 괴이한 음식을 먹는 얼굴로 대답하기를 꺼렸다. 그런 표정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외모가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계속 입을 다문 채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뒤늦게 그에게 큰 실례를 범했다는 걸 인지했다. 한 나라의 공작에게 태자와 황녀 중 한 명을 고르라는 질문이었다. 그건 기실 황제 또한 하질 못할 민감한 질문이었다. 한편으론 쉽게 베로니카를 택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대답이 길어지는 이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여튼 실례를 범한 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기에 나는 빠르게 사과를 건넸다. 리카르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럴 의도로 질문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다. 베로니카에 관해 궁금한 게 있나?”

그는 내 마음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라도 한 듯 핵심을 찔렀다. 머쓱한 얼굴을 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동안 큰일은 없었다. 근래 황태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석이 된 황제의 공무를 도맡아서 하느라 바쁜 듯했다.

일주일 동안 황녀는 자신에게 할당된 일을 조용히 하고 있었으나 외려 그 모습이 부조화를 이루었다.

“이번 일은 그녀다운 행동은 아니었지. 굳이 폐하의 사건을 다루고 싶다면 그녀의 휘하를 이용하면 되었으니.”

“휘하요?”

“마리어스와 같은 조직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그보단 더 은밀한 조직이고, 그들이 수행하는 것도 비밀리에 진행되는 게 많지.”

“……!”

그녀에게 이러한 게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다. 원작에선 다른 나라로 시집이 보내지기 때문에 그런 조직을 휘하에 두었으리라고는 더욱 예상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제 슬슬 황태자가 즉위하자마자 그녀가 시집을 간 것이 우연이 아닌, 누군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이 사건은 완벽히 반란군의 소행으로 밝혀져야 했다. 그래야 아일라를 구명할 수 있는 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일라는 아무것도 모르고 반란군의 계략에 빠진 선량한 영애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황태자가 개입한 문제라면 훨씬 복잡해진다.

“정말 아일라를 만날 방법은 없는 걸까요?”

“명분이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대는 조사단장이 아닌가.”

리카르도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말했다.

“용의자로서 신문하면 되지 않나?”

* * *

나는 피곤한 안색으로 찻잔을 드는 황태자를 보며 괜히 입안에 고이는 침을 한번 삼켰다. 지금 이곳은 그의 집무실이었다.

“이런 일에 하나하나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겁게 시간을 끌던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담백한 어조였다.

“그러면 제 임의대로 해도 된다는 말씀인가요?”

“조사단장은 부인입니다. 거기에 함의된 권한은 장식이 아니죠.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네?”

“아일라 레니에에 관한 신문은 이미 끝나서 보고서로 올라간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신문을 할 필요성이 있습니까?”

그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로선 당연한 물음이었다. 나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준비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수월하게 입이 열리진 않았다. 막상 그를 마주하니 이상하리만치 손에 땀이 흘렀다.

“네, 보고서는 잘 전달 받았으나 보충할 정보가 있어서요. 그 부분은 제가 직접 신문을 할 예정입니다.”

“보충할 부분이라면?”

그가 손을 까닥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긴장감을 애써 감추며 입을 열었다.

“다른 귀족들의 개입 여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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