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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71화 (72/124)

71화

“미쳤다.”

백작저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발버둥을 쳤다.

거기서 정말 나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나가라는 말을 하고, 처음으로 본 리카르도의 당황한 얼굴에 오만가지 잡생각이 스쳤다. 조금 후회가 일었다.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고서 그 말 한마디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런 말을 내뱉어버렸다는 것이.

그가 조사단을 나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그대로 조사단을 나가버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안 되는데.’

그가 아일라를 구할 의지가 없다고 해도, 리카르도는 유일하게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황태자는 수상했다. 자연스레 그가 만든 조사단의 단원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베로니카 황녀는…….’

모르겠다.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은 시시때때로 선득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건 리카르도도 마찬가지지만.’

아직은 베로니카 황녀에 관해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기회만 있다면 그녀가 의무실에서 했던 말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왜 황태자와 얽히지 말라고 했던 걸까. 불현듯 리카르도가 사건 당시를 설명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일라에게 접근한 사람들이 황태자 쪽 사람들…….”

우연일 수 있지만 그게 우연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미묘하고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황실 연회인 만큼 황태자 쪽 사람들이 초대를 많이 받았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황제를 음독한 배후가 황태자라면.”

그런 가정을 한번 세우고 황태자가 황제를 죽일 만한 동기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있을까.

‘……동기는 너무 명확해.’

자식이 부모를 죽일 일은 거의 없지만 그들이 황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태어날 때부터 숱하게 공부해 온 역사서에서도 황권 다툼은 늘 빠지지 않았다. 제국의 권력이 막강하면 막강할수록 황위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현재는 클로비스 제국이 전성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주변 국가들이 무시하지 못하는 강국에 속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독에 당했다고 범인을 친아들로 바로 의심하는 상황도 그리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누굴 생각하는 거야.’

지금은 감성에 젖어 황태자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진지하게 리카르도의 말을 되짚어봤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면 할수록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는 아득한 느낌이었다.

“머리 아파….”

원작이 틀어진다고 이런 사건의 범인까지 달라질 리는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조사단장의 자리를 고민 없이 받아들인 것도 있었다.

지금 벌어진 사건이 정말 황태자 쪽 소행이라면 원작에서도 그렇게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선 반란군의 소행으로 일단락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 종류의 사실은 원작이 틀어졌다고 변할 리 없었다.

정말로 그런 걸까.

누구도 그러한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황태자는 아니어야 해.’

본심은 황태자가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만일 황태자가 배후에 있다면 사건은 너무 복잡해지고, 해결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게 된다.

그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한 조직을 만든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건 곧 우리는 황태자의 연극을 장식하는 꼭두각시라는 말이 되었다.

그러면 그는 왜 아일라를 감옥에 넣고, 나를 조사단장으로 세웠단 말인가?

단순히 이용하기 쉬운 위치에 있으니까?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한 가지 의문을 품자 똬리를 튼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의문들은 뭐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하아… 잠이나 자자.”

아직 두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내 우려와 다르게 리카르도는 꾸준히 조사단의 사무실에 출근했다.

하지만 단둘이 사무실에 남으면 서먹하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 순간마다 나는 리카르도에게 사과할지 말지 갈등했다.

사과한다면 그때 나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리카르도도 자꾸 내 시선을 회피하는 게 계속 그 일을 떠올리는 듯싶었다.

나는 애써 리카르도와 있던 일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며 말했다.

“반란군의 행적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사건 조사는 반란군의 행적을 좇는 방향으로 착수되었다.

이 방향이 맞는 건지 며칠을 고민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음독 사건 이후 완전히 종적을 감춘 상태지만, 언제까지나 숨어 있을 수는 없으니 제도의 순찰을 강화하여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다면 즉각 보고하게끔 조치했습니다.”

“안 돼요. 그건 너무 늦어요.”

두 달 안에 그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렇게 황제의 음독 사건이 벌어진 뒤였다.

아무리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라지만 일을 치른 당사자들이 모를 리는 없지 않은가.

손 놓고 반란군의 일당이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어떡할까.’

나는 사무실 안을 훑어보았다. 내부에 반란군의 자취를 조사할 인원을 따로 뽑아야 할 것 같았다.

“……공작님, 잠시만 우리 대화 좀 나눌까요?”

나는 리카르도에게 그리 말하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가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나와 리카르도 사이에는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회의실에는 의자가 많이 있었으나 나와 리카르도는 둘 다 멀뚱멀뚱하게 서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람.’

이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마치 어린애가 친구랑 싸워서 토라진 꼴 같지 않은가.

“저…….”

“미안하다.”

수십 번을 망설인 끝에 먼저 입을 열었던 게 무색하게 리카르도의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늦게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인지하고 그를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올곧은 푸른 눈동자는 나만을 담고 있었다.

‘리카르도가 사과했어?’

믿기지 않았지만, 이 상황은 리카르도가 나에게 사과한 게 맞았다. 원작을 통틀어서 그가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사과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1년 넘게 보아온 나도 그가 이런 일로 사과를 건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대와 레니에 영애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그의 사과에 당황스러웠지만, 더 나를 당혹게 만드는 건 그가 사과하는 태도였다.

흡사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가 전장에 나가는 듯한 태도였다. 이게 그렇게까지 비장하게 사과해야 할 일이었던가?

그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그날 내가 모르는 큰 사건이 있었나 싶었다.

‘내가 예상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제가 말이 좀 심했어요. 공작님.

-앞으로 조심하면 좋겠군.

-네, 앞으론 조심할게요. 호호호, 우리 화해한 거죠?

대충 이러한 여러 개의 각본을 머릿속에 짜서 들어왔으나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러 개 만든 각본 내용에 리카르도가 먼저 사과를 하는 장면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더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한 가지 더 깨달았다.”

“…….”

그도 나름대로 혼자 많이 고민한 기색이었다. 언제까지고 그의 사과에 놀라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하물며 그가 이렇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생소했다. 그에게 이런 섬세한 면도 있었다니, 그걸 새롭게 알게 된 기분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한부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영애에게 형장에서 죽을 날만 받아놓고 기다린다는 건 누가 봐도 비극적인 일이지.”

“!”

“그대는 그녀가 적어도 편안한 곳에서 눈을 감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대, 대체 왜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거죠. 나는 바짝 굳어버리고 말았다. 나를 유심히 보던 리카르도의 눈빛에 의아함이 서렸다.

“내가 또 말실수를 했다면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하는군. 이런 거에 익숙지 않아서 말이다.”

“아, 아니요. 오히려 제가 실수를….”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핏 본심을 비추고 말았다. 나는 급히 말을 돌렸다. 여기서 아일라에 관한 거짓말을 밝힐 수는 없었다. 언젠간 밝히더라도 지금은 너무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과연 그걸 밝힐 최고의 타이밍은 언제쯤 올까.’

거짓말의 꼬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업보가 쌓여가는 기분이다.

“그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요.”

“아니, 그런 말을 먼저 꺼낸 내 잘못이다.”

“아니에요. 제가 말이 심했….”

왜인지 경쟁하듯 말을 하던 나는 중간에 멈추었다. 어쩐지 이 대화가 끝나질 않을 것 같았다.

“풋.”

결국 아까부터 내내 참아왔던 웃음이 터졌다. 일주일 동안 그가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던 이유가 사과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가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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