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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69화 (70/124)

69화

“잘 부탁해요.”

베로니카 황녀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 손을 맞잡았다. 베로니카 황녀는 루체와 에스터에겐 눈인사로 인사를 대신했다.

‘첫날부터 난리도 아니네.’

결과만 보면 황태자비는 입단에 실패했으나, 황녀는 성공했다. 유유자적 사무실에 앉은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이 말을 잊고 있었다는 듯이.

“고마워요. 단장.”

* * *

“두 사람 다 입단할 수 없어요.”

나는 두 사람 다 입단시킬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일갈했으나 보기 좋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저기요, 저 여기 있는데요?’

무감한 표정으로 자리에 말뚝을 박아버린 황녀.

그리고 그녀의 등장으로 기세가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히 맹렬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바라보는 황태자비.

그 어느 쪽도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럴 거면 여기서 그러지 말고 황태자랑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던가.

황태자가 베로니카 황녀에게 말했다.

“여긴 내 관할 조사단이야. 어리광은 그쯤 해둬.”

“어리광?”

황태자의 말에 베로니카 황녀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종이 인형처럼 무미건조한 행위였으나 그래서 더욱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어리광으로 보이니?”

그러나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만큼은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선명하게 띠는 감정은 분노였다.

‘제발 남매 싸움하려면 나가서…….’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에 쌓인 일은 산더미인데 언제까지 이런 의미도 없는 일에 붙들려 있어야 한단 말인가.

‘오늘은 야근 확정이다.’

루체와 애스터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황실의 인재도 야근은 그리 달콤하지 않은 듯했다. 이런 거에 동질감 같은 거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은 더욱 극으로 치달았다.

에테르나도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황소 같은 기세로 사무실에 들어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폭주를 잠재울 특효 처방제는 황태자가 아닌, 베로니카 황녀였던 듯했다.

“고티에 황녀, 오늘은 돌아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황태자가 서늘히 말했다. 황태자비는 그 말에 반발이 가득한 눈빛이었으나 베로니카 황녀를 흘긋 보고 나가버렸다. 그걸 본 황태자가 베로니카 황녀에게도 말했다.

“우리도 이만 나가지.”

그 말에, 도리어 그녀는 비어 있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보였다. 뻔뻔한 태도였으나 순순히 나가면 그것이 더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황녀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베로니카.”

“싫어.”

베로니카 황녀는 툭 내뱉고, 일어날 의사가 없다는 듯 의자에 더 몸을 깊숙이 기댔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연회에서 본 그녀가 떠올랐다. 모든 권한이 황태자에게 일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함에 빠진 그녀의 모습이.

의무실에 남아 있던 것도 그걸 남에게 보이기 싫어 그런 게 아닐까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황녀가 나에게 경고했었지.’

-무슨 일로 얽혔든 정리하는 게 좋아요.

황태자와 얽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무슨 의미로 한 건지 묻고 싶었다.

한편, 황태자가 얕게 한숨을 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부인. 한창 바쁜 시간에 이런 폐를 끼치게 되었군요.”

“괜, 찮습니다.”

별로 괜찮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가장 바쁠 시간이 이맘때였기에 어서 서류를 분류하고, 조사 계획을 짜야 했다. 서류 분류까지는 그렇다 쳐도, 조사 계획을 세우는 건 시간이 꽤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한 사람을 타깃으로 잡고 뒷조사를 하는 건 중매 일을 하면서 익숙했지만 사건 전체를 아우르는 조사를 해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짐짓 배려하는 양 나에게 사과를 건네온 황태자의 말은 결국 황녀, 베로니카를 향한 것이었다.

정작 베로니카 황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 자신 앞 책상 위에 놓인 펜대를 손안에 굴리고 있었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만 괜찮으시다면 황녀 전하께 입단을 승인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황태자는 물론이거니와 루체와 애스터까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베로니카 황녀도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황태자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까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생각이 바뀌었군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이 분위기.

황녀를 입단시키지 않으면 안 될 큰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쩌지, 그런 이유 없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엔 큰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베로니카 황녀를 처음 보고 확실히 알아차린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엘렌 못지않은 고집의 소유자라는 것을.

아마 입단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본인 집처럼 매일 이곳에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럼 최악을 예상하면 지금과 같은 일이 두 달 동안 반복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신분은 턱도 없이 고귀한 클로비스 황실의 하나뿐인 딸. 제1 황녀 베로니카 황녀.

이곳에서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건 눈앞의 황태자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래, 황녀 한 명 입단시킨다고 뭐가 달라지…겠지만 내가 어찌하랴.

그나마 에테르나가 들어오지 않는 거로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원작에서 온갖 권모술수로 아일라를 위험에 빠트린 황태자비가 이번 사건에서 아일라를 구제한다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황녀 전하께서 바로 옆에서 사건을 목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황태자 전하와 저는 의무실에 있어 상황을 아예 알지 못하죠. 황녀 전하께서는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오신 게 아닌가요?”

아까 전에 리카르도를 입단시킬 때처럼 대충 둘러대었다. 그 말이 정말이냐는 듯 황태자가 베로니카 황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안셀모.”

모호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입단을 하고 싶은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네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베로니카 황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내가 쉽게 포기할 거라곤 생각하지 말렴.”

어떻게 이런 예상은 하나같이 벗어나는 법이 없는 걸까.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황태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베로니카 황녀의 의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리하도록 해. 우리 둘 다 범인을 잡길 원하는 마음은 똑같을 테니.”

“…….”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아니란 것쯤은 알았다.

* * *

“이 인원이 전부?”

베로니카 황녀가 루체와 애스터를 보고 말했다. 그들은 난처한 얼굴로 입만 달싹였다. 내가 그들을 대신해 대답했다.

“…다른 단원들은 외근을 나간 상태랍니다.”

“그래요. 단장, 나는 무슨 일을 하면 되죠?”

“지금은 서류 분류를 하고 있어요.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분류하는 일이죠.”

“필요 없는 정보라는 그 기준은 단장이 임의로 정한 것인가요?”

“네. 제 임의대로예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내 임의대로 서류를 분류했다. 원작을 몰랐어도 서류들은 잡다한 정보들이 너무 많아 필히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터였다.

“……그래요.”

황녀는 또 의미 모를 눈빛을 하며 자리에 앉아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자 단원들도 주춤 앉아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순순하게 수긍하니 불안한 건 내 쪽이었다.

-똑똑.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답이 떨어지자 문이 열렸다. 리카르도였다. 그 뒤로 3명의 사람이 줄줄이 딸려 들어왔다. 낭패가 어린 그들의 얼굴은 딱딱하고 창백히 굳어 있었다.

‘설마 에르도안 공작이 자신들을 잡으러 왔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겠지.’

저렇게 냉기가 풀풀 흐르는 얼굴로 나를 잡으러 왔다면 흡사 저승사자가 잡으러 온 기분이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화, 황녀 전하?”

그들 중 베로니카 황녀를 알아본 이가 있었다. 리카르도는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베로니카 황녀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들을 흘긋 보다가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관심 없음. 이 네 글자가 그녀의 얼굴에 선명히 적혀 있는 듯했다.

나는 베로니카 황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그녀가 귀찮다는 얼굴로 미적미적 일어났다.

“새로운 단원. 잘 부탁.”

말이 심히 짧았다. 나 또한 그녀를 따라 입을 열었다.

“새로운 단장이에요, 잘 부탁해요.”

“…….”

“…….”

그 말에 황녀의 시선이 단원들에게 꽂혔다. 종이처럼 백지 같은 얼굴에 작은 흥미가 어렸다.

“명령으로 외근을 나간 게 아니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가 애를 돌보는 보육원은 아닌데.”

“네? 네, 그렇죠.”

“인력을 바꿀 거면 초반에 바꾸는 게 좋아요.”

그녀가 그리 말하며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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