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58화 (59/124)

58화

* * *

리카르도가 심문을 받고 있다니?

오필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펠릭스의 말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원작에서도 그는 황제의 음독 사건을 맡는 임시 조사단을 이끄는 단장으로 임명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되려 그가 심문을 당하고 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요?”

“…….”

펠릭스는 대답 없이 잠시 침묵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사실 그 또한 각하께서 황궁에서 심문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막 들은 참이라 혼란스러운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혼란으로 물든 백작 부인의 얼굴에 시선을 옮겼다.

아마 그녀도 연회에 참가했기에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일 것이다.

음독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건 아일라 레니에.

펠릭스도 방금 리카르도에게 비상 연락망으로 전달받은 사실이었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과 레니에 영애의 사이는 사내로 맺어진 관계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돈독했다. 특히 레니에 영애가 백작 부인에게 의지하는 듯한 모습은 그에게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았다.

여기까지 부인이 올 이유는 하나.

대답하지 않고 뒤돌아 들어가려던 펠릭스는 마음을 바꾸어 말했다.

“공작님께서 마리어스 기사단에게 부인을 호위하라고 명령한 사실은 부인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설마!”

이 말 한마디에 모든 맥락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근 위병 대장의 피살을 황실에선 주의 깊게 주시했습니다. 그런 일이 황궁에서도 벌어질지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궁내는 얼어붙었죠. 그 와중에 공작님은 사적인 이유로 일반 황궁 기사도 아닌, 최정예 기사단을 움직였으니, 이런 일이 벌어진 상황이라면 공작님이 심문을 받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펠릭스의 얼굴엔 짙은 걱정과 수심이 깔려 있었다. 말을 이을수록 어두워지는 그의 얼굴을 본 오필리아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일은 죄송합니다.”

여기서 사과밖에 할 말은 없었다. 과한 호의는 단호히 거절했어야 했는데. 그때 말없이 중매회사에 무단결근한 것이 그녀에 대한 리카르도의 걱정을 지핀 도화선이 된 듯했다.

‘그래서 마리어스가 마리어스를 내 호위로 붙이신 거겠지.’

차라리 황제가 음독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그에게만큼은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 놓이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오필리아는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아일라도 아닌, 그녀에게 그런 호의를 베푼 리카르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닙니다. 이 일에 관해선 부인께서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오는 오필리아에 도리어 당황한 건 펠릭스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굳이 표현은 하지 않았으나 은연중에 매사에 냉정하던 각하께서 그리된 원인은 백작 부인에게 있다고, 펠릭스는 그녀를 조금 원망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인께서 자신을 좋아해야 한다고 공작님의 등을 떠민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사람 마음이 누구의 강요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 자신을 회고하자 전형적으로 남 탓만 하는 속 좁은 치와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어 조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럼 에드워드 자작.”

오필리아가 맑은 목소리로 그를 상념에서 깨웠다.

“황궁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겠네요.”

펠릭스는 그녀가 어떤 의도로 꺼낸 말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 의문이 오래가진 않았다. 오늘 그런 사소한 것에 고민하기엔 그는 충분히 피곤한 상태였다. 공작님의 소식으로 인해.

펠릭스는 뒤늦게 찬찬히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의 행색을 살폈다. 연회장에서 곧장 이곳으로 온 건지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의 상태는 흙바닥에 뒹굴고 온 것처럼 엉망이었다. 그 드레스를 갈아입지도 않고 온 광경은 일면 다급함도 느껴졌다.

이윽고 떨리는 손을 발견한 펠릭스는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다.

추운 겨울밤에 드레스 차림으로 오래 있으니 추울 만도 했다.

실례를 범했다는 생각에 펠릭스는 급히 문에서 한발 물러났다.

“일단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백작 부인.”

* * *

응접실에 들어오자 차가운 몸이 따뜻한 실내의 온기에 빠르게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옆을 보니 펠릭스가 벽난로에 있는 불을 더욱 강하게 지피고 있었다.

나를 밖에 오래 세워둔 게 그도 내심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리카르도의 부관인 그가 나를 호의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은근한 냉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지금은 그런 냉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호의에 작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펠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백작 부인. 오히려 추운 밖에 부인을 오래 두는 실례를 범했습니다.”

“아뇨, 이 시간에 찾아온 제가 실례를 범한 거죠.”

서로가 본인이 더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웃음을 풋 터트렸다. 서로 얼굴에 금칠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더 죄송하다고 아웅다웅하는 상황이라니. 펠릭스도 이 상황의 이상한 점을 눈치챈 건지 그 또한 처음 봤을 때보다 확연히 풀린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마주 앉아 그의 얼굴을 보게 된 나는 그 또한 상당한 미남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늘 안경을 쓰고 굳은 표정을 지은 탓에 주의 깊게 그를 살펴볼 상황이 오지 않아 몰랐던 사실이었다.

안경 아래에 곱게 휘어진 눈매는 웃음기가 스며들자 더욱 부드러운 미남으로 보였다. 그러나 외모를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연회장에 있던 일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기억을 짜내며 본론을 꺼내었다.

“사실 그 일이 벌어질 때, 저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던 펠릭스의 얼굴이 내 말에 진지한 빛으로 물들었다.

“태자 전하와 의무실에 있었거든요.”

아무리 그 상황을 떠올려 봐도 단순하게 보이는 상황이었다. 황태자와 나는 의무실 안에 있었고, 그사이에 황제가 독이 든 와인을 마시고 쓰러진 것.

나에겐 보이는 사실, 그 이상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엘렌은 그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며 지적했기에 나도 그것이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펠릭스 에드워드.’

어쩌면 그는 그 부분에 대해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

세계관 최강자인 상관과 주인공 버프로 점철된 여주 사이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보통의 사람보다는 훨씬 명석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자마자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엘렌의 말대로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는 걸까.’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 어린 시선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나치게 평범한 것이었다.

“어디가 아프셨습니까?”

병자를 밖에 세워둔 최악의 사람이 되었을까 펠릭스는 그것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의외로 세심한 사람이었다. 원작에서도 그런 성격이 부분적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직접 그런 면모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말한다면, 의무실에 황태자와 단둘이 있던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로위나 카시어스라는 걸 밝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누가 봐도 아프지 않은 남녀가 의무실에 들어가 있는 건 수상하게 보이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어지러워서… 감사하게도 태자 전하께서 의무실까지 데려다주셨답니다.”

펠릭스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사실도 아닌 것으로 괜히 그에게 죄책감을 심어준 꼴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완전히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에드워드 자작은 이 일에 들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 일에 얽힌 레니에 영애에 관해 묻고 계시는 겁니까?”

그는 곧바로 내 질문에 숨겨진 또 다른 질문을 찾아냈다. 조금 무서울 정도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그 말이 맞아요.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아일라는 감옥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 거예요.”

내 말을 곰곰이 곱씹던 펠릭스의 눈이 예리해졌다.

“레니에 영애께서 폐하께 와인을 건넸던 건 알고 있습니까?”

“네.”

“그 일의 경위를 살펴보면 레니에 영애가 먼저 폐하께 다가간 것은 맞으나 그녀의 자의로 폐하께 와인을 올린 것은 아닙니다. 폐하께서 처음 본 레니에 영애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와인을 한잔 달라고 말씀하셨죠.”

“……그렇군요.”

“가시적인 사실만 놓고 단순히 말하면 이게 전부입니다.”

펠릭스는 안경을 고쳐 쓰며 담백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가시적인’이라는 묘한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러운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그 당시 주위에 있던 귀족들이 레니에 영애에게 그런 조언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연루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어떤 조언이죠?”

“그 이야기까지는 구체적으로 하달받지 못했으나 그녀의 데뷔를 화려하게 장식해준 탄신연회에 대해 폐하께 감사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이었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만일 주변에 있던 귀족들이 아일라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면 그건 조언이 아닌 강요가 되었을 것이다. 아일라는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한 영애였으니 말이다.

“그럼… 아일라가 폐하께 와인을 건네도록 상황을 유도한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 가슴은 쿵쿵 뛰었다. 역시나 어떤 음모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일라는 그 음모에 빠져버린 것이고.

“그렇다면 그 귀족들은 대체 누구죠?”

“공교롭게도 전부 중앙 귀족들이었습니다. 거기 태자비의 샤프롱도 있었습니다.”

“황태자비의 샤프롱이라면….”

“예, 레니에 후작 부인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