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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매는 뭔가 잘못되었다-50화 (51/124)

50화

지극히 당연한 걸 바로 잡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애초에 회귀를 하기 전, 아일라가 그렇게 혼수처럼 딸려가듯 시집을 가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레니에 후작 가문이 아일라를 자식이 아닌 더부살이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소한 호칭들조차 아일라에겐 절대로 좌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

에스텔라를 보니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일라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사과였다.

“미안해, 아일라.”

녹음이 깃든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걸 아일라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줄은 몰랐어. 가족으로서 작은 일조차 헤아리지 못한 내 잘못이야.”

내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마치 아일라가 남에게 에스텔라에 대한 험담을 한 사람처럼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더불어 이 호칭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가 아일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에스텔라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작은 일로 만들며 눈망울을 글썽이고 있었다.

“에스텔라 영애. 무슨 오해가 있나 본데, 이 얘기는 아일라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제 잘못이 맞아요, 부인.”

에스텔라가 슬픈 얼굴로 아일라에게 다가갔다.

“아일라,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집으로 돌아와 주면 안 될까?”

* * *

에스텔라가 이런 식으로 이따금 자신에게 친절하고 다정해질 때가 있었다.

아일라는 그 다정함에 속아 몇 번이고 집에 돌아갔다가 끔찍한 지옥을 되풀이하고, 죽은 뒤에 깨달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이번은 다르겠지. 이번은 다를 거야.’

이 속삭임은 희망이 없던 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걸던 마법 같은 세뇌였다.

회귀 후 출가를 한 뒤로는 이 자리가 에스텔라를 처음 보는 자리였다. 그 때문에 그녀를 보자마자 잔잔했던 마음에 거친 풍랑이 일어나듯 동요했고, 입안에 거미줄이라도 친 마냥 아무 말도 못 하며 굳어 있었다.

하지만 회귀 전에 했던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내뱉은 에스텔라의 말에 마음속에 일던 바다는 금방 고요함과 차분함을 되찾았다.

‘집.’

에스텔라가 말하는 ‘집’과 아일라,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집’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일라는 연회장에서 그녀를 마주한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 집?”

“그야 우리 집이지.”

“맞아. 에스텔라. 너희 집이지.”

아일라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 에스텔라의 손을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걷어냈다. 선을 긋는 그녀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에스텔라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저런 작은 행동마저 목적에 착안해 계산된 걸 아는 사람은 아일라와 그녀의 쌍둥이 동생 조르지오밖에 몰랐다.

그래서 주위에서 이쪽 상황을 관망하던 귀족들은 아일라를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아일라는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자리를 떠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이 자리에 온 레니에 후작가 사람들과 한 명이라도 마주친다면 계속 괜찮은 척 미소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그래도 연회장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녀를 위해 여기까지 따라와 준 오필리아를 생각해서였다.

아일라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주변의 시선보다 자신이 오필리아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을까 봐 걱정되었다.

한편, 에스텔라는 시시각각 변하는 아일라의 표정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오필리아에게로 옮겨졌다.

‘저 여자 때문인가.’

그녀의 어머니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후안무치라며 마르그리트 백작 부인을 욕하던 것이 떠올랐다.

‘하필 어울려도 허울만 귀족인 사람과 어울리다니. 아일라.’

아일라는 원래 사람을 잘 따랐다. 한 번 신뢰하기 시작하면 그녀는 미련할 만치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따랐고, 때론 모든 걸 내어 주기도 했다.

정작 아일라, 그녀 자신은 모든 걸 잃어도 상대방이 자신에 의해 기뻐한다면 그것에 만족해했다.

‘정말이지, 멍청해.’

하지만 에스텔라는 그런 멍청한 아이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의 아일라는 뭔가 달랐다. 아무래도 어떤 사람이 그녀를 잠시 바꾸어 놓은 듯했다.

그렇다면 아일라가 평소 하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하던 게 이해가 되었다.

아일라는 조용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다무는 에스텔라를 보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옛날부터 에스텔라는 조용히 뒤에서 일을 꾸미는 걸 좋아했고, 조르지오는 에스텔라의 계략에 앞장서서 행동하는 걸 좋아했다.

“맞아요, 아일라 집은 제 회사잖아요.”

우아하면서도 산뜻한 목소리가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오필리아였다. 그녀는 아일라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렇죠, 아일라? 그러니까 평생 제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마법도 열심히 공부하면 돼요.”

“…네, 사장님. 평생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일할게요.”

“목숨까지 바칠 필요는 없어요. 일하다 죽으면 다음 생에도 나처럼 일만 하게 된다니까요.”

오필리아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꺼낸 말에 스스로가 뜨끔했다. 진짜 과로사로 죽어서 이번 생에도 이렇게 일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왜인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주장처럼 느껴졌다.

한편, 오필리아와 대화를 나눌수록 아일라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에스텔라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읽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오필리아에게 집중하느라 아일라는 그런 에스텔라를 발견하지 못했다. 에스텔라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건 계속 상황을 관찰하던 리카르도였다.

그는 언제 섬뜩한 표정을 지었냐는 듯 미소를 짓는 에스텔라를 보며 생각했다.

‘계속 지켜봐야겠군.’

이 지켜본다는 말의 유효기간은 연회가 끝나서도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리카르도는 마탑에서 증언한 이야기를 잠시 떠올렸다.

‘마탑에서 명부를 작성한 사람은 키가 크고 머리가 긴 여자라고 했지.’

그러면 키가 작은 에스텔라는 명부를 직접 작성한 범인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오필리아를 보는 에스텔라의 눈빛에서 녹진히 깔린 살기를 읽은 리카르도는 오필리아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했다.

마음 같아선 24시간 내내 그의 눈이 닿는 곳에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면 그의 바로 옆이라든가.

하지만 오필리아가 혼인도 안 한 남자 귀족과 함께 있다는 이유로 추문에 휩싸이는 건 원치 않아 리카르도는 하는 수 없이 레니에 후작 가문에 심을 세작을 고민했다.

그때 장내에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시어스 공작과 공작 부인, 소공작께서 입장합니다!”

* * *

장내에 내가 들어오고 맞는 세 번째 정적이었다. 가면 아래에 있는 내 표정은 아마 밀랍인형처럼 굳어 있을 것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내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디 아픈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리카르도가 물었다.

“제가 아파 보이나요?”

“몸에 도는 기운이 찬기를 띠는군.”

“찬기요?”

리카르도는 설명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에 손바닥이 보이는 방향으로 손을 올렸다. 그의 손이 오히려 나보다 더 차가웠다. 사람의 손이 이렇게 차가워도 되나 싶을 만큼.

“저보다 공작님이 더 아프신 거 아니에요?”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내 딴에는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밖은 겨울이라도 연회장은 보온 마법으로 따뜻하다 못해 후끈했다. 그런데 이렇게 손이 차갑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나는 원래 북부에서 태어나서 찬기가 타고난 몸이다. 타고난 것과 일시적으로 찬기가 도는 거랑은 경우가 전혀 다르지.”

리카르도가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이런 경우는 어디가 아프거나 일시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야. 둘 중 어떤 것이든 좋지 않은 상황이니 지금 연회장을 떠나서 푹 쉬도록 해라.”

나는 그가 잡은 손을 슬쩍 빼며 괜찮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직 이 연회의 주인공이 오지도 않으셨는데 벌써 제가 집에 가버리면 큰 무례를 범하는 일이죠. 심지어 1년에 한 번 있는 폐하의 탄신연이잖아요.”

1년에 몇 번 없을 베로니카 황녀와의 만남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군. 만일 힘들다면 연회장 왼쪽 가장자리에 의무실이 있으니 바로 거기로 가거나, 나를 부르도록.”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역시 사업 파트너가 최고네요.”

“사업 파트너라, 그래.”

그의 목소리가 조금 씁쓸하게 들렸다.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드레스를 아래쪽에서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누가 고의든 실수든 내 드레스를 밟은 거라 생각해 애써 무시하며 앞을 보았다. 그런데 곁에 있던 리카르도와 아일라가 내 드레스의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 나는 작은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디서 온 아이지?’

황제의 탄신연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귀족은 대부분 고위 귀족밖에 없었다. 행여 신분이 낮은 귀족이 이런 큰 연회에서 아이를 데려왔다가 자식이 사고라도 친다면 하늘이 노래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위 귀족의 자식이 내 드레스를 잡아당겼다는 사실보다 나는 그 아이의 생김새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이건….’

이성은 모른 척해야 한다고 아우성치지만, 본능은 벌써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는 부모를 잃어버린 듯 불안한 얼굴로 내 드레스를 잡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붉은 기가 감도는 금발과 하얗고 뽀얀 얼굴에 다홍색 눈동자. 아이를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나는 아이와 높낮이를 맞추기 위해 천천히 몸을 굽혔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전히 나잖아.’

특히 이 날카로운 눈매. 누구 집 아들인지 바로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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